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내 스타일!’ A라는 남자가 소개팅을 통해 B라는 여자를 만났는데, 첫눈에 반했다. 운명적인 만남에 심장이 뛰고, 동공이 확장된다. 만남이 계속되면서 A는 B의 일거수일투족에 세밀한 관심을 기울이며 B에 관해 보다 많은 것을 관찰하고 기억해 둔다. 많은 시간을 그녀와 함께 하면서 그녀의 모든 것을 낱낱이 알고 싶은 것이다. 그녀를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욕망 때문이다. 헤어져 있는 동안에도 A는 B의 모습을 틈틈이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이렇게 만남의 시간과 횟수가 늘어갈수록 A는 B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디에 살며, 가족관계는 어떠하며, 장래 희망은 무엇인지 등 기본적인 정보는 물론 무슨 색, 무슨 향기, 어느 계절의 꽃을 좋아하는지, 심지어 생리적 심리적 경향성에 이르기까지 온갖 세세한 정보들이 차곡차곡 쌓여 갈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A가 머릿속에 만들어가는 B의 모습 (B'라 하자)은 실제 B와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델링 작업이다. 다시 말해, 실제 B와 머릿속의 B'가 닮아갈수록 A는 훌륭한 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럴수록 카사노바로서의 성장가능성도 점점 커지게 된다. 이때 B(실제의 그녀)와 잘 만들어진 B'(머릿속의 그녀)의 관계를 호모모피즘(homomorphism)이라 한다. 즉 A가 바라본 그녀, 말하자면 A에 의해 투영된 그녀의 모습이 바로 호모모픽 모델(homomorphic model: 준동형체), B'인 것이다.

참고로 만약 어떠한 왜곡도 없이, 즉 주관적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면 이것은 실제와 완전히 동일한 모델이 될 것이다. 이때 우리는 이것을 아이소모픽 모델(isomorphic model: 동형체)이라 한다. 아마도 이런 완벽한 모델은 에고(ego) 없이 사는 (주관적 개입 없는, 즉 어떤 의도가 없는) 성자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호모모픽 모델 B'는 실체 B를 만난 뒤 처음으로 생겨났을까? 아마도 우리들은 대상체에 대해 좋아하거나 또는 싫어하는 경향성을 이미 갖고 있었을 것이다. 즉 과거 수많은 모델링을 통해 패턴화되어 있을 것이다. A가 생전 처음 만난 B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도 아마 A의 머릿속에는 이미 B와 유사한 경향성을 지닌 b'(내 스타일)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b'를 모픽 모델(morphic model: 원형체)라 한다.

어찌되었건 카사노바를 희망하는, 아니 소박하게는 그저 그녀를 온전히 사랑하고픈 우리들에게는 실재처럼 정확하게 표현된 호모모픽 모델인 B'를 만드는 일이 간절할 뿐이다. B'가 우리 사랑을 영원히 지켜줄 수호신이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내 안에 너 있다’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너무 강한 모델링, 즉 과도한 의도는 집착이 되고 이것은 왜곡을 일으켜, 온전한 호모모픽 모델을 변질되게 만든다. 지나친 사랑이 때때로 우리를 눈멀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호모모픽 모델이 어디 그녀(B')뿐이겠는가? 세상 모든 존재나 현상들에 대해 우리는 호모모픽 모델을 머릿속에 구축하며 이를 근거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이는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한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모델링에 투철한 세계관 내지 인식관으로 보인다. 너무나 유명한 SF영화 ‘매트릭스’는 나(주인공 네오)를 포함한 모든 세상의 존재들이 머릿속 모델과 시뮬레이션 세계를 (가상세계: 매트릭스) 마치 진짜 실세계인양 착각하고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또 다른 SF영화 ‘트론’은 가상세계(시뮬레이션 세계)속 트론들간의 (인공복제물: 호모모픽 모델) 다툼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아이소’라는 이름의 돌연변이 트론이 등장하는데, 바로 아이소모피 모델을 뜻하고 있다. 예상되듯이 ‘아이소’는 ego가 전혀 없이 오로지 남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성자로서 트론세계에 희망의 빛을 던지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공상과학 영화의 소재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과학적 사고란 것도 실제 모델링 작업에 다름 아니다. 과학이란 세상의 이치를 밝히는 것, 즉 진리의 탐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는 공학적 실행으로 이어져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 우리는 과학적 발견인 세상의 모델(이치)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려 하고 싶을 것이다. 다시 말해 과학적 원리를 공학적으로 활용하고 싶어 한다.

자! 그럼 다시 카사노바 얘기로 돌아와서 머릿속의 모델 B'의 활용 방안에 대해 논해 보자. 만약 내일 B와 모처럼의 데이트 약속이 있다고 하자. 이제 연애고수임을 자처하는 A는 오늘도 어김없이 잠자리에 누워 설레는 마음으로 B의 모델인 B'를 머리에 떠올릴 것이고, B'에게 여러 가지 경우의 테스트를 시도해볼 것이다. 예를 들면, 빨간 장미꽃 백송이를 안겨 주었을 때 B'의 반응을 테스트해 보기도 하고, 도둑 뽀뽀를 감행했을 때 뺨을 맞을 것인지, 아니면 숨 막힐 포옹을 당할 것인지도 검토해 볼 것이다. 이와 같이 모델에 구체적인 입력(자극)을 주어 출력(반응)을 구해 보는 과정이 바로 시뮬레이션이다. 정확히 표현된 모델 B'를 통해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행하여 보면, 어떤 입력에 대한 반응이 가장 바람직한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결과 A는 내일도 B와 성공적인 데이트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모델링이 과학이라면, 시뮬레이션은 공학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모델링은 궁극적으로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진리를 밝히는 작업을 일컫고, 시뮬레이션은 모델의 활용 즉 세상을 의도적으로 꾸미는 작업을 뜻하기 때문이다.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은 실체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체에 대하여 가상으로 행하는 것이므로, (즉 머릿속으로 머리를 굴리는 일이므로) 위험성도 적고 돈도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과학과 공학을 자유롭게 다룰 줄 아는 당신은 이제 카사노바의 자격을 온전히 갖춘 듯 보인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기습 뽀뽀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는 뜨거운 포옹이었건만 실제 상황에서는 발길에 차이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모델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실체에 대한 실행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모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즉 실체와 모델간의 호모모픽 관계에 금이 간 것이다. 이 때는 적절한 학습이 (즉 오류를 반영한 모델의 수정 작업)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실체들은 늘 변화하므로, 우리들 머릿속 모델 또한 호모모픽 관계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해야 하는 것이다.

카사노바와 같은 연애고수는 흔히 ‘밀당’(밀고 당기기)을 잘한다고 한다. 시뮬레이션을 잘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턱대고 들이대지 않는다. 매우 섬세하게 다양한 가능성들을 상정하여 모델에 각각의 시뮬레이션을 행하여 최선의 대안을 찾은 뒤, 실행에 옮길 것이다. 즉 세밀한 관찰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정보를 (모델링) 토대로, 깊은 추론과 사유를 (시뮬레이션) 통해, 디테일하게 실행해 (실천력) 나간다. 물론 행위의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통한 학습(B'의 수정)에도 (평생학습)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바르게 모델링하고 (과학) 유용하게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공학) 곧 힘인 것이다. 이것이 카사노바가 되는 비결이며, 나아가 세상을 슬기롭게 사는 지름길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세상의 이치를 바로 알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지혜일 것이다. 여기에 바로 지능 시스템 (또는 지능 로봇) 설계의 해답이 숨겨져 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카사노바로서의 완성을 위한 두 가지 팁을 소개하겠다.

첫째, 상대방에게 나의 정보를 쉽게 노출시키지 말라. 즉 신비주의 전략이 중요하다. 상대방이 나에 대해 너무 쉽게 모델링을 하게 놔두면, 나에 대해 점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늘 똑같은 패턴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금방 싫증을 느낄 것이다. 또한 나 자신은 상대방의 지배하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 나의 모든 정보가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측 불가능한 의외의 돌발행동 등을 시도함으로써 상대방의 모델링 작업을 방해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 상대방은 헷갈리는 모델링을 하느라 온밤 내내 내 생각을 하며 뜬 눈으로 지셀 것이다. 모델링 과정 자체가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애절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때로는 정성을 다하는 상태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모델이 완성 단계에 이르면, 거기에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생겨날 수 있다. 내 맘대로 상대를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는 어느 한쪽만이 호모모픽 모델을 갖는 경우이다. 즉 호모모픽 모델을 완성한 자는 지배자의 입장일 것이요, 호모모픽 모델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자는 피지배자의 입장일 것이다. 만약 상호간에 각자 완성된 호모모픽 모델을 갖게 된다면 백년해로 부부의 일심동체와 같은 안정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자기 자신을 모델링하라. 나름 모델링 잘 한다는 고수들이 간과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모델링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던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채, 상대방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모델링한다 해도 결코 최후의 승자가 될 수는 없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모델링 작업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세속적 욕망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미제일 수 있다. 종교를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모델링 영역일지도 모른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나를 포함한 세상 전체의 아이소모픽 모델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온전한 이치를 터득한 성자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들의 시뮬레이션 결론은 혹시 이렇지 않을까? ‘이타적 행위가 진정한 사랑이니라!’

오늘밤에도 A는 잠자리에 누워 B'를 머릿속에 띄워놓고 이리저리 시뮬레이션을 굴리면서 뒤척이다가 밤잠을 설칠 것이다. ‘제발 내 머릿속 모델이 정확하기를! 그래서 시뮬레이션 결과가 실제로 잘 맞아 떨어지기를!’ 한편 아이소모피 모델을 갖춘 성자는 아무 생각도 없다는 듯 (‘모르는 게 약이다.’)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잘도 잘 것이다. ‘드르렁! 드르렁~~~’ ▒ 지승도ㆍ항공대 항공전자 및 정보통신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