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시스템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지난 호에 모델에 대해 살펴보았다. 실세계 또는 대상체에 대한 표현체를 우리는 모델이라 정의하였다. 이제 보다 근본적으로 실세계든 대상체이든 지능시스템이든 모든 개체 또는 존재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용어의 정의에 대해 살펴볼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지능시스템을 이해하고 만들려기 위해서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이라는 말은 이미 일상어가 되어 있다. ‘도대체 시스템이 없단 말이야!’, ‘좀 시스템적으로 생각해라!’, ‘시스템 개발에는 성공했니?’ 등등 뭔가 알아서 척척 돌아가는 어떤 것, 또는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어떤 것, 또는 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 또는 조직이나 장비 등을 두루뭉술하게 일컬어 시스템이라 부른다.

필자가 낯선 땅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수강한 과목 중에 ‘시스템공학’이란 과목이 있었는데, 첫 과제물이 바로 시스템의 정의에 대해 조사해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일주일 동안 도서관을 이 잡듯이 뒤진 끝에 나름대로 그럴듯한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인터넷도 검색엔진도 없던 시절의 얘기다. 그때 내가 얻은 결론은 이랬다. 첫째, 시스템이란 정의는 너무나 많아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점, 둘째 그로 인해 세상에 시스템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는 시스템이라는 중요한 그러나 다소 식상한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가장 지명도가 높은 Webster 사전의 일반적인 정의를 살펴보자.

“규칙적으로 상호작용하거나 상호의존적이면서 단일 집합을 형성하는 항목들의 집합 또는 조화로운 배열 및 양식”

인터넷을 통해 많이 찾게 되는 Wikipedia에서의 정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시스템은 구성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통일한 조직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일정한 구성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고 그 구성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가 분명히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

두 사전적 정의 모두가 요소와 상호작용이라는 주목할 만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아우르는 과학 공학적 측면에서의 보편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입력(I)과 출력(O)이 있는 그 어떤 것(S)” (그림1 참조)

입/출력이 있다는 말 자체가 상호작용을 내포하기에 사전적인 정의와 다르지 않다.

▲ 그림1. 시스템

사람은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위에 언급한 사전적인 정의에 따르자면 사람이란 분명히 시스템의 부류에 속할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사람은 분명히 규칙적인 상호작용과 단일 집합체로 구성되어있으며 조화로운 양식도 갖고 있으며, 뭔가 먹고 배출하며, 화답할 줄 알며, 또한 여러 개의 신체 구성원들로 분할될 수 있다. 그러면 요즘과 같은 가을철에 흔히 볼 수 있는 낙엽은 어떨까? 그런 것마저도 시스템이라 할 수 있을까? 바람이라는 입력을 받으면 허공을 헤매며 지그재그 떨어져서 이리저리 나뒹굴다 감상에 젖은 그 누군가를 만나면 그 쓸쓸한 모습 자체가 출력이 되어 그 누군가를 울리게 만드는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여겨보면 어떨까?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이 세상에서 시스템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Brian Gaines가 말한 시스템의 정의를 보자.

“시스템으로 구별할 수 있는 것이 곧 시스템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시스템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시스템이다.”

그렇다! 우리가 시스템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시스템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위함이 아니다. 세상을 시스템적으로 파악하고자 함이다.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함이다. 과학적 사고란 시스템적 사고와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시스템적으로 세상의 모습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요한 특성들을 얻게 된다.

1. 세상(시스템)은 얼마든지 쪼개질 수 있으며 또한 합해질 수 있다.

그림2에서처럼 시스템은 쪼개지고 또 쪼개져서 분자, 원자 등을 지나 쿼크, 힉스 너머까지 쪼개질 수 있으며, 반대로 합해지고 합해져서 태양계 나아가 은하계 너머까지 합해질 수 있다. 그림에서 중간부분의 누워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아래쪽으로는 작게 쪼개진 모습, 즉 손등, 혈액세포, 분자 등의 미시적 시스템을 나타내고, 반대로 사람의 위쪽으로는 확장된 모습, 즉 호수공원, 도시, 지구, 태양계, 은하계 등의 거시적 시스템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시스템의 안과 밖에 한계가 없음을 중국 고대 사상가인 장자는 이미 지소무내(至小無內: 지극히 작아지면 그 안은 비어있다.)와 지대무외(至大無外: 지극히 커져도 역시 그 밖은 비어있다.)라는 말을 통해 통찰한 바 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학문분야라는 것도 이와 같이 시스템 수준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 의학이나 동물, 식물학 등이 중간 수준의 시스템을 다루는 학문분야라면 도시공학과, 사회학과, 정치학과 등은 그 이상의 큰 범위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일 것이며 기상학과, 지질학과 등은 그 다음 단계, 지구과학과, 대기학과 등은 그 다음 수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과 등은 더 큰 수준의 시스템에 초점을 맞춘 학문분야일 것이다. 반대로 생명공학과, 미생물학과 등은 중간 수준의 시스템 보다 한 단계 낮은 미시적 시스템을 대상으로 할 것이며, 원자물리학, 핵물리학 등은 그 보다 더 낮은 시스템을 대상으로 할 것이다. 물리학이 안으로는 원자물리학, 밖으로는 천체물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스템 관점을 수용하듯이, 로봇분야도 안으로는 하나의 독립적 개체로 파악하려는 사고에서 벗어나 다수의 작은 지능단위체(인간의 뇌세포에 해당)간의 결합 형태로 접근하려 하며, 밖으로는 다수 로봇간의 협력관계로 (사회조직에 해당)관심의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이와 같이 시스템은 바라보는 관점과 목적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따라서 시스템을 연구하거나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관심 대상시스템의 범위 및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디까지가 대상 시스템의 안쪽인지 바깥과는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의한 바 그대로 곧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시스템은 공간적으로 끝이 없기에 우리들의 지적 탐구도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 그림2. 시스템은 끝없이 쪼개지며 또한 끝없이 합해진다.

2. 세상(시스템)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림3에서처럼 사람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존재한다. 계절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변해간다. 세상에 영원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선전 문구가 있지만, 다이아몬드도 결국은 변한다. 다만 지구상에서 가장 변화속도가 느린 물질이기에 영원토록 변치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의 징표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시스템적 사고의 덕택인지(?)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를 외친다. 변화 자체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즐기려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아닐까? ‘이 시련도 곧 지나가리라!’, ‘메뚜기도 한 철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공부도 때가 있느니~~’ 등등 나름대로 시스템적 인생관이 자리 잡기도 한다.

그렇다면 신은 어떨까? 창조주를 비롯한 신들은 영원한 존재로 알려져 있지 만, 안타깝게도 종교적인 측면이 아닌 과학적인 측면으로는 아직까지 영원한 존재는 파악되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는 말처럼 세상의 시작도 끝도 파악되지 않는다. 때문에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으로부터 진정한 과학이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종교적으로도 불교에서는 ‘무상(無常)’이라는 용어를 통해 ‘항상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설하고 있다. 모든 존재들은 끝없이 변하는 것이기에 실체적이라 할 수 없으며 따라서 비어있다는 의미로 ‘공(空)’이라고도 한다. 실체가 아니라고 해서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건에 따라 생하고 조건이 다하면 멸한다. 즉 조건에 따라 합해졌다가 조건이 다하면 쪼개진다는 것이다. 원인에 따른 결과로 인해 이와 같은 생멸현상이 끊임없이 전개되는 것을 인과의 법칙이라 한다. 과학적으로는 합치려는 힘의 작용을 에너지 (최적화) 법칙이라 하고, 쪼개지려는 힘의 작용을 엔트로피 (분산화) 법칙이라 한다. 즉 에너지를 극대화시킴으로 해서 하나의 질서(생)를 이루면, 영원히 가는 것이 아니라, 점차 세력이 약화되어 궁극적으로 엔트로피의 작용에 의해 무질서 (멸) 상태로 변한다. 이 역시 변화의 과정을 통한 새로운 에너지 극대화에 의해 또 다른 질서 (창조)를 맞이하게 된다. 모든 존재들이나 시스템은 이와 같은 생멸의 변화현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골치 아파하는(?) 미분방정식이란 것도 시간적 공간적 변화량을 수식화함으로써 세상의 변화현상을 표현하려는 호모모픽 모델링 도구일 따름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 중에 제우스신의 아버지인 크로노스신이 있다. (그림4 참조) 한 손에는 모래시계를 또 한 손에는 커다란 낫을 항상 들고 다니는 크로노스는 어떠한 존재나 현상에게도 시간의 영원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의 신이라 한다. 그림5처럼 희로애락애오욕으로 점철된 우리들의 삶에서 아무리 행복이 영원하기를 빌더라도, 아무리 늙지 않기를 바라며 발버둥 치더라도 때가 되어 변화의 순간이 닥치면 가차 없이 휘둘러대는 크로노스의 낫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시스템의 법칙,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 그림3.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 그림5. 브론치노 작품: 영원하고 싶은 순간들도, 시간이 경과하면 시간의 신 크로노스에 의해 인생의 장막이 걷혀지고 다음의 상태로 바꿔야만 한다. (중앙에는 비너스와 에로스간의 행복한 순간이 보이지만 동시에 우측 상단에는 때가 되어 장막을 걷어내는 크로노스 신의 단호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 그림4. Gunther Franz Lgnaz 작품: 모래시계로 시간을 재면서 주어진 시간이 경과하면 가차 없이 낮을 휘두르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

3. 세상(시스템)은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시스템의 정의 자체가 입력과 출력이 있는 어떤 것이듯이, 시스템은 외부세계와의 입출력을 통한 상호작용을 전제로 존재한다. 즉 독립적인 실체로서가 아닌 관계성으로 파악되는 것이 시스템이며 세상의 존재인 것이다. 다른 말로 존재란 하나의 개념체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人間)이란 말 자체도 사람(人) 사이(間) 즉 관계성을 강조하는 뜻이 아닌가. 충격적인 말이지만, 우리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도 시스템적 사고로 볼 때, 실체가 아닌 하나의 개념체로서만 파악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무아(無我)’라는 핵심적 진리로 강조하고 있다. 과학적 접근도 이제는 존재중심에서 관계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즉 세밀하게 정의된 하나의 고정적 시스템으로 파악하려는 관점에서 (전일론적) 단순하지만 여러 개의 시스템들이 상호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유기적 시스템으로 파악하려는 관점으로 (시스템적) 옮겨가고 있다. 인공신경회로망, 인공생명, 복잡계이론, 카오스 등이 바로 관계성을 중시하는 시스템적 접근방법에 해당된다. 요즘 대세로 떠오르는 ‘빅 데이터’도 기존의 정보중심에서 정보간의 관계성중심으로의 이동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IT 화두로는 기존의 관계성을 강조한 ‘협력’만으로는 부족한지 ‘초협력’ (E-Collaboration: Ecosystem Collaboration)이 선정되었다. 미래기술의 핵심이 관계성에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철학의 개념이 이미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이동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정해진 실체적 존재로 파악하는 것 보다 바라보는 (인식하는) 관점에 따라 변화하는 존재로서 파악하는 것이 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스템적 관점으로 세상을 파악할 때, 이해득실, 미추, 선악, 자타의 분별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절찬리에 상영 중인 영화 ‘그래비티’에서는 우주정거장과 주인공(산드라 블록) 그리고 우주비행사 사이에 연결된 생명선이 나오는데, (그림6 참조) 마치 상호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존재들의 실상을 드러내는 듯하다. 이 관계성이 단절된 된 주인공은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좌절 속에서 극적으로 용기를 내고 희망의 끈을 찾아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복귀하게 된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아이소모픽하게 세상을 파악한 이타적 행위자가 등장한다. 자신을 희생해서 주인공을 살리는 우주비행사, 잘 생긴 외모에 훌륭한 아이소모픽 모델까지 갖춘 이 역은 조지 클루니가 맡았다.

을씨년스러운 10월의 마지막 밤, 카사노바를 자처하던 내게, 그녀가 이별을 고한다. 낙엽 흩날리는 쓸쓸한 거리에서, 피어나는 눈물을 감추려 하늘을 본다.

“아! 관계가 끊어지니 괴롭구나! 그래도 영원할 수 없으며, 변해야만 하는 것이 시스템이요, 자연현상일진대 어쩌란 말이냐! 곧 좋은 날 오겠지...”

진정한 카사노바란 바로 이렇게 로맨틱하며 쿨한 인간시스템이 아닐까? 아이소모픽 시스템!▒ 지승도ㆍ항공대 항공전자 및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 그림7. 상호관계성이 돋보이는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