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우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모나에서 진행된 DARPA(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 주최 ‘DRC(다르파 로봇 챌린지)’ 최종 결승전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미국, 일본 등 로봇 강국들과 당당하게 경쟁을 펼치고 있는 한국의 로봇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카이스트, 서울대, 로보티즈 등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활약에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로봇이 정해진 미션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는 함께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 우리는 설마설마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팀카이스트’라는 이름으로 참가한 ‘휴보’가 재난 상황을 가정한 대회에서 주어진 임무를 무사하게 끝내고 대망의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준우승을 차지한 IHMC로보틱스와 타르탄레스큐 등 미국 12개팀, 일본 5개팀 등 23개팀을 물리치고 이룩한 놀라운 성과였다. 당시 우승 상금만 200만 달러. 아직도 우리는 그날의 감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작년 6월 7일(현지 시간 6월 6일)에 있었던 일이다.

휴보의 우승 소식을 접하고 특히 일본의 충격이 심했던 모양이다. 세계 최대 로봇 강국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일본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온라인 공간은 네티즌들의 좌절과 원망, 그리고 한탄으로 넘쳐났다. 일본의 이 같은 분위기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경제 침체와 사회적인 갈등이 심화되면서 답답하기만 했던 사회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켰다. “그래 이거야”, 우리도 할 수 있어“. 그런 분위기가 충만했다. 정부도 미래 성장산업인 로봇산업을 육성해야한다는 민간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로봇산업 육성 의지를 강한 톤으로 천명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휴보의 우승은 지금 생각해봐도 자랑스러운 일이었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휴보 우승 1년을 되볼아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과연 극일(克日)을 했는가", "앞으로 극일은 가능한 목표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현실을 보면 아직은 갈길이 너무도 멀어 보인다. 일본의 드론 및 자율주행자동차 육성 정책, 다양한 기관과 연구소에서 쏟아지고 있는 로봇 기반 기술 개발 소식을 접하면서 일본 로봇산업의 저력을 체감하게 된다. 단 한번의 국제 대회 우승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우리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들은 항상 일본보다 한발짝 늦는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요즘에는 중국의 공격적인 로봇산업 육성 행보에 눈이 간다. 비록 로봇업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정책이 왜곡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정말 통크게 나온다. '로봇산업 굴기'라 할만하다. 상하이에 여의도 3분의 2 크기의 자율주행자동차 전용 시험장을 만들고 안후이성에선 무인 버스가 시범 운행에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자율주행자동차 분야에서 우리가 선진국에 3~4년 뒤쳐져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 자율주행자동차에는 온갖 로봇 기반 기술이 활용된다는 점에서 로봇산업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그런 분야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지난 4월 우리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대 조규진 교수팀이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개최된 ‘제1회 로보소프트 그랜드 챌린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 대회에는 8개국 23개팀이 참가해 소프트 로봇 분야의 기량을 겨뤘다. 소프트 로봇은 아직 전세계적으로 발전 초기 단계에 있는 분야여서 세계 각국의 기술 개발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다른 분야보다는 아직은 기술 격차가 크지 않다.

이런 분야에서 우리나라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대한민국 공학도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의 빛을 본다. 한순간의 인기와 흐름에 연연하지 않고 한 우물을 끈질기게, 그리고 올곧게 파다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로봇강국 대열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1주년을 맞은 휴보 DRC 우승과 최근의 서울대팀 소프트대회 우승 소식에서 알수 있듯이 우리의 과학은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고 있다. 또 다른 성과들이 속속 전해지길 기대한다. 그리고 힘겨운 여건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우리나라 로봇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있어 우리는 그나마 행복하다.▒ 장길수ㆍ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