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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준구 前 NSF 로봇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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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1  20: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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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책은 몇몇이서 만드는 로드맵이 아니다"

기관마다 전문가들 끼리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 정착 시켜야 ‘협력’ 기대
PD는 ‘크레이지’한 연구 과제도 지원할 수 있는 넓은 안목과 책임감 필요
데니스 홍에게는 “유명해질수록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 조언

여준구 박사(56)를 처음 만난 건 지난 5월말 한국로봇학회 창립 10주년 기념식이었고, 인터뷰를 위해 두 번째 만난 것은 8월말이었으니 꼭 석 달 만이다. 그런데 그 사이 그의 직함이 항공대 총장에서 전 항공대 총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일부 매체에서는 그의 총장직 사임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항공대 총장직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고 그를 만난 것 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몇 마디 거들었다.

하지만 그는 별로 망설임 없이 “총장으로서 일할 만큼 일했고 물러날 때가 됐으니 물러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인터뷰어 입장에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애당초 인터뷰 주제였던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 관한 내용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으니까.

한국로봇학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2001년 한국에서 열렸던 ‘IEEE 국제로봇∙자동화 컨퍼런스’(ICRA)의 유치를 미국에서 도운 적이 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 기회에 한국에도 학회를 설립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결국은 2003년에 당시 정통부 IT정책담당관이자 개인적으로는 친구인 오상록 박사(KIST 책임연구원)의 지원으로 한국로봇학회가 만들어 졌다. 창립 당시 나는 이석환박사와 함께 학회에서 발행하는 영문 저널의 공동 편집장을 맡게 됐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77학번인데, 그 즈음의 학번에서 로봇 분야의 ‘인물’들이 많이 배출됐다
오상록 박사, 정완균교수(포항공과대∙한국로봇학회장), 권인소교수(KAIST), 신경철사장(유진로봇), 권동수교수(KAIST∙로봇융합포럼의장) 등등. 모두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학교를 다녔다. 세계적으로 로봇에 대한 붐이 일어날 때라서 그랬는지 당시 젊은 친구들이 지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대학시절부터 로봇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나
기계전공이었지만 순수 기계보다는 제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 유학 당시 로봇에 대한 열기가 엄청났다. 지금의 라스베이거스 컨슈머일렉트로닉쇼(CES)에 버금가는 대형 로봇 전시회가 80년대 중반에 시카고에서 열릴 정도였다. 로봇관련 연구소와 기업들도 계속 설립되던 시기였다.

학위를 마치고 곧 바로 하와이주립대에 갔다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오리건 주립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칠 때쯤 미국의 대학들이 로봇분야 교수요원을 뽑기 시작했다. 하와이주립대는 그 당시에도 해양과학기술 분야에 명성이 있었다. 이미 2척의 실험선(Research Vessel)과 유인 잠수정을 운용하고 있었을 만큼 우수한 연구 장비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는 전체를 통틀어 RV가 한 척 밖에 없었다. 하와이주립대에서는 이런 장비와 시설을 활용하여 해양로봇 분야 연구에 나서기 위해 나를 교수로 초빙했다.

▲ 전공인 해양로봇 분야 학술대회에서 특별강연(2009년 전남대 여수캠퍼스)
지금은 해양로봇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지구는 약 70% 정도가 바다로 덮여 있어 혹자는 ‘물의 행성’(Water Planet)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인류에 필요한 엄청난 자원이 묻혀있다. 이런 해양자원을 탐사하고 개발하는 장비로서 로봇은 필수다. 하와이주립대 재직할 때 국립과학재단(NSF), 국립해양대기청(NOAA), 해군연구청(ONR) 등 정부기관과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해양로봇 연구에서 여러 가지 성과를 냈다. 그 덕분에 1991년에는 미국 대통령상을 받았다. 1997년에 시작했던 해군 프로젝트는 2009년 까지 계속됐을 만큼 중요한 과제였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개발된 작업용 자율 무인 잠수정 ‘SAUVIM’은 세계 최초로 자율 조작(Autonomous Manipulation) 기능을 갖춘 해양로봇이다.

해양 로봇에 대한 연구와 해저 자원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해양 로봇에 대한 연구와 개발은 미래 국가경쟁력과 직결될 수 있는 중요한 분야다. 예를 들어 조선분야의 현대, 삼성, 대우가 후발주자인 중국기업들에 밀리면서 해양플랜트로 눈을 돌려 그 분야에서 빅 3가 됐다. 그런데 해양플랜트 분야에서도 추격을 받는다면 이들이 그 다음에 할게 뭐냐는 거다. 해저 유전과 가스 개발이 점점 더 깊은 바다로 향하고 있다. 더 깊은 바다로 들어 가기 위한 도구가 해양로봇이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전세계 해저에는 150여 개의 활화산이 있는데 그런 극한 환경에서도 서식하는 생물들이 있다. 그런데 이 생물들로부터 추출하는 신약개발 재료들은 금값보다도 비싸게 통용되기도 한다. 더 극한 환경일수록 사람의 접근이 어렵기에 로봇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정부차원에서 해양로봇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해 전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연구소에서 ‘해미래’라는 100억 원 규모의 심해저 해양로봇 개발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나도 관여한 적이 있다. ‘해미래’는’성공적으로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해저자원 채광로봇(미내로) 연구 개발에서도 진척을 보이고 있다.

NSF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미국의 이공계 대학교수들이라면 NSF에 대한 선망 같은 게 있다. 교수가 NSF에서 연구비를 받았다 하면 액수에 관계없이 높게 쳐준다. 무엇보다도 다른 과제를 따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다. 나 자신도 하와이주립대 시절 여러 개의 NSF 지원 과제를 해본 경험이 있다. NSF 과제 선정이 권위가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과제를 평가하는 패널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내가 NSF에 재직할 때 직책은 로봇 및 컴퓨터 영상분과 프로그램 디렉터(PD)였는데, 그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연구과제들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역할이다. 담당분야와 관련하여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일도 한다. 과학자로서 그런 과정을 경험 하고 싶었다. 현재 미국의 로봇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하는 대가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대학 교수들이 내가 담당한 NSF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다. 처음에는 2~3년 임기의 로테이터(계약직)로 갔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결국은 하와이대를 사직하고 정규직 PD를 선택했을 만큼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만큼 매력적인 자리였다는 얘기다.

▲ 2009년 NSF를 방문했을 당시 옛동료인 아든 베멘트 디렉터(장관급)와 함께
NSF에서의 경험은 한국인으로서는 흔치 않은 일인데, 한국과 미국의 PD제도는 어떤 차이가 있나

제도와 운영에서부터 차이가 있어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연구과제 평가 부문에 대해서는 한국의 PD제도에 참고할 만한 게 있을 것 같다. NSF는 과제지원서 심사에 그 분야 전문가(패널)를 다 모신다. 패널 숫자는 과제지원서의 규모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으나 보통 15명 정도로 구성된다. 거기에는 젊은 엔지니어도 있고 원로도 있다. 패널들은 심사 후 토론과정을 거쳐 제출된 지원서들을 3개의 그룹으로 나눈다. 1그룹에는 어느 지원자에 돈을 줘도 괜찮은 우수한 지원서들이 포함된다. 2그룹은 예산이 넉넉하면 돈을 줘도 괜찮을 정도의 지원서들이다. 3그룹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절대로 돈을 주면 안 되는 지원서들을 추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산이다. 언제나 1그룹을 다 지원하기에도 모자란다. 그걸 무리 없이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결정하는 게 PD의 일이다.

차등하게 점수를 주고 등위를 정하면 수월하지 않겠는가
그건 한국에서 하는 방식이 아닌가! PD는 항상 전문가로서의 안목이 요구되고 책임이 따른다. 1그룹만 지원해서도 안 된다. NSF는 두 가지 종류의 기관 평가를 자체적으로 하고 있다. 평가단은 모두 외부인으로 구성된다. 만약에 PD가 앞의 그룹만 선정하면 평가단에서 지적 사항이 된다. 가령 이런 식이다. “PD는 담당 프로그램의 정책적인 방향을 제시 할 수 있어야 하고 거기에 맞추어 과제 선정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패널이 선택하지 않은 것 가운데서도 당신이 판단해서 프로그램 방향에 맞으면 지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패널이 좋다고 하는 것만 선정한다면 당신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심사와 평가과정이 흥미롭다. 최종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PD들은 포트폴리오 개념으로 과제들을 선정하고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우선 1그룹에서는 매우 우수한 과제들을 선정한다. 2그룹에서도 정책적인 방향에 속하거나 새로운 개념 등 선정 이유를 기술할 수 있는 과제를 결정한다. 이때 패널의 의견은 참고 사항이며 최종결정은 PD가 한다. 이 과정에서 NSF만의 특징이 있다. 이른바 ‘크레이지(Crazy)’ 하거나 ‘하이 리스크(High Risk)’한 과제의 선정이다. 패널들이 보기에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실현된다면 대박(Big Impact)을 터트릴 수 있는 경우다. 이 같은 지원서는 정식 패널 심사를 하게 되면 대부분 3그룹에 속하게 된다. 이런 과제에 대해서는 ‘SGER’(Small Grants for Exploratory Research)라는 모험연구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최대 20만 달러까지 PD의 재량으로 지원 할 수 있다. 한국의 관료 문화에서 이런 시스템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한국의 과학 기술이 팔로어(follower)가 아닌 프론티어(frontier)가 되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미국에서도 과제 수행시 산업적 파급효과보다는 보고 시점에서의 결과를 중시하는가
지원 기관에 따라 다르다. 군 프로젝트의 경우는 대부분 임무지향적(mission-oriented)인 과제들이라서 결과물을 중시한다. 반드시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결과물을 내야 한다. 기초과학기술연구에 주력하는 NSF 일반 과제들은 최종 결과 보고서에 첨부하는 게 그리 많지 않다. 몇 개의 논문, 특허가 나왔고 학생 몇 명이 일을 했는지 정도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연구자의 다음 과제 지원서 평가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소위 블랙 리스트에 오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지원된 연구기금을 회수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순수한 의미에서의 실패는 허용된다. 그런 점에서는 실패를 인정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NSF와 일본 교과부(MEXT)가 지원한 한 심포지움에서 여준구 박사가 NSF를 대표하여 축사를 하고 있다.
관련기관(부처)간 협력의 중심에 NSF가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행정과 정책을 맡는 사람이 바뀌면 그 후임은 그때부터 그 분야 공부를 해서 현황을 파악하는 게 보통이다. 미국에서도 담당자가 자주 바뀌지만 후임은 그 분야의 전문가여서 인수인계나 업무 연속성에 큰 문제가 없다. 우주 분야, 로봇 분야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PD제도가 도입돼 점차 전문가의 안목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바뀌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PD제도가 활성화되면 좋은 점이 많다. 소속기관이 다르더라도 같은 분야 사람들이라면 얘기가 통한다. 예를 들어 국립보건원(NIH)이나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또는 식품의약국(FDA) 사람들하고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다. 농업로봇 하는 사람, 의료 로봇 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나 회의도 한다. 거기서 이런 분야의 연구가 필요하다, 또는 미래 연구 공동 지원 방식은 이런 방향이 좋겠다는 결론들이 나온다. NSF가 그런 일을 많이 주도한다. 나노(NANO)분야의 경우 이미 30년 전부터 NSF가 지원을 시작했고, 범 정부 부처 지원 프로그램인 ‘내셔널 나노 이니셔티브’(NNI)가 탄생하게 되었다. 로봇분야도 내가 PD로 재직했던 2005년 범 부처 로봇회의를 주재한 바 있다. 이것이 나중에 ‘내셔널 로봇 이니셔티브’(NRI)가 만들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NSF를 들여다 보면 미국이 왜 과학기술분야 최강국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매커니즘은 몇 사람이 만드는 로드맵이 아니다. 새로운 분야를 발굴해서 정책 지원을 하기까지는 보통 2~3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해 워크숍을 열고, 해당 기관과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 기관까지 직접 방문해서 보고서를 만들고 발표회를 갖기도 한다. 기관별로는 전문가들이 해당 분야를 담당하는 시스템이 있다. 한국에서도 전문가 PD제도를 연구과제 지원 업무를 하는 모든 부처로 확대하고 PD들에게도 운영 자율권을 확대해주면 자연스럽게 기관(부처)간 협력이 일어나게 되리라 본다. 또 예산을 효율적이고 융통성 있게 쓸 수 있게 돼 융합분야 지원이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예산을 융통성 있게 쓴 사례를 소개한다면
10년 전에 전기연구소(EPRI), 항공우주국(NASA) 소속의 PD들과 회의를 하다가 “달 나라에서 사람이 산다면 전기가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것이 달 나라에 발전소를 세우는 프로젝트 (NASA-NSF-EPRI Joint Investigation of Enabling Technologies for Space Solar Power)의 시작이었다. 발전소를 세우려면 어떤 로봇이 필요하고, 또 무거운 장비들을 싣고 갈 수 없으니 어떻게 작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기관별 담당 프로그램 예산에서 또는 기관으로부터 추가예산을 받아 투자액을 정하고 공동지원과제 요구서를 만들어 제안서 공모를 했다. 물론 각 기관 내부의 허가절차에 따라 진행하지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소속기관은 다르지만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 의사소통이 원활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연구지원 관련해서는 미국 정부의 시스템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고 장려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부처간의 벽이 높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우주 분야는 미래창조과학부가, 항공 분야는 국토건설부가 담당하게 한다거나 기초 분야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응용분야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맡는 식의 구분이 결과적으로 융합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경험도 많은데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도쿄에서 NSF 동아시아태평양지역 디렉터로 근무할 때 일본 관료들을 대상으로 미국과학기술 연구과제 관리 시스템에 대해 3시간 동안 강의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과학기술 지원 정책에서 유사한 점이 많고 고민거리도 닮아 보인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교수 한 분이 연구비를 유용해 법적으로 처벌을 받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내용을 알고 보니 교수가 돈을 쓴 게 아니라 남은 연구비를 다음해 연구비로 쓰려고 이월시킨 거였다. 일본에서는 100만 달러가 소요되는 5년짜리 프로젝트가 있다면 매년 20만 달러씩을 나눠 준다고 한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편한 방법이다. 그런데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어느 해는 적게 쓰고 어느 해는 많이 써야 할 경우가 생긴다. 실험장비를 구입하는 연구자라면 초기에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교수 역시 그 해 배정된 연구비를 다 사용하지 못하자, 나머지를 편법을 써서 이월시킨 것이다. 법적으로는 공금을 유용한 사례가 돼버린 것이다. 강의에 참석한 일본 관료들이 미국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물어왔다. 그런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미국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설명을 자신들이 경험한 것에 맞춰 들으려고만 하더라.

NSF에서는 일본식 ‘연구비 유용’ 같은 사건은 일어날 수 없다는 뜻인가
결론적으로 그렇다. 연구과제 수행기관으로 MIT대가 있다고 치자. MIT대 교수가 신청한 과제가 채택이 되면 NSF는 언제든지 연구비를 지급할 수 있다. 이는 NSF에서 지원했던 연구과제들의 시작 날짜가 모두 다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같은 날 시작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연구비를 지급하면 NSF 담당 프로그램차원에서는 일단 결산이 끝난다. 그 다음부터는 MIT대 소관이다. MIT는 지급된 돈을 얼마나 사용했는지에 대한 재정보고와 함께 정해진 규정에 따라 이월되는 돈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면 된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그 해 지급된 돈을 영수증 처리하여 그 해 다 사용한 내역이 있어야 결산 처리가 된다. 이때 남은 돈은 정부로 회수가 된다. 일본 관료들은 이 차이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 시스템과 일본 시스템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다고 보는가
그 차이는 연구기금을 받아본 사람이 관련 규정을 만드는데 참여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 연구기금 경험자들이 과제의 선정과 연구비의 집행을 담당하며 그 특수성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공무원 중심이 아닌 연구자 중심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3년짜리 NSF 연구과제가 있다고 치자. 기한 내에 완료하지 못했다면, 과제수행 교수가 소속학교에 신청해서 1년을 연장할 수 있다. 이 때 학교는 NSF에 통보하면 된다. 또 다시 1년이 필요하다면 NSF의 승인을 받으면 된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추가비용은 지원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3년짜리 과제는 최대 5년까지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NSF가 과제관리에 이처럼 유연할 수 있는 것은 연구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경험자들이 관련 규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의 시스템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도 공부 잘하는 법은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아이들이 책상에 붙어 있는가 만을 지켜 보는 격이 아닌가.

한국의 과학기술정책 당국에 소개할 만한 NSF 제도가 있다면
상대적으로 연방정부의 지원을 덜 받는 지역(주)의 대학들을 대상으로 하는 ‘EPSCoR(Experimental Program to Stimulate Competitive Research)’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런 지역의 대학에서 제출된 과제 지원서가 선정될 경우 추가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로봇분과에서 이러한 과제를 선정한다면 NSF/EPSCoR 프로그램을 통해 추가 예산을 로봇분과에 지원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국회의원들도 힘을 실어주고 예산을 밀어줄 만큼 아주 인기가 많다. 또 지방대학이나 여자대학 등 소수대학 교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NSF에 제출된 모든 제안서는 ‘얼마나 새롭고 과학적인가’(Intellectual merit)’ 와 ‘과학기술과 사회적 측면에서 파급효과는 얼마나 큰가(Broader impacts)’라는 두 가지 심사기준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 이게 제안서에 기술되어 있지 않으면, 심사조차 하지 않고 되돌려 보낸다. 이 가운데 ‘Broader impacts’ 관련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MIT대의 교수가 제안서를 쓰면서 자신은 PI가 되고 부책임자(co-PI)로는 지방대학이나 소수 대학 출신의 교수를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지방대학이나 소수대학은 대학원도 없고 시설도 부족해서 단독으로 과제를 수행하게 할 수 없겠지만 우수한 자질을 가진 교수에게는 부책임자로서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 2009년 대전국제우주대회(IAC)와 함께 열렸던 세계항공우주대학총장 포럼(가운데 여준구 박사)
NSF를 떠나 7년 동안 항공대에서 총장으로 재임했다

도쿄에서의 임기를 마치면 다시 워싱턴DC의 본부로 복귀할 참이었는데 1년 반쯤 지난 2006년 말에 한국에서 총장을 공모한다는 연락이 왔다. 오래 전부터 기회가 되면 부모님 계시는 한국에 돌아와야 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고민 끝에 대학경영이 결국 나라의 기둥들을 교육하여 배출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결정하게 됐었다. 취임 초기에 한국의 대학 환경이 옛날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미국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학생들이 대학본부나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대학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학생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총장으로서 학생 중심의 학교행정이 펼쳐지도록 하겠다는 생각으로 7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그에 따른 성과도 만족한다. 취임 전까지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하던 학생분규가 새 등록금제도와 장학금제도를 도입하면서 사라졌다. 재임 5년 만에 대학재정 규모가 2배로 늘어 났다. 6동의 신축건물이 들어서고 250억 이상의 자산 증가도 이루어 냈다. 취업률 같은 지표에서도 1위 또는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재외동포 활용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데
현재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를 2개만 꼽으라면 통일과 인구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구문제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예측이 가능한 미래인데 정책적으로 준비를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학들만해도 학생들이 없어 문을 닫는 곳이 부지기수가 될 것이다. 당국은 이제서야 대학들을 압박하고 있는데, 오래 전에 했어야 할 일이었다. 지금은 가만히 놔둬도 저절로 없어질 판이다. 학생수가 적은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경제활동인구가 줄어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이민자가 계속 유입되는 이민사회이기 때문에 인구문제가 없다. 일본이 2007년부터 고교졸업생이 대학정원보다 적어져서 여러 정책을 도입했고 한국은 2016년부터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외국 신부들을 염두에 둔 다문화정책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당면한 인구문제를 해결할 근본책은 아니다.

▲ 김문수 경기지사와 함께
어떤 인구 대책이 있겠는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750만 해외교포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전세계 한인교포 규모는 유태인, 화교, 이탈리아인에 이어 인도인들과 4~5위를 다투는 수준이다. 자국민 대비 숫자로는 유태인에 이어 두 번째다. 게다가 우리 교포들은 전세계에 고루 잘 분포돼 있다. 미국의 기업체와 연구소에 재직하는 과학자들이 1만여 명, 재미과학자협회에 등록된 이들만 5000여명이다. 아주 질이 높은 리소스들이 아닌가. 통일 전까지 이들 해외교포를 잘 활용한다면 인구문제를 상당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또 하나, 여성인구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아직도 매우 낮은 수준인데 이것을 끌어올리는 정책도 매우 유효할 것이다.

재미과학자 중에는 저명한 로봇학자들이 많은데 그들을 연결할 네트워크가 가능할까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진행된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을 계기로 로봇분야에서도 대규모 프로그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도 거기에 로봇분야 평가위원으로 참여 했는데, 미주 로봇공학자들을 연결해보자는 논의가 그 때 나왔다. NSF에 재직하고 있을 때여서 폴 오 교수(드렉셀 대)가 한인 과학자들의 디렉터리를 만드는 것들을 나름대로는 신경을 써 지원하다가 도쿄로 발령을 받았다. 이때 만들어진 네트워크 덕분에 여러 방면에서 협력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데니스 홍교수가 멘토로 생각하고 있더라. 그의 책에도 그렇게 써 있고...
NSF 재직시절 그가 가끔씩 나의 사무실을 찾아와 상담을 하곤 했다. 그를 로봇분과 패널로도 위촉했던 적이 있다. 그의 책을 보니 그런 게 좋은 경험이었고 큰 도움을 받았다고 써 있더라. 그러나 나는 나의 일을 했을 뿐이고 그는 그의 미션을 열심히 한 거다. 다만 나와 같은 교포과학자로서 그를 관심 있게 지켜본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NSF의 PD로서 그럴만한 입장은 됐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유명해진 것을 보면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데니스 홍 교수를 만나면 선배로서 어떤 조언을 해주나
홍 교수처럼 재능을 가진 인물은 로봇과학자로서 로봇전도사로서 역할을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 아주 유명인사가 돼 있다. 1~2년 전에 만났을 때 그에게 ‘그럴수록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의 모습이 모두 자기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지금 하는 일들은 자기의 역할일 뿐이지, 그 자체가 ‘나’는 아니지 않는가. 자신이 쌓아온 것 만큼씩만 계단을 올라가면 된다. 어느 순간 붕~떠서 올라간다면 그건 자기 자신이 아닌, 주변에서 쌓아준 거다. 사람들은 가끔씩 남들이 쌓아준 것을 자기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으니 잘 알아서 할 것이다.

홍 교수가 '이공계 살리기'를 위한 비영리재단을 설립한다고 한다. 함께 하자는 제의가 온다면
매우 좋은 뜻이라고 생각한다. 안건에 대한 말은 없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한번 보자고 해서 만나 볼 계획이다.

자녀들은
셋이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미국에서 UC버클리를 졸업했다. 큰 아이는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보건학 박사과정에 있고,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한 둘째는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에 다닌다. 늦둥이 막내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도 로봇 분야 일을 계속 관여하고 있다. 어느 장소이던지, 과학기술과 로봇 분야에 도움이 되는 일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여준구 박사와의 인터뷰는 사실 ‘인물연구’라는 타이틀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물에 대한 ‘연구’보다는 NSF 정책이나 제도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인터뷰는 지금까지의 방식과 달리 인물보다는 NSF와 한국인 ‘최초의 로봇담당PD’에 초점에 맞춰 진행했다.

이번 인터뷰는 비록 그가 경험하고 느낀 바의 일부를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지금까지 국내 매체에서는 거의 소개되지 않는 ‘따끈따끈’한 것들이라는 점에서 독자, 특히 정책당국자들의 반응을 기대해 본다.
글∙ 정리 서현진 기자

[여준구 박사 약력]
1958년 출생
1981년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졸업
1986년 오리건주립대학교 대학원 기계공학 박사
1986~2004년 하와이주립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 대학원 학과장
2001~2005년 미국 국립과학재단 프로그램 매니저 / 프로그램 디렉터
2005~2006년 미국 국립과학재단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디렉터(도쿄)
2006~2013년 한국항공대학교 5대, 6대 총장

서현진 기자  suh@irobo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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