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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홍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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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10  19: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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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 모터 제어에서 ‘물과 공기’ 연구로 바꾸었다”

"열린 세계에 대응할 지능구현 , 빅데이터 활용 현실화 됐다"
"2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 지금은 조급함을 경계해야 할 때"
"10만 보병보다는 1만 정예 인력 양성이 더 중요하고 시급"

서일홍 교수(59ㆍ한양대 교수, 로봇특성화대학원사업단장)를 ‘인물연구’의 인터뷰이로 선정한 이유 중에는 그가 이른바 ‘기계’가 아닌, 컴퓨터에서 로봇계를 주도해온 학자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로봇에 필요한 ’물’과 ‘공기’를 만드는 일에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되었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기자는 20년 후에 다가올 로봇의 모습을 분명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그의 고급인재양성 우선 육성론도 와 닿았다.

한국의 로봇계를 이끄는 리더들은 대부분 기계공학과 출신인데 오랫동안 전자공학이나 컴퓨터공학 분야 소속이었다.
나는 소속이 많이 바뀌었다. 한양대 안산(에리카)캠퍼스 시절에는 전자공학과 교수로 20년을, 서울캠퍼스에 와서는 컴퓨터공학 소속으로 10년을 가르쳤다. 올해 10월부터는 다시 (융합)전자공학부로 바뀌었다. 그러나 컴퓨터공학 전공이라 해도 상관없다. 학자로서 추구하는 방향은 변하지 않을테니까. 사실 세계 로봇계 흐름을 보면 기계 기반, 컴퓨터 기반, 전기전자 기반 전공자 간에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역할과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컴퓨터 기반의 전문가들은 대개 인지(cognition)분야에 많다. 기계 기반은 주로 로봇이 걷거나 뛰는 것을 연구한다. 어떤 공학적인 문제를 기계로 해결할 것인가, 소프트웨어로 해결할 것인가, 비중에 따라 로봇의 기능이나 생김새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자동차가 좋은 예이다. 지금까지는 엔진, 휠, 트랜스미션 같은 기계공학적 요소가 80%를 차지했지만 요즘은 그것들을 전자적으로 제어하려고 한다. 결국 로봇도 그것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어느 분야에 더 많은 비중을 둘 것이냐, 또 어느 기반의 사람들이 그 커뮤니티를 지배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나기 마련이다.

로봇계에서 컴퓨터전공자들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의미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물론 미국과 유럽은 컴퓨터 분야 전공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문이라는 것은 어떤 원리나 원칙(principle)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많은 데이터와 정보에 접근할 수는 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거기서 원리 원칙을 찾아낸다. 만유인력의 법칙도 케플러의 법칙도 그렇게 찾아낸 것이다. 그건 기계공학 했느냐 컴퓨터 했느냐와는 상관 없다. 로봇공학도 궁극적으로는 로봇이 풀어야 할 문제 해결의 원리가 어디에 있느냐를 찾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로봇의 지능, 즉 인지 원리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도 다루는 영역은 다르지만, 원리를 찾는 측면에서는 다 비슷한 생각을 한다.

▲ 서일홍교수는 유럽국가들이 빅데이터 기반의 로봇 연구방향에 공감한다. 사진은 유럽에서 열린 학회 참석후 뜻을 같이하는 해외학자들과 함께.

그 원리를 어떻게 찾는다는 것인가.
로봇은 기계였고 그 기계를 잘 제어하는 것이 중요했다. 기계를 잘 제어한다는 것은 타이밍이 빠른 모터를 제어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지금도 그런 연구가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한편에서는 빅데이터 연구가 부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음성인식을 보자. 사람의 발성기관은 기계원리와 같다. 10년 전만 해도 목이 우글쭈글하거나 입천장의 모양을 모델링해서 소리를 만들어 내고 그 소리를 인지하는 연구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런 연구는 성공하지 못했다. 가령 자동차 운전자가 “왕십리”라고 목적지를 말하면 내비게이션은 사전에 입력된 모델에 조금만 벗어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구글의 음성인식서비스 같은 경우 99% 인식이 가능하다. 그렇게 된 것은 구글이 모델링 기술을 개량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렇게 해도 “왕십리”, 저렇게 해도 “왕십리”가 되는 데이터가 엄청나게 많이 축적된 결과이다. 바로 빅데이터를 활용한 것이다.

로봇의 인지에 대한 개념이 필요할 것 같다.
기술적으로 산업용로봇은 프로그래머가 정해준대로만 움직인다. 현장에서도 미리 정해준 시나리오 외의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ABC 중에 B를 고르라고 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B만 골라내면 된다. 새로 유입되는 게 있을 수 없는 닫힌 세계(closed world)이다. 그런데 가령 유치원용 서비스 로봇이 있다고 치자. 유치원에서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상황을 만날 수 있다. 로봇에게 아이의 사진을 찍는 미션을 주었다면 로봇은 어떤 상황이 닥쳐도 그 미션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 예기치 않은 상황 즉, 끝이 없는 열린 세상(open-ended world)에 대응할 수 있어야 서비스로봇이다. 로봇에게 열린 세계에 대응하게 하는 것이 인지 능력이다. 사람에게 있어 물과 공기와 같은 것이다. 물과 공기는 너무 흔해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그게 없으면 금방 표시가 난다. 로봇에게 인지능력이 없다면 프로그래밍된 상황 외의 환경에 닥치면 먹통이 돼버린다.

앞으로 로봇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뜻인가.
저마다 이론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물과 공기론에 입각해서 로봇 연구 방향을 인지능력으로 잡고 있는 곳이 유럽이다. 나는 유럽 국가들의 방향이 옳다고 본다. 유럽은 앞서 말했던 빅데이터를 통해 로봇의 인지능력을 구현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유럽의 로봇계는 로봇이 성숙하는 시기를 5년~10년쯤 후로 보지 않고 20년쯤 후로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많다. 인지능력이 되면 콘텐츠가 필요하고 그 다음엔 표준화다. 나는 그 시기가 의외로 빨리 온다고 본다. 지금은 한 단계씩 한 단계씩 완만하게 점프를 하고 있지만 조만간 그 점프들이 쌓여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리라 본다.

▲ 그는 로봇은 궁극적으로 인간 수준의 지능을 보유한 그레고리안 생명체(Gregorian Creature)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2009년 11월 한국과학기술회관 강연

점프라면 어떤 것들이 있나.
로봇자동차를 보자.
로봇자동차는 GPS, 카메라, 센서를 이용해서 자율주행운전이 가능해졌다. 자동차회사들은 조만간 상용 로봇자동차를 내놓는다 한다. 단계적으로 점프해 가는 좋은 예다. 미국방부 방위종합연구계획국(DARPA)은 이런 점프를 ‘DARPA 로봇 챌린지’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유도하고 있다. 12월에 있을 챌린지 2차 예선이 끝나면 몇 가지 점프가 일어날 것이다. 미국에서는 기업이나 공학자들에게 먼저 미션(챌린지)을 주고 점프를 하게 한다. 미션을 수행하려면 새로운 요소기술의 개발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점프다. 반대로 유럽은 요소기술을 먼저 주고 점프하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그걸 잘 연구해서 두 가지 방식가운데 하나를 쫓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동안 정부일을 많이 해왔는데, 표준 플랫폼 루피(RUPI)프로젝트를 주도한 적이 있다.
10년전 로봇정책이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로 나뉘어졌던 때다. 정통부 측에서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가운데 표준 플랫폼 얘기가 나왔다. 때마침 휴대폰 분야에서는 ‘위피’(WIPI)라는 표준 플랫폼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장관이 “로봇에서도 표준 플랫폼이라는 게 필요한가”라고 물었는데 모두가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루피’(RUPI: Robot Unified Platform Initiative)다. ‘I’가 붙은 것은 로봇 소프트웨어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는데, 사실은 ‘위피’에서 빌려온 거다. 내가 1년 동안 주도적으로 스펙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다가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 지식경제부가 주도하는 ‘스파이어’(SPIRE)라는 프로젝트와 통합되면서 나는 손을 뗐다. 지금의 ‘오프로스’(OPRoS)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정부가 표준을 만들어 보급하는 식의 정책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가. 시장은 기업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20년 후에 로봇업계 전체에 굉장히 유익하다거나 큰 시장이 열릴 것으로 판단되는 연구 과제가 있다면 무조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걸 기업이 할 수 있을까? 기업들은 생리적으로 당장 돈 냄새가 나지 않는 분야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연간 수익이 10조원이나 되는 삼성이 수익의 20%를 미래연구에 투자한다고 하지만 20년 후의 업계 전체 문제를 책임질 이유는 없는 것이다. 표준화와 같은 정책은 더욱이 그렇다. 바로 이럴 때에 정부가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가 로봇을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해서 지난 10년 동안 지원해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큰 시장이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로봇시장이 죽어버리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지금까지 정부정책은 개별적으로 보면 다 필요한 것이었다고 본다. 다만 어느 것을 먼저 하느냐의 우선 순위의 문제는 있었다. 가령 새로운 탄산음료를 만들어 팔려고 한다면 내용물만 개발해서는 안되고, 병도 뚜껑도 필요하다. 마케팅 전략도 필요하고 유통조직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로봇 분야에서도 하드웨어만 있어서 될게 아니라 콘텐츠도 있어야 하고 플랫폼도 있어야 되는 것이다.

'오프로스'가 잘 안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오프로스’ 자체에 문제라기 보다는 ‘오프로스’로 해야 할 일이 정의돼 있지 않았다. 어떤 물건 100만개를 1년 내에 납품해야 하는데 작업 시간이 크게 모자란다고 치자. 이때 작업기간을 3개월쯤 단축시켜주는 도구가 있다면 그걸 도입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10~20개 만드는 일이라면 누가 그 도구를 도입하겠는가. '오프로스'가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내가 1980년대 초반 대우중공업에 재직하던 시절, 어느 날 부사장이 부르더니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공작기계가 모두 일본산이다. 국산 한번 만들어보자. 기계는 내가 만들 테니 컨트롤러는 네가 만들어라"고 하는 거다. 그러면서 "공작기계 기능이 100개가 있는데 다 필요 없고 3개만 똑똑하게 만들자"고 하더라. 로봇도 그런 것 아닌가. 로봇은 내게 뭔가 해줘야 하는데 내 마음에 쏙들게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거다.

▲ 2011년 로봇인의 밤 행사. 이날 서교수는 로봇특성화대학원사업에 대한 공로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왼쪽에서 3번째 서교수)

정부의 로봇 인력양성 정책에도 많이 관여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똑똑한 학생들이 컴퓨터공학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컴퓨터가 3D직종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한때 컴퓨터 학원이 번성했다. 거기 전단지를 보면 3개월 속성과정으로 랭귀지 배우면 프로그래머로 취직할 수 있다고 나온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랭귀지 아무나 하는구나, 영어학원에서 영어처럼 배우면 되겠군, 굳이 대학에 까지 가서 배울 필요없네!”라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3D직종이라는 말도 나왔다. 로봇경진대회도 마찬가지다. 모터를 연결해서 조작하는 게 로봇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렇게 만들어 상대방 것과 부딪쳐 이기면 1등이다. 미리 프로그램 로직 알려주고 블록 쌓으면 1등이 된다. 그렇게 하면 소프트웨어를 잘한다고 한다. 로봇학원들이 바로 그렇게 부딪치고 쌓는 방법 가르친다. 물론 우리 로봇산업 환경이 성숙돼 있다면 학원에서 양성하는 다수의 ‘보병’인력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산업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고급 인력들을 육성하는 것이 더 급하고 중요하다. 10만 보병보다는 1만의 정예병 양성이 현실적이다. 지금은 이 순서가 바뀌어 역효과가 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정부가 추진한 로봇특성화대학원 사업단장을 맡아왔다.
지금 로봇계에서 정예 인력양성 특히 석박사급 인력양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인력들이 중소기업, 대기업, 연구소에 골고루 퍼져 있어야 서로 교류해가며 로봇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대학원에 로봇학과를 설치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부가 추진한 로봇특성화대학원 사업은 아주 잘 된 정책이라고 본다. 물론 학과공부가 어려워 학위 못받은 수료생들이 많아 가슴이 아프다. 기업에서 많은 실무경험을 가진 기업인들도 이렇게 과정이 어려울지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자기회사에서 매니지먼트 잘하더라. 나도 사업을 수행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자부심이 컸다. 잘했다고 표창(국무총리상)도 받았다.

사업기간이 내년 4월까지인데.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는 기간이 4월까지이다. 사실 학위 과정이라는 게 예산지원 끝났다고 딱 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입학하는 학생은 앞으로 5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사업기간은 5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10년인 셈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고민이다. 재학생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나. 후속 프로그램이 생기면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나. 물론 정부가 후속프로그램을 준비중인 것으로 안다. 지금 같은 수준으로 이어질지 어떨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지속되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현재 제2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안을 마련 중이다.
▲ 미래에 대한 조급함을 경계하는 서교수
너무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리라는 것은 이제 일반인이나 정치인이나 미래학자의 예측이 크게 다르지 않다. 로봇이 사람을 도와주고, 로봇이 없으면 불편하 세상이 온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게 10년 후 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예측은 조금 다르겠지만, 그런 시대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이제 준비해서 가야 하는 게 맞다. 예를 든다면 이제 우리나라는 국민의 30%가 노인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로봇이 기여하는 정책과 함께 지속적인 산업화도 필요하다. 또 재난과 국방 분야에 대한 정책도 필요하다. 중국이나 동남아로 나갔던 공장들도 로봇을 통해 다시 불러들여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공장이나 산업용로봇의 개념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다행히 그런 방향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대학을 진학할 때 전자공학과를 선택했다. 어떤 꿈이 있었나.
10대의 고등학생이 무슨 미래를 꿈꾸었겠나. 다만 나는 물리를 좋아했다. 학문적으로 너무 순수하다고나 할까. 공과대학 가운데서 물리적인 사고가 가장 많이 요구되는 분야가 전자공학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로봇을 생각하게 됐나.
KAIST 다닐 때 소속이 대우중공업이었다. 당시 대우가 전동차와 공작기계를 만들고 있었다. 처음엔 마이크로웨이브 분야를 염두에 뒀다. 그렇다면 무선으로 전동차 움직이는 장치 같은 것을 다루어야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뛰어들 분야는 아닌 듯했다. 창원공장과 인천공장 돌아다녀보니 공장자동화가 필요해 보였는데 때마침 KAIST에 공장자동화 제어를 전공한 변증남 교수가 미국에서 들어오셔서 그분의 제자가 됐다. 박사 학위는 나보다 먼저 한 분이 있긴 한데 석박사 모두 자동화를 전공한 사람은 내가 국내 1호이다. 물론 로봇을 주제로 한 학위 논문을 쓴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대우중공업이 다른 기업보다 빨리 로봇 분야에 투자한 덕분에 남들보다 빨리 현장에서 로봇을 만들어 볼 수 있었다.

결국은 기업보다는 학교를 택했다.
당시 대우중공업의 윤영석 사장이 굉장히 앞서간 분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나를 불러서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라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그때 '노바10'이라는 산업용로봇 제어장치를 개발했다. 그게 최초의 국산 용접로봇이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대우와 인생을 같이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것, 원리 원칙
을 찾아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수 체질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기업에서 할 일이라는 게 다 만들어놓은 것을 다 팔릴 때까지 유지하고 조금씩 기능을 개선하는 게 거의 전부다. 물론 획기적인 기술이나 제품 만드는 것을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된다. 자꾸 새로운 거 만들고 싶은데 재미가 없어지는 거다. 그래서 대학으로 옮겼다.

▲ 그는 독서광이다. 최근에 탐독했던 책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즐긴다고 들었다.

진화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내가 읽은 책의 저자들은 대개 철학자이면서, 과학자이고 수학자이면서 심리학자인 경우가 많다. '생각의 종류(Kinds of Minds)'를 쓴 대니얼 데넷, '생각의 탄생(Sparks of Genius)'을 쓴 미셸 루트번스타인 같은 분들이다. 아마 내가 그런 길을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 로봇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의 뇌와 생명에 관한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사람들이 왜 그런 책을 읽느냐고 묻는데 난 개인적으로 그 분야에 흥미가 있고 관심이 많다.

독서에 대한 특별한 취향이 있나.
에세이보다는 팩트에 기반한 책을 좋아한다. 에세이는 저자의 자기감정의 표현이라서 독자가 공감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팩트는 팩트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어 실패할 확률이 적다. 또 좋아하는 책은 서점에 가서 직접 구입한다. 서점에도 자주 간다. 그래야 저자들이 책을 쓰는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학내 창업지원센터 소장을 역임한바 있다. 창업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조언 한다면.
창업은 자기가 정말 잘하는 거 아니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자기가 개발했던 기술을 가지고 창업하는 게 성공확률이 가장 높다. 식당을 내려면 자기만의 비법과 노하우가 있어야 하고 온라인서비스라면 독특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남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지갑 주인을 감동시켜야 하는데, 남을 따라 해서는 어렵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는 창업하려면 일단 중소기업에 가서 먼저 배우라고 권한다. 두부요리집을 내려면 먼저 그런 식당에 취직해서 식자재를 구입하고 관리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런 다음 인맥도 쌓고 자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게 창업이다. 요즘엔 창업경진대회라는 것도 있더라. 그런데 책상에 앉아서 몇 시간 얘기해서 프리젠테이션하고 오케이 하면 창업하는 식이다. 젊은 사람들이 오해하기 딱 좋은 쇼에 불과하다.

끝으로 로봇계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한마디.
▲ 서일홍교수 부부
나는 전공을 과감히 바꿨다고 말할 수 있다. 같은 로봇이지만 10년 전에는 기계를 직접 제어하는 분야를 연구했다면 이제는 물과 공기, 즉 로봇의 지능 원리를 찾는 연구에 나서고 있다. 그것을 계기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여유와 힘을 갖게 됐다. 국내에서 로봇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을 다 합쳐도 1만 명 정도다. 그만큼 작은 커뮤니티다. 그런데도 거기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따져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미래를 향해 뜻을 모으고 함께 나가는 일이다. 우리 로봇계가 공기와 물을 만들어내는 일에 좀더 많은 노력을 집중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그것을 산업화해서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서현진 기자

[서일홍 교수 주요 약력]
1955년 서울 출생
1977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79년 KAIST 전자공학 석사
1982년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 박사
1982년 대우중공업 기술역
1985년 한양대 전자공학과 조교수
1994년 한양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1999년 한양대 창업지원센터 소장
2004년 한양대 정보통신대학 학장 및 정보통신대학원 원장
2007년 대한전자공학회 부회장
2008년 한국로봇학회장
2009년 로봇특성화대학원 사업단장
2013년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서현진 기자  suh@irobo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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