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처럼 감정을 가진 로봇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로봇권을 부여해야 할 것인가? 로봇은 정말 감정을 가질수 있는가? 로봇의 리액션은 '감정'인가, '반응'인가? (중략) 무수한 질문들이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을 보았을 때도, 채피를 보았을 때도 나의 머릿속에 가득찼다.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나는 바이센테니얼 맨의 한 장면에서 찾았다.

‘정신 챙기셨어요?’ 얼마 전에 개최한 작은 행사 명칭이다. 로봇 영화를 함께 보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한재권 박사의 새 책 '로봇 정신'에서 따왔다.
이 행사를 개최한 의도는 간단하다. 로봇과 공존하는 미래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엿보고, 문제가 있다면 대비하고자 함이다. 물론 영화라는 매체 특성상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생각해 볼거리를 찾고 토론하며 각자의 로봇 정신을 건강하게 세워보자는 취지다.

채피 그리고 바이센테니얼 맨

우리가 고른 영화는 <채피>다. 극명하리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 영화를 보는 동안 서너 번은 울었다. 극장 어딘선가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장면에서도 필자는 눈물이 났다. 관람 직후에 모인 16명은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 이었다. 하지만 이구동성으로 첫 소감을 '충격적'이라고 했다. 두 시간 넘게 흥미진진했던 토론은 ‘백지 상태의 로봇에게 인간의 폭력성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로부터 시작해서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느냐 보다 인간이 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테이블에 오른 논제들은 다양했다. 인공지능-그것도 고도로 발달한 강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과, 로봇의 이용과 활용, 로봇 감정의 진위여부에서 마침내 ‘로봇에게 소위 '로봇권(인권과 비슷한 개념의)'을 부여해야하는가’에 이르렀다. 갑자기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바로 오늘 다시보기할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이다.
영화는 ‘감정’을 가진 특별한 로봇 앤드류가 가사일을 돕기 위해 어느 가정집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앤드류는 주인의 막내딸을 연모했다. 그러나 그 감정의 실체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를 놓치고, 앤드류는 자기처럼 감정을 가진 또다른 로봇을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난다. 그 사이 막내딸은 할머니가 되어 버렸고, 앤드류는 집으로 돌아와 막내딸의 젊은 모습을 꼭 닮은 포샤를 만나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진다. 그는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결혼을 결심하지만, 이번엔 자신이 로봇인지 인간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시험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불멸의 삶을 버리고 포샤와 함께 자연의 흐름대로 죽을 것을 택한다.

불완전한 인간 그리고 특별한 로봇

신문과 방송을 가리지 않고, '로봇과 공존하는 시대'가 올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그 공존이 '상생'이 될지 '경쟁'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인간은 물리적 능력의 한계가 있는 반면 로봇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인간이 기능적으로 로봇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데 이견은 없을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로봇과의 공존은 경쟁이 아닌 상생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떠한 대상과 함께 살고자 한다면 그 대상을 이해해야 한다. 로봇과 공존하고자 한다면 로봇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해' 라는 것은 로봇이 단지 입력한 대로의 결과값을 내는 기계의 수준에 머물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속 앤드류(혹은 채피)처럼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하여 기계가 '감정'을 갖게 되는 순간, 이러한 '이해'는 복잡해 진다.

앤드류처럼 감정을 가진 로봇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로봇권을 부여해야 할 것인가? 로봇은 과연 인간의 후손이 될것인가? 기술이 발달해 인공 장기 등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해진 지금,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것인가? 로봇은 정말 감정을 가질수 있는가? 로봇의 리액션은 '감정'인가, '반응'인가? 로봇의 반응과 인간의 감정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로봇의 반응이 축적된 데이터에 의한 결과값이라면, 인간의 감정 역시 주변 상황을 오감을 통해 인지하고 이것이 뇌에 전기 신호로 입력되어 그 결과값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던가?

무수한 질문들이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을 보았을 때도, 채피를 보았을 때도 나의 머릿속에 가득찼다.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나는 바이센테니얼 맨의 한 장면에서 찾았다. 앤드류가 포샤에게 청혼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앤드류는 “내 사랑의 감정이 우리의 남은 생을 험난하게 만드는 실수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연발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겠냐”며 그녀에게 청혼한다.

이 같은 메세지는 영화의 곳곳에서 직간접적으로 찾을 수 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도 늘 같은 결론에 이르는 것은 아니라는 '무작위성'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바로 이 불완전성의 유무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즉 불완전하기에 인간이라는 뜻이다. 나는 아직 로봇과의 공존을 위한 완벽한 답을 알지 못한다. 막연히 '상생'으로 가야한다는 것만 알뿐이다. 나도 인간이기에, 지식이 완벽할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이 차이에 대한 이해가 로봇과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한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

* 본 기사는 '월간로봇'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표기는 '월간로봇'의 규정에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