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저렇게 로봇이 춤을 잘 추지?”

지난 6월 말 현대차그룹은 로봇개 ‘스팟(SPOT)’과 방탄소년단(BTS)이 함께 춤추고 고난이도 ‘칼 군무’까지 추는 것을 동영상으로 소개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세계적 로봇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기념해 제작한 ‘웰컴 투 더 패밀리 위드 BTS(Welcome to the Family with BTS)’ 영상이었다. 로봇개 스팟은 인간 프로 춤꾼을 뺨치는 실력을 과시했다.

올해로 세상에 나온 지 5년 째인 스팟은 1999년 소니가 만든 장난감 강아지 로봇 ‘아이보(AIBO)’와는 천양지차였다. 그리고 2012년 등장해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던 할아버지 뻘인 큰 로봇개 ‘빅독(Big Dog)’과도 또 달랐다.

금속성인 이 로봇은 빅독과 달리 시끄러운 작동 소음을 내지도 않았고 불안정한 자세도 보이지도 않았다. (혹 넘어지더라도 곧바로 일어나 똑바로 선다.) 보기에 전혀 불안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영상 속 스팟은 BTS 멤버들의 “앉아”라는 명령에 따라 자리에 앉거나 팔굽혀 펴기 동작을 함께 따라하는 등 인간과 로봇 간의 자연스런 의사소통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대의 스팟은 연속적인 웨이브 동작을 연출하거나 원을 그리면서 자유자재로 춤 대형을 바꾸기도 하며 날렵한 춤사위로 전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사실 스팟의 기능은 춤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차 생산공장과 기아차 소하리 공장, 그리고 GS건설, 롯데건설 현장 투입 등에서 보듯 이미 사람을 대신해 여러 곳을 순찰한다. 전후좌우에 달린 고성능 카메라로는 주변을 360도 전방위로 감시할 수 있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하고, 화재 현장에선 사람 대신 건물 내부 문을 열고 들어가 생존자를 확인시켜 줄 수 있다. 지난해 미국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는 코로라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비대면 환자 상담용으로도 사용됐다. 일본 프로야구 경기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무관중 경기에서 응원전을 하기도 했다.

◇현대 로봇의 총아로 급부상

어느새 4족보행 로봇들은 현대 로봇의 총아로 급부상했다. 무엇보다 친근한 디자인에 바퀴 로봇이라면 불가능한 계단과 경사 지형까지 오르내릴 수 있는 데다 각종 최첨단 센서, 컴퓨팅 및 기계학습(AI) 기반의 다양한 기능들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1992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핀오프로 출발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2004년 군수물자 운송용 4족보행 로봇 ‘빅독’을 만들었고 2010년 세상에 공개했다. 그리고 2016년이 되자 훨씬 날렵하고 향상된 스팟을 내놓으며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이 로봇개의 등장은 전 세계 로봇 업계와 연구계는 물론 자동차와 IT업계에도 충격을 주면서 따라잡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새 스팟은 스위스, 중국, 이탈리아, 한국,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 4족보행 로봇 연구의 촉매제가 됐다.

2016년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취리히)의 스핀오프로 출발한 애니보틱스는 자사 4족보행 로봇 ‘애니멀’(ANYmal)을 업그레이드해 생산라인 점검용으로 투입하고 있다. 호주군은 미국 고스트 로보틱스의 4족보행 로봇 ‘비전-60’을 전투훈련에 참가시키는가 하면, 미 공군은 이를 플로리다 공군기지 순찰용으로 배치했다.

스팟의 가능성에 자극받은 재빠른 추격자(fast second)인 중국기업들의 약진도 놀랍다. 유니트리, 샤오펑, 샤오미, 텐센트 같은 중국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스팟에 근접한 성능의 로봇개들을 잇따라 내놓기 시작했다. 이 기업들은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그랬듯 4족보행 로봇에서도 놀라운 가성비로 시장 장악을 노리는 모습이다.

일례로 유니트리는 지난 2017년 2만5000달러(약 3000만원) 짜리 라이카고(Laikago)를 출시했지만 3년 만인 지난해엔 2700달러(약 320만원)짜리 ‘고1 에어’(Go1 Air) 등 3종을 내놓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해 6월부터 시판된 스팟의 시판가 7만4500달러(약 8848만원)와 엄청난 격차다. 스팟 한 대 값이면 유니트리 기본형을 무려 27대나 사고도 남는다.

◇4족보행 로봇의 끝모를 진화…귀착점은?

날로 향상되고, 날로 값싸지는 기술 덕분에 향후 인류는 각 가정에서, 또는 개인별로 한 대의 4족보행 로봇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과거에 자동차, PC, 스마트폰이 그랬던 것처럼.

게다가 4족보행 로봇은 드론처럼 응용범위를 더욱더 확대해 지구 너머 달이나 화성에서도 활용하게 될지 모른다. 이미 영양((羚羊)을 본 뜬 4족보행 화성 탐사 로봇이 만들어져 있을 정도다.

만능 재간꾼 4족보행 로봇의 진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 귀결은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4족보행 로봇을 디스토피아 SF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한 로봇처럼 활용하고 있는 데 대한 불쾌감과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뉴욕경찰청(NYPD)은 스팟을 잠재적 적대 지역에 투입, 시범적으로 이동 CCTV 역할을 맡겼다. 하지만 시민과 정치인의 항의 속에 결국 스팟 대여 사용계약을 취소해야만 했다. 지난 12일 워싱턴 D.C.의 한 행사에서는 1.2km 거리의 목표물까지 저격하는 총을 멘 반자율 4족보행 로봇까지 등장하면서 거센 킬러로봇 논쟁의 불을 지폈다.

이제 세계 각국 정부는 시민들의 권리를 제한하지 않고 인류의 삶에 도움되는 합리적 수준의 로봇 활용을 위한 대책 마련과 함께 킬러 로봇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재구 IT컬럼니스트 hallasand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