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능형 로봇법’을 대기업 집단에 대한 차별적 규제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뿌리산업법, 산업융합촉진법, 소재부품기업법, 소프트웨어산업법과 함께 ‘지능형 로봇법’을 대기업 집단의 특정산업 추진을 힘들게 만드는 규제법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지능형 로봇법은 대기업 집단 계열사들이 국가가 공인하는 ‘지능형 로봇전문기업‘으로 지정될 수 없으며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65개에 달하는 대기업 집단이 이 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알파고와 같은 지능형 로봇사업을 하고 싶어도 법제도적인 차원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며 날을 세웠다. 글로벌 IT기업인 구글이 ’알파고‘를 앞세워 인공지능 로봇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너무 과도한 법률적 규제 아니냐는 지적처럼 들린다.

‘지능형 로봇 전문기업’으로 지정되면 정부가 추진하는 로봇 관련 사업 참여 우대 등 지능형 로봇 제품 개발 및 판매 촉진을 위한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로봇시범보급사업, 로봇산업클러스터 조성사업, 품질인증 획득, 로봇랜드 조성지역에서의 제품 전시 등에서 우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들 외에도 다양한 로봇산업 육성책이 앞으로 등장할텐데 대기업 집단은 혜택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다.

전경련이 ‘지능형 로봇법’의 규제 조항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일단 반가운 소식이다. 대기업이 로봇산업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사업 진출 또는 확대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 대기업 가운데 로봇사업을 하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현대중공업, 한화테크윈, 현대로템, LIG넥스원 등 정도가 꼽힌다. 굳이 넣는다면 청소 로봇사업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소소하게 교육용 로봇 사업을 하고 있는 SK텔레콤, 자율주행자동차를 개발 중인 현대·기아자동차 정도가 국내에서 로봇 사업을 하는 대기업 집단이다.

쿠카, 야스카와, ABB 등 전문 로봇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는 국내 로봇기업이 별로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유진로봇, 고영테크놀로지, 스맥, 로보스타 등 중소 및 중견기업들이 그나마 국내 로봇산업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사실 지능형 로봇법이 국내 대기업 집단의 로봇사업 추진에 얼마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법이 대기업 집단에 치명적인 규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더 욱 중요한 것은 대기업들이 로봇사업에 대해 갖고 있는 비전과 사업 추진 의지다. 로봇사업에 대한 미래 비전 없이 정부 지원사업을 수주해보겠다고 지능형 로봇법을 거론했다면 민망한 일이다. 그동안 전문 로봇 기업들이 어렵게 지켜온 시장을 나눠먹겠다고 나섰다면 곤란하다는 의미다. 지금으로선 대기업 집단에 걸맞는 보다 원대한 사업 계획과 비전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국내 대표적인 대기업 집단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지난 2001년 로봇 전문업체인 ’한울 로보틱스‘와 공동으로 ‘아이꼬마(iCOMAR:internet COmmunicable Mobile Avatar Robot)‘라는 퍼스널 로봇을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아이꼬마‘의 개발로 가정용 로봇 시대가 앞당겨질 것이라고 홍보했다. 삼성의 ’아이꼬마’는 개념상으로 볼 때 요즘 개발되고 있는 소셜 로봇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집안을 스스로 이동하면서 가족들과 간단한 대화도 하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외부인 침입 등도 감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의 가정용 로봇 사업은 계속 진행되지 못했다. 개발 노하우와 개발 인력이 그냥 사장된 셈이다. 어쩌면 너무 일찍 퍼스널 로봇 사업에 뛰어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삼성이란 대기업이 힘든 여건이었겠지만 대한민국 로봇 산업의 자존심을 심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5년이 지난 현재 로봇산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1인 1로봇 시대’가 아직은 요원하지만 요즘처럼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가 빠른 시대에는 의외로 빨리 변곡점이 찾아올 수 있다. 전문 연구기관들은 로봇산업이 현재 '티핑 포인트'에 들어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알파고 열풍이 불면서 얼마전에는 정부의 인공지능 로봇산업 육성책까지 나왔다. 대기업 입장에선 로봇사업에 발을 담구고 싶은 욕구가 생길만하다. 이번에 전경련이 지능형 로봇법을 대기업 집단 규제법이라고 규정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15년전 삼성전자가 한울로보틱스와 가정용 로봇을 공동 개발한 것은 대기업과 전문 로봇기업과의 상생전략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비록 시장 창출에는 실패했지만 말이다. 현 단계에선 대기업들이 자신의 규모에 걸맞는 로봇산업 발전 전략과 미래 비전을 세우는 것이 ‘지능형 로봇법’을 거론하는 것 보다 더욱 중요해 보인다. 발전 전략과 미래 비전에 15년전 삼성전자와 한울로보틱스의 협력과 같은 상생 협력 방안이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장길수ㆍ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