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백만불의 사나이

40~50대의 연령대라면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600만불의 사나이'(The Six Million Dollar man)라는 미국 드라마를 기억할 것이다. 요즘의 케이블 TV 환경처럼 다양한 방송 채널이 없던 삼십몇년전 TBC 동양방송을 통해 방송했던 SF 드라마이다.

방송이 시작되면 우주선이 등장하고 "스티브 오스틴… 전 우주 비행사… 그는 우주 시험 비행 도중 사고로..." 긴장감 가득한 목소리로 읊조리기 시작하던 나레이션. '600만불의 사나이'는 사고로 두 다리와 오른쪽 팔, 한쪽 눈을 잃은 우주 비행사가 잃어버린 신체 부위를 로봇 장치로 대신해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된 후 정의의 사도로 활동한다는 내용이었다. 1970년대 결코 흔하지 않은 사이보그(Cyborg) 소재 TV 드라마 씨리즈였다. 특유의 주제곡이 흐르고, 뚜뚜뚜뚜 인조 눈으로 수킬로 미터 밖을 보고, 창창창창 소리와 함께 시속 100km의 속도로 달려 가는 스티브 오스틴. 철근을 휘어 버리고 트럭을 거뜬히 들어 올리는 괴력의 오른팔. 매주 금요일이던가, 늦은 밤 '600만불의 사나이'가 시작되면 또래의 남자 아이들은 그것 하나 보고 자겠다고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야 했다.

다음 날, 그 아이들은 뚜뚜뚜뚜 창창창창 텔레비전 효과음을 입으로 흉내내며 장독대에서 옥상에서 뛰어 내리다가 손을 다치기도 하고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조회 시간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중에 '600만불의 사나이'를 보지 말고, 보더라도 제발 흉내내지 말라며 열번을 토하셨을까. 초등학교 6학년 때, '6백만불의 사나이'에 열광하고 또 열광했던 필자는 정말로,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몸에 기계 장치를 붙인다고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힘세고 빨라지는 것일까, 심각하게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투닥거리다 코피라도 흘린 날이면, 운동회날 달리기에 나섰다 꼴찌라도 한 날이면 그 의문은 필자에게 희망이요 꿈이 되 주었다. 그렇게 기계 장치에 대한 동경은 로봇에 대한 그것으로 발전하고 그것은 고스란히 꿈이 되고 미래가 되어 주었다.

그것은 필자 혼자만의 경우가 아니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그 드라마를 보며, 어찌 생각한다면 흥미 위주로 만들어진 미국의 한낱 액션 드라마를 보며 기계 장치, 로봇에 대한 환상을 키워 나갔으며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공학도의 길을, 로봇 개발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과정을 통해 영글어진 그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철완 아톰

실제 1990년대 일본 NHK에서 일본의 전자 산업을 진단하는 다큐멘터리 '전자입국' 앞머리에는 1950년대 만들어진 '철완 아톰'의 오프닝이 등장한다. 그들은 그것을 보여주며 패전 이후 어려웠던 그 시절, 아톰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나도 아톰을 만드는 과학자가 될것이라 마음 먹으며 꿈을 키웠고 그들이 소니며 파나소닉, 히타치 같은 전자 회사를 일구어 오늘날의 부국이 되었다는 진단이었다. 비록 그만큼의 폭넓은 세대는 아니지만 지금의 장년층이 '600만불의 사나이'를 보며 로봇에 대한 애정을 담아 왔던 과정이 일본에서의 아톰의 경우와 유사하다면 유사하다 하겠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아톰은 완전한 기계 생명체였다면, '6백만불의 사나이'는 인간의 부족한 능력을 기계 장치로 보완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문득 '6백만불의 사나이'가 아톰이나 터미네이터처럼 100% 로봇으로 설정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능력은 보잘 것 없지만(?) 기계 장치, 로봇 장치가 결합되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 본질이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힘은 정의롭게 쓰여진다. 그저 기계로만 만들어졌었더라면 그것은 한낱 자동 작동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사이보그라는 단어는 인공 두뇌를 의미하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생물이란 뜻의 오거니즘(Organism)을 섞은 말이다. 1960년 초반,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시절 미국의 과학자 맨프레드 클라인즈과 나단 클라인이 함께 쓴 책 '사이보그와 우주'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보통의 인간은 우주에서 장시간 생활하기가 힘들겠지만 과학이 발달하여 인간의 몸에 다양한 기계 장치를 결합시키면 효과가 뛰어날 것이다라는 예언 속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두 저자 클라인즈와 클라인은 이 책에서, 험난한 우주 개발을 위해 사이보그는 필수적이며 그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주 개발의 첫걸음이 되어야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숨은, 기계나 로봇 장치는 우주 공간에서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인간 몸의 일부로, 인간 능력의 일부로 통제 받아 쓰여져야 한다는 생각. 어찌 생각하면 그것은 '6백만불의 사나이'를 보며 느꼈던 우리네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봇을 대하는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그 무엇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 김혁 ∙ 테마파크 기획자, 테마파크파라다이스 대표

※ 김혁의 재미있는 로봇 이야기는 이번 주로서 연재를 마칩니다. 그 동안 이코너를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