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눈물의 의미를 이해할 것 같다~~~”

영화 <터미네이터II>에서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는 터미네이터의 마지막 대사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사이보그도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감성을 보여준다. SF영화에 더 이상 기계적인 지능시스템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제 인간적인 시스템, 인간의 마음을 닮은 기계를 찾는 시대가 왔다. 단지 이성적 지능만으로는 부족하다. 감성과 지혜까지 겸비해야 한다. 영화 속 얘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마음의 실체를 밝히고 재현해 보고자 하는 연구가 ‘인공마음’이라는 주제 아래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요즘이다. 도대체 마음이 뭘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예술가들은 희로애락의 마음을 표현해왔다. 비록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이 마음이라지만, 몸짓과 표정 그리고 상상속의 세계까지 동원해가며, 예술가들은 우리를 감동시키며 위로해 준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뭉크의 <절규>가 보여주는 고통스런 심정은 남의 일 같지 않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우리를 대신하는 듯... 샤갈의 <나와 마을>을 보면, 염소는 여인에게서 젖 짜는 모습을 연상하는 듯하고, 여인은 염소를 통해 연인을 그리워하는 듯하다. 독창적인 호모모픽 세계로 그려 본 고향마을의 모습이 평화롭다. 반면 <게르니카>에서 피카소는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내란의 참상을 자신만의 호모모픽 모델로 그려내고 있다. 일상적인 타자의 시각, 즉 보편적 시각을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 즉 자기 마음 속 모습을 꾸밈없이 담으려는 진실성이 돋보인다. 이와 같이 다양한 마음의 현상들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그려내려는 예술적 행위들은 감동과 재미를 통해 우리들 삶을 보듬고 치유해주지만, 마음의 본질적 이치를 밝혀내지는 못한다. SF영화들이 그러하듯이...

▲ 그림 영화 <터미네이터II>(2004)

▲ 그림 영화 <브레이드러너>(1982)

▲ 그림 좌측) 뭉크의 <절규>(1895), 그림 우측) 샤갈의 <나와 마을>(1911)

▲ 그림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

까딱 까딱! 손가락질하며 유혹하는 피겨여왕 김연아! 저 가냘프고 예쁜 손가락을 까딱이게 하는 것은 대체 뭘까? 손가락이 스스로 움직이나? 아니면 심장이 움직이게 만드나? 아니면 뇌가 그렇게 하나? 아니면 마음이 그렇게 만들까? 아마도 연아의 마음이 손가락을 움직이길 원했기 때문에 그러한 의지작용이 신호로 바뀌어 손가락까지 보내져서 마침내 손가락을 까딱이게 만들었다고 우리들은 상식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마음이 뇌에서 발생되어 신경계통을 따라 손가락까지 신호가 전달되었다는 것도 생물시간에 배운 상식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다. 실제 뇌신경과학에서도 뇌는 시간적인 신호와 장면의 속성들을 상호 연관시켜 마음을 일으킨다고 한다. 한편 마음이 뇌 활동의 결과로만 발생된다는 것에 대해 반박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역으로 마음이 뇌 활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다. Mind&Life 국제학회에서는 하버드의대 연구원들을 통해 티베트 수행승들을 대상으로 뇌활동에 관한 실험을 진행하여 위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아무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싸움처럼, 뇌도 마음도 아직은 뇌과학적으로는 미지의 영역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마음 하나 깨닫는 것을 지상 목표로 하는 스님들은 마음에 대해 무엇을 얻었을까?

중국 선종 2대조인 혜가스님이 초조 달마대사에게 법을 묻는 대목을 보자.

“스님,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래. 그 마음을 가져 오면, 내가 편안하게 해주마.”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노라.”
“? !!!”

▲ 그림 피겨 여왕 김연아

원효스님의 깨달음도 비슷해 보인다. 워낙 유명한 얘기지만, 다시 한번 음미해 보자.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다가 산 속 무덤에서 노숙을 하게 된다. 잠을 자던 원효가 갈증을 느껴 눈을 떠보니 캄캄한 밤중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어둠 속에 바가지 같은 것이 있어 다가가 보니 물이 고여 있다. 스님은 단숨에 들이키곤 기분 좋게 새벽까지 잠이 든다. 이튿날 아침, 단잠에서 깨어난 스님은 간밤에 마신 바가지를 찾으려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바가지는 보이지 않고 해골만 나뒹군다. 아니! 바가지라고 여겼던 것은 해골이었고 달콤했던 물은 썩은 빗물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뱃속이 메스꺼워 토하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간밤에 아무 것도 모를 때는 달콤하고 감미로웠는데, 해골에 고인 썩은 물임을 알자 온갖 추한 생각과 구역질이 일어나는구나!” 깨달음을 얻은 원효는 춤을 추며 노래한다.

마음이 생하는 까닭에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단물과 썩은 물이 다르지 않네
세상이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 또한 인식에 기초하네.
마음밖에 아무 것도 없거늘 따로 무엇을 구하랴!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쿠다가와 원작 소설을 구로사와 감독이 각색한 영화 <라쇼몽>(1950)도 마음의 정체를 극명하게 다루고 있다.

녹음이 우거진 숲속을 사무라이 남편과 아내가 가고 있다. 그늘 속에서 낮잠을 청하던 산적이 슬그머니 여인의 얼굴을 보고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속임수를 써서 사무라이를 포박한 뒤 마침내 여인을 겁탈한다. 그 뒤 남편은 주검으로 발견된다. 범인은 곧 체포되고, 아내도 불려오고 목격자인 나무꾼도 출석시켜 심문이 벌어진다. 겉으로는 명백해 보이는 이 사건이 사건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미궁에 빠진다. 무엇이 실체적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산적: 내가 속임수를 썼고, 여인을 겁탈한 것도 사실이지만, 남편과는 정당한 결투를 벌인 끝에 죽이게 되었다.

부인: 겁탈당한 후, 남편을 보니 싸늘한 눈초리를 보냈다. 내 잘못이 아님에도 나를 경멸하는 모습에 정신이 나가서 그만 남편을 죽였다.

사무라이(무당의 힘을 빌어 진술): 아내가 나를 배신했지만, 오히려 산적이 나를 옹호해줬다. 그래서 스스로 자결했다.

나무꾼: 여인이 싸우기 싫어하는 두 남자를 부추겨서 결투를 붙여 놓은 뒤 도망쳤고, 두 남자는 비겁하고 용렬하기 짝이 없는 개싸움을 벌인 끝에 한 명이 죽었다.

과연 이들 중 누구의 말이 거짓이고,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전부가 거짓 같고 동시에 진실 같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우리는 태생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카메라처럼 객관적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오로지 마음이라는 창을 통해서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창이 태생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즉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사건 당사자들은 본의 아니게(?) 거짓(왜곡), 즉 타고난 그대로 왜곡된 창으로 사건을 보았기에, 그렇게 밖에 달리 증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름 본능에 따라 진실했던 것이다. 궃이 실체적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 누구냐고 따진다면 아마도 가장 덜 이기적인, 즉 자아의식이 가장 적은 사람이 아닐까? 사람(person)이란 단어는 ‘가면’을 일컫는 페르소나(person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서양적 시각으로도 위선적인 우리들의 모습은 태생적인가보다.

이러한 태생적 모순을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소위 수행이라는 것이 이러한 근원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본능에 충실했던 삶, 주관적인 삶, 이기적인 삶을 벗어나 세상과 시스템의 본질을 이해한 뒤, 일상적인 의식은 물론 깊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미세한 욕망마저 세밀히 알아차리는 철저한 훈련을 통해, 삶의 어느 순간에서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그래서 어떠한 마음의 왜곡현상도 곧바로 알아차리는 그러한 깨어있는 삶을 목표로 하는 것이 수행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지능시스템 또한 당연히 그렇게 깨어 있어야 하리라.

▲ 그림 영화 <라쇼몽>(1950)

무학대사와 이성계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일화를 상기해 보자.

“스님, 스님은 돼지 같습니다.”
“내 눈에 당신은 부처 같아 보입니다....”
“에이! 거짓말 마세요.”
“돼지 눈에는 돼지가,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지요. 껄껄...”

무학대사는 부처만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무학대사의 머릿속에는 온통 부처만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무엇을 보든 부처로 보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무학대사도 무척이나 왜곡된 분이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지 못하니... 물론 중생을 깨우치려는 이타적 마음에서 비롯된 얘기겠지만...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는 천재답게 이 얘기를 놓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 <TV부처>에서 부처의 눈은 진짜로 부처만 보고 있으니...

▲ 그림 백남준의 (1974)

이번에는 서양으로 눈을 돌려 수피교에서 전래되는 우화를 살펴보자. 장님 일곱 명이 각자 체험한 코끼리에 대해 진술한다.

첫 번째 장님이 말한다.
“나는 코끼리의 팽팽한 귀를 만져본 적이 있다. 코끼리는 부채처럼 생겼다.”
두 번째 장님이 말한다.
“나는 꼬리에 맞아 본 적이 있다. 밧줄처럼 생겼다.”
세 번째 장님이 말한다.
“나는 튼튼한 다리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다. 나무처럼 생겼다.”
네 번째 장님이 말한다.
“나는 뾰족한 상아를 만져본 적이 있다. 창처럼 생겼다.”
다섯 번째 장님이 말한다.
“나는 코에 걸려 물에 빠진 적이 있다. 호스처럼 생겼다.”
여섯 번째 장님이 말한다.
“다양한 관점을 종합해서 설명해야 맞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장님은 코끼리는 모르는 사람으로, 그냥 웃고 지나친다.

여기서 잠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종합적 견해를 제시한 여섯 번째 장님이 고수인가? 아니면 말없이 미소 지며 초탈한 듯한 일곱 번째 장님이 진정한 고수일까? 모두 아닐까? 모두 맞을까? 글쎄...

“야! 안되겠다! 밥이나 먹고 다시 하자!”
2PM 창민의 녹화를 진행하던 JYP 박진영이 못마땅한 듯 버럭 소리친다. 잠시 뒤 식사를 마친 그에게 아까 녹음된 곡을 다시 틀어주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공기 반~~ 소리 반~~”
이 사람! 오디션계의 대부 맞나?

누가 옳고 누가 그르겠는가! 우리가 갖는 인식 방식의 속성이 그러할 뿐... 경허스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속세와 청산 어느 쪽이 옳으냐?
봄볕에 꽃피지 않는 곳 없구나! - 경허스님의 시 중에서 -

이제까지 갖가지 비유를 통해서, 마음의 실체 없음과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태생적 왜곡현상 등 마음의 실체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번 더 점검해 보자. 무지개의 색깔은 모두 몇 개일까? 오색 찬란 무지개니까 다섯 개? 일곱 빛깔 무지개니까 일곱 개? 실체가 아니니까 무한개? 아니면 없다고 봐야하나?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

뭔가 보여지기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다. 보고 싶은 뭔가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카메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시공간상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도 저마다 서로 다른 진술을 하게 되는 까닭이다.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 있더라도, 마치 망원렌즈로 당겨보듯 그 사람만이 유독 크게 보인다. 덧붙여 그 사람 얼굴 주변으로 눈부신 후광까지 보인다. 신비체험이 아니라 좋아하고 희열하는 내 마음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첫사랑의 기억을 돌이켜보라. 세상이 온통 밝고 맑게 빛나지 않던가? 첫 키스! 그 때는 천상의 노래까지 들리지 않던가?

이토록 아름답고 신비스런 것이 마음이라지만 반대로 요물처럼 얼마나 빨리 왜곡되는지, 얼마나 쉽게 오염되는지 직접 체험해 보자. 얼룩덜룩 조각구름처럼 보이는 아래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자.

▲ 그림 이게 대체 뭘까?

무엇이 보이는가? 무엇으로 보이는가? 만약 지금 한창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이 전부 연인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냥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이 글의 맨 뒤페이지에 있는 그림을 슬쩍 본 뒤, 다시한번 원래 그림을 보자. 방금 전까지는 도저히 뭔지 종잡을 수가 없었으나, 일단 왜곡이 (오염, 저장) 된 뒤에는, 아무리 부정하려해도 씻어내려 해도 왜곡된 기억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왜곡이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기억 자체를 나쁘다거나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속성이 본래 시도 때도 없이 무슨 일이건 쉽게 개입하려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 뿐이다. 이것이 때때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방해한다.

이토록 왔다 갔다 요물스런 마음이지만 특수한 훈련을 통해 흔들림 없는 초월적인 상태까지 이르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초월의식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마음은 어느 순간도 멸한 적이 없다고 불교인식론에서는 주장한다. 비록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듯한 고요한 상태가 될 수는 있겠지만, 실은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깊은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마음이 여전히 생멸하고 있다는 것이 불교적 해석이다. 오로지 완전한 열반에서만 (모든 조건이 멸한 상태) 마음은 영원히 쉴 수 있다고 한다. 수많은 도인들이 깨달아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 미세 무의식까지 완전히 사라진 경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나, 이 역시 마음을 잘못 알고 있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이러한 특수한 마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삼매)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마음의 장난임을 바르게 아는 것! 즉 마음의 속성을 완전히 파악하는 것! 시스템적 특성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혹자는 수행을 통해 세상이 온통 빛으로 보이고 크리스털처럼 투명하고 입체적으로 크게 보이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주 끝까지 올라가 보았고, 그것도 모자라 우주를 온통 찢어 놓고 왔다는 도사도 있다. 어떤 이는 암흑 속에서 갑자기 불이 켜지듯 세상이 환해졌으며 궁금했던 모든 문제들이 일시에 풀렸다고 큰소리 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음의 광명을 보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몰아의 상태를 깊이 체험한 뒤 깨어나, '나의 깨달음을 증명해 주소서' 하고 외치니, 마른하늘에 갑자기 번개가 치고, 노송에 섬광이 일어난 뒤, 소나무 껍데기가 그을린 채 발 앞에 떨어져 증명을 받았다는 얘기 등등. 깨달음에 대한 얘기들은 무협소설처럼 넘쳐난다. 물론 거짓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체험한 것만은 정말 말로는 형언할 수 조차 없는 진실 그 자체라고 사무치게 강변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 자기 마음에 속고 있다. 그 어떤 훌륭하고 장엄하고 기괴하고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지건 또는 극단적인 마음상태가 되건 그건 그저 특별한 체험 즉 마음의 장난일 뿐이다. 원효가 깨달은 것도 혜가가 얻은 것도 마음의 장난임을 꿰뚫어 안 것뿐이다. 그러니 원효나 혜가의 마음장난과 착각도인들의 마음장난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원효와 혜가는 ‘마음에 실체가 없다’는 마음의 본질을 통찰하는 마음장난을 일으킨 반면, (즉 법을 대상으로 마음을 일으킴) 착각도인들은 자신이 ‘마침내 깨달음의 특정 마음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마음장난을 일으킨 것이다. (즉 마음을 대상으로 마음을 일으킴) 참고로 불교경전에 따르면 마음의 대상인 身受心法(호흡, 느낌, 마음, 법)중에서, 궁극적으로는 法(무상, 고, 무아 등)을 대상으로 일으킨 마음을 깨달음에 이른 마음이라 정의한다. 그러나 착각도인들은 心(마음)을 대상으로 일으킨 마음을 깨달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왜곡의 달인 마음에게 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최근 어느 뇌공학자가 신문에 기고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명상하는 뇌의 핵심은 현재, 과거, 미래로 나누어 분석하는 뇌기능을 통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래와 과거 위주의 해석 기능들을 억제하면 현실을 지금 이 순간 그대로 느낄 것이고, 현재와 과거 해석을 억압하면 현실에서 자유로운 추상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삼매에 든 부처님의 평온한 얼굴은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뇌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초월적 명상 상태를 뇌과학의 입장에서 해석하려는 학자적 시각이 돋보인다. 주장한 바, 뇌기능의 일시적 억제를 통해서 어떤 특정 마음상태에 진입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존재와 시공간의 참모습을 깨달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해탈(속박에서 벗어남)의 미소를 보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억제가 아니라, 존재와 시공간이란 것이 본래 실체가 아닌 개념체에 불과하다는 깊은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제 좀 더 깊이 들어가 뇌신경과학이나 인식론에서는 마음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살펴보자. 뇌신경과학에서는 마음을 “눈으로 꽃을 본다. 혀로 맛을 본다. 손으로 물체의 감각을 느낀다.”등 현실에서 체험하는 모든 감각작용과 정신작용 그리고 그것을 포함하는 일체의 경험 또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이와 유사하게 불교인식론 아비담마에서도 마음이란 “대상을 아는 것”이라 정의한다. 대상 없이 마음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 양자가 모두 공감하는 것이다. 마음 또한 시스템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마음의 대상으로는 현재에 존재하는 물질, 과거에 일어난 마음의 대상 그리고 과거의 마음들까지 모두 포함된다. 마음은 찰나생/찰나멸한다. 즉 한 순간에 일어나서 대상을 아는 기능을 수행하고 멸한다. 그러면 그 다음의 마음이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 그래서 죽음 순간의 마지막 마음이 다음 탄생의 첫 마음으로 이어진다고 불교는 주장한다. 이와 같이 끝을 알 수 없는 윤회가 계속되기에 마음은 단 한번도 멸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완전한 열반에 들기 까지는... 물론 마음은 한번에 (찰나) 두 가지 대상을 가질 수 없다. 즉 눈으로 보는 동시에 귀로 들을 수 없다. 얼핏 보면 동시에 벌어지는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찰나지간이지만 앞뒤가 있다는 것이다. 앞의 마음이 뒤의 마음에 필요한 정보들을 (성향, 성격, 습관 등) 유전 상속하는 방식으로 찰나간의 생멸작용이 끊임없이 전개되는 것이다. 마치 시냇물이 흘러가듯...

아비담마에서는 ‘뭔가를 본다’ 할 때 하나의 기본인식 과정을 17찰나가 (준비단계 3찰나, 입력단계 3찰나, 검토/결정단계 2찰나, 처리/저장단계 9찰나 등이 약 0.2초 사이에 일어남) 연속된 것으로 파악한다. 마음의 종류 또한 89가지로 분류하며, 각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52개의 부수적인 마음이 뒤따른다고 한다. 사실 숫자가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무지개 색깔이 몇 가지인지 따지려는 것처럼... 하지만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추상적인 마음에 대해 이렇게 숫자까지 거론하며 세밀하게 분류하는 이유는 아마도 마음 또한 시스템적 특성을 따르는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며 따라서 마음에 대한 어떠한 신비주의적 해석도 영혼주의적 해석도 지양하고자 하는 의도에서가 아닐까?

하나의 마음이 시작되어 확산되고 마침내 왜곡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그림에서처럼 대상과의 만남(시각과 형상, 청각과 소리, 후각과 냄새, 미각과 맛, 촉각과 감촉, 정신과 사물)을 통해 의식이 (아는 마음) 생겨나고, 그 세 가지를 (감각기관, 대상, 의식)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낀 것을 지각하고, 지각한 것을 사유하고, 사유한 것을 근거 없이 확산시키고, 확산시킨 것을 토대로 시간과 존재에 관한 왜곡된 관념이 (착각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우리를 궁극적 실재로 (실체 없음)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들은 뭔가를 볼 때, ‘내가 본다’고 여긴다. 손가락을 까딱이면, ‘내가 나의 손가락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하겠으나, 몸과 마음의 구성요소들이 조건에 따라 일으키는 작용현상에 ‘나’라는 관념을 상정한다는 것이 잘못이고, 그것이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착각하여 집착한다는 것이 또한 잘못인 것이다.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의 작용에 의해 ‘나는 존재한다’고 잘못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일부 독자들은 이쯤에서 짜증을 낼지 모르겠다. ‘내’가 없다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하고... 이렇게 멀쩡히 살아 숨 쉬고 느끼고 있는데... 결코 부정할 래야 부정할 수 없는 내가 여기 있는데... 데카르트 또한 ‘나’란 모든 부정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유일한 실체이며, 직접적 인식이 가능한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하는데... 나만큼 내게 확실한 존재는 없기에, ‘나’라는 것이 모든 인식의 주체이자 출발점이라는데...

그래서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나’가 있어서 행복한가요? 행복한 척이 아니라, 진정 행복한가요? 그렇다면 아무 문제없다. 결코 ‘나’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분명 있다! 그런데 이 생생한 ‘나’라는 것이 조건에 따라 잠시 뭉쳐진 것일 뿐, 그 안에 어떤 실체적이며 영원불변한 그런 뭔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속성을 가진 임시적 존재를 어찌 ‘나’라고 고집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제부터 세상을 보는 시각을 교정하자는 것이다. 있다와 없다는 정의내리기 나름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영원불변의 실체적 자아가 없다는 시스템적 속성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앞서가는 종교가, 철학자들은 이미 이러한 사실들을 간파해왔다. 수많은 과학자, 공학자들도 이러한 시스템적 속성에 비추어 세상을 이해했고, 이를 활용해서 우리에게 유익한 뭔가를 만들려 애쓰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반문할지 모르겠다. ‘나’라는 것이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면 허무한 것이 아닌가! 내가 없다면 대체 무슨 낙으로 살란 말인가! 나도 없는 마당에 그냥 대충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과학적 입장에서의 불교는 ‘무아’를 주장하지만, 종교적 입장에서의 불교는 ‘깨달음’과 ‘업’의 개념을 도입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깨닫기 전에 ‘나’는 엄연히 있다. 물론 실체는 아니다. 그러나 깨닫기 전에는 아무리 ‘나’를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 없다. 그러니 역으로 ‘나’로서 끝없이 살고 싶다면 절대 깨닫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진실을 모른채 외면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나’를 짊어지고 사는 댓가는 혹독히 치러야 한다. 왜냐하면 원인과 결과의 법칙 (업) 그래서 생멸하는 법칙을 (생로병사)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의 흐름은 시작이 없었듯 끝도 없다. 정이 ‘나’를 안고 살되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아마도 마음 편하게 만드는 조건을 계속 지어나가라는 것이리라. 그래야 마음 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이러한 의지적 삶은 결코 허무주의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의욕과 열정 속에서 ‘나’를 지속시키며 보람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떠한 위선도 없이) 진실로 마음을 편하게 하는 원인을 짓는다는 것이. 이타적 삶이 아니고서는...

▲ 그림 마음의 확산 과정

냄비에 담긴 찬 물속에서 놀고 있는 개구리는 냄비를 서서히 가열시키더라도 뜨거운 줄 모르다가, 팔팔 끊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죽음을 눈치 챈다고 한다. 뱃속 편한 녀석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런데 이게 남의 얘기일까? 톨스토이의 중단편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 (1884)에 나오는 주인공을 보자. 죽음이 코앞에 닥쳐서야, 비로소 자기 삶을 돌아보는 그런 뒤늦은 후회를 할 것인가? 죽음에 임박해서야 허겁지겁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질 것인가? 누가 먼저 갈지 아무도 모른다. 어렵지도 않다. 틱! 틱! 틱! 단 세 순간이면 끝난다. 더 이상 미룰 것인가?

우리는 지난 호까지 호모모르피즘이니, 시스템이니, 창조니 하면서 지능시스템과는 다소 관계없어 보이는 얘기들만 해왔다. 이번에도 마음이니 깨달음이니 하며 다소 엉뚱한 얘기들로 채웠다. 도대체 왜 이런 얘기들이 지능시스템을 만드는데 필요한지 다소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많은 부분에서 불교적 세계관을 얘기하고 있으니... 분명히 말해 필자는 불교인이 아니다. 수행자 또는 명상가는 더욱 아니다. 다만 지능시스템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로서 나름대로의 소신을 피력할 뿐이다. 붓다의 가르침처럼 명쾌하고 완전하게 정리된 시스템이론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종교가 아닌 과학으로 불교를 접하게 된 이유이다. 과학자의 입장으로 쓴 글이기에 행여나 본의 아니게 진실한 종교인들이나 수행자들에게 누가 되는 내용이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럽다. 아무튼 필자의 소신으로는 세상과 인간의 이치와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유 없이 지능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은 그저 단순한 기계덩어리나 감정 없는 치명적 무기를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이성과 감성을 지니고 인간과 교감하며 세상에 유익한 지능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기적 욕망의 충족만을 목적으로 하는 지능시스템은 당장의 편리와 돈벌이 수단은 될지 몰라도, 많은 이들이 염려하는 미래세계에 대한 최악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카사노바를 꿈꾸는 이들이여! 님에 관한 한 최고의 고수 만해 한용운님의 얘기에 귀 기울이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 한용운님의 <고적한 밤>에서 -

그대에게도 사랑하는 님이 있다면, 그림자에 불과한 님에 집착하는 대신 당장 ‘나’부터 없애라. 그러면 놀라운 반전이 벌어진다. 그 님이 통째로 들어올 것이다. ▒ 지승도ㆍ항공대 항공전자 및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 그림 이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