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에서 계열 분리하는 새 그룹의 명칭이 ‘LX’로 결정되면서 그룹 이름을 둘러싼 상표권 논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10년째 영문 약칭을 ‘LX’로 사용해온 한국국토정보공사가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 신생 LX그룹의 주력 자회사인 LG상사 광화문 본사

LG그룹 지주사인 ㈜LG는 최근 그룹 계열 분리에 앞서 특허청에 LX글로벌과 LX세미콘 등 ‘LX’ 상표 및 이미지 100건 이상을 출원했다.

또 오는 5월에 분리 출범할 새 지주사 이름을 ‘LX홀딩스’로 공시했다. 앞서 LG그룹에서 분리한 구씨 일가 회사(LS, LIG, LF, LT)들이 모두 ‘L’로 시작하는 사명을 썼던 것처럼 이번에도 LX가 선택된 것이다.

LX홀딩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삼촌인 구본준 고문은 오는 5월 LG상사,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LG MMA의 4개 회사를 들고 나와 ‘LX그룹’을 만들 예정이다. LG그룹은 26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신설 지주회사 ‘㈜LX홀딩스’를 설립하는 지주회사 분할계획을 승인했다.

LG측은 “새 그룹명에 대한 컨설팅 결과, 디지털 전환(DX) 등에 쓰이는 X에 혁신과 변화에 대한 의미가 담겼다는 데 착안해 그룹명을 정하게 됐다”라며 “상표권 출원 전에 충분히 검토한 결과 법적인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새 그룹사가 LX를 써도 상표 이미지와 사업 분야가 달라 법적 문제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지만, 향후 LX 사명을 강행하려면, LX그룹의 상표 전략은 더욱 정교해져야 할 뿐아니라, 강력한 실행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간단하고 흔한 ‘LX’… 식별력 없어 사용이 자유롭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국토정보공사는 대한지적공사 시절인 2012년부터 ‘LX’를 기업 브랜드(CI)로 정하고 10년째 영문 약칭으로 사용해왔다. 국토 지적 측량을 담당하는 기관인 만큼 ‘L’이 국토(Land)와 장소(Location)를, ‘X’는 전문가(Expert), 탐험가(Explorer)를 상징한다.

▲ LX 한국국토정보공사 로고

이에 따라 국토정보공사는 그동안 ‘LX 한국국토정보공사’로만 상표등록을 해왔다.

하지만 LG측에서 LX를 이미지 상표로 출원하자, 기존 13건에 추가해 뒤늦게 자사의 CI인 LX 이미지 등 LX 관련 상표 12건을 특허청에 출원했다.

최근 ‘LX’ 문자를 도안화해 상표를 출원한 LG측도 LX가 간단하고 흔한 표장으로 식별력이 없어서 사용이 자유롭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설사 선행상표의 LX가 식별력이 있어 표장이 유사한 경우에도 지정 사업(상품이나 서비스)면에서 유사하지 않은 것을 정밀 검토했을 것이다.

▲ LX 또는 LX를 포함한 선행 상표들

상표법에 따르면 LX와 같이 알파벳 두 자로 이뤄진 간단한 표장은 문자 자체만으로는 상표로 등록할 수 없고, 도형이나 독특한 필체 등 이미지를 더해 식별력을 갖춰야 상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LX’ 문자자체에 관한 선행 상표는 거의 지뢰밭에 가깝게 깔려 있다. LX 또는 LX를 포함한 선행 상표는 270건에 이르며 실질적으로 유사영역에 있는 표장도 상당수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등록이 허락된 LX 선행상표는 한국국토정보공사나 루이비통처럼 LX 문자 자체를 도안화하거나 LX에 다른 식별력이 있는 문자나 도형을 결합한 상표들이다. 그렇게 식별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업확장에 따른… 선행상표 영역과의 충돌 우려

글로벌 기업들의 상표보호전략을 살펴보면, 표장면에서 일반적으로 유사하지 않다고 보거나 경계에 있는 상표도 모티브가 같으면 후행상표를 배척시키거나 비무장지대로 만들기 위해 괴롭히기 전략을 구사하곤 한다. 이런 전략이 악의적일 경우는 상표권자의 ‘역해적질’이라고도 표현한다.

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아 사업 확장이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결국엔 선행상표가 선점한 영역과 충돌이 발생한다. 심지어 현대그룹의 경우처럼 그룹사에서 분할된 자회사끼리 깔끔하게 구획된 상품과 서비스도 나중에 서로 사업을 확장해가면서 충돌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유사판단에 있어서도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고려하면 위험도가 좀 더 올라간다. 상표분쟁 전문 변리사들은 “출원 심사과정에서 선행상표들과 유사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등록이 되더라도 나중에 사용 태양과 구체적 거래 환경에서 유사하다는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라며 “특히 미국 법원의 상표유사판단을 보면 우리나라 판단기준에 비추어 볼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판결도 허다하다”고 충고했다.

상품과 서비스별 다른 상표권을 사용… 차별화된 브랜드 전략

기업 브랜드(CI)를 정할때는 고려할 것 들이 많다. 예를 들어 LG상사와 같이 다양한 상품을 다루는 유통업은 K한류 붐을 타고 브랜드 라이센스 사업에 대한 유혹이 커지게 된다. 대우인터내셔널이나 현대종합상사의 라이센스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상품이나 서비스가 확장됨에 따라 상표가 회색지대로 들어갈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래서 회사명이나 CI는 상품이나 서비스 브랜드와 달리, 처음부터 제한된 회색지대에서 시작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문제는 선행이든 후행이든 소비자는 ‘LX’라고만 호칭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저 LX가 그 LX가 아니야’라고 직관적으로 식별할 수 있거나 ‘저 LX가 바로 그 LX야’라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LX그룹의 상표 사용 전략은 더욱 정교해져야 하고 강력하게 실행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브랜드가 하나뿐인 기업보다는 여러 개 브랜드를 잘 키운 기업의 가치가 더 높은 점을 고려하면, 국내 대상그룹의 사례처럼 그룹명은 뒤로 숨기면서 상품과 서비스별 다른 상표권를 사용하는 브랜드 전략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 하다”고 귀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