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이언트 에너지 시스템즈의 수중 로봇 '벨록스' 시제품(사진=플라이언트 에너지 시스템즈)

깊은 바다는 귀한 광물의 보고다. 이곳을 탐사해 광물을 채굴하려는 국가간, 또는 기업간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해저에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태양광 패널,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한 금속(니켈,구리,코발트,아연 등)들이 널려 있다.

광산회사들은 해저를 준설하거나 진공 흡착하는 방식으로 첨단 기술 구현에 필요한 금속들을 채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환경보호론자들과 해양과학자들은 이 같은 방식이 해양생태계를 교란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IEEE 스펙트럼에 따르면 '플라이언트 에너지 시스템즈(Pliant Energy Systems)'는 해양 생태계에 위협을 가하지 않으면서 첨단 기술 구현에 필요한 금속들을 바다 밖으로 가져올 수 있는 수중 로봇 기술 개발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플라이언트 에너지 시스템즈는 이미 가오리 모양의 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 가오리는 물속에서 부드럽게 너울대는 지느러미를 갖고 있는데, 이 지느러미들은 포물선 운동을 하면서 스케이트 보드 크기의 로봇을 전진하게 만든다. 이 회사 연구팀은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수조 실험실에서 이 로봇에 그리퍼를 탑재해 자율 기능을 갖춘 디바이스로 전환하기 위한 툴과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팀의 최종 목표는 깊은 바다 속에서 해양 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감자 크기만한 광물 덩어리인 노듈(nodule)을 채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듈을 채취하기 위해선 국제기구의 허락을 얻는 과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세계 168개국이 회원사로 가입한 '국제해저기구(ISA·the International Seabed Authority)'는 오는 10월 해저 채굴 관련 기술과 환경 기준을 정의한 ‘채굴 코드(Mining Code)’를 채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채굴코드가 채택되면 사기업들도 광대한 해저 지역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미 ISA는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의 특정 구역에 대한 광물 탐사 허가를 30개 정도 발부한 상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다금속 노듈 탐사에 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와이 남부와 멕시코 서부 해안이 가장 먼저 탐험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양 과학자들은 지난 1970년대부터 해저 노듈 채굴 기술을 연구해왔다. 기존의 방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유압 흡착 준설기를 이용해 해저면을 준설하고 필요한 광물을 걸러내는 것이다. 찌꺼기는 다시 바다에 버린다. 인도 국립해양기술연구소는 노듈을 수집해 부수고, 수상에 있는 모선(mother ship)으로 보내는 궤도형 크롤러를 개발했다.

하지만 해양전문가들은 해저면을 준설해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한번 파괴된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수백만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 벨록스 로봇 시제품 제작과정

플라이언트 에너지 시스템즈는 현재 '벨록스(Velox)'라고 불리는 수중 로봇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벨록스는 내부에 장착한 CPU를 통해 각각의 로봇 지느러미들의 동작을 만들어내는 액추에이터에 파워를 분배한다.

기존의 수중 로봇에 채택된 프로펠러 방식 추진장치는 빠른 속도로 블레이드를 회전시켜 전진하는데 반해 플라이언트 에너지 시스템즈의 로봇 지느러미는 저속으로 물의 넓은 표면 면적을 움직이도록 한다. 회사 측은 물의 넓은 표면 면적을 활용하면 배터리를 적게 사용하면서 장시간 동작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밝혔다. 배터리 재충전없이도 해저 작업이 가능해진다. 또한 벨록스 로봇은 해저면에 있는 침전물을 덜 교란시키기 때문에 해양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할 위험이 적다는 것이다.

▲ C-레이 로봇(사진=플라이언트 에너지시스템즈)

플라이언트 에너지시스템즈는 MIT 연구진과 협력해 차세대 수중 로봇인 'C-레이(C-Ray)'를 개발하고 있다. C-레이는 물속에서 구르거나 비트는 동작이 가능하다. 금속 탐지기와 카메라, 컴퓨터 알고리즘을 결합해 바다속 탐사 활동이 가능하도록 연구하고 있다. 연구팀은 미 해군의 자금지원을 받아 C-레이를 심해가 아닌 연안 해역 탐사에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연안은 군함의 정박 등을 위해 바다속 구조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플라이언트 에너지시스템즈는 자율 기능을 갖춘 C-레이 로봇을 군집 로봇처럼 수백대 심해에 투입해 해저 노듈을 채취한다는 계획이다. 그리퍼를 갖춘 C-레이 로봇은 상호 통신이 가능하며 채취한 노듈을 수상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C-레이는 채취한 노듈 대신 가치가 떨어지는 암석을 그 자리에 놓아 해양 유기물이 바다속에서 다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 이탈리아 SSAS의 수중 로봇(사진=SSAS)

이탈리아에서도 유사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탈리아 SSAS(Sant’Anna School of Advanced Studies) 산하 바이오로보틱스연구소는 수중 로봇 ‘실버2(SILVER2)’를 개발했다. 이 로봇은 6개의 다리를 갖추고 있으며 카메라나 레이저의 도움 없이도 해저에서 다리를 일정 주기로 반복적으로 움직이면서 이동할 수 있다. 연구팀은 수중에서 움직이는 게(crab)의 움직임을 보고 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연구팀은 이탈리아 리보르노에 있는 연구소에서 지난 7월 한달 동안 20kg의 이 로봇을 테스트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심해보다는 얕은 바다에서 활동할 수 있는 로봇이다. 이 로봇은 소프트 그리퍼를 갖추고 있어 바다속에 있는 물체를 손으로 잡듯 잡을 수 있다. 연구팀은 이 로봇을 이용해 바다속에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회수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팀은 실버2 가 얕은 바다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로봇이지만 향후 심해 채굴 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