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에 약 2조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합의한 미국무역위원회(USITC) 사건이 화제이다. 특히 국내기업인 LG화학이 국내기업인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왜 국내법원이 아닌 미국, 그것도 법원이 아닌 행정부에서 소송을 제기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나라 전체가 해답을 찾는 분위기이다.

필자는 LG화학에서 16년간 근무하며 마지막으로 이 소송을 시작하는 데에 한 역할을 했다. 어째서 기술개발자인 국내 회사가 미국무역위원회를 가야했는지, 실무자로서 겪은 몇 가지 경험을 공유해, 기술개발자의 어려움을 알리고 법적 지원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편집자>

복잡하고 험난한… ‘기술개발자’ 보호

우리나라에서 기술개발자의 인생은 험난하다. 주위를 돌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한다고 욕을 먹으며 겨우 어렵게 신기술을 개발하면, 개발비를 들이지 않은 카피캣(Copycat, 복제자)이 저렴한 제품을 똑같이 만들어서 시장을 차지해버리는데, 법적으로는 효과적으로 이를 막을 방도가 많지 않다.

▲ 최윤경 변호사 (NY)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문제로 기술개발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많은 분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기술개발자가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카피캣 대응법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크게 3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독일이나 일본 등 대부분의 대륙법(Civil Law)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첫 번째, 카피캣 제품이 내가 보유한 지식재산권(영업비밀, 특허, 상표, 디자인 등)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

만약 직원이 회사를 옮겼을 경우에는 그 직원과 직원을 고용한 카피캣 회사가 개발회사의 지식재산권을 부당 사용했다고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두번째 방법이다. 그리고 경쟁사로 이동하지 않겠다고 한 고용계약을 위반했다고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마지막 세 번째다.

오래 걸리고, 확보하기 어려운… 영업비밀 침해 증거

먼저, 고용계약 위반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는 세 번째 방법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와 상충되기 때문에 그 법적효과가 제한적이고 요건이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제한될 정도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보가 필요하지 않은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고 한다든가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 데다가, 이직자가 그 정도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증명하는 것이 개발회사의 몫이라는 큰 부담이 따른다.

지식재산권을 앞세워 소송을 제기하는 첫 번째 방법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눈에 보이는 디자인이나 상표가 아닌 지재권의 경우, 침해를 증명하기가 까다롭다.

실제 LG화학의 경우 이직자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다 지적재산권 소송에까지 눈을 돌리고 있었는데, 이직자가 적용한 기술로 만든 제품이 시장에 나오려면 자동차업계의 특성상 3-4년은 보통 걸리기 때문에 침해 제품을 증거로 확보하는 데 문제가 많았다.

▲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에 사용된 특허 대표 도면

어떻게 ‘침해 증거를 확보하느냐’가 관건…. 카피캣 대응

이제 남은 방법은 카피캣 회사가 내가 보유한 지식재산권을 부당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영업비밀 침해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에 해당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직자와 카피캣 회사가 부당하게 영업비밀을 사용하고 있다고 어떻게 증명하느냐이다.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합리적인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 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뜻한다. 국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는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금지·예방청구권 ▲손해배상청구권 ▲영업비밀이 담긴 노트, 연구노트 등 영업비밀의 침해행위를 조성한 물건에 대한 폐기청구권 ▲신용회복청구권 등을 인정하고 있으며, 침해자 및 배후의 법인 등에 대한 형사처벌까지도 규정하고 있다.

▲영업비밀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기술상·경영상 정보를 말하며, 특히▲비밀관리성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등 조건을 충족해야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다.

회사의 손해를 증명할 객관적 증거가 있다면 민사소송을 바로 진행하는 경우도 많지만, 일반적으로는, 이직자가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경찰에 고소하면, 경찰이 압수수색으로 이직자의 영업비밀침해 증거를 확보하고, 이 증거가 카피캣 회사에서 쓰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될 경우, 카피캣 회사까지 압수수색하여 영업비밀 침해 증거를 확보하는 절차가 사용된다.

그렇게 형사적으로 수사가 이루어진 후에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의 입증자료를 확보하기가 쉽게 된다. 그런데 내부적으로 형사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승소할 확률은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적 또는 경제적으로 미칠 파장이 예측하기 어렵고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술개발자가 카피캣에 대응하는 법적 방법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영업비밀 소송을 진행할 때는 ‘높은 수준의’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는 점이 해외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주요 배경중 하나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후 컬럼에서는 카피캣을 상대로 법적대안을 찾기 위한 실무자의 노력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