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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록 KIST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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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30  13: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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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정책, 이제는 디테일을 챙겨야 할때"

'2003년 신성장동력 로봇 PM 맡으며 네트워크 로봇 개념 입안'
'지난 10년 로봇 정책 차분하게 돌아보고 시장 '가치화' 주력해야'
'요즘 역사와 소설등 인문학 접하여 새로운 꿈과 희망에 부풀어'

한국과학기술원(KIST) 북문에서 10분을 걸어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기자의 얼굴과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30도에 육박하는 초여름 날씨 때문이었다. 2평 남짓한 사무실, 그의 책상 맞은편에 앉아 땀을 식히느라 안절부절하던 기자가 안쓰러웠던지 그가 먼저 질문을 걸어왔다.

" 창간이 언제죠? "
" 6월 3일입니다."

" 아주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미디어를 해보고 싶었는데 쉽지 않었어요."
"....? "

2000년대 초반 사람들이 막 로봇 분야에 투자하려고 할 때, 저도 매체 만들어 볼까, 한 적이 있죠. 그런데 미디어도 비즈니스가 기반이 돼야 유지되는 건데, 결국 로봇시장 사이즈가 작아서 접고 말았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이제 로봇 전문 미디어가 창간된다니 반가운 일이죠!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매체 창간에 얘기가 이어졌다. 아울러 창간 축하인사도 잊지 않았다. 어느새 기자도 인터뷰를 위한 전투대형(?)이 자연스럽게 갖추게 됐다. 그는 그렇게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오상록 박사(56 ∙ KIST 실감교류 로보틱스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로봇기반교육지원단장). 오늘날 로봇이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리잡게 한 주역인 그에게서 진짜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왜 미디어를 생각했나요? 로봇산업을 앞서서 끌어 가주는 역할을 기대했나요?
그보다는 정보 공유죠. 당시는 그런 미디어가 없었죠. 2003년 노무현정부가 들어서고 로봇이 10대 성장동력에 포함되며 뭔가 크게 일어날 분위기인데 그것을 촉진할 정보 전달 수단이 없었던 겁니다.

2003년 이전에는 로봇분야가 어땠나요?
물론 이전에도 R&D가 있었고 로드맵도 그렸죠. 정부과제가 수십 개나 됐고, R&D 예산도 연간 100억 가까이 됐어요. 그런데 10대 성장동력에 선정되면서부터 정부예산이 매년 몇 백억씩 늘어나는 겁니다. 그러자 창업열풍이 불고 기업들은 로봇을 새 사업 분야에 포함시키기 시작했어요. 예산이 없어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던 출연연과 대학들도 로봇으로 컴백했죠. 그렇게 1~2년 지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로봇 관련기사가 매일 쏟아져요. 기사가 많다는 건 해당 산업이 어느 정도 액티브한가를 보여주는 척도잖아요. 그런 것들이 결국 사람을 모이게 하고 창업 열풍을 불러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미디어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죠.

연구실에서의 한때. 뒤쪽에 四海春澤(좋은 기운이
봄기운처럼 멀리 퍼진다)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10년 전에 이미 로봇이 10대 성장동력에 포함됐다…어떤 배경과 기준이 있었나요?
당시 저는 범 정부 차원에서 구성한 성장동력선정위원회에 참여했는데, 거기에서는 '지금 우리가 잘하고 있는데 더 좀 키워볼 수 있는 분야', '지금은 작지만 미래에 커질 수 있는 분야', '장기적인 투자가 요구되지만 국가에서 지원해주면 승산이 있는 분야' 그렇게 3가지 선정 기준을 두었어요. 두 번 째 기준에 로봇 분야가 맞아 떨어졌죠. 그런데 더욱 의미있는 것은 로봇이 나중에 MB정부의 17대 성장동력에도 포함됐다는 거죠. 로봇에 대한 정부지원이 2003년 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집중되는 계기가 그때 만들어진 셈이죠.

바로 그때 정통부에서 로봇 담당 PM이라는걸 하셨지요?
정식 명칭은 'IT정책자문관'인데, 2003년 9월부터 2008년2월까지 4년 반을 했죠. 그에 앞서 정통부에서는 범부처의 10대 성장동력 선정에 앞서 그해 4월부터 로봇 정책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기획을 했어요. 그때 산업용이 아닌, 새로운 개념의 로봇을 해야 한다는 초안이 나왔는데 제가 그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초안을 밀고 나갈 PM을 공모했는데 정통부가 저를 선택한 거고요.

그때 새로운 로봇 정책과 액션플랜이 마련된거지요?
그전까지 로봇이라 하면 산업용, 수술용, 국방로봇, 전문서비스들 떠올리는 식이었죠. 그런데 저희들은 접근 방식부터 달랐어요. 정보통신과 로봇을 잘 융합하면 어떨까 하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이었지요. 정보통신, 그게 뭐겠어요. 한국이 세계 최고수준 아닙니까. 거기에 로봇개념을 갖다 붙이면 뭔가 기발하고 새로운 게 나올 거라 본거죠. 그때 나온게 URC(Ubiquitous robotic companion)입니다. 사실 지금은 네트워크에 로봇을 연결한다면 너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 당시는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하하

그때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과 함께 일했죠?
의지가 굉장히 강한 분이었어요. 최고경영자출신에 전문가였고요.그는 성장동력 정책을 맡은 PM들의 임파워먼트(권한이행)를 굉장히 강조했어요. 말도 많이 들어주었어요. 저희들이 소신껏 일할수 있게 해준거죠. 한데 그 소신에는 책임이라는게 따른다는 것을 알았지요. 예를 들면 "로봇 정책은 어떻게 나가야 돼?" 라고 장관이 물어오면 PM들은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답하곤 했지요. 처음엔 저도 굉장히 말을 쉽게 했어요. 설마 장관이 이런 말을 귀담아들을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고요. 그런데 제가 한 말이 금방 정책이 되는 거예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던졌는데요. 갑자기 두려워지는 겁니다. 장관 앞에서 액션 플랜 발표하는데, 장관께서는 '당신 이거 책임질 수 있어?' 이렇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지만 나는 발표하면서 '이건 내가 책임지겠습니다'하는 거잖아요. 그런 생각이 드니 겁이 나요. 그래서 제가 농담 삼아 “화장실에 가서 쭈그려 앉아서 눈물이 날 정도로 겁이 나더라”고도 했어요. 그때 제가 참 많이 배웠죠.

그렇게 해서 새로운 로봇개념이 정착된거네요?
그런 셈이지요. 그런데 이제와 보니 로봇정책을 짠 PM으로서 아쉬움이 많기도 해요.

아쉬움요?
요즘 제가 반성하고 있는 게 있어요 로봇 종사자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 로봇은 참으로 축복 받은 분야예요. 정부에서 10년 동안 1조원 가까운 예산을 꾸준하게 지원 해주었으니까요. 그렇다면 10년 동안 투자한 것 가운데 우리가 내세울만한 게 있는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겠지요. 이를테면.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관심을 끌 정도의 혁신형 기술이 나왔는가’ ‘우리가 만든 제품가운데 스스로 시장을 열어나가는 게 나왔는가’ ‘글로벌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오피니언 리더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문기업은 배출됐나' 하는 것들이죠. 그런데 이게 썩 잘 안보여요. 10년쯤 됐으니 싹이 나와야 되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이정표를 다시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게 첫 번 째 고민입니다.

하노버국제박람회에서
두번째 고민은 무었이나요?
투자를 10년 동안 했으면 이제 좀 시장이 움직여 줘야 되지 않나?! 근데 생각보다 더디 움직여요. 청소로봇이나 무슨 키트 종류는 좀 있지만, 사이즈가 너무 작아요. 물론 그건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고 글로벌도 그러긴 해요. 그런데 우리는 10년 동안 산업용보다 서비스 용 로봇에 투자한 게 많거든요. 하지만 결과는 별차이가 없어요. 그렇다면 이건 뭘 놓쳤다는 얘기잖아요. 이런 문제들은 이제 정책적으로만 커버할 게 아니라 과연 뭘 놓쳤을까, 개념을 뭘 잘못 잡았을까, 이렇게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시장이 열리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예전 기고에서 ‘가치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쓰셨던데.
쉽게 말하면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가?"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청소로봇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는 ‘청소’라는 기능에 있어요. 그런데 처음 청소로봇을 사용했더니 의외로 재미가 있어요. 신기하지요. 하지만 그건 잠시 동안입니다. 곧바로 “이거 매일 청소시키는데 먼지는 그대로 였네”하며 실망하게 돼요. 그러면 청 소로봇으로서 가치가 떨어지게 돼요. 청소로봇이 기본적으로 청소해 준다는 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미래가 없는 거죠. 청소로봇이 나왔을 때 주부들이 기대한 것은 자신이 청소로부터 해방되는 거였어요. 그러나 처음에는 기능이 불완전해 시장을 여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신세대 싱글족이 늘고 얼리어답터들이 자꾸 쓰다보니 주부들의 생각도 바뀐거죠. “그동안 매일 청소했는데 쟤한테는 일주일에 5번쯤 시키고 나는 주말에 한번만 하자, 아예 한번도 안하면 좋겠는데 쟤가 아직은 불완전하니까 그 정도면 되지 뭐!” 이렇게 된거지요. 그렇게 바뀌니 “로봇청소기가 50만원 정도의 가치는 있네!”하게 된겁니다. 그게 가치화(Valuation)라는 거죠. 가치란 것은 계속 변해가는 거든요.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요.
로봇을 아주 디테일하게 들여다 봐야지요. 가령 국방로봇이 정말 군에서 쓰이기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군인들에 교육시키겠느냐', '무기 체계는 어떻게 잡아가느냐'하는 고민부터 해야죠. 그런데 “야 이거 뭐 지뢰탐지 로봇이 중요하니 그것부터 개발하자”라는 얘기가 먼저 나옵니다. 자, 지뢰로봇을 개발해 군에 들여보내려고 해요. 그런데 군에서는 ”어떻게 들여와? 로봇을 운용할 체계가 아직 안돼 있는데” 이런 식이예요. 수술로봇도 아무 때나 들여와 수술할 수는 없잖아요. FDA 승인도 받아야 하고… 이젠 시장창출 정책을 보완해야 할 때라고 봐요. 그게 산업용이나, 전문용이냐 개인용이냐에 따라서 달라져야죠.

새정부가 이런 고민들을 잘 반영하면 창조경제 구현의 좋은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행인 것은 이젠 우리 로봇산업의 수준이나 문제점을 들여다 보는 시각이 다들 비슷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한번은 누구와 견줘보고 싶지 않나. 로봇은 미래 시장인데, 그 미래가 3년 뒤일지 5년 뒤일지 10년 뒤일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견줘볼 때가 오지 않겠나'하는 생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게 본다면 로봇이야말로 창조경제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지요. 게다가 지난 두 정부가 10년 동안 투자한 게 결과적으로 선진국들이 우리를 주시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 봐요. 아직은 우리가 한곳에 집중하는 힘이 약해서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그건 시간문제라고 봐요.

듣다 보니, 로봇 정책방향이 분명해졌는데, 다시 정부에 들어가야 하는거 아닌가요?
제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하하하. 저에게 역할이 주어진다면 해야죠. 지금도 제가 한 두 개 맡고 있는 역할은 있죠.

새 정부에서?
국가 전체 R&D 정책을 심의하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라는 게 있습니다. 예산을 조정해서 배분하고 투자의 방향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죠. 그 산하에 5개 전문위원회가 있는데 제가 자동차 조선 플랜트 부품소재 등이 포함된 주력기간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거기에 바로 로봇이 포함됩니다. 하여간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로봇 분야의 R&D,나 예산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거죠. 앞서 말씀 드렸던 산업용 로봇, 전문서비스용 로봇,개인용 로봇 정책을 각기 다른 맞춤형으로 세분화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거기서 펴낸 정책집에 들어있죠.

학교에서 로봇을 공부할 때는 어떤 환경이었나요?
제가 76학번인데 당시에 우리나라에 로봇 전공 교수가 거의 없었어요. 교수님들이 필요할 때 외국이나 또는 외부에 직접 공부하고 오셔서 저희 같은 제자들을 길러 낸 거죠. 저는 학부(서울대 전자공학과) 마치고 KAIST 석사과정 때 로봇 이론을 공부했는데, 저희들끼리 페이퍼를 보면서 “이게 무슨 뜻이지?” 그러면 옆 친구가 “나도 모르지, 교수님한테 물어보자” 그러면 교수님도 “그래, 이게 무슨 의미일까?”하던 시절이 었어요. 지도교수였던 변증남 교수님 역시 로봇 전공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저희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공부해오셔서 저희들을 가르쳤지요. 전공 지식 보다는 교수님의 공학적 사고와 깊이로서 저희들을 가르친 겁니다.

왜 하필 로봇을 선택했나요?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로봇을 전공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때엔 연구실에도 로봇 전공하겠다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변증남 교수님이 “사람처럼 똑똑한 인텔리전트 로봇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시는 겁니다. 저도 “참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그랬지요. 그런데 처음 3년 동안 고생 참 많이 했습니다. 대체 뭐가 인텔리전트할까, 뭐가 스마트할까. 그런데 지도교수님이 로봇 전공이 아니어서 외국 논문과 서적들을 스스로 찾아서 읽었습니다. 인공지능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어요. 그런데 개념이 잡히지 않는 거예요.

로봇 전공을 결심한 뒤 찾아온 첫 위기였군요.
그렇죠! 논문을 쓰려면 머리 속의 생각을 수식으로 만들어 남들에게 이게 맞냐, 틀리느냐 하며 보여줄 수 있어야 하잖아요. 지능은 뭐고 학습하는 로봇은 뭘까. 이것들을 어떻게 모두 공유할 수 있는 개념으로 만들어 낼까. 또 어떻게 수식화 할까. 날마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외국 논문 하나를 읽었는데, 아! 그 논문에서 제가 고민하던 게 수학적으로 수식적으로 아주 심플하게 설명돼 있는 거예요. 너무나 반가웠어요. 굳이 표현하자만 어둠 속에서 헤매는데 빛이 쫘악 쏟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본인 교수의 논문이었습니다.

그분 이름이?
스구루 아리모토(有本 卓) 교수님. 논문을 쓰던 때는 오사카대학 재직중이었는데, 그 때는 도쿄대로 옮겼을 때에요. 곧장 편지를 썼죠. 제가 고민했던 문제가 교수님 논문에 다 들어있더라, 다른 논문들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금새 소포로 부쳐온 거요. 그게 전기가 됐습니다. 계속 편지를 썼고 그분도 답장을 보내주셨죠. 논문의 방향이 잡혀가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1년 반 만에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구루 교수는 이 분야에서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었어요! 박사논문 통과하고 2년 뒤인가 도쿄에서 학회가 있어 갔는데 거기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굉장히 반가워하시더라고요. 그 후로 일본에서 학회가 있을 때마다 가서 뵈었죠.

여기 이 책들은 요즘 읽고 계시는 건가요? ‘창업국가’ ‘열하일기’ ‘칼의 노래’…모두 인문사회 쪽인데.
제가 요즘 서울대가 개설한 ‘최고지도자를 위한 인문학과정’(AFP)을 다니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비싼 등록금을 내며 거길 가게 된 계기가 있어요. 제가 스물아홉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태어나서 그때까지 공부만 죽어라 해서 이를테면 먹고 사는 자격증을 딴 셈이잖아요. 그러고 나서 다시 30년 가까이 일만 열심히 했죠. 주어진 일만 열심히 했는데, 그게 결국은 앞만 보고 산 거잖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30년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퍼뜩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앞으로 30년은 좀 달리 살아야겠다, 좀 맛깔나게, 행복이 뭔지, 가족이 뭔지 더 좀 고민해보고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인문학을 한번 해보자, 그런 거고요. AFP에서 추천한 고전 가운데 하나가 ‘열하일기’예요. ‘칼의 노래’는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즉석에서 몇 페이지 읽는데 문득 소설적 감성이 느껴져요. 그래서 구입했고요. ‘창업국가’는 새정부 들어 하도 많이 이슈가 된 거라서 대체 무슨 내용인가 싶어 읽고 있지요. 시대흐름을 호흡하고 싶어서죠.

인문학은 공학과 많이 다르다던가요?
인문학을 접하면서 제 자신이 또 한번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문득 이때까지 나는 뭘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거창하게 얘기하면 우리나라 교육체계의 문제점과도 닿아있다고 봐요. 무슨 얘기냐 하면, 제가 이과를 다녔어도 인문학 분야에서 제가 잘아는 건 많더라고요. 몇 년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고 몇 년도에 무슨 제도가 만들어졌고 하는, 시험에 잘나오는 암기형 지식이지요. 가령, 1868년에 메이지유신이 있었고, 1840년에는 아편전쟁...그런데 '메이지유신의 역사적 의의가 뭐냐', '왜 아편전쟁이 중국에서 일어날수 밖에 없었느냐'하는 물음에는 막히고 말아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해본 거예요. 이러고도 나이 60을 앞둔 엘리트라 할 수 있겠느냐, 솔직히 창피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AFP과정 마치면 뭔가 연구주제를 하나 발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냥 순박하게 발표할 수는 없고 그래서 좀 거창하게 인문학이 사람에 끼치는 영향을 공학적으로 어떻게 표현해볼까? 하고 생각중입니다. 하하.

달변이고 자기 철학이 분명하신데 주변에서 정치해보라는 얘기 안합니까?
농담이겠지만 주위에서 더러 하지요. 옛날에 변증남 교수님이 “너는 성격이 좋아서 뭘 해도 잘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한테는 그 말씀이 참 힘이 많이 됐어요. 요즘엔 주변에서 기업을 해보지 그러느냐라는 말도 해요.

프랑스 니스에서 학술대회 참석후 부인과 함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기업 최고경영자로서도 아주 잘 맞을 것 같은데.
기회가 주어지면 거절하진 않을 것 같아요. 재미있겠지요.

부인이 미인이시던데 어떻게 만나셨나요?
대학 3학년 때 유학 가려고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거기서 처음 만났어요. 결국 다른 사정 때문에 유학은 포기했고, 대신 집사람을 건진거죠.하하.

3시간에 가까운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가족관계를 물어보니 그는 비로소 평범한 50대의 중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오늘이 있기까지 동갑내기 아내의 평생 내조를 그는 진심으로 고마워 했고, 또 그 아내가 정성 들여 키워낸 두 딸의 존재를 그는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 했다. 게다가 그는 영화광이었고 여행을 즐기는 로맨스티스트였다. 영화는 한번 보고는 성이 안차 같은 영화를 3번 쯤은 봐야 하는 지독한 마니아 였다. 그가 직접 운전하는 SUV차량은 외장은 새 차처럼 멀쩡했지만 주행거리가 20만Km가 넘은 것 보니 내부는 여행하느라 왠만큼 혹사(?)시킨게 분명했다.

사무실에서의 인터뷰가 끝나자, 그가 차를 운전해 사무실에서 인근 전철역까지 기자를 바래다 줬다. 마지막으로 차 속에서 그에게 물었다.

대학 때 유학을 떠났더라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까요? 전공이 로봇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글쎄요. 로봇을 전공했을지 안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제 철학이나 인생관까지 바뀌지는 않았을 겁니다. 서현진 기자

[오상록 박사 주요이력]
1958년 서울 출생
1976년 서울고 졸업
1980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7년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공학석사/공학박사) 졸업
1988년 KIST 시스템연구부 선임연구원
1991년 미국 IBM Watson연구소 방문연구원
1995년 KIST 책임연구원
1998년 고려대, 한양대 공과대 객원교수
1999년 KIST 생체모방시스템 국가지정연구실 연구실장
2000년 KIST 지능제어연구센터장
2003년 정보통신부 국민로봇사업단 단장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지능형로봇/차세대컴퓨팅전문위원실 전문위원
정보통신부 IT정책자문관(PM)
2009년 KIST 로봇•시스템본부 본부장
2010년 KIST 대외부원장
2011~현재 실감교류로보틱스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로봇기반교육지원단장

서현진 본사편집고문  suh@irobo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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