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로봇세를 도입한다(또는 로봇세 도입을 숙고하고 있다)”는 외신 제목을 접하고 눈이 번쩍뜨였다. 텔레그래프,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등 매체들은 “한국이 처음으로 로봇세를 도입한다“, ”한국이 로봇세 도입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이 세계 처음으로 로봇세를 숙고하고 있다“ 등등의 제목으로 한국의 최근 동향을 전했다.

지난해 로봇세 도입에 대한 논의가 한창일 때만해도 로봇세는 먼 나라 얘기거나 시간이 제법 지나간 다음에 벌어질 일로 인식했다. EU 처럼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는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등잔 밑이 한참 어두웠던 모양이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로봇세 도입을 추진 중이란 외신 보도에 완전 허를 찔린 느낌이다.

경위는 이렇다. 우리 세법에는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 제도라는 게 있다.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첨단 기계에 투자할 경우 투자액의 3~7%를 법인세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다. 대기업은 투자액의 3%, 중견기업은 5%, 중소기업은 7%까지 세금을 감면해준다. 이 제도가 로봇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을 자극했을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일몰 규정에 따라 올해말 없어진다. 그런데 정부가 세법 개정을 추진,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를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중소기업의 공제율은 지금처럼 7%를 유지하되 대기업은 1%, 중견기업은 3%로 축소해 2019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로봇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을 검토 중인 기업에는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를 축소하는 것은 자동화 시설에 대한 세제혜택을 줄이는 것으로, 초기 단계의 한국형 로봇세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봇,자동화 시스템 등 첨단 시설 도입시 적용하던 세금의 공제율을 축소했으니 온전한 의미의 로봇세는 아니더라도 초보적인 단계의 로봇세 도입 아니냐는 설명이다. 국내외 언론에서 로봇세 도입의 초기 단계라고 거들고 나서면서 우리나라가 마치 로봇세 도입에서 가장 앞서가는 국가처럼 인식됐다. 로봇 도입시 세금을 부과하는 적극적인 개념의 로봇세가 아닌데, 이를 로봇세라고 불러도 되는 지 좀 따져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 시설 투자 세약 공제 축소는 해외 매체로부터 로봇세 도입의 의미로 해석됐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로봇세 도입과 관련해 다른 나라를 제치고 상당히 앞서가고 있는 것 처럼 비춰졌다. 로봇세에 관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치열하게 로봇세 도입에 관한 논쟁이 벌어져야 할 것같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밀도를 보이고 있으며, 실업률도 아주 높다. 게다가 사회적인 안정망도 취약하다. 높은 실업률이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밀도 탓이라고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높은 실업률의 배경에는 로봇 자동화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회적인 요인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봇세에 관한 우리의 논의 수준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마치 로봇세 도입에 관해 앞서가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오해를 불러올수 있다.

다만 이 시점에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 축소 방침이 혹시라도 기업들의 로봇 자동화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인공지능 로봇산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게다가 최근 국회에선 박영선 의원을 중심으로 로봇기본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최근 정부 산하 공공기관이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제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봇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이 기업들에게 재정적으로 크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정책적 배려가 아직은 필요해 보인다. 가뜩이나 국내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작은 제도 하나 바뀌는 것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장길수ㆍ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