“시스템을 이해한 당신! 떠나라. 혼돈 속으로!”

우리는 지난 호에서 시스템의 주요 속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끝없이 쪼개지며 또 합해지면서 시공간적으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 시스템이며, 이러한 관점으로 세상을 둘러보았다. 이제 그 변해가는 과정, 즉 뭉쳤다가 흩어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들의 과학 공학적 최고 가치인 ‘창조’에 초점을 맞추어 얘기해보자. 미래 지능시스템의 핵심주제는 ‘창조’이기 때문이다. 신정부 출범과 함께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니, 핵심정책의 하나인 ‘창조경제’니, ‘창조융합기술센터’니 등등 ‘창조’라는 단어는 이미 ‘천지창조’ 등 종교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단계를 지나 일상화된 지 오래이다. 여기에 덧붙여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용어가 ‘융합’이다.

현대자동차 CF를 보면 ‘융합이 뭘까요?’하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전기전자 + 화학 + IT + 신소재 = 자동차’ 라는 자막과 함께 이제 융합을 통한 신개념의 자동차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한다. 어디 그뿐인가? 연속된 CF에서는 낙엽 지는 풍경 속에 그 일부가 된 자동차를 보여주며, 부드러운 클래식 선율과 함께 ‘자동차에 감성을 더하다’라고 속삭인다. 기술적 요소뿐만이 아닌, 감성까지도 고려한 융합 자동차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 그림1. 현대자동차 CF 장면들

올해 국제IT포럼의 주제어는 ‘초협력’(E-Collaboration)이다. 그냥 ‘융합’만으로는 부족한가보다. 모든 분야에서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생태계(Eco-system)와 협력(Collaboration)의 합성어로 ‘초협력’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으니 말이다. 영화 어벤저는 우리가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초협력 사례의 극단을 보여준다. 헐크와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토드 등등 온갖 슈퍼히어로를 한데 묶어 놓고 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융합하고 초협력하려는 것일까? 그 실마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미학적 통찰을 통해 어느 정도 풀릴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소위 ‘좋아 하는 것’(Good)에 대한 구체적 요소로 세 가지를 꼽았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쓸모’. 이 세 가지를 갖춘 것이라면 어떤 예술작품이건 스토리이건 또는 물건이건 사람이건 관계없이 우리들은 열광한다는 것이다. 공학적 제품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더 이상 쓸모 (기능) 하나로 버티는 시대는 갔다. 그야말로 정말 좋은 (Good) 제품 아니면 안 팔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자동차건 스마트폰이건 로봇이건 이제는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편리해야만 팔린다. 무엇 하나 빠져서는 안된다. 그래서 제품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이제는 철학이 필요하고, 예술이 필요하고, 심리학이 필요하고, 그래서 융합이 필요하고, 결국 창조가 요구되는 것이다. 스티브잡스는 일찍이 “소크라테스와 한나절만이라도 보낼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아낌없이 주겠다.”고 까지 말한 바 있다. 덧붙여 “나는 절대로 예술과 과학이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다. 내가 아는 과학자들은 모두 음악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최고의 인재들은 나무의 한 쪽 가지만 보지 않는다.”고 까지 강조했다. 철학과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 이것이 애플을 세계최고의 창조적 기업으로 이끈 스티브잡스의 선견지명이 아니었을까? “삼성은 애플에 비해 기술력은 앞선다. 다만 창조력이 떨어질 뿐...” 미래의 답이 창조에 있음을 간파한 삼성은 대변혁을 선언한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20년 전의 일이었고, 어느덧 삼성은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 그림2. 초협력을 소재로 한 영화 '어벤져'

▲ 그림3. 융합을 강조했던 스티브잡스

그럼 어떻게 ‘창조’를 달성할 수 있을까? 먼저 스위스의 시스템이론가인 프랜시스 셀리에가 지은 시를 살펴보자.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혼돈은 창조를 낳았다.
창조는 질서로 자라났다.
어느날 질서는 혼돈과 한판 전쟁을 벌였고
마침내 질서가 혼돈을 무너뜨렸다.
이때부터 슬픔은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창조가 죽었으므로 ...

도를 닦는 것은 곧 혼돈을 닦는 기술이라고 (修混沌術) 주장하는 장자의 우화도 들어보자.

남해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은 ‘홀’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은 ‘혼돈’이라 하였다. ‘숙’과 ‘홀’은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그때마다 ‘혼돈’은 그들을 융숭하게 대접했다. ‘숙’과 ‘홀’은 고마운 마음에 어떻게 하면 ‘혼돈’의 친절에 보답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였다. “그래! 사람에게는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쉰다. 그런데 ‘혼돈’은 아무 구멍도 없으니 우리가 그의 몸에 구멍을 뚫어 주자.” 하루에 구멍 하나씩 뚫기 시작하여 7일째 되던 날, 마침내 ‘혼돈’은 죽고 말았다.

두 작품 모두 새드엔딩 스토리지만, 질서와 혼돈 그리고 그로부터 탄생되는 창조의 소중함을 얘기하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려 창조의 싹을 없애 스스로 자멸을 자초하는 우매한 우리들을 꾸짖으며... 장자의 스승격인 노자의 도덕경 첫 장은 이렇게 끝난다.

아득하고 또 아득하면, (혼돈 속에 들어가면) 수많은 묘한 문에 (창조) 이른다.
<玄之又玄 衆妙之門>

혼돈 속에서 창조가 나타난다는 고대 동양 철학자의 통찰이 놀랍다. 서양에서도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통해 창조란 無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의 재구성을 통해 나온다는 시스템적 특성을 간파한 바 있다.

이번에는 명화 한편을 감상해보자. 벨기에 초현실주의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피레네 산맥의 성채이다. 그림 맨 윗부분만 보면 단단한 땅위에 굳건히 서 있는 튼튼한 요새의 성벽이 보인다. 흔들림 없는 질서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아랫부분으로 내려가 보면, 단단해 보이던 땅덩이가 허공에 떠 있는 상태가 된다. 확고했던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혼돈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맨 아랫부분을 보면 안정적인 바다위에 시원한 파도가 치고 있다. 혼돈 속에서 찾은 새로운 질서, 즉 평화의 모습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보인다.

▲ 그림4. 피레네 산맥의 성채

혼돈이란 그리스어로는 ‘카오스’라 하는데, 이것은 우주발생 이전의 원시상태인 텅 빈 공간을 뜻한다.물리학에서는 불규칙적인 결정론적 운동을 가리킨다. 즉 무질서한 가운데서도, 뭔가 규칙성을 나타내는 시스템적 특성을 말한다. 이렇게 출발된 카오스이론을 21세기 최고의 과학적 업적중의 하나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마도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통찰력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창조적 가치를 창출해낼 과학적 토대가 마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일부러 카오스이론이니 엔트로피법칙이니 들먹이며 혼돈(무질서)을 통한 창조를 구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자연 그대로가 이미 질서이며 동시에 무질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질서, 저렇게 보면 무질서이다. 우리들 관점의 차이만 있었을 뿐, 세상은 거기 그냥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연 그대로가 이미 창조 상태이다. 우리들의 고정된 시각이 질서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무질서를 못보고 (보기 싫어하고) 그래서 창조를 못 볼 뿐이다. 어떤 이는 반문할지 모른다. 질서정연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물론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자신의 가치기준에 따라 그때그때 질서 있게 살아간다면... 그러나 대부분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가? 남들이 정한 기준을 마치 자기의 것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즉 타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불교적 가르침은 결국 이러한 고정된 시각, 편견, 즉 고정관념을 깨자는데 있다. 그래서 본래 공(무질서)이라 강조한다. 잠시 뭉쳤다가 (질서, 색) 다시 흩어지는 (무질서, 공)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우리들이 너무 뭉치는 것만 보기에, 구지 공의 시각을 강조하는 것뿐이지, 공 따로 색 따로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공과 색이 둘이 아니라고 한다. (공색여여) 그리고 이러한 진실을 바르게 이해한 상태를 깨달음이라고도 하고 열반(창조)이라고도 한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맨 아래 시원한 파도는 곧 열반의 평화인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공색이 여여한 열반의 경지를 그린 작품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이러한 시원함, 모든 짐을 벗어던진 홀가분한 마음을 못 느끼며 살아가는 것일까? 아마도 세상의 이치, 자연의 법칙, 곧 시스템의 속성을 망각한 채, 질서(색)에만 사로잡혀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남들이 정한 질서를 자기 것인 양 착각한 채... 창조적 사고로 이 시대를 이끌어가려는 이들이여! 고정관념, 기존질서, 그것이 깨지는 두려움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마저 벗어 던지고 세상을 바로 보자. 거기 이미 무질서가 있고, 거기 이미 창조가 있고 평화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에만 매달리느라 실체를 못 봤을 뿐이다. 그렇기에 ‘끝없는 노력!’, ‘무조건 열심히!’ ‘목숨 걸고!’ ‘빨리빨리!’ 보다는 ‘여유로움’, ‘한발 물러섬’, ‘즐김’, ‘고요함’을 익히자. 그리고 거기에서 답을 찾자.

성철스님하면 떠오르는 ‘산은 산, 물은 물’ 화두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승이 삼십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깨달음에 드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으로 보았다.
지금 편안한 휴식을 얻고 나니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은가 다른가?

처음의 질서가 (고정관념: ‘산은 산, 물은 물’) 깨지고 나니 (무질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님’) 비로소 새로운 질서, 온전한 세상의 모습이 (창조: ‘산은 산, 물은 물’) 보인다는 것이다. 이 정도 경지에 이르면, 선시가 터져 나오나 보다. 고은시인처럼.

내려 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고정관념을 깨고 버리고 비워내려는 지혜 없이는. 법화경의 한 구절처럼.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 그림5. ‘산은 산, 물은 물’의 성철스님

그런데 ‘산은 산, 물은 물’ 화두의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질문인 세 견해는 같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것일까? 아마 본문 중에 이미 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지능시스템이라면 이쯤은 척척 해결해야 지혜시스템으로서의 자격이 부여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만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느니, 그래서 지능시스템을 아예 만들지 말아야 한다느니, 구지 만들려거든 인간에게 복종하는 절대적 원칙을 세워야 한다느니, 지능시스템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지능을 초고속으로 진화시켜야 한다느니 등등 지능시스템과의 동거가 예상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해소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창조의 경지에 이르려면 무조건 기존 상식을 깨는 파격이면 다될까? 일본 IT업계에서 손꼽히던 일본전산회사의 사례를 보자. 이 회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불필요한 직원으로 분류하였다.

- 힘들 때 도망가는 사람
- 자주 몸이 아파 쉬고 지각하는 사람
- 남의 일처럼 쉽게 말하는 사람
- 끝맺음이 어설픈 사람
- 쉽게 ‘하겠다’하고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스펙은 무시하고 파격적으로 직원을 채용하였다. 명문대출신을 배제하였으며, 밥 잘 먹고, 목소리 크고, 화장실청소 잘하는 사람을 발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파격적인 행보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일본전산회사의 결말은 어떠했을까? 혁신적이고 창조적으로 보이던 회사가 결국은 문을 닫고 말았다. 왜일까? 창조성은 획일화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양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즉 고정관념을 좋아하고 그것에 익숙한 명문대출신의 모범생형인 사람들도 필요하고, 동시에 자유분방하고 개성강한 문제아형도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이 곧 창조적 힘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지능시스템을 만드는데 있어서도,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이다. 즉 모범생적인 (규칙적인, 경험적인, 계획된) 처리방법도 필요하고, 문제아적인 (불규칙적인, 초보적인, 무계획의) 처리방법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창조적 지능시스템 나아가 지혜시스템으로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각 대학에서는 시대적 요청을 반영하듯 ‘창의공학’이라는 과목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기존의 고정된 공학적 시각과 틀을 벗어나 창조적이고 융합적 개념의 공학을 도입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로 환영받을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과목운영 방식을 보면, ‘창의공학’이라는 교재를 통해 창의공학 이론을 주입시키고 시험을 통해 얼마나 많이 외우는지 평가하는 것이 고작이다. 무늬만 ‘창의’일 뿐이다. 기존의 틀을 깨고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일은 정말 뼈를 깎는 의지와 도전, 무엇보다도 의식의 대전환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The ‘should be’ kills life!”라고 한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습관적 관념들이 우리들을 정체시키고 마침내 고사하게 만든다. 화장실변기에 그려진 파리그림 하나가 우리들에게 주는 실용성과 신선한 즐거움을 새겨야할 것이다.

▲ 그림6. 화장실 문제를 개선한 파리그림

아래 그림을 그냥 토끼라고만 우기지 말자. 그림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돌려놓고 보라! 아직도 토끼인지.

▲ 그림7. 토끼인가? 아닌가?

카사노바를 꿈꾸는 이들이여! 오늘도 그녀 생각에 밤잠 설치지 말고, 그냥 두 다리 쭉 펴고 편히 잠들라! 그 속에서 ‘의외성’, ‘혼돈’, ‘창조’가 자라날 것이다. 그래야 타인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그녀와 세상을 온전히 품을 수 있을 것이다. ▒ 지승도ㆍ항공대 항공전자 및 정보통신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