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로봇,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메커니즘의 현실적 로봇이 아닌 그저 ‘로봇’이라는 단어 끝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만화영화 속의 거대한 로봇들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로봇은 로보트태권브이.

▲ 마징거태권으로 기획됐던 로보트태권브이 최초 시나리오

그러나, 그 로보트태권브이가 유사한 이미지와 구조 때문에 이러쿵 저러쿵 좋지 않은 소리까지 들어야하는 로봇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일본의 만화가 나가이 고 감독이 탄생시킨 마징가제트다. 실제 로보트태권브이는 저작권이나 캐릭터 판권의 개념이 희박하던 1970년대 중반, 당시 문화방송을 통해 국내에 방송되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제트의 디자인과 설정을 그대로 모방해 <마징거 태권>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되어 시나리오까지 나왔으며 이후 제작 과정에서 디자인이 변경되었었는데, 그러한 사실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기계수라 이름 붙여진 거대 악당 로봇들에 맞선 마징가 제트. 특유의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출동한 마징가 제트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눈에서 발사되는 광자력 빔에 미사일처럼 주먹이 발사되었다 돌아 오는 로케트 펀치, 가슴의 붉은색 핀에서 발사되는 광자력 에너지 브레스트 파이어, 중세 기사의 갑옷 같은 입에서 발사되는 황산 바람 루스트 허리케인 등 애니메이션 속 마징가 제트의 활약상은 마징가제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도 눈에 선한데, 실제 많은 사람들이 마징가제트에 대해 가진 가장 강력한 이미지는 마치 자동차나 건설 중장비처럼 사람이 탑승해 그것을 조종한다는 설정이었다.

1972년, 인간을 돕는 착한 악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데빌맨>이라는 만화로 큰 성공을 거둔 신진 나가이 고는 퇴근 길, 우연한 기회에 마징가제트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어느날 퇴근 길에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날 따라 차가 무척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차들 중 한 운전자가 유난히 초조해 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찌나 초조해하는지 지켜 보는 사람들이 다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순간 저 자동차에서 다리가 솟아 나와 그것을 타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상상을 해보았고, 그 즉시 회사로 돌아 가 자동차처럼 인간이 타고 조종하는 로봇에 대한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2010년에 이어 2013년 두번째로 만남을 가진 나가이 고 감독이 직접 들려 준 마징가 제트의 탄생 이야기이다.

▲ 마징가제트

그렇게 꽉 막힌 차들을 바라 보며 바퀴가 아닌 로봇처럼 다리가 달린 자동차를 상상했던 나가이 고. 그는 그 아이디어를 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제안을 했고 만화 연재와 애니메이션 제작이 동시에 결정되었다고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조그만 비행정을 타고 거대한 로봇의 머리 속에 앉은 다음 그것을 조종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가 당연한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러한 모든 당연함의 출발이 바로 마징가제트였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하는듯 하다.

로봇을 고민하고, 로봇을 연구하며 만드는 이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점이다. 현대 로봇 산업 아니, 로봇 문화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만화나 영화, 소설 속의 전지전능한 콘텐츠 속 로봇과 이제 겨우 이족 보행을 시작한 현실 속 리얼 로봇과의 기술적 간극, 문화적 간극이다. 만화나 영화를 보면 로봇이 변신 합체는 기본이고 말을 하고 스스로 문제를 풀며 인간을 압도하기도 하는데, 이제 겨우 몇 걸음을 떼기 시작한 현실 속 로봇.

실제, 일본 혼다의 이족보행 로봇이 계단을 올랐을 때, 극히 순간적이나마 두 다리가 지상에서 도약하며 뛰기 시작했을 때, 뒤로 걸었을 때 로봇을 이해하는 이들은 놀라운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만화 영화 속 자유 자재로 날아다니는 로봇을 경험한 아이들은 그게 도대체 왜 그토록 신기한가 왜 그리도 놀랄 일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간극도 아톰과 같은 초과학적 로봇과의 그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현실적일 수도 있다. 기계적 특성은 물론이고 인간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로봇 공학적 관점에서도 현대 물리학의 기본 개념을 송두리째 무시해 버리는 초초초슈퍼 능력의 로봇 아톰. 이후 리모콘으로 조종한다는 거대 로봇 철인28호도 등장하지만 그리 현실적인 과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나가이 고 감독의 작업실

바로 그러한 시기. 아직까지는 황당하다 소리를 들을 수준이지만 인간이 자동차처럼 로봇의 중심에 탑승하고 그것을 조종한다는 설정의 마징가 제트는 가히 로봇 콘텐츠의 혁명에 가까운 설정이었으며 그러한 설정은 이후 실제 로봇 시스템의 개발에 기본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아톰의 상상력이 다분히 문학적 상상력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면, 마징가제트의 그것은 이대로 기술적 진보만 이루어진다면 현실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거다.

한 만화가의 상상력과 창작품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현대 로봇의 개념에 혁명적 설정을 도입한 나가이 고. 지금의 기술적 진보가 나날이 나날이 발전해 그 꿈이 현실이 될 날을 기약해 본다. ▒ 김혁 ∙ 테마파크 기획자, 테마파크파라다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