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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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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29  23: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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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책은 과거의 반성에서 부터 출발해야"

25년 동안 로봇과의 공존을 연구한 일본 세콤에 ‘깊은 감동’
"전문가란 자기 품을 떠난 로봇을 한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
"협회나 진흥원이 정부를 돈을 받아내는 고객으로 보면 안돼"

로봇계에서 김진오 교수(55ㆍ광운대 로봇학부)만큼 오랫동안 정부 정책에 관여한 인물도 흔치 않다. 김교수는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 꼬박 7년 이상 정부의 로봇정책 입안 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여했다. 이 기간 동안 로봇은 10대 성장동력에 선정돼 정책적인 관심과 함께 산업적 기대가 모아졌다. 반면 이 기간 동안 김교수의 역할을 ‘시어머니’에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는 한때 정부의 공식 자문기구에 속해 있으면서도 정책 자문과정에서 배제되는 ‘사건’을 직접 겪기도 했다. 실제로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함께 한 3시간여 동안 김교수는 최고의 정책자문가로서의 모습과 시어머니로서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었다.

학창시절 관심사는 어떤 분야 였나요.
고등학교때 무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공과대학을 지원했어요. 역사적으로 우리는 수 없이 침략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된 소리 한번 내지 못했잖아요. 한 대 맞더라도 한대 때려보기는 해야 할게 아니냐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바보스럽게. 학부시절에 특히 열공학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석사과정을 지도했던 노승탁교수님의 영향이 컸어요. 물론 신앙적인 이유도 있긴 해요. 당시 서울대 열공학 과목들은 본격적으로 유학을 다녀온 유학 1세대 교수님들이 맡고 있었어요. 재미도 있었고, 진짜 열심히 했지요. 당시 서울대에서 열공학이나 통계열물리 처럼 열과 관련된 모든 과목을 다 들어보려고 했습니다. 요즘 말로 열공한 셈이죠.

대학원은 처음에 의공학부에서 시작했는데.
어머니가 심장병이 생기면서 의사가 안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어요. 그 다음에는 사람을 살생하는 무기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지요. 물론 신앙(카톨릭)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석사과정에 진학면서 서울대병원 의공학과에 1년간 참여했습니다. 의사들은 병을 낫게 해 주지만 저는 신체 장기를 통채로 바꿔주면 안되겠는가 하는 생각 했어요. 어머니 병환에 대한 생각도 했고요. 당시 인공심장이 처음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이런 걸 하다 보니 의사의 조수로 밖에 할 일이 없어요. 내가 왜 의사의 조수로 살아야 돼? 기사와 의사의 관계가 아니라 연구자와 연구자의 관계가 돼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열공학으로 돌아왔는데, 석사 마칠 때쯤에는 열공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깨달음이 와요. 열공학이 자동차도, 건물에도 필요하고 컴퓨터에도 중요하지만 막상 전면에서 주도할 수 있는 분야가 없겠다는 판단도요. 메인이 되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죠. 예를 들면 전자회사에 가면 전자공학, 중공업회사에 가면 기계공학과 출신이 주도세력이 되잖아요. 그래서 전체를 주도할 수 있는 분야가 뭘까 생각해 보았는데 로봇이 와 닿았어요. 로봇도 사람을 위한 것이니까. 물론 로봇을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카네기멜론대학교(CMU)가 로봇을 전공하겠다는 내 뜻을 받아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봇에 이르기 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사실 난 주변정보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대학 1학년 때도 친구들은 다 전자공학과 가는데 나는 기계공학과 아니면 안돼 했던 이유가 그만큼 몰랐다는 거죠. 따지고 보면 무기분야는 전자공학과가 훨씬 더 관련이 많은데, 누가 옆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니 생각을 못한 거죠. 의공학을 한 것도 경험은 됐지만 열공학에서 외도한 셈이지요. 눈치를 주진 않았지만, 지도교수 역시 자신의 학생이 의공학을 한다고 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겁니다. 석사마치고 나서는 기계공학 전반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KIST에서 잠시 위촉연구원 생활을 했는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박사 유학 갈 때도 로봇이나 디자인 전공을 하겠다고 하니 석사때 전공과 연결이 안된다며 받아주는 학교가 많지 않았어요. 지원서에는 열공학을 하겠다고 쓴 다음 입학하고 나서 전공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거짓말이라며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탓도 있어요. 물론 지금은 꼭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운명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행이 CMU에서 국비유학생이라는 잇점을 가진 저를 로봇분야에서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결국은 카네기멜론대를 선택했군요.

결과적으로 CMU에 간 게 일생에서 가장 큰 기회였고 현재의 저의 모습 대부분을 만들어 준 선택이었습니다. 그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교육내용으로 저를 제대로 된 연구원으로 만들어준 게 CMU에요. CMU의 학풍은 모든 게 방법론을 따라 하도록 돼 있습니다. 가령 박사학위(Ph.D.)라는 것도 철학과 함께 방법론으로 무장이 돼야 인정을 받습니다. 자기만의 방법론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게 있어야 박사라는 거죠. 그냥 논문 썼다고 학위 주는 게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왜 그걸 가르치지 않나 모르겠어요. 물론 미국에서도 그런 교육을 해줄 수 있는 대학이 썩 많지는 않아요. MIT대나 스탠포드대도 교수 밑에서 논문 쓰죠. CMU에서는 뭐든지 방법론이 만들어져 있고 뭐를 해도 방법론이 따랐죠. CMU의 정신은 한국의 대학들이 배워 가야 할 점이 많다고 봐요.

어떤 것을 배워야 할까요.
제가 학부와 석사과정을 서울대에서 했지만 CMU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의 대학들이 얼마나 부족한 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투쟁 같은 정치적 상황이 대학을 어렵게 만들었어요. 사람을 키우는 곳이라는 느낌도 크게 와 닿지 않았어요. 당시 우리들은 서울대가 '용이 들어와서 뱀이 되어 나가는 대학'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제 지도교수 같은 훌륭한 스승들도 계셨지만 전체 분위기는 CMU와 비교해서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CMU의 신조는 “이미 훌륭한 학생을 뽑았는데 그를 성공 못 시키면 학교책임이다” 그런 정신이었어요. 엄청나게 공부를 시킵니다. 미국에서도 악명이 높아요. 그려면서도 학교 특유의 자유를 줍니다. 로보틱스와 컴퓨터과학의 경우 졸업 때까지 지도교수 연구비의 유무에 관계없이 생활 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비를 지원하지요. 지도교수를 따르지 않고 자기가 연구분야를 정해도 됩니다.연구비 펀딩 역량도 비교가 됩니다. MIT대와 스탠포드대의 경우 지명도가 있으니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와요. 그런데 CMU는 순전히 실력으로 연구기금을 끌어와요. 지리적으로도 딱히 서부나 동부의 중심이 아니어서 매우 불리한데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독자적인 전략을 세우고 접근해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학교를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학생수도 한 학년에 1500명 밖에 안되고 의대와 법대도 없으면서 그런 명성을 얻기 힘들어요. 광운대나 포항공대 같은 이공계 중심 대학들이 본받아야 할 대학이죠. 우리나라의 발전 전략도 '작은 학교'인 CMU에서 배울게 많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은 어떤 내용이었나요.
‘작업기반의 로봇설계 연구’입니다. 이 논문 이전에 로봇들의 용도는 모두 범용이나 다목적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80년대까지 20여년 동안 실제 로봇을 써보니 범용이나 다목적용 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아크용접 하는 로봇은 아크용접만 하다 죽고, 도장 로봇은 도장만 하다 죽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작업에 꼭 맞는 로봇은 뭐냐는 것이죠. 제 논문에서는 작업기반으로 로봇을 디자인하는 방법, 또는 작업에 맞는 디자인이 뭔가 하는 것들을 다루고 있죠. 로봇의 작업이 먼저 정의되면 설계에 들어간다, 이게 바로 작업기반 디자인입니다. 작업기반 로봇 설계 연구는 제 논문이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참고할 논문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디자인을, 그 가운데서도 디자인방법론을 제대로 공부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그 방법론이 정부 정책을 결정할 때, 사업을 기획할때, 새로운 무엇을 계획할 때 항상 내인식이나 사고를 지배해 왔다고 봐요.

유학 마치고 기업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군요.
일본에서는 직원들을 고정적으로 CMU에 유학을 보내 방법론을 배우게 하는 기업이 많아요. 미국 대학들은 기술을 모두 개방하니까. 그게 결과적으로 돈 적게 들여 고급 인력 키우고 기술도 배울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에요. 1992년 저도 때마침 일본에 갈 기회가 생겨 후쿠오카에 있는 야스카와전기에 갈까, 도쿄에 있는 세콤에 갈까 고민하는데 일본인 교수가 도쿄로 가는 게 좋다고 해요. 세콤의 지능형시스템연구소에서 1년 2개월 동안 연구원으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4년부터 4년 반 동안은 삼성전자에서 일했어요. 삼성 입사 당시에는 제조현장에서 생산자동화라인을 위한 로봇이 쇠퇴하고 셀 방식으로 바뀌는 때였죠. 제가 가면서 로봇개발팀이 생기고, 3년 후에는 로봇사업부가 만들어져 사업부장을 하게 됐어요. 직접 개발한 로봇들을 판매하는 거죠. 연간 300억 원 정도를 팔았어요. 이렇게 기업에 로봇을 만들어 팔아본 경험은 나중에 정부 정책일 하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특히 세콤에서의 경험은 아주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에 대한 관심은 없었나요.
삼성에 입사할 즈음, 그러니까 일본에서 세콤에 있을때 카이스트와 서울대 그리고 한양대에 지원을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운이 좋게도 어느 학교에서도 날 데려가지 않았죠. 카이스트는 지원자 가운데 1위에 올랐는데 그 해 떠나는 원장이 뽑지 않았습니다. 서울대는 5개 전공 분야를 뽑는다고 해놓고선 자리는 하나 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전공보다는 좋은 사람이 있으면 뽑겠다는 계산이었죠. 그런데 로봇은 뽑지 않았어요. 한양대는 디자인 전공을 뽑는다는 공고를 내놓고서는 MIT대 출신의 제어전공자를 선택했어요. CMU는 모르고 MIT대를 선호했던거지요. 나는 공고 난대로 디자인을 전공했는데도요. 지금은 CMU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데 당시 한국에서는 잘 몰랐던 거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이게 당시 한국 대학들의 현주소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서 바로 삼성전자를 택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고 그때의 경험 역시 CMU와 세콤에서의 경험과 함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당시(만 40살)의 경험이 그 다음의 인생을 지배하게 됩니다. 삼성에 있는 동안 대학에 대한 관심은 더이상 갖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심했죠. 그러나 IMF구제금융사태 때 구조조정을 하면서 제 사업부 동료 가운데 10%를 제 손으로 골라야 했습니다. 그때 삼성을 그만두고 박희재 교수의 도움으로 서울대 정밀기계설계연구소에서 특별연구원생활을 시작했어요. 6개월후에 광운대에서 연락이 왔죠.

▲ 2009년 한 로봇세미나에서 기조발제
학교에서의 보직보다는 정부 정책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했는데.

15년 동안 학교 보직은 지난해 잠깐 했던 대외협력처장이 거의 전부입니다. 대신 정부의 로봇정책 일을 많이 했어요. 기본적으로 저는 국비유학 3년 갔다 왔으니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부터 2년 동안 정부일을 돕기 시작했죠. 그리고 로봇이 10대 신성장동력으로 선정된 노무현 정부에서 5년, 이렇게 해서 꼬박 7년을 정부에 봉사했죠. 산자부 지능형로봇단장과 차세대성장동력추진 특위 지능형로봇실무위원장, 그리고 2006년 부터는 로봇산업정책포럼 의장을 했습니다. 2008년 ‘지능형로봇개발 및 보급촉진법’이 만들어 질 때까지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관여 했어요. 수많은 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대부분 제가 그 위원회의 위원장을 했어요. 사람들이 제 별명을 위원장이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명박 정부 때는 별로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로봇융합포럼 실무위원장으로서 제2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어머니’ 역할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잘못돼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 말 안 하는 게 잘못된 것 아닌가요. 몰라서 말을 못하면 모를까. 나는 로봇을 만들어 내 품을 떠나 보낸 수많은 경험이 있어요. 자기 품을 떠난 로봇을 만들어 본 사람과 자기 품에 로봇을 안고만 있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은 결국 품 안에서 떠나 보내기 위한 것인데 자식이 독립 안하고 자꾸 부모 옆에 있으면 잘못 가르쳤거나 잘못 배운 거잖아요. 로봇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만든 로봇을 자기 품에서 떠나 보내야 로봇이 되는 거지, 계속 자기가 갖고서 보여주기만 한다면 그건 로봇을 한 게 아닙니다. 로봇 전문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뭘까요. 논문 많이 쓴거요? 아닙니다. 자기 품을 떠난 로봇을 한 개라도 더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보면 1인1로봇이니, 로봇이 애들을 키우느니, 국민로봇이니 온갖 얘기들을 다 쏟아내요. 설거지가 주부들의 애로 사항인데, 설거지해주는 로봇 나오면 대박이라는 얘기도 나와요. 대박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걸 로봇이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그걸 바로잡자고 했어요.

역대 정부의 로봇정책을 평가한다면.
김대중 정부 때는 사무관 한 명이 다른 분야와 함께 로봇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뭐라 평가할 수는 없지만 로봇분야 최초의 국가과제라고 할 수 있는 퍼스널로봇 기반 기술과제가 시작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로봇을 10대 성장동력으로 추진한 노무현정부는 시작은 좋았는데 굉장히 잘못된 방향으로 갔죠. 로봇을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컸어요. 정치인들과 장관이 나서서 자신들이 가졌던 만화 같은 생각들을 주장하고, 구체적이지 못한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갔어요. 물론 전문가들이 데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잘못도 크긴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초창기에 소고기 파동이 터졌을 때 그래도 산업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던 일을 계속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사업들이 연기되고 모두들 손을 놓고 있는 거에요. 하지만 4대강 사업은 예외였어요. 참 이상한 정부다, 그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5년이 지나 다시 ‘제2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을 마련 중인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창조경제라는 프레임을 걸고 다시 지능형로봇기본계획 2차 계획을 짠다고 하는데 이젠 좀 다르게 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1차계획 때 하려고 했던 것처럼 지난 정책들을 분석하고 반성해서 잘못된 것들은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겠지요. 그리고 나서 로봇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방향으로 길게 보고 가자는 거예요. 하물며 일본의 경비회사인 세콤 같은 민간기업들도 충분히 세월을 기다릴 줄 알고 사회변화를 읽을 줄 알고 대비하잖아요.

요즘도 세콤에서의 연구 경험을 강의 자료로 인용하고 있다고 했는데.
당시 세콤에서 경비로봇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경비회사였던 세콤이 80년대 말부터 개호 로봇(재활로봇이나 간호보조로봇)을 연구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입사 당시 옆 팀에서 했던 게 손이나 팔이 없는 사람에게 로봇이 밥을 먹여주는 생활습관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로봇이 팔 없는 사람의 의도, 예를 들면 지금 밥을 먹고 싶은지 국을 먹고 싶은지를 알아채는 방법, 그리고 밥 그릇은 어떤 형태로 만들어야 로봇이 잡을 수 있겠는가, 또 반찬은 어떻게 만들어야 로봇이 집어줄 수 있나, 사람이 그걸 어떻게 잘 준비할 수 있나 하는 것들이지요. 그때부터 벌써 로봇과 사람과의 공존문제를 연구해온 거에요. 그런데 로봇제작(이게 소위 우리가 말하는 융합이라는 거죠!)은 왜 하지 않으냐고 하니까, ‘그걸 해 줄 곳이 많은데 왜 우리가 하느냐, 돈도 안 되는데’라고 해요. 일본에서는 설계에 따라 로봇 개발해주는데 많아요. 그들은 로봇 개발을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용합보다는 공존에 더 집중하고 사회변화와 함께 하는 통섭을 설계할 줄도 압니다.

▲ 로봇계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엥겔버그상 수상 당시 모습
일본 정부가 요즘 개호로봇을 미래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고 한 게 이런 배경이 있었군요.

그렇죠. 기업들이 정부에 앞서 사회를 읽고, 미래를 내다보면소 자기들의 먹거리를 준비해온 거죠. 제가 있을 때부터 개발한 세콤의 밥먹여 주는 로봇(My Spoon) 얘기는 지난해 일본경제신문에 났어요. 2015년에 공적 보험 대상에 선정됐다는 겁니다. 손이나 팔이 없는 사람들이 정부지원으로 그런 로봇을 싸게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제도가 도입된다는 얘기에요.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지는 셈이죠. 그게 통섭입니다. 바로 그런 사회 제도가 만들어지고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지는 게 통섭이죠.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 돈이 되는 공존을 연구하면서 계속 통섭 사회를 준비해온 셈입니다. 내가 세콤을 통해 배운 게 그거에요. 한국기업들 처럼 로봇을 만드는 융합에만 집중하지 않잖아요.

우리에겐 왜 통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까요.
통섭은 사회발전과 같이 가야 하는 거에요. 그런데 세콤의 밥먹여 주는 로봇이 25년 동안이나 개발해야 할 만큼 어려운 기술이냐,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25년을 꾸준하게 기다려왔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공존이나 통섭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어요. 창조경제를 주창하고 하지만 먼저 모든 기술이 사회화 되지 않으면 뭐든 오래가지 못해요. 21세기에 우리 정도의 국가수준이면 이제 정책은 사회를 만드는 게 우선 목표가 돼야 한다고 봐요. 창조경제의 성공 지표에도 몇 건의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나와애 하는데 안보여요. 박정희 정부 때는 새마을 운동이라는 걸 하면서 수천 건의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냈잖아요. 그게 결국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게 한 거죠. 창업은 그 가운데 일부 임시적 조직을 만든느 것 뿐이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세콤의 직원들은 당시 오히려 저한테 잔소리를 들을 정도로 로봇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렇지만 그들은 계속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잖아요. 그런데 우린 뭡니까. 똑똑한 사람들끼리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잖아요. 그런 얘기하면 잔소리한다 하고.

새 정부들어 로봇산업과가 기계로봇과로 바뀌었는데.
저는 사무관 한 명이 로봇을 포함해서 다른 분야 까지 함께 담당할 때부터 정부일을 해왔어요. 또 사무관 한 명이 로봇만 전담하다가 2명으로 늘고, 그러다가 팀이 생겨나고, 과 단위로 확대되는 과정을 다 경험해봤어요. 사무관 한 명이 전담할 때 일을 제일 잘해요. 그때는 전문가에게 확실하게 조언을 구하거든요. 그런데 과 단위로 확대되니까 아니에요. 제가 협회와 로봇산업진흥원에게 그랬어요. 너희는 어떻게 산업은 쳐다보지 않고 로봇산업과만 보느냐, 그러다 보니 로봇산업과에서 숙제 내주는 것을 풀어내는 게 그들의 가장 큰 미션이 돼버렸어요. 정부가 고객이 돼버린 거죠. 협회나 로봇산업진흥원 같은 곳이 정부를 돈이나 받아내는 고객으로 보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입니다. 그들은 정부를 도와서 진정한 고객인 로봇인과 로봇기업을 만나야 합니다. 이제 기계로봇과로 바뀐 뒤에는 전문가 의견을 더 듣게 되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같습니다.

정부-산하기관-업계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로봇업계의 인식수준이 낮은 게 문제라고 봐요, 그 인식이라는 게 정부를 ‘돈 많은 아버지’로 본다는 겁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바보가 아니거든요. 결국은 업계 수준이 그런 정책을 낳았다고 봐요. 어떤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수준이 낮으면 그 수준에 맞는 대표자가 나오는 것 당연한 이치잖아요. 빨리 로봇산업계의 수준이 향상되도록 다 함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광운대의 로봇관련 학과가 로봇공학부가 아니라 로봇학부입니다. 그 차이는 뭘까요.
‘공’자를 떼낸 것은 전임 이상철총장께 승인을 받은 거에요. 로봇을 공학으로 국한시켜 보지 말고 학문체계로 보자는 거였죠. 물론 한국로봇학회라는 단체 이름에도 ‘공’자가 없긴 해요. 그런데 거기는 회원들의 영역을 좀 확대해보자, 그런 의미가 강해요. 로봇공학이 로봇학으로 확대되는 것은 그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건축학과 건축공학의 차이만큼이나요. ‘공’자를 떼낸 것은 나중에 로봇학부를 공대(전자정보공과대학)소속에서 분리해내고 싶었어요. 로봇학부가 공학을 다루는 공대에 소속돼 있으면 아무래도 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잖아요. 예를 들면 CMU에서도 로보틱스와 컴퓨터사이언스 분야가 모두 '스쿨 오브 컴퓨터사이언스'에 들어 있어요.

로봇학부가 독립되면 디자인관련 과도 만들어질까요.
모든 게 통합되고 있는 세상에서 기술로 뭘 나누려고 하는 것은 20세기적 사고입니다. 애플리케이션이 중심이 돼야겠죠. 교육용 로봇학과, 국방로봇학과 이런 식으로요. 물론 이 일은 로봇학부가 얼마나 잘하는가를 봐야 되고. 또한 내부 논의도 이루어지고 외부환경도 따져서 학교 측을 설득하는 과정도 있어야겠지요. 그런 과정에서 ‘그런다고 뭐가 크게 바뀌는가, 어떤게 이익인데?’라는 주변의 시각에 답할 수 있는 논리도 갖춰야 하고요.

평소 강직한 이미지인데, 좌우명이 있을까요.

미국에 갔을 때 처음에 인종차별이나 독특한 문화 때문에 미국 사회에 대해 불평을 한적이 있어요. 그때 한 미국인 동료가 “사랑하지 않으면 떠나라(love or leave)”고 조언을 해줘요. 가슴에 와 닿았어요. 어차피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구성원으로서 거기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잖아요. 불평불만만 있으면 그 사회도 안 좋고 자신에게도 안 좋아요. 결국 아무것도 안 되는 거지요. 로봇 분야에서도 로봇을 사랑하지 않으면 떠나라는 겁니다. 어느 국책연구소에서 강의를 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국가의 지원이 다 떨어져도 로봇 연구 계속하겠는가 물어보니, 아무도 대답을 못해요. 이렇게 신념과 사랑 없이는 뭐든지 안됩니다. 왜 국가 돈만 돈입니까, 기업 돈도 돈이고,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구해야지요. 그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든지, 떠나든지 얼쩡거리지 말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비슷해요. 좀더 적극적으로 철저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사랑하라는 의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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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오늘이 있기까지 주위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을텐데요.
삶에 영향을 미친 몇 분이 있어요. 그 가운데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의 모 예수 스페인 출신 신부님을 잊을 수 없어요. 서울대 다닐 때 3년간 예비신자를 위한 예비자교리에 봉사할 때 지도 신부님이었요. 저는 그 기간이 봉사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저한테는 엄청나게 도움이 된 시기였어요. 공대생들이 인문학에 접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그 3년 동안 신부님이 다양한 인문학의 뿌리를 저에게 심어 주셨더라고요. 공대 출신들이 사고의 폭이 좁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런 소리 별로 듣지 않았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운이 좋아고 신부님에게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무기를 만들고 싶었던 생각을 바꾸게 된 것도 어머니와 함께 신부님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는 이렇게 끝났다. 인터뷰 녹음 파일 정리를 마치고 그에게 리뷰와 스크린을 부탁했는데 그가 마지막 질문인 도움을 주신분들을 추가해 보내왔다. 사실은 인터뷰중에 언급했던 것을 신부님 얘기를 강조하기 위해 기자가 자의적으로 삭제한 내용들이었다.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 해서 다시 추가한다.

신부님과 함께 지도교수였던 김응서 교수님(학부과정), 노승탁 교수님(석사과정), 프라딥 코슬라 교수님(박사과정, 현재 UC샌디에고 총장), 다케오 가나데 교수님과 매트 메이슨교수님 (박사논문 심사위원) 등도 제게 많은 영향을 끼친 분들입니다. 그리고 카톨릭 대부인 신용극 회장님도요. 저는 이렇게 인생의 롤 모델이 돼주신 분들을 많이 만난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서현진 기자

[김진오 교수 약력]
1959년 거창 출생
1983년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85년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석사
1992년 카네기멜론대학교 로보틱스 박사

1985년 KIST 기계시스템 연구실
1992~1993년 일본 세콤 지능형시스템연구소 연구원
1994~1998년 삼성전자 생산기술센터 로봇사업그룹 그룹장 및 수석연구원
1999년~현재 광운대학교 정보제어공학과/로봇학부 교수
2003년 산업자원부 지능형로봇기획단장
2004년 차세대성장동력추진특위 지능형로봇분야 실무위원장
2006년 로봇산업정책포럼 회장
2008년 엥겔버그상 수상(미국로봇산업협회)
2012년 광운대학교 대외협력처장
2013년 로봇융합포럼 실무위원장

서현진 기자  suh@irobotnews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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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준
로봇 그리고 교수님 10년이 지났지만 교수님의 철학은 제삶과 인생철학의근본입니다 항상감사드립니다
(2014-04-28 20:46:17)
LOL
Love or Leave 좋네요.
김진오 멋진 분이네요. 로봇의 미래를 위해 많은 활동 부탁드려요.

(2014-04-18 15:41:20)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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