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경 데이빗 카퍼필드라는 천재 마술사가 있었다. 그의 마술은 얼마나 신출귀몰하던지 도저히 속임수라고 여길 수가 없었다. 그는 진짜 신적 존재이거나 아니면 외계인이라는 추측까지 나돌 정도였다. 아무리 의심하여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도 오히려 마술의 매력에 더욱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타이거마스크라는 복면 쓴 마술사가 나타나 마술의 비밀들을 하나하나 밝혀나갔다. 트릭의 상황을 알기 쉽게 풀어서 하나하나 직접 보여줬던 것이다. 우리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트릭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정말 어이없이 속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너무나 멍청하고 한심스러웠던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 사악한 마술사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놀아나다니!’ 그 위대했던 카퍼필드가 한순간 사악한 사기꾼으로 전락해 버렸다. 우리는 이제 어떠한 마술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무리 새로운 묘기를 선보이더라도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진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인류 모두가 데이빗 카퍼필드라는 ‘무명과 집착’이 마련해준 마술쇼에 속아 ‘자아’의 실재성을 철썩 같이 믿고 푹 빠져있을 때, 타이거마스크와 같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자아’의 속임수를 낱낱이 밝혀준 고마운 과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붓다이다.

과학자 붓다

1818년 영국 벵갈 기병대소속 테일러장군에 의해 폐허 속에 묻혀 있던 불교 유적이 최초로 발견된다. 이를 기화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나오는 전설속 존재로만 여겼던 붓다의 역사적 실존이 밝혀지게 된다.

▲ 붓다의 과학적 발견은 사실 대단할 것도 없다. 아인슈타인이나 뉴턴의 운동방정식처럼 어려운 것도 아니다. 복잡한 추상대수학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세상의 참모습을 목도한 것이고, 그로인해 본래 세상에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고타마 싯달타는 석가족이 모여 사는 인도의 작은 왕국에서 황태자로 태어났다. 온갖 호사를 누리며 살던 그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처음으로 왕궁밖에 나갔다가 추하게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관찰)한 것이다. 언제나 아름답고 깨끗한 모습만 보아왔던 그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태생적으로 과학자의 피가 흐르는 그가 이러한 궁금증을 모른 체할 리가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왜 늙고 병들어 죽어야만 하는지를 밝혀내기로 결심한다. 얼마 후 왕자의 삶도 과감히 벗어 던지고 고독한 과학자의 길을 택한다. 그는 먼저 기존의 과학적 접근방식들을 두루 섭렵한다. 유명한 스승들에게서 마음을 길들여 지혜를 얻는 방법들을 습득하였다. 총명한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스승이 가르쳐준 진리의 세계를 어렵지 않게 체득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아뜨만적 진리였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의 진리가 아님을 깨달은 싯달타는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보기로 결심하고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온갖 노력을 다한다. 마침내 그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느 방법이건 거기에 매달리는 한, 개념/논리의 세계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집착이 있는 한, 절대로 바르게 세상을 볼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중도의 길을 찾은 것이다. 이제 비로소 세상을 관찰할 자세를 갖춘 것이다.

그는 또한 예리한 과학적 관찰에 필요한 최상의 마음상태가 무엇일까 궁리한다. 어린 시절 국왕인 아버지를 따라 나왔던 어느 시골의 나무아래에서 깊은 마음의 안정 상태를 유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모든 준비는 완료됐다. 그는 강물에 들어가 목욕재개하고, 미음을 먹어 심신의 안정을 되찾은 뒤, 강을 건너 결전의 장소인 보리수나무로 향한다. 나무 아래 갈대를 엮어 만든 방석을 깔고 편안히 앉는다. 이윽고 어린 시절 느꼈던 마음의 평정심 상태에 도달한다. 마음은 이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완전한 과학적 관찰의 상태, 청정한 깨어있음의 상태에 돌입한다. 그는 과연 무엇을 관찰했을까? 신적 존재를 목격했을까? 최고 수준의 희열감을 맛보았을까? 천국이나 극락의 별천지를 보았을까? 오색영롱한 빛을 보았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는 그저 자신의 마음을 예리하게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깊은 기억 속 저편의 관념/존재의 세계들을 두루 살펴본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스스로 겪었던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언어/개념/논리의 세계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마침내 거기에 어떤 실체도 없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관찰한다.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냥 추정이나 사유나 확신이나 느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꿰뚫어 봤다는 의미로 깨달은 것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도 언어의 유희일 뿐이지만... 어찌되었건 그 이전에 어느 누구도 파악하지 못했던 진실을 밝혀낸 것이다.

실체 없음! 너무나 단순한 진리다. 하지만 이것을 통해 고타마 싯달타는 비로소 깨달은 자, 붓다가 된 것이다. 그는 ‘실체 없음’이라는 진리 속에서 도대체 어찌하여 왜곡이 발생되어 늙음과 죽음의 고통 속으로 우리들을 몰아가는지를 분명히 정리하기 위해 그곳에 머물며 한 달이 넘게 사유한다. 그 결과 부득이 언어/개념/논리를 빌어 정의된 붓다의 과학체계가 공성, 12연기, 사성제, 팔정도인 것이다.

붓다의 과학적 발견은 사실 대단할 것도 없다. 아인슈타인이나 뉴턴의 운동방정식처럼 어려운 것도 아니다. 복잡한 추상대수학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세상의 참모습을 목도한 것이고, 그로인해 본래 세상에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자기에 대한 잘못된 견해이다.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없는 그대로 이해한 것이다. 관찰자로서의 관점 외에는 변한 것이 없는 셈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하루빨리 착각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지, 달리 특별한 묘수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그가 밝힌 사실은 일시적이거나 관념적이 아닌 궁극적인 사실인 것이다. 그래서 최상의 진리인 것이다.

실체적이지 않고 변해야만 하는 존재의 비밀. 늘 있어왔던 진실이지만, 붓다 이전에는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했던 존재성의 마술쇼가 마침내 막을 내린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이 알려졌을 때 반박도 심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세상의 모든 개념들은 존재성을 토대로 전개되었는데, 하루아침에 그것들이 전부 착각에서 비롯된 오류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달갑게 여기겠는가? 오히려 허무주의자, 세상의 파괴자로 낙인 찍혔음은 당연해 보인다. 갈릴레오가 처음으로 지구가 둥글다고 외쳐봤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과 같이, 붓다도 아무리 떠들어 봤자 누가 이 기막힌 진실을 믿어줄 것인지 무척이나 고민했을 것이다. 아마 붓다는 그래서 스승으로서의 삶에 대해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는 스스로 안에서 증득하여 도달한 것과 이것의 표현 문제에서 오는 괴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극적 실재와 그 언어적 표현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래도 혹시 누군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을 냈다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비록 붓다의 과학이 단순하고 진실하기는 하지만, 기존의 존재/인식론적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는 혁명적 발상이기에, 쉽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낙서금지’라는 또 다른 낙서를 통해 낙서를 없애려는 것과 같이, 존재론적 모순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부득이 존재론적 언어와 개념을 차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는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으로 오로지 체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이러다보니 불교를 바르게 이해한 사람은 불과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바르게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 잘은 모르지만 열심히 실천하겠노라 다짐한 이들은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약발 좋은 기복신앙의 하나로 불교를 택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붓다는 신이 아니다.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살다가 늙고 병들어 팔순의 나이에 돌아가신 이웃집 어르신 같은 분이다. 다만 호기심이 많고 정이 많은 훌륭한 과학자였을 뿐이다. 감히 범접 못할,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그런 경외스러운 인물이 아니다. 몇몇 특별한 사람만이 이해할 특수한 마법의 진리를 비밀스럽게 전수해 주는 그런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우리 모두를 위해, 모두가 알아야만 할, 당연한 자연의 법칙을 밝히고 가르친 너무나도 존경스러운 과학자이자 선생님이었을 뿐이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21세기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시대이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 언제까지 깊숙한 금고 속에 숨겨 놓고, 아무나 꺼내 볼 수 없다고 치부하면서 몇몇 사람들의 지적 유희로만 붓다의 과학을 대할 것인가!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림으로써 욕망의 세계가 펼쳐졌듯이, 이제는 붓다의 과학 상자를 활짝 열어젖혀서 욕망만이 만연한 세계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이타적 가치의 세계를 열어야 한다. 부득이 관념의 형식, 언어의 형식, 존재의 형식을 빌더라도 과학적 논리성과 합리성 그리고 통일성에 근거하여 붓다의 과학을 바르게 알려야 한다. 그래서 옆집 할머니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고 쉽게 가르쳐야 한다. 초등학생들이 언어/관념의 족쇄에 갇혀 욕망의 노예가 되기 전에, 즉 ‘바둑아! 바둑아’를 배우기 전부터 자연의 법칙 즉 공성을 이해하게끔 가르쳐주어야 한다.

붓다의 진리

붓다의 진리는 <그림13>에 나타난 대상-관찰자-모델 간의 존재/인식론적 사유로부터 출발한다. 즉 대상(육경)-관찰자(육근)-모델(육식) 이 셋의 만남을 조건으로 일어난 인식 이외의 그 어떤 인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붓다는 친절하게 셋의 유형을 상세히 나누어 설명한다. 즉 색깔을 보고 알고, 소리를 듣고 알고, 냄새를 맡고 알고 등등 인간의 여섯 감관 작용으로 나누어 얘기한다. 그래서 모두 합해 18계의 세계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 말한다. 물론 육경, 육근, 육식은 단지 인식의 방법인 연기법을 설명하고자 친절히 설정한 개념적 요소일 뿐, 실체는 아니다. (참고로 육경은 색/성/향/미/촉/법, 육근은 안/이/비/설/신/의, 육식은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을 각각 나타낸다.)

이제 붓다의 과학을 정리해 보자. 먼저 앞서 제시한 세 가지 철학적 질문에 대한 붓다의 입장을 논해보자. 이 경우 아마도 붓다는 미소 지을 뿐, 답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질문 자체가 이미 ‘있다/없다’하는 이원론적 논리를 전제로 하는 오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구지 언어/개념/논리의 표현방식을 빌어 억지로 답하자면, 모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환영과 같다지만, 생생하게 인식 가능한 실존임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안타깝지만 결코 영원한 실체일 수 없기 때문이다.

붓다가 구지 ‘무아’라는 용어를 차용한 것은 ‘변치 않는 자아가 존재한다.’라는 고질적인 착각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지,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또 하나의 관념을 심어주기 위함이 아니다. 따라서 ‘무아’를 ‘유아’에 반대되는 상대적 관념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어떤 이는 이 문제를 해결한다며, ‘비아’의 개념을 상정하여 아뜨만사상을 슬쩍 접목시킨다. 이와 같이 언어/개념/논리에 집착하는 한, 붓다의 진리는 표현불가이다. 실제 그 당시 붓다는 언어/개념/논리를 통해 따지려드는 많은 논사들에게 무기로 답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이다. 말싸움에 질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언어가 가진 태생적 모순과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을 열면 벌써 어긋나기 때문이다. 붓다를 뒤이은 수많은 선사들이 ‘할’이니 ‘방’이니 하며 선문답으로 계승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개념/논리의 긍정적인 측면을 통해 붓다의 과학을 정리해 보자. 먼저 앞서 언급한 바 전통과학의 보편적 특징에 대한 붓다의 입장을 짚어보자.

(1) 과학은 원인과 결과를 설명한다.
==> 아마 인과법에 관한한 원조는 붓다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과학체계가 형성되기 200여 년 전, 과학의 선구자 붓다는 이미 보편적 진리인 연기법을 선포한다.

(2) 과학에서 최종적인 정답이란 없다.
==> 붓다는 이미 실세계의 참모습으로 무상(無常)을 강조했다. 세상 어디에도 영원불변의 존재나 법칙은 없다는 것이다. ‘전등록’에 기록된 붓다의 게송을 (깨달음의 시) 음미해 보자.

법이라는 본래의 법엔 법이 없으나
법이 없다는 법 또한 법이다.
이제 그 법 없음을 전하니
법이라는 법에 어찌 법을 더하랴.

본래 정해진 법칙이 없다는 것이 붓다가 목도한 보편적 법칙이다. 그런데 법칙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 또 하나의 불필요한 법칙이 되고 만다. 그러니 이러한 과학적 진리를 어떻게 알릴 수 있을지 붓다는 고민하고 있다. 입 벌려 말해봤자 공연히 법 하나만 추가할 뿐이니...

(3) 과학은 편견 없이 개방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한다.
==> 붓다의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그가 교주로서 활동한 것은 과학적 발견 이후의 일이다. 그의 과학적 관찰 작업은 자아를 비롯한 가족이나 국가 그리고 신은 물론 그 어떤 존재로 부터도 벗어난 것이었다. 실제 그는 왕위도 거절했고, 혈육도 버렸고, 자신조차 학대했다. 진리를 향한 과학자로서의 삶은 그토록 처절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어떠한 집착도 버릴 수 있었으며, 그를 통해 진실한 관찰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궁극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4) 과학은 단순하고 정연할수록 좋다.
==> 티셔츠에 ‘공’, ‘무아’, ‘연기’ 이들 중 아무 글자 하나만 새겨도 충분할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 모두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실체 없음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하여 ‘공’이라는 개념이 나왔고, 자아 없음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무아’라는 개념이 제시되었을 뿐이다. 또한 상호작용적 존재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연기’라는 개념을 부득이 쓴 것이다.

이번에는 현대과학의 특징에 대한 붓다의 입장을 보자.

(1) 자기준거적 인식
==> 붓다가 제시한 공부법은 한마디로 관법(觀法)이다. 스스로 관찰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자재(觀自在)이다.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분명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관념과 기억에 기인한 자기준거적 인식의 경향을 끊음으로써 객관적 관찰이 가능토록하기 위하여, 일체의 욕망과 존재와 견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것을 요구한다.

(2) 진리개념의 포기
==> 모든 것에 정해진 바, 진리는 없다는 것은 누누이 강조해온 바이다. 무상에는 어떠한 존재도 법칙도 예외일 수 없다. 부득이 ‘진리’니 ‘법’이니 ‘실상’이니 개념화하여 열심히 설명하고 있지만, 실상진리의 참모습은 언어적 개념적 논리적으로 표현 불가일 뿐이다. 언설불가의 세계를 부득이 언어를 사용해 설명해야하는 모순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궁여지책이 이제의 (진제와 속제) 개념이다. 언설불가의 궁극적 진리를 의미하는 진제와 언설을 통한 개념적 진리인 속제로 나누어 진리를 논하려는 것이다.

(3) 시스템적 순환 속에 구성/재구성/해체만이 관찰 가능
==> 불교논리학에서는 일체의 존재들에 대해 생주이멸을 통한 유전상속의 특성을 갖는 것으로 파악한다.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물결의 흐름처럼 정해진 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앞선 마음이 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인과의 속성 때문에 마치 불변의 자아가 실존하는 듯 착각을 일으킬 뿐이다. 때문에 우리들이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실질적 대상은 오직 생멸 작용뿐이다.

▲ <그림13> 붓다 과학의 논리적 측면: 부득이 언어/논리/개념의 형식을 통해 체계화하였다.

▲ <그림14> 붓다의 과학: 마지막에는 언어/논리/개념의 세계를 벗어나야만 비로소 참된 진리를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붓다의 과학은 모든 철학적 문제와 과학적 접근을 통섭한다. 그 이유는 모든 인식체계의 토대인 언어/개념/논리의 세계를 포함하는 근본적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말이 있다. 인도 영취산에서 설법 중에 붓다가 연꽃을 들어 사람들에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을 때, 수제자 마하가섭만이 참뜻을 알고 빙그레 미소 지었다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진리란 이와 같이 언어/관념을 떠나있음을 마하가섭은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진리를 스스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과학은 자비스럽지도 않고 인간적이지도 않다. 붓다의 과학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이다. ‘자아’니 ‘인간’이니 ‘신’이니 ‘사랑’이니 하는 그 어떤 실체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무자비한 붓다의 과학이지만, 일단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가치는 극적으로 뒤바뀌게 된다. 집착 없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타적인 사랑이 진짜 사랑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자 없는 생각이 참된 생각이고, 행위자 없는 행위가 참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붓다의 과학은 어리석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인다. 하지만 곧바로 그를 지혜로운 사람으로 되살려낸다.▒ 지승도ㆍ항공대 항공전자 및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지승도 교수의 ‘지능시스템이야기’연재를 마무리한다. 지난 1년 동안 지승도 교수는 월간로봇 독자들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새로운 차원의 인공지능이야기를 발표했다. 이 내용은 기존의 인공지능 학계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서구식 관점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 학계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통해 인공지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데는 대부분 공감한다.
연재를 마치면서 편집자는 항공대학교 지승도 교수 연구실로 직접 찾아가 연재를 마치는 소회를 물었다. 이 자리에서 지 교수는 ‘마음’이 신비한 그 무엇이거나, 종교성에 근거한 영혼의 별도적 존재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본인의 글이 영혼의 존재를 믿는 종교인들에게는 다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존재하겠지만, 인간의 지능과 뇌의 발전은 역사적 산물이며, ‘마음’의 실체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 것이 과학자로서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붓다를 중심으로 인공지능의 문제를 다룬 것은, 붓다가 종교적 차원의 교리주의자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합리적 추론에 의한 과학자의 면모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보편적인 진리의 바탕하에 정밀하게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인류의 큰 스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적 지능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재해석하고 검증하고 싶었다고 한다.
마음이 과학적으로 분석 가능한 것이라면, 소위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는 ‘특이점’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지 교수는 설명한다. 우리가 ‘지능’이나 ‘마음’을 신비한 영역에서 영혼과 결부시키는 것은, ‘자아’개념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이기적 자아 개념으로 ‘마음’의 실체를 특별히 존재하는 그 어떤 것으로 추상화해서 종교성으로 믿는 집착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독특한 동양적 관점에서 연재를 이끌어온 지승도 교수는 이 연재를 마치고, 과학자 붓다의 교학적 차원에서 ‘마음’의 문제를 정리하여 지능시스템을 새롭게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적 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기대하면서, 독자들의 성원을 모아 그동안 옥고를 조건 없이 제공한 교수님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 [월간로봇 편집자]
* 본 기사는 '월간로봇'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표기는 '월간로봇'의 규정에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