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증남 교수

우리나라 로봇학계의 거목 변증남 카이스트 명예교수가 23일 새벽 3시 향년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림프종암으로 투병했다.

고인은 지난 1943년 서울에서 출생해 서울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1977년부터 32년동안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과에 재직했으며, 2005년부터 같은 대학 석좌교수, 2009년부터 울산과학기술대학(UNIST)의 석좌교수로 근무했다.

고인은 우리나라 최초로 로봇을 개발한 인물이다. 카이스트 교수 재직 시절 과학재단으로부터 320만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1979년 국내 최초의 로봇 ‘매니퓰레이터 1호’를 개발했다. 당시 이 로봇에는 'KAISEM'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89년에는 국내 최초의 4각 보행 로봇인 ‘카이저(Kaiser)’를 정부 출연연구기관과 공동 개발했다.

▲ KAISEM 개발 당시 변증남교수(뒤줄 오른쪽)와 연구원들. 전북대와 성균관대에 각각 재직중인 송상섭 교수(뒷줄 왼쪽)와 박영제 교수(앞줄 가운데)의 모습도 보인다.

고인은 생전에 재활로봇 분야에서도 많은 족적을 남겼다. 2003년 정부의 서비스 로봇기술 개발과제의 하나로 휠체어 기반의 재활 로봇시스템인 ‘카레스’를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지능형 재활로봇인 ‘카레스 II’, 시각 장애인을 위한 길안내 로봇, 간호 로봇, 수술 로봇, 집사로봇 등을 속속 개발했다. 주로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로봇 개발에 매진해왔다.

고인은 지능형 로봇 정책 수립과 로봇 개발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산업용 로봇에 이어 지능형 서비스 로봇 시장이 격전장이 될 것”이라며 "한국이 그동안 양성해온 인력과 정보기술 인프라를 활용하면 승산이 있다”는 소신을 갖고 로봇 개발에 열정을 바쳤다. 지난 2003년 정부가 지능형 로봇 분야를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하자 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인은 국내 로봇 관련 학회와 기관의 초석을 마련하는데도 크게 기였다. 대한전자공학회 회장을 비롯해 한국로봇학회 초대 학회장, 지능로봇 클러스터 초대 회장, 카이스트 ‘인간친화복지로봇시스템연구센터’ 소장, 국민로봇사업 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다.

해외에서도 고인의 명성은 높았다. 지난 2003년 로봇학계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조셉 엥겔버거 로보틱스상’을 수상했다. 최초의 국산 로봇 매니퓰레이터를 개발하고 로봇 관련 인재를 배출한 공로가 인정됐다. 이 상은 처음으로 산업용 로봇을 개발한 근대 로봇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셉 엥겔버거 박사를 기념하기위한 것으로 전미 로봇산업협회(RIA)가 주관하고 있다.

▲ 로봇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조셉 엥겔버그 로보틱스상 수상 기념(2006). 앞 오른쪽이 엥겔버그 박사.

조셉 엥겔버거 로보틱스상 수상에 이어 2003년 세계퍼지시스템학회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그는 1990년대초 국내에 처음으로 퍼지이론을 도입했으며 연구 성과를 토대로 2002년 한국인 최초로 ‘월드 오토메이션 콩그레스’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IEEE 석학회원(펠로우) 등 국제적인 학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국내 로봇학계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공헌했다. 고인은 카이스트의 행정적 기틀을 다지는데도 기여했다. 1993년 학장을 역임하고 산업경영연구소장, 정보전자연구소장 등을 맡아 학사 행정의 개선을 꾀했다.

▲ KAIST 30년 근속상(2007년). 수여자는 서남표 당시 총장이다.

고인은 국내 로봇학계에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한양대 서일홍 교수, 조영조 한국로봇학회장, KIST 오상록 박사, 황동환 충남대 교수, 유범재 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연구단장, 국립재활원 송원경 박사, 광운대 박광현 교수 등이 그의 제자다.

한편 23일 별세한 고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5일 오전 7시다. 고인은 슬하에 변영재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대외협력처장)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