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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화에 대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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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07  0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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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산업진흥 정책 가운데 아직도 습관처럼 남아 있는 구시대 유물 하나가 '국산화' 이다. 국산화는 외국제품이나 기술에 종속돼 있는 분야를 국산으로 대체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이 좋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국산화가 매번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부가 300억 원을 들여 개발했던 개방형 로봇플랫폼 'OPRoS'(Open Platform for Robot Service)가 단적인 사례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이 프로젝트는 2008년 시작 당시부터 이미 실패가 예정돼 있었다고 해도 빈말은 아닐 성 싶다.

국산화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정책담당자들이 애용하는 이른바 '레시피'라는 게 있다. 모르긴 해도, OPRoS를 기획하는 과정 역시 '우리 환경에 맞는 표준을 만들어 로봇 보급 기회를 늘리자'는 식의 논의가 등장했을 것이다. 국산을 만들어 조기에 시장을 선점하자는 양념치기나, 우리에겐 우수한 인재가 많으니 어려울 게 없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으리라.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일자리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는 클라이막스였을 것이다. 정책 담당자로서도 자신의 재직시절에 확실한 성과 한가지쯤 만들고도 싶었을 터이다. 논리적으로나 국민 정서상으로나 완벽한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정부가 아직도 국산화를 해야 할 대상과 그럴 필요가 없는 대상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플랫폼이란 저마다 복잡하고 이질적인 로봇의 구조를 단순화하여 개발자와 이용자 모두 쉽게 접근하게 해주는 통합소프트웨어이다. 하지만 이런 용도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게 어디 비누공장에서 비누 찍어내듯 호락호락한 일이던가. 기술의 난이도를 얘기하는게 아니다.

이런 사업일수록 기술 보다는 사후 관리나 마케팅에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소요되는 법이다. 또 해당분야의 리더로서 업계 영향력도 있고 오랜 비즈니스경험도 있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개발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라도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08년 당시 OPRoS를 기획했던 이들은 이런 점들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았을까. 필자의 추정으로는 '전혀 아니올시다'일 듯하다.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더라면 OPRoS 같은 프로젝트는 시작하지도 않았거나 시작했더라도 최소한 어떻게 보급할 것인가에 더 많은 무게를 두었을 것이다.

예상과 우려는 그대로 적중했다. 5년의 개발작업 끝에 OPRoS가 탄생했지만 자발적으로 거들떠 보는 기업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업들은 정책당국자의 체면을 세워주는 자선 사업가들이 아니다. 주인도 없고 사후관리도 담보되지 않는 플랫폼을 상업용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개발에 적용할 기업들이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보자면 OPRoS의 실패는 혈세 300억 원을 날려버린 사실 이상의 심각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새삼스럽게 다시 OPRoS 얘기를 꺼낸 것은 우리가 플랫폼을 국산화할 능력이 되니, 마니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는 우등이고 하드웨어나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회사는 열등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운용체제와 그 플랫폼을 가져다 쓰는 삼성전자가 구글 보다 열등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없다. 서로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앞장서 로봇 4대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체감하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세계 로봇산업지도나 기술지도를 펴놓고 보면 한국은 여전히 로봇 변방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툭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드는 국산화에 대한 유혹은 그런 변방에 대한 그림자를 더욱 짙게 해줄 뿐이다. 기업과 시장을 정책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발상 역시 아련한 산업화 시대의 미몽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가려내는, 경험 많은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은 필요에 의해 열리는 것이지, 성과에 급급한 정책 담당자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1인1로봇이니 4대 강국이니 하는 허수에 목을 내놓는 것은 이젠 위태롭고 바보 같은 짓이다. 서현진 본지 편집고문

서현진 기자  suh@irobotnews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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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철
플랫폼이란 사용자가 아닌 개발자들이 선택합니다. 그리고 제조로봇과 같이 높은 신뢰성을 요구하는 제품일 수록 개방성보다는 신뢰성이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지금 스마트폰과 같이 다양한 앱이 새로운 컨텐츠시장을 여는 경우처럼, 로봇도 다양한 컨텐츠가 상품성을 결정하는 교육용로봇과 같은 제품에 국한했다면 어떨까 싶으네요. 그런 면에서 OpRoS는 기획단계부터 방향성을 잘못잡았다는 의견에는 살작 동감합니다.
(2013-10-11 04:50:52)
사상누각
SW 플랫폼을 갖고 있지 않은 삼성이 구글의 기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하시네요.
구글이 언제까지나 안드로이드를 무상으로 제공할까요?
삼성이 자신들만의 플랫폼이 없기 때문에 사상누각이라는 위기 의식을 갖고서,
SW 인력을 대거 채용하고 있는 걸 모르나요?
그만큼 SW플랫폼은 중요하며,
로봇에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2013-10-09 22:49:41)
박홍성
OPRoS를 얼마나 이해하고 작성하셨는지 궁금하여 만나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초기에 의도한 대로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컬럼도 의미있지만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하여야 설득력이 있습니다. 개방 마인드가 부족한 국내에서 개방이라는 것을 이끌어 내고 있으며, ROS도 OPRoS가 추구하는 SW 방향성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13-10-07 22: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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