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큰 얼굴에 입이 없는 얼굴. 머리와 머리 나머지 부분으로 몸을 2등분할 수 있는 기형적 몸매는 그렇다 치고 고양이의 상징이라고 할 수염이 볼 옆에 붙어 있는 우스꽝스러운 생김새. 눈은 그저 2개의 점으로 표현될 뿐이며 장식이래봤자 머리 위 핑크색 리본이 전부다. 그러나, 그 황당하다면 황당하다고 할, 보잘것 없다면 보잘것 없다고 할 고양이 그림, 고양이 캐릭터는 년간 시장 규모만 우리 돈으로 약 3500억원에 달하며 전체 자산 가치를 약 20조원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본듯한, 누구나 한 개 정도는 갖고 있음직한 헬로 키티 캐릭터 이야기이다. 캐릭터 왕국이라 불리는 일본 내에서도 자체 가치가 가장 높은 캐릭터로 꼽힐 정도다. 헬로키티는 1974년 일본의 캐릭터 디자인 회사 산리오에서 개발, 1975년 영국 런던에서 첫 상품을 출시한 캐릭터로 일본 사람들이 열광하는 미국 캐릭터 스누피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되었다고 한다. 일본인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이 배경이 되었지만, 단순히 스누피가 개이기 때문에 그 맞상대라고 할 고양이를 택했다는,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만화나 영화, 게임 등 원작의 인기를 끌고 출시된데 비해 헬로 키티는그러한 원작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간혹 보이는 헬로 키티 주인공의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은 헬로키티의 마케팅을 지원하기 위해 별도로 제작된 작품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년째 이어지고 있는 인기와 그에 따른 매출은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목표점이 되고 있을 정도다.

평범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시절, 헬로 키티 캐릭터 상품 모으기가 취미였던 빌 게이츠가 2000년대 초반, 우리 돈 6조 원을 제시하며 헬로 키티의 디지털 판권 전체를 사기 원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산리오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일화는 역설적으로 헬로 키티의 가치를 설명해주고 있다 하겠다. 도쿄 외곽에는 헬로키티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 산리오 퓨로랜드가 운영되고 있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헬로 키티 캐릭터는 약 60개국 에서 5만여종의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져, 술과 담배를 제외한, 이 세상에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모든 종류의 상품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침내 2004년 11월 1일에는 탄생 30주년 기념으로 헬로 키티 로봇이 발표돼 큰 화제가 됐다.

이동 기능이 없는 대화형로봇인 헬로 키티 로봇은 일본 나고야 소재의 디자인 회사 비즈니스 디자인(Business Design)이 NEC시스템 테크놀러지와 함께 개발했다. 보조 소프트웨어 작업은 NEC와 도요타의 자회사 후타바(Futaba Industrial)가 참여했다.

카메라와 스피커, 열과 초음파 센서를 장착한 이 로봇은 약 52센티미터의 키에 10명 정도의 사람을 인식할 수 있고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지능과 표현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정확한 용도는 홈 오토메이션 보조 역할이었다. 집 안의 기계적 장치를 로봇과의 대화 방식으로 풀어낸 오퍼레이팅 로봇이었다. 주변 정보를 인식하고 고개를 돌리고 팔을 휘저으며 몸에 장식된 LED는 반응에 따라 색을 달리 했다.

판매 가격은 40만엔, 당시 환율로 따져도 우리 돈 약 440만원 정도의 고가였다. 옵션을 더하고 버전을 되풀이하면서 우리 돈 700만원 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비싼 가격에 우려를 표했지만 제조사인 비즈니스 디자인의 입장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만만했다. 발표와 동시에 년간 2000대의 판매를 호언장담했다. 헬로 키티의 높은 인기와 헬로 키티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는 몽상적 기대감까지 더해 강력한 우호층으로 분류되는 30대 여성들을 핵심 타겟으로 삼는다는 설명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결론은 그들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판매량은 차마 밝힐 수 없을 정도의 수준. 교육과 관련한 일부 공공기관과 도서관 등에서 단체 구매를 하기도 했지만 나중 자율 보행, 청소 기능, 외출 지원까지 가능하게 하겠다고 하던 NEC와 제작사의 큰소리는 먼산의 메아리로만 남고 말았다.

말 그대로의 로봇에, 홈 오토메이션을 지원하는 기능, 사람까지 인식하며 대화를 나누고 이메일을 읽어 주고 주인이 원하면 날씨까지 알려 주는 로봇, 거기에 그 외형은 일본인들이 열광하는 헬로 키티. 가격이 너무 높아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개발에 직접 참여한 100년 역사의 일본 최대 전자 기업 NEC는 판매 가격은 큰 장벽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이동하지 않는다는 단점, 사람 인식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 정보 처리가 늦다는 지적 등은 헬로 키티라는 강력한 소재가 해결해 줄 것이라 봤다.또 자사의 마케팅 네트워크까지 가동한다면 사업은 성공만 남은 것이라 장담했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정확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로봇이 있어야할 곳에 좀체 보이지 않는 점 만을 생각해도 헬로 키티 로봇은 여느 헬로 키티 상품들이 가진 성공을 맛보지 못했다. 어찌 보면 헬로 키티 상품 군 중 투자 대비 가장 큰 손해를 본 제품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이다.

헬로 키티의 인기와 캐릭터 성에 의존해 가정용 로봇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싣지 못했던 헬로 키티 로봇. 왜 로봇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언젠가 로봇 기술이 발전하고 또 발전해 완전한 자기 사고까지 가능한 헬로 키티 로봇이 만들어져 그 날의 역사를 되짚어 보기도 하겠지만 점차 커져 가는 로봇 시장에 남의 산에 놓인 돌(他山之石)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김혁 ∙ 테마파크 기획자, 테마파크파라다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