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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고생하는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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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8  21: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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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 대구에서 열렸던 한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적이 있다. 대구∙경북(대경)지역 싱크탱크 조직인 대구경북연구원이 주최한 행사였다. 이 토론회의 주제는 ‘지역게임산업 활성화 방안’이었다. 논제만 보면 점잖은 모양새였지만 속내는 달랐다. 대구가 전국의 게임기업들을 유치해 ‘게임메카’를 조성하면 어떨까 하고 물어보는 자리였다. 당시 문화관광부의 문화산업국장의 기조 발제가 그 뜻을 대변하고 있었다. "대구는 지방자치 단체와 관련기관의 게임산업 의지가 강해 게임도시로서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대구 토론회 한 달여 전 때마침 전주시가 서울에서 마련한 행사에 초대를 받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고급 와인을 곁들인 호텔 저녁식사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당시 전주시장은 수도권 기업들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전주에 유치하려고 하니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이른바 지방자치단체의 투자유치설명회였는데, 그 파격적인 조건이라는 게 너무 단순했다. 법인세를 대폭 감면해주고 회사(공장)부지를 무상으로 임대해주겠다는 게 거의 전부였다. 나중에 이 투자유치 설명회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는지는 모르겠다.

대구 토론회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대구가 왜 게임산업에 관심을 갖고 있느냐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섬유도시였던 대구는 게임하고 별 연관이 없는 곳이다. 게임산업은 그 즈음 대통령의 주된 관심사였다. 대통령은 문화관광부에 게임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방안을 찾아보라고 했다는 말이 관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구가 그런 정황을 염두에 두고 게임산업에 관심을 가졌다면 그야말로 생뚱맞을 일이었다.

지방균형발전이라는 명분아래 정부기관의 지방 이전지를 결정하던 노무현 정부 시절의 에피소드다. 한 산하기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전 희망지역 설문조사를 했는데 의외로 제주시가 1위로 나왔다고 한다. 제주시내 가까운 곳에 공항이 있어 주말에 서울에 대한 접근성이 좋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당시 이 기관의 사무실은 김포공항에 가까운 지역에 있었다.

대구 토론회에서 발언기회가 왔을때 필자는 전주시의 투자유치설명회의 사례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외지 기업을 유치하려면 법인세나 토지에 대한 지원만으로는 안 된다. 그건 기업주의 관심사일지는 모르지만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직원들에게는 자녀 교육이나 주택문제가 더 중요하다." 지자체가 단기적인 정치적 성과에 집착한다면 게임 산업은커녕 어떤 산업도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이후로 대구나 경상북도에서 게임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얘기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현실화된 것이 이른바 ‘로봇 특구’다.

대경권에서 로봇산업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대구와 경상북도가 장차 1조원 이상을 투입해서 로봇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한 게 5년 전인 2008년이다. 로봇이 광역경제권 단위 육성품목으로 지정됐을 때 그 몫이 대경권으로 넘어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중앙정부가 나서 행정과 금융 같은 정책적, 제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2010년 대구에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들어서면서 대경권은 금새 우리나라 로봇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엊그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대경권 로봇산업의 육성현황과 정책과제’보고서 내용은 차라리 충격적이다. 현황조사를 바탕으로 한 이 보고서는 대경권 로봇산업이 한마디로 ‘형편없는’ 수준임을 지적하고 있다. 광역경제권 전략 육성산업임에도 관련기업들 대부분이 소기업이거나 지역 토착 신생기업들인 게 단적인 예다. 대경권 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매출비율도 1%가 채 안됐다. 로봇 제품만으로 매출 100%를 채우는 기업은 한군데도 없었다.

아연실색할 일은 또 있었다. 중앙정부나 지자체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을 자격을 갖춘 기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중앙정부의 신성장동력 투자펀드를 이용하려면 매출액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이어야 하는데 대경권에서는 그런 기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매출액 300억 원이면 이제 막 중소기업으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의 기업들이다. 이런 사실들은 그동안 대경권에서 일정 규모를 갖춘 외부 기업의 유치에 실패했거나 소흘했었다는 얘기이다.

애당초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처음부터 권역 내 기업이나 기술만으로 ‘로봇특구’를 이루어내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을 터이다. 5년 전 대경권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그런 목표는 누가 봐도 불가능했다. 결과론이겠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로봇산업진흥원 같은 기관이 대구에 있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런 기관이 지방에 위치함으로써 행정적인 낭비와 번거로움만 가중될 뿐이다. 로봇산업의 성장에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서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규명해보자는 것은 아니다. 잘잘못을 규명한다고 해서 원상복귀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로봇이 대경권에 와서 ‘고생하는’ 것은 경제나 산업논리 보다 정치적 판단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결과이다. 이제 와서 그것을 탓하면 뭣하랴. 다만, 제2의 로봇 특구와 같은 일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바랠 뿐이다. 어느 산업군이건, 어떤 지역에서건. 서현진•본사 편집고문

서현진 기자  suh@irobo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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