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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DAILY]정성창의 IP-MBA, 청년 기업가 ‘에디슨’④ 비즈니스 파트너 &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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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01  09: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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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창 지식재산과 혁신생태계 연구소장

에디슨 연구는 오늘날 혁신의 비밀을 푸는 방법으로 많은 학자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2천여 건의 미국과 해외 특허를 활용해 170개 기업을 설립했다. 이들 170개 기업에 지역 단위의 회사까지 포함하면 수백 개에 이른다. 그에 관한 서적과 논문이 2016년 기준으로 380여 편에 이르는데도 매년 새로운 책과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에디슨은 발명가, 특허전략가, 화학자, 전기엔지니어, 기업가 등 다면성을 가진 혁신가이다. 이러한 에디슨의 모습 중 최근 다시 조명되고 있는 것은 기업가적 면모이다. 본 연재는 에디슨의 기업가적 면모에 중점을 두고 ▲1부. 발명의 황금시대(혁신의 토양) ▲2부. 기업가 선언 ▲3부. 벤처 기업 매각 ▲4부. 비즈니스 스승 ▲5부. 인생 최고의 거래 ▲6부. 사업의 대전환 등 순서로 그가 거대한 ‘전기(電氣) 프로젝트’에 도전하기 이전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편집자>

▲ 에디슨은 미국인들에게 발명가를 넘어 혁신의 아이콘이며 문화이다. 사진 왼쪽부터 타임 표지(2010년 6월), 내셔널 지오그라피 표지(2015년 3월 10일),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USA) 출판 서적 표지(2017년 9월 29일 서적 표지, 미국 최고의 유명작가 에드문드 모리스의 ‘에디슨’(2019. 10. 23) 표지

‘모사 전신기’ 개발.. 발명가로서 최초의 계약

에디슨 나이 23살이 되던 해인 1870년 2월 10일, 그는 발명가로서 최초의 중요한 계약에 서명했다. 상대자는 뉴욕의 G&S였다.

갑(G&S)은 을(에디슨)이 기존의 인쇄전신기보다 속도가 더 빠르고 더 작고, 한 개의 전선으로 작동하는 더 편리한 인쇄전신기를 발명하도록 7,000달러를 지원한다. 단, 을은 관련 특허를 신청하는 날로부터 1년간 갑의 회사에서 전기 컨설팅을 제공한다. 을이 ‘모사 전신기’를 개발하면 3000달러의 추가적인 보너스를 지급한다.

‘모사 전신기’는 조작할 때 특별한 준비 작업을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하며, 사진을 전송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언어로 된 메시지도 전송할 수 있어야 한다’. 모사 전신기는 오늘날의 팩시밀리와 유사한 개념이다.

▲ 19세기 후반 미국의 도시는 금융, 언론, 소방 등 여러 분야에 전신기술이 사용되면서 도시의 하늘은 전선으로 뒤덮었다. 당시의 전신기술은 새롭게 태동하는 기술이었으며 에디슨에게는 성공으로 가는 기회의 창이기도 했다.

에디슨의 이 계약에서 사무실 임대 비용, 숙련 기계공의 인건비, 실험에 필요한 도구와 기계 구매 비용 등을 포함해 월 400달러를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G&S는 에디슨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에디슨은 보스턴에서 머신 숍을 이용했다. 당시 그는 머신 숍을 이용하면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려야 했고, 이것은 발명이 지연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문적인 발명을 위한 시설투자의 중요성을 깨달은 에디슨이 시설투자를 G&S에 요구한 것이다.

이 계약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G&S와 같은 기업은 개인 발명가가 발명을 완성하면 특허를 매입하는 방식, 즉 수동적으로 신기술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G&S는 기존의 관행을 깨고 능동적으로 즉 선제적 투자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발명을 확보하는 상황이었다.

에디슨이 사랑한 스승.. G&S의 사장 ‘마샬 레펄츠’

G&S와의 계약으로 종잣돈을 마련한 에디슨은 뉴저지(New Jersey)의 뉴어크(Newark)에 사무실을 임대하고 뉴어크 텔레그라프 웍스(Newark Telegraph Works, NTW)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미국 최초의 통신 전문 연구소였으며 그의 기업가 인생에서 발명과 제조를 겸하는 최초의 기업이기도 했다.

▲ G&S의 사장 마샬 레펄츠는 에디슨에게 비즈니스의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은 4월 말까지 도구와 기계 등 시설투자에 400달러를 썼다. 에디슨은 21살의 기계공 존 오토(John Otto)를 채용했다. 오토는 에디슨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친구가 되며 50년 동안 에디슨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한다.

에디슨은 3개월 후 G&S와의 계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인쇄전신기를 완성했다. 그 기계는 기존의 것들보다 훨씬 더 작고 속도는 더 빨랐다. 새로 부임한 G&S의 사장 마샬 레펄츠(Marshall Lefferts)는 이 새로운 인쇄전신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에디슨의 능력을 귀하게 여긴 레펄츠는 자신이 1876년 사망할 때까지 에디슨을 제자처럼 아꼈다. 에디슨 역시 레벌츠를 스승처럼 따랐다. 에디슨은 레펄츠의 장례식에서 ‘그가 사랑한 남자’라고 할 정도였다. 레펄츠는 발명가로서 에디슨의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레펄츠는 에디슨에게 특허제도의 중요한 원리와 비즈니스 도구로써 특허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향후 에디슨이 펼치는 특허전략은 레펄츠에서 배운 것들이다. 레펄츠는 인쇄전신기 특허를 활용해 G&S가 시장을 지배하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었다.

모든 발명은 완전하게 기록하라.. 변리사 ‘세렐’의 가르침

그는 에디슨에게 자신의 전담 변리사인 세렐(Lemuel Serrel)을 소개해 주었다.

▲ 에디슨

1870년 10월 3일, 세렐은 에디슨에게 발명가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 하나를 가르쳐 준다. ‘언제 발명하였는지, 실험은 어디서 어떤 장치로 했는지 등을 기록해 둘 것’. 에디슨은 자신의 발명과 관련된 메모와 스케치 등은 예전부터 기록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록의 대부분은 특허사무소에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작성하고 있었다.

세렐과의 만남 이후 에디슨은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남겼다. ‘내가 앞으로 하게 될 발명은 모두 완전하게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당시 미국의 특허제도는 ‘선발명주의’로 먼저 특허를 신청하는 것보다 먼저 발명하는 사람에게 특허권을 주던 시대였다.

이러한 제도는 특허제도의 원래 취지에는 부합하지만, 제품이 출시되고 난 후 뒤늦게 자신이 진정한 발명자라고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는 어김없이 ‘진정한 발명자’를 가리는 소송이 벌어지곤 했다. 세렐은 에디슨에게 ‘진정한 발명자’를 다투는 소송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자동 전신기 개발.. ‘크레이그’와 ‘해링턴’

레펄츠는 에디슨에게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를 소개해 주었다. 크레이그는 영국 내셔널 텔레그래프(National Telegraph Company)의 미국 지사장이었다. 그 이전에는 AP 통신(Associated Press)의 창업자 중 한 사람으로 사장을 지낸 적도 있었다.

▲ 에디슨의 사중 전신기 발명(에디슨의 110번째 특허) : WU는 내부적으로 모스의 전신 발명 이후 가장 가치 있는 특허로 천만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크레이그를 한마디로 말하면 전신을 통한 언론 보도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는 모르스 코드를 조작하는 숙련된 전신기사 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자동 전신기가 필요했다. 크레이그는 숫자와 문자 몇 개를 인쇄하는 주식이나 금 시세 표시기가 아니라 인쇄속도가 더 빠르고 언론 기사 전체를 보낼 수 있는 자동 전신기를 에디슨에게 발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1870년 8월, 에디슨은 현금과 주식 등 총 5000달러를 받고 발명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금액으로는 연구자금이 부족했다. 크레이그는 기업가이자 링컨 행정부 시절의 전 재무부 고위관료였든 조지 해링턴(George Harrington)을 이 벤처 비즈니스에 끌어들였다.

1870년 10월 해링턴과 에디슨은 자동 전신기 개량과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아메리칸 텔레그라프 웍스(American Telegraph Works, ATW)를 설립했다. 해링턴이 6천 달러, 에디슨이 3천 달러를 투자하되 이익은 반반으로 나눈다는 조건이었다.

에디슨은 시골 부모님에게 자랑스럽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곧 큰 사업을 하나 더 하게 됩니다. 현재 18명을 직원으로 둔 기업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150명을 고용하는 큰 기업을 운영하게 될 겁니다.” -에디슨-

에디슨이 편지에서 150명이라고 한 것은 과장된 것이었다. 12월이 되면 ATW는 45명을 고용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기업이 미국의 전기 제조업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인 것은 분명했다.

11월에는 크레이그와 해링턴이 전신 언론 서비스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오토매틱 텔레그래프(Automatic Telegraph Company, AT)를 설립했다.

정성창  ipnomic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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