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 무렵 우리는 물건을 들어 올릴 때 촉감을 사용한다. 촉감으로 전해오는 물건의 성질에 따라 반사적으로 힘을 조절한다. 부드러운 과일 조각과 유리 장식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쥐어야 한다. 우리 몸은 자동으로 작은 '전단(shear)'을 감지하고 손끝의 부드러운 패드를 활용해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이처럼 강성도(stiffness)가 다양한 물체를 잡을 수 있는 다목적 그리퍼(Gripper) 개발이 지금껏 화두였다.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어리얼즈(Advanced Materials)'는 최근 스위스 로잔공과대학 '마이크로시스템연구소(EPFL-LMTS)'와 스위스국가핵심연구센터(NCCR) 로보틱스 연구진이 흥미로운 그리퍼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날계란, 물 풍선, 바닥에 놓인 종이 등의 다양한 물체들을 간단히 집는 솔루션이다.
이번에 새롭게 개발된 그리퍼는 로봇이 집는 물체 형태에 맞춰 두 손가락이 매번 디자인을 바꾼다. 어떤 물체인지 그리퍼가 감지하면 전자흡착과 정전기 구동을 극대화시켜 액추에이터를 구부리는 방식이다. 전자흡착력은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릴 때 쥐는 힘을 대신한다. 정전기 구동에서 필요한 기계적인 파지력(grasping force)을 최소화하는 역할이다. 이를 통해 깨지기 쉽고 변형된 다양한 형태의 물체들을 다룰 수 있게 됐다.
▲ 스위스 로잔공대 마이크로시스템연구소와 스위스국가핵심연구센터로보틱스 연구진이 개발한 그리퍼
이 신개념 그리퍼가 모양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절연성 탄성중합체 액추에이터(DEAs, Dielectric Elastomer Actuators) 덕분이다. DEAs는 얇은 탄성중합체 막을 두 개의 극판 사이에 배치한 것이다. 전압이 막을 가로질러 인가되면 각각 극판은 반대 전하를 띠며 정전압이 일어난다. 정전압은 탄성중합체 막을 압박해 얇게 하기도 하고 늘이기도 하는데 이 때 동력이 발생해 그리퍼가 구부러진다. 이 때 전극 가장자리에는 가까운 물체를 끌어당기는 전자흡착도 함께 일어난다.
한 대의 로봇을 수십, 수백 가지 어플리케이션으로 활용하기 위한 아이템이 바로 엔드 이펙터(End-Effector)다. 그리퍼는 그 중에서도 대상물 이송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스위스 연구진의 작품은 모양 변화만이 아니라 1.5g의 가벼운 무게와 100ms로 손가락을 닫는 빠른 반응 속도를 자랑한다. 이들의 연구 성과가 운송드론이나 의료로봇 등 다채로운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