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에 약 2조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합의한 미국무역위원회(USITC) 사건이 화제이다. 특히 국내기업인 LG화학이 국내기업인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왜 국내법원이 아닌 미국, 그것도 법원이 아닌 행정부에서 소송을 제기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나라 전체가 해답을 찾는 분위기이다.

필자는 LG화학에서 16년간 근무하며 마지막으로 이 소송을 시작하는 데에 한 역할을 했다. 어째서 기술개발자인 국내회사가 미국무역위원회를 가야했는지, 실무자로서 겪은 몇 가지 경험을 공유해, 기술개발자의 어려움을 알리고 법적 지원 장치를 마련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

어디가 ‘승률’이 높을까… 증거가 큰 힘을 발휘할 ‘소송 관할권’은?

제조업체에서 카피캣을 어떻게 대응할지는 경영진에서 결정한다. 많은 대응 방법 중에서, 필자는 IP 센터에 있었기 때문에 카피캣을 법적으로, 특히 지식재산권으로 대응할 방법을 강구했다.

카피캣을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관할권은 카피캣 제품이 팔리는 곳이면 전 세계 어느 곳이나 가능하다. 즉 상대방 자동차 배터리가 만들어지거나, 팔리거나, 혹은 사용되는 곳이다. 따라서 거의 세계 어느 곳에서나 소송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 최윤경 변호사 (NY)

어디가 가장 승률이 높을까? 어디가 가장 기대할 수 있는 결과 (손해배상, 제조 중지 등)가 큰 곳일까? 어디가 가장 비용과 노력을 적게 들일 수 있는 곳일까? 어디가 가장 실패했을 때 우리가 감당해야 할 충격이 작은 곳일까? 또 어디가 가장 내부적으로 소송 승인이 날 만한 곳일까?

당시 필자는 이런 문제를 전체적으로 자문할 수 있는 곳을 알지 못했고, 비용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인터넷 조사와 주변 지인들에게 한 두 가지씩 물어보는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ㆍ

하지만 일단 본적도 없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땅을 고르는 형국이라 무얼 체크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상태였다.

가장 큰 문제가 증거수집이었다. 우리가 어떤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증거가 가장 크게 힘을 발휘할 관할권을 찾아내야 했다. 아니면, 관할권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증거를 정의해야 했다. 그야말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미궁이었다.

일반 소송보다 ‘훨씬 더’ 큰 압력... 미국무역위원회(USITC)

소송 준비는 극비리에 진행해야 한다. 소송을 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경영진의 명령으로 진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바로 칸막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조직에서, 내가 왜 추가로 이런 자료가 필요한지 이유를 만들어내고 어떤 사람이 그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찾아내서 메일을 보내고 전화하고 찾아가서 부탁하고 또 부탁해야 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자료를 겨우 모아서, 비용을 승인받아, 가능성 있는 관할권에 있는 로펌에 보내서 평가를 요청하면, 초반에는 힘빠지는 회신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중에는 더 가치있는 증거가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은 그 관할권으로 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할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관할권은 모두 정리되고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미국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미국 영업비밀법은, 연방법원에서 통일된 특허법과는 달리, 주마다 다르다. 어느 주로 가야할지 추가로 조사해야 했다. 원래 기본은 피고의 거주지가 관할권을 가지는 것이고,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우리한테 유리한 주로 움직일 수 있는지가 포인트였다.

필자가 일했던 회사는 바로 이 소송 직전에 중국 배터리회사를 미국무역위원회(United State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USITC)에 제소해 상당한 성과를 일구어낸 경험이 있었다. 필자도 그 소송에 참가해서 비교적 USTIC에 친숙했는데, 무역위원회의 행정소송은 큰 장점이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연기나 중단 없이 절대 끝내야 하는 일정기한(보통 1년)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준비가 부족한 상대방에게 일반 소송보다 훨씬 큰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설사 수입금지판정이 내려진다고 할지라도, 행정소송이기 때문에 나중에 법원에서 뒤집어질 확률이 있다. 이것은 예측가능성이 중요한 제조업체에게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 큰 압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USTIC는 행정소송이지만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합리적 의심(Reasonable Suspicion)에 대한 여지를 증명하면 증거조사가 개시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친숙한 지식재산권이 아닌… ‘영업비밀’

영업비밀소송으로 USITC를 가는 것에 대해 안팎의 의견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일단 USITC는 (자체적인 판단으로) 특허침해일 경우 수입금지를 주로 내리는 곳이었지 영업비밀 분쟁에 대한 이력이 별로 없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영업비밀은 친숙한 지식재산권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 받은 로펌의견은, USITC에서 소송을 받아들일 확률이 일반법원보다 낮다는 것이었다.

그 때 필자가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운이 어마어마하게 좋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소송진행을 위해 필자는 USITC가 있는 워싱턴 DC에 단독으로 가는 것을 승인받았으며, 우여곡절 끝에 USITC에서는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일반법원에도 소장 접수는 하였지만 USITC 소송이 끝날때까지 모두 중지되었다. 그렇게, 미국무역위원회는 우리의 전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