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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로봇, 그 너머의 미래배일한(하와이대 미래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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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8  15: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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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로봇산업에 정부차원의 관심을 기울인지도 얼추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직은 기대한 만큼의 성과에 미치지 못하고 로봇계의 외화내빈 등 반성할 점이 많지만 필자는 예나 지금이나 차세대 로봇시장의 성장 잠재력만큼은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세상에는 로봇자동화를 통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분야가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널려있다. 현재로선 한국의 로봇산업이 부단한 노력과 창의적 실험을 지속하면서 차세대 로봇산업의 혁신을 주도하도록 준비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향후 10여년 후에 고대하던 차세대 로봇시장이 꽃을 피우고 야심만만한 벤처기업들이 우후준순 생기고 국내외 대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드는 큰 판이 벌어진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의 로봇업계는 마침내 로봇기술로 더 행복하고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시대적 소명을 해냈다고 서로 상패를 주고 받으면서 무척 뿌듯해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차세대 로봇산업이 성공만 하면 국민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지, 어릴 적 즐겨보던 로봇만화처럼 희망찬 무지개 아래에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지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

로봇의 확산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에 대해 고민할 때
미래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오는 2023년을 전후한, 그리 멀지 않은 근미래에 지능화된 로봇기술의 확산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생각하면 꽤나 머리가 아프다. 불행히도 우리는 로봇자동화와 관련해 저질렀던 과거의 실수를 앞으로도 되풀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폐허에서 새로운 국가재건에 나선 세대에게 로봇자동화는 인류의 행복증진에 도움을 줄 꿈의 기술로 큰 기대를 모았다.

1960~70년대 경제호황기에 나온 SF영화, 소설, 만화는 로봇을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끄는 긍정적인 존재로 묘사하곤 했다. 평범한 이들도 로봇기술의 꾸준한 진보를 당연시했고 오랜 세월이 흘러 결국 어떤 결과를 낳을지 대충 이해하고 있었다. 흑백만화영화로 제작된 초창기 우주소년 아톰에서 나오듯이 첨단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꿈의 2000년대가 되면 인간형 로봇이 힘든 일을 대신해주고 시민들은 편안하게 자동화 서비스를 받으리라. 최소한 지구상에 사는 인류 중에서 개도국은 제외해도 선진국의 부유한 중산층은 로봇화된 낙원을 누릴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걸작만화인 아톰이나 여타 과학기술에 기반한 낙관적 로봇영화를 보면 공통된 모순이 느껴진다. 만화 속에 등장하는 미래사회에서 다양한 로봇들은 강아지 산책까지 시킬 정도로 일상에 필요한 온갖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처럼 로봇이 대부분 노동을 대체한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직업을 갖고 임금을 벌어서 로봇의 구매비용 또는 유지비를 지불한단 말인가? 몇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자.

첫째, 놀고 먹어도 주식, 부동산가격이 끝없이 상승하거나 둘째 노련한 정치력을 발휘해 육체노동은 로봇에게 맡기고 사람은 창의성을 가미한 지시만 전담하면서 성과에 따라 부가가치를 챙기는 인간-로봇간 노동 대타협을 이뤘거나 셋째 기계로봇이 육체, 지식노동까지 거의 전담하면서 그 잉여가치를 공동소유로 구성원 전체에게 고루 분배하는 새로운 개념의 좌파적 경제시스템이라도 구축한 것일까?

자동화가 가속화되면 생산과 소비 균형 파괴
웃자고 만든 아이들 로봇만화에 너무 심각하게 달려드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로봇세상은 상상이 아니라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고 로봇인들 스스로 주장해오지 않았던가. 대만의 팍스콘은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로 사회적 비난이 높아지자 중국내 백만명 이상의 고용인력을 수만대의 로봇장비로 단계적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앞으로 아이폰과 갤럭시폰은 대부분 직공의 손을 거치지 않고 기계로봇이 조립생산하게 된다. 당분간 국내외 로봇업계의 매출에는 호재가 될 전망이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조만간 해고될 백만명의 중국인들은 대규모 자동화가 아직 여의치 않은, 고급기술과 자본을 굳이 투입할 필요가 없는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몰리면서 중국내 빈부격차와 고용경쟁을 더욱 심화시킬 전망이다.

기술진보로 고용이 줄어드는 기술적 실업은 특히 파급속도가 지나치게 빠를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한다. 현실적으로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동종업계로 재취업 기회도 막힌 상황에서 단기간의 취업교육으로 창의적 지식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21세기형 산업전사로 탈바꿈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남의 나라 노동자들이 전자제품을 조립하다가 다른 직장으로 옮겨 국수면발을 뽑던지 (도삭면을 만드는 중국산 로봇도 최근 등장했다) 호텔청소를 하던지 개인의 선택이지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시대에 한 나라의 경제는 결코 홀로 잘 나갈 수 없다. 중국 서민층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우리나라 명동 화장품가게의 중국인 관광객 매출도 떨어지고 한국산 휴대폰, 자동차, TV의 중국 내 판매량도 덩달아 줄어든다.

그럼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애플, 삼성, 소니 같은 글로벌 전자업체가 자기들도 지키지 않는 윤리적 이유로 팍스콘 회장에게 압력을 넣어 로봇설비에 대한 투자계획을 최대한 늦추도록 해야 옳을까.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생산성 혁신은 산업발전에 어느 정도 불가피한 요소지만 자동화의 파급속도가 너무 가속화되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과 소비의 적절한 균형은 깨지고 만다.

더 낮은 임금 찾다 결국은 기계로봇으로 대체
미국의 경우 개도국으로 이전했던 제조업이 최근 유턴하는 조짐은 보이고 있지만 정보통신기술과 로봇자동화 때문에 실제 국내 고용창출 효과는 크지 않은 실정이다. 생산현장에서 근로자와 긴밀하게 협업하는 차세대 산업용 로봇의 등장은 인간이 기계를 콘트롤하는 입장에서 거꾸로 기계의 지시를 받는, 대체가능한 조연으로 차츰 밀려남을 의미한다.

산업자본은 더 낮은 임금을 찾아 선진국에서 신흥산업국가, 개도국으로 생산기지를 차례로 옮기다가 마침내 기계로봇에게 공장열쇠를 건네주는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구조적으로 줄어든 고용시장에서 그나마 더 나은 일자리를 놓고서 사람들은 제로섬 경쟁을 벌인다. 비싼 사교육의 최종목표는 대체로 공무원, 공기업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이다.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종 역시 과잉공급으로 값어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해외 개도국시장을 개척하는 케이스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국내에서 과도한 경쟁에 지친 국민들은 명목상 소득증가와 별개로 저 앞에 놓인 자신의 장래가 그리 밝지 못하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다.

임금노동기반의 낡은 경제 체제에서 로봇과 인간의 공존은 모순
똑똑한 기계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돕는 차원을 넘어서 언젠가 인간의 노동 자체를 대체한다는 사실을 로봇분야의 선각자들은 오래전부터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로버트 위너는 1949년 발표한 에세이에서 “인류가 경험을 통해서 행동을 수정하고 스스로 배우는 기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간다면 우리가 기계에 부여하는 모든 자율성은 결과적으로 기계가 인간 의지에 어긋나는 행동까지 하게 만들 것이다.한번 호리병에서 나온 거인은 스스로 병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도 않고 주인의 말을 잘 따를 이유도 없다.” 고 했다.

아톰 캐릭터를 만든 만화가 데스카 오사무를 비롯해 로봇세상을 꿈꿨던 많은 초기 선각자들은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자동화는 불가피한 추세로 간주했고 늦어도 지금쯤이면 각국 정부가 인간노동과 기계로봇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춘 신경제체제, 새로운 부의 분배시스템을 당연히 고안할 것으로 예상했다. 임금노동에 기반한 낡은 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 로봇이 온갖 노동을 대신해주는 미래사회,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복된 세상을 꿈꾸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노동력의 수요와 가치를 감소시키는 기술 진보에 대한 근본 대책 미흡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은 반세기 전에 선각자들의 예상과는 크게 어긋났다. 이차대전 이후의 기록적인 경기호황은 1970년대 오일쇼크를 기점으로 사실상 끝났고 주요 선진국 국민들의 실질소득도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기존 경제시스템을 손보는 대신 자본주의 성장엔진을 최대한 돌리기 위해 국민들에게 빚을 내서 소비하길 적극 권장했다.

제레미 리프킨은 1996년 노동의 종말을 출판해 기술진보로 인해 괜찮은 일자리가 서서히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값싼 중국산 제품의 범람과 투기자본의 부추김 속에서 자국민의 소비가 점점 부채에 의존하고 인간의 노동이 경제시스템에서 체계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기술의 진보가 인간 노동력의 수요, 가치를 감소시키는 장기 트렌드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정부는 서비스 산업고용과 창업 교육을 강화했다지만 큰 틀에서 보면 신용카드 남발과 부동산 담보대출로 주머니가 얇아진 국민들의 소비수준을 유지하는데 더 신경을 썼다. 글로벌 아웃소싱을 통해 악화된 노동환경을 회피하거나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서 자동화와 국내 인력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임시변통으로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작금의 글로벌 위기상황까지 떠밀려온 셈이다.이제 로봇계는 스스로 하는 일이 인류에게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 정직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직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여기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21세기 로봇, 첨단기술과 융합하면서 놀라운 사회적 변화 초래
20세기 자동차 산업의 부상은 개인들에게 과거에는 상상치도 못했던 놀라운 기동성을 갖게 했다. 그 여파로 전통사회에서 마차, 수레를 끌던 말과 소들은 점차 사라졌다. 이론상으로 말과 소는 더 우월한 교통수단 때문에 물류노동에서 소외된 셈이다.

이런 질문을 해본다. 자동차, 트랙터의 대량보급으로 수레 끄는 일에 밀려난 네발 달린 짐승들은 과연 더 불행해졌을까 행복해졌을까. 여물과 매질에 길들여진 말이라 해도 무거운 짐을 싣고 운반하는 과정 자체를 즐겁다고 여기진 않았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채찍질 당하면서 수레를 끄는 굴레를 벗어난 것은 동물의 입장에서도 축복이자 행운이다. 노동은 동물의 본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 로봇은 여타 첨단기술과 융합하면서 놀라운 사회적 변화를 초래할 전망이다. 그 여파로 인간의 지적, 육체노동은 경제시스템 전반에서 체계적으로 도태될 것이다.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노동력인 로봇의 등장으로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셈이다.

MIT 교수인 에릭 브린욜프손과 동료 앤드류 맥아피는 지난해 출간한 저서 ‘기계와의 경쟁’(Race Against the Machine)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인간은 기계와의 생산성 경쟁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하지만 로봇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와 부품교체로 금방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기계를 적대시하는 뉴 러다이트 운동보다는 어떻게 기계와 협력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기계와 협력이란 인간보다 똑똑한 기계가 창출한 부가가치를 사회구성원들에게 적절한 명분하에 배분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필수적으로 포함될 것이다.

과연 노동은 인간의 본성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로봇기술의 대중화로 생산직에서 밀려나고 서비스 직종서도 차츰 입지가 좁아질 두발 달린 짐승은 미래사회에서 불행해질까 아니면 더 행복해질까. 어차피 임금노동에 기반한 자본주의 경제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출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대폭적인 궤도수정이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인간보다 우월한 로봇의 생산성 덕분에 시민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기초생활에 충분한 소득수준을 보장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구축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살기 위한 임금만을 목적으로 굳이 힘든 직장생활을 유지하려 할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남보다 더 일해야 한다는 유교이념, 성장이데올로기가 확고히 지배해왔다. 하지만 인간 자체가 경제시스템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는 추세가 가속화된다면 전통적인 노동윤리와 사회적 가치 또한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노동은 인간의 본성인가? 힘든 노동과 치열한 경쟁이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에 부합한다면 로봇이 중요한 일을 다 처리하는 세상은 야심만만한 청년들에게 따분한 지옥이 될 것이다.

필자는 노동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인간에게 동기가 악하든 선하든지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만 보장된다면 사람이 추구하는 여러 행동들이 반드시 금전적 수익을 목표로 하는 노동이어야 할 당위성은 없다.

대부분의 전통 귀족사회는 직접 노동을 멀리 하고 문화, 예술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높이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갖는 경제는 근대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의 산물이며 21세기에는 더 이상 달성이 불가능하며 시대착오적인 목표임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를 재단하려면 항상 사단이 난다.

로봇의 확산이 국민 행복에 기여하려면 경제시스템 개혁 필요
이제는 차세대 로봇시장이 열린 그 이후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기다. 로봇기술이 장기적으로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해당 전문가들도 좀 더 솔직해지고 정치적 대안을 한발 앞서 촉구하는게 현명하다는 뜻이다. 차세대 로봇산업의 성공은 틀림없이 거대한 시장수요를 창출하고 관련업계에 좋은 소식이지만 국민경제 전체의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데 별 도움이 안되고 그 반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재벌 위주의 스마트폰 산업이 서민경제에 미치는 낙수효과가 미미한 것을 보라. 로봇기술의 확산이 국민 행복에 기여하려면 시대에 뒤쳐진 경제시스템을 탈노동화에 맞춰 개혁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같은 노력이 성과를 거둔다면 한국은 오랜 노동의 굴레에서 인류를 해방시킨 선진문명국가로 존경받고 로봇한류는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다.

배일한 / 하와이대학교 미래연구센터 박사과정
고려대 경영학과와 동 언론대학원을 졸업했고 전자신문에서 로봇, 전기차, 나노기술 등 다양한 첨단 산업분야를 취재하면서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미래학의 대부로 불리는 하와이대 짐 데이토 교수 밑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미래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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