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인류가 금성에 보낸 우주 탐사선 가운데 금성 표면에서 최장 시간 버틴 시간은 127분이다. 지난 1982년 소련(USSR)이 발사한 우주 탐사선 ‘베네라(Venera) 13’은 내부 주요 컴퓨터 부품을 티타늄 압력 용기안에 숨기는 방식으로 극한 환경의 금성 표면에서 2시간 정도 생존했다.

우주 탐사선이나 로버(Rover)가 금성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선 금성의 극한 환경을 견뎌야한다. 금성의 표면 온도는 464도에 달한다. 대부분 전자 부품들과 센서들은 금성 표면의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린다. 게다가 금성 표면의 압력은 90기압 정도다. 이는 지구 바다속 3000피트 깊이의 압력과 비슷하다. 금성의 표면은 아주 어두워 태양광 발전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금성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기존의 전자 부품과 센서, 태양광 발전시스템으로 만들어진 로버와 우주 탐사선은 금세 무력화될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극한의 기후 환경에 견디기 위해 과학자들은 모든 전자 부품을 고열에 견디는 콘테이너안에 밀폐한 후 강력한 에어컨 시스템을 가동했다. 과거 소련의 과학자들도 이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통적인 방법은 제작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다 방사선인 플루토니엄 기반 스털링(Stirling) 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 탱크 처럼 궤도를 탑재한 로버 'AREE'. 내부에는 풍력 터빈이 들어가 있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는 전자 장치 대신 태엽과 스프링,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로버 개발 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로버의 명칭은 ‘아리(AREE: Automaton Rover for Extreme Environments)’. AREE는 동력의 생산, 동력의 저장, 센싱, 이동, 커뮤니케이션 등 기능을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 처리한다.

사실 기계적인 메카니즘을 이용한 컴퓨팅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BC 1~2세기에 그리스인들이 만든 컴퓨터인 ‘안티키테라 메커니즘(Antikythera Mechanism)’은 지난 1901년 그리스 안티키테라섬 앞바다에 침몰한 로마시대의 난파선에서 발굴되었다. 이 기계적인 컴퓨터는 30여개의 청동 기어로 이뤄져 있으며 손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작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이용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4년마다 윤년을 계산해 넣는 '365일 달력'을 사용하고 일식과 월식을 예측했다. 또 수성, 금성 등의 운동과 달이 지구 둘레를 타원궤도로 돌면서 생기는 변칙적인 움직임까지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17세기와 19세기 사이에 파스칼, 라이프니츠 등 과학자들은 다양한 수학식 계산을 처리할 수 있는 기계적인 컴퓨터를 개발했다.1940년대에는 군대에서 포병의 화력제어시스템 같은 용도로 기계적인 컴퓨터를 사용했다.

▲ 러시아가 2002년까지 우주 탐사에 사용한 기계적인 내비게이션 시스템 '글로버스'

러시아는 지난 2002년까지 그들의 우주선에 기계적인 메카니즘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인 ‘글로버스(Globus)’를 사용했다.

▲ NASA가 처음에 구상한 여러 개의 다리를 갖춘 금성 탐사용 로버

NASA JPL이 구상하고 있는 AREE는 로버의 모든 것을 기계적인 메카니즘으로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 부품은 전자제품으로 만들어진다. 탄화규소(silicon carbide)와 갈륨시스템으로 제작된 전자 부품은 높은 고열에도 견딜 수 있다.

▲ AREE의 동력 저장 원리

연구팀은 초기에는 여러 개의 다리를 갖고 있는 로버를 구상했으나 2단계에선 궤도로 움직이는 탱크 모양의 로버를 구상했다. 내부에는 풍력 터빈이 들어가 있다. 여기에 장애물을 극복하고 회피하는 기술, 레이더 기술 등이 탑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