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 영어로 Re-View(리뷰)다. 로봇을 좋아하고 로봇을 디자인하며, 대학에서 키네틱아트 강연을 하는 엄윤설 키네틱아티스트의 시각으로 영화를 재조명한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게으르게 만드는가.”
엄윤설 키네틱아티스트가 영화 《월-E》에 집중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첨단기술에 종속됐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로봇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결국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게 된 미래의 인간.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엄윤설이 귀띔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가 대령되고, 자동주행차를 타고 출근하는 동안에는 3D프린터로 프린팅 된 아침식사를 즐기며, 뉴스 브리핑과 일정을 확인한다. 직장에선 로봇에게 일을 지시하고, 가상현실기기 버추얼라이저(Virtualizer)를 이용해 하와이 햇살을 감상한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는 삶. 모든 기술의 진보를 만끽하며 살아갈 우리 미래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기술의 진보가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일까?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 보이는 이 기술의 진보가 과연 인간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 생각해보기 위해, 우리가 참고해 볼 만한 영화가 있다. 바로 픽사의 애니메이션 월-E이다.

2008년에 개봉되어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월-E의 스토리라인을 정리하자면, 더 이상 손 쓸 수 없을 만큼 오염된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인간들이 떠난 지 700년, 로봇 월-E는 홀로 남아 지구의 쓰레기들을 청소하고 있다. 어느 날 월-E는 인간들이 지구로 보낸 탐사로봇 EVE와 만난다. 그는 EVE를 도와 식물(지구상의 생명흔적)을 채취하게 한다. 두 로봇이 우주선 맥시엄에서 생존하고 있던 사람들을 다시 지구로 돌아오게 만든다는 것이다.

첨단 기술에 의존하는 인간의 미래상

필자가 ‘다시 보기’하고 싶은 장면은 우주선 맥시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맥시엄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모든 첨단 기술이 집약된 우주선이다. 인간들은 침상처럼 생긴 호버크래프트(Hovercraft)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생활한다.

인간들은 침상을 벗어날 일이 없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청소는 청소로봇이(기억하는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청소로봇 모(Mo)를!), 헤어와 메이크업은 단장로봇이 담당한다. 식사는 컵 안에 담겨 침상으로 배달되고, 인간은 씹을 필요도 없이 빨대로 음식을 삼킨다. 인간들이 하루 종일 하는 일과라고는 고작해야 스크린 상으로 보이는 친구와 종일 수다를 떨거나, 침상에 붙은 버튼을 움직여 쇼핑을 하는 것이 전부다. 이렇듯 침상을 벗어나야 할 이유가 없기에 인간들의 팔다리는 퇴화되고, 몸은 비대해진다. 때문에 간혹 침상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면, 스스로 일어날 수 없어 속절없이 로봇 구조대를 기다려야만 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극단적으로 과장되고 희화된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이것을 영화에 재미를 더하기 위한 ‘감독의 농담’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는 이미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게으르게, 혹은 퇴화되게 만드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게으르게 만들까?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은, 현재 몇 개 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는가? 가족과 친구, 지인들을 합쳐 10개 이상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다면 그나마 훌륭한 것이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본인과 남편의 전화번호밖에 외우지 못한다. 그러나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러니까 스마트폰 대신 호출기를 갖고 다니던 시절엔 100여개 가까운 전화번호를 외우던 것이 기억난다.

다른 예로 질문을 바꿔보자. 독자 여러분은 초행길을 나설 때 참고로 삼는 길잡이 매체는 무엇인가? 지도인가, 스마트폰인가? 여러분께선 여전히 지도를 잘 읽고, 그것을 머릿속에 이미지로 기억 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저 스마트폰의 네비게이션을 작동시키는가? 우리는 이제 전화번호를 외우거나 지도로 길을 찾을 시도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에겐 잘 발달된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까운 미래에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이 완전히 우리의 삶속에 자리를 잡게 되면, 우리는 더이상 우유 한 통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걸어갈 필요가 없어진다. 또한 현재의 3D프린팅 기술이 발전해 원재료만 집어넣으면 그것이 완벽한 요리로 프린팅 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요리하기 위해 부엌에 서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다시 말해, '먹기위해 움직여야만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첨단의 기술은 인간으로 하여금 공간적 제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어 주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야기한다. 같은 테이블에서 함께 차를 마시면서도 맞은편에 앉은 사람과 눈을 마추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 속 SNS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커플의 모습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우리의 모습들이 필자는 조금 섬뜩하다. 물론 전부는 아닐지라도, 극적인 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퇴화시키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하다.

기술의 진보가 결국 인간을 돌아오게 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패스트푸드가 판을 치는 세상이 도래하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슬로우푸드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어났다. 이처럼, 영화 월-E 속 퇴화된 인간들도 결국엔 스스로 바닥을 밟고 서는 ‘위대한 첫 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흙(earth)을 궁금해 하고, 씨앗을 뿌려 농사를 짓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화면상으로 일어나는 대화가 아닌 보다 직접적 인간관계인 춤(dancing)을 동경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Ending Credit, 끝맺음자막)가 올라갈 때 함께 그려지던 ‘그 이후의 이야기’에선, 지구로 돌아온 인간들이 다시 직접 손발을 사용해 살아가고, 세대를 거치며 또다시 신체가 발달하는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작용(기술의 발달)과 반작용(인간의 퇴화), 그리고 다시 그것에 대한 반작용(기술로부터의 독립). 그렇게 인간과 기술발달의 역사가 자리를 바꿔가며 반복되듯이, 삶은 돌고 돌아 다시 시작된다. 다시 ‘희망’인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로봇'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표기는 '월간로봇'의 규정에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