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캐나다 벤처기업 D웨이브시스템즈가 발표한 이른바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를 두고 주류 양자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한창이다. 요지는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는 비주류 이론인 '양자 어닐링' 방식을 채택한 이 컴퓨터를 진짜 양자컴퓨터로 인정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일본 KDDI 종합연구소 고바야시 마사카즈 리서치 펠로우가 이에대한 견해를 명쾌하게 밝혔다. (이 글은 고바야시 리서치펠로우가 일본 경제전문월간지 ‘VOICE 9월호 기고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수수께끼같은 컴퓨터의 등장
미국의 구글이 지난 5월 연구개발용으로 도입 한 수수께끼 같은 컴퓨터 한대가 과학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캐나다 벤처 기업 D웨이브시스템즈가 개발한 1500만 달러 짜리 초고속 컴퓨터이다.

이 컴퓨터는 20명 정도의 성인이 운반할 수 있는 검은색 대형 엘리베이터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는 극저온 초전도 상태로 복잡한 회로가 구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위용과 파격적인 가격 이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컴퓨터에 붙여진 호칭이다. 제작사인 D웨이브 측은 이 컴퓨터가 세계 최초의 ‘양자컴퓨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세계 많은 과학자들은 여기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양자컴퓨터는 원자핵, 전자, 소립자와 같은 미시 세계를 지배하는 양자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지는 신개념 컴퓨터를 의미한다. 학계는 양자 컴퓨터가 기본적으로 구현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아직도 개발 초기 단계라서 그 성능이 현재 슈퍼 컴퓨터의 수십 배, 수백 배 같은 식으로 논해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양자컴퓨터와 슈퍼컴퓨터의 차이는 현대의 문명과 원시시대의 석기의 차이만큼이나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 검은 엘리터메이터 모양의 D웨이브 양자컴퓨터

그렇다면 이처럼 획기적인 컴퓨터가 그렇게 쉽게 실현 될 리 없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각국 정부와 주요 기업이 양자컴퓨터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하더라도 그 실현 시기는 빨라야 수십 년 후가 된다고 보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가운데 거의 무명에 가까운 벤처 기업 D웨이브기 어느 날 갑자기 양자컴퓨터 개발에 성공했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과학자들이 미씸 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얘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중후하고 심원한 양자 물리학에서 유래한 용어들을 D웨이브가 경박한 홍보 자료에 악용하는 것 자체가 괘씸하다"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D웨이브로부터 이 컴퓨터를 구입 한 구글은 이 같은 고지식한 과학자들의 논쟁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이다. 구글은 실제 양자 인공지능(AI) 연구소를 설립한 데 이어 이곳에서 D 웨이브의 양자 컴퓨터를 이용한 AI 연구 개발에 나선다고 선언하기 까지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구글의 계획 역시 D웨이브의 양자컴퓨터에 대한 논쟁 못지 않게 관심사가 되고 있다. 구글은 현재 양자컴퓨터를 이용해서 무인 자동차를 비롯 사람과의 대화는 물론 사람의 의도와 감정까지 이해할 수있는 검색 엔진 등 꿈같은 신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나서고 있다. 양자 컴퓨터 자체도 SF수준인데 양자컴퓨터를 이용하여 실현하고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도 SF적인 셈이다.

'양자 컴퓨터'는 어떤 컴퓨터...
양자 컴퓨터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알아 보자. 양자 컴퓨터는 한마디로 마이크로 세계를 지배하는 양자 물리학 기반의 혁신적인 컴퓨터이다. 물론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있는 컴퓨터에도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양자 물리학이 적용된 것이긴 하다. 예를 들어 중앙처리장치(CPU)와 저장 장치 등 부품들은 양자 물리학을 기초로 하는 고체 물리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 까지나 컴퓨터의 소자 또는 부품 차원의 이야기이다.

반면, 화제가 되고있는 양자 컴퓨터는 컴퓨터에 적용된 계산 방법에 양자 물리학 원리를 도입한 것이다. 실제로 양자컴퓨터에서는 '양자 병렬성'이라는 특이한 성질이 컴퓨터 내부에 만들어져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월등한 속도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양자 병렬성은 양자 컴퓨터를 구성하는 미시적 구조의 회로인 동시에 무수한 상태를 취할 수 있는 양자 물리학 특유의 기묘한 현상을 말한다. 양자 컴퓨터의 내부에서는 이처럼 어디 까지나 확률, 즉 잠재적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가 무수히 존재한다는 특성이 가진다. 따라서 이들이 동시 병렬적으로 계산명령을 처리함으로써 초고속 계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특히 양자 컴퓨터가 필요한 분야는 '비결정 다항식 시간'(NP) 이라는 특수한 문제를 풀 때이다. NP 문제는 그 계산량이 너무 많아 현재 가장 빠른 슈퍼 컴퓨터로도 수년에서 수십 년, 심한 경우에는 수천년에서 수 만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IT, 금융, 제약, 항공, 군사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작동하는 양자 컴퓨터의 출현을 고대해왔다. 예컨대 대량의 게놈(유전 정보)을 고속 해독함으로써 획기적인 신약 개발을 촉진한다거나, 전 세계의 기후 데이터를 분석하여 온난화와 사막화에 대처하는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양자 컴퓨터가 실현되면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암호체계인 RSA방식의 암호도 쉽게 풀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비하는 양자 기반 암호 연구와 개발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 D웨이브 CTO

양자컴퓨터는 특히 인공지능(AI) 개발 분야에서 큰 기대를 걸게 하고 있다. 구글이 거금을 들여 D웨이브의 컴퓨터를 구입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구글이 진행중인 무인자동차나 사람의 말과 의도를 이해하는 검색 엔진 등은 모두 AI 시스템에 기초한 것이다. 이 AI시스템은 모두 빅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가능한 영역이다. 여기에는 기계 학습 기술이 많이 사용되지만, 이는 말 그대로 기계와 컴퓨터가 주고 받는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지능을 갖게 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기계 학습 과정에는 앞서 언급한 NP의 일종인 ‘조합 최적화’ 문제가 자주 등장한다. 이 문제 역시 현재 가장 빠른 슈퍼 컴퓨터로도 해결하기가 어려워 양자 컴퓨터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양자 어닐링' 개념은 일본에서 처음 정립
과학자들 사이에서 D웨이브를 인정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는 이 회사의 컴퓨터에 채택한 양자이론이 전문가 사이에서는 일종의 이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1985년 영국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가 처음 양자 컴퓨터 개념을 정립한 이후, 관련 연구와 개발은 '양자 게이트'(quantum gate)방식에 따라 진행 해왔다. 이는 일반 범용 디지털 컴퓨터의 기본 소자인 논리 게이트를 양자 역학의 원리로 재구성 한 것이다. 양자 게이트 방식은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가 대부분의 양자 컴퓨터 개발에 채택되고 있을 만큼 주류가 되고 있다.

반면 D 웨이브의 컴퓨터는 '양자 어닐링'(quantum annealing)이라는 전혀 다른 방식에 근거해서 개발됐다. 이는 일종의 아날로그 계산 방식으로서 앞서 언급했던 조합 최적화 문제를 빠르게 풀기위한 알고리즘을 제공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범용 디지털 컴퓨터 방식에 비해 응용 범위가 좁혀 든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양자 어닐링에 대한 기초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방식을 채택한 실용 컴퓨터 개발 시도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양자 어닐링 방식을 채택한 D웨이브의 컴퓨터는 벤치 마크 테스트에서 기존 컴퓨터 보다 3600 배나 빠른 처리 속도를 기록했다. 이는 구글이 진행중인 여러 AI프로젝트를 성능 제한 없이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양자 어닐링 방식은 1998년 도쿄공업대학의 니시모리 히데미노루 교수와 대학원생 카도와키 마사시가 공동 제안한 개념이다. 일본인이 구축한 이론을 일본 기업이 아니라 D 웨이브와 같은 외국 기업이 채택 한 것은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다.

사실 D웨이브는 양자 컴퓨터 개발에 앞서 4 년여에 걸쳐 전세계 물리학 논문 등 관련 정보를 철저하게 조사했다. 이때 D웨이브는 주류인 양자 게이트 방식이 비응집(디코히런스) 성질 때문에 계산에 필요한 양자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 할수 없다는 문제점을 발견 해냈다. 다시말해, 양자 게이트 방식의 컴퓨터는 매우 불안정해서 엔지니어들이 고난도의 기술을 채택해서 만들어도 순식간에 망가져 버린다는 얘기다.

반면 양자 어닐링 방식은 '기저상태'라 불리는 에너지가 계산에 필요한 양자 상태를 가장 낮은 수준으로도 다루기 때문에 매우 안정되어있다는 것. 일본에서도 이 이론을 양자 컴퓨터에 응용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아직은 기초 연구 단계 이다.

일본에서 제안한 개념이 일본에서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본내 양자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 비용이 모두 정부 예산에 의존하고 있는데다 프로젝트 자체가 여러 분야로 나눠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D웨이브는 이 회사 단독으로 거액의 자금을 조달하는 등 개발 조직과 노력을 한군데에 집중시켜 자신들이 주장하는 양자컴퓨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D웨이브가 채택한 양자 어닐링 방식은 양자 게이트보다는 실용적이었지만, 개발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개념을 고안한 니시모리 교수는 "이론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제품으로 만드는 데는 적지 않은 기술적 장애물이 있다"고 털어놓고 있다.

▲ 대니얼 라이더 남가주대교수

니시모리 교수는 D웨이브가 처음 개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양자'라는 용어를 앞세웠을 때만해도 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자신 역시 그런 부류였다고 한다. 그러나 D웨이브가 128 양자 비트 시스템 개발에 성공하고 관련 논문이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에 게재 되면서 상황이 바뀌 었다. 일부에는 D웨이브의 컴퓨터가 양자 이론에 따라 작동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니시모리 교수는 이제는 자신의 평가도 긍정과 부정이 반반이나거나 오히려 긍정이 부정을 앞설 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여기서 니시모리 교수가 언급한 양자 비트는 일반 컴퓨터 데이터 단위인 비트를 양자 물리학 법칙으로 재정의 한 것이다.

D웨이브가 완성한 128 양자 비트 시스템을 평가하여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 한 것은 대니얼 라이더 교수가 이끄는 남가주대학 연구팀이다. 라이더 교수팀은 지난 7 월 D 웨이브가 개발한 512 양자 비트 시스템에 대한 평가 결과도 '네이처'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했다. 라이더 교수는 논문에서 "D웨이브의 컴퓨터는 양자 이론에 근거해 정보처리를 하고 있다”며 “적어도 고전 물리학 이론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설명 할 수없는 것은 확실 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라이더교수팀에 의한 평가는 일부 견해에 불과할 수는 있다. D웨이브를 둘러싼 학계 전체의 평가 결과는 아직 나온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D웨이브의 설립자인 조르디 로즈 최고기술책임자는 "2014 년에 출시예정인 차세대 시스템이 예상대로 성능을 발휘한다면 더 이상 트집 잡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라고 강

▲ 고바야시 마사카즈

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 정리ㆍ번역 서현진 기자

■고바야시 마사카즈(小林 雅一) : KDDI 종합연구소 리서치 펠로우. 1963 년 군마현 출생. 도쿄대학 이학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학계 연구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전문 IT를 중심으로 한 첨단 과학 기술 분야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다수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