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시모의 대굴욕이란 기사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다. 2007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공개 행사 같은 데서 계단을 오르던 아시모가 발을 헛디뎌 그만 굴러 떨어졌으며 수천억원이 든, 일본의 자랑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가 그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 망신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얼핏 가벼운 웃음과 함께 흘려 버릴 수 있는 기사.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낚시에 낚인 것처럼, 선정적인 제목으로 미끼를 던져 사람들의 클릭 수를 올려 놓기 위한 가십성 기사로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 기사에 담긴듯한 몇가지 배경들이 묘하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놨었다.

그 첫번째는 일본에 관한 우리들의 뿌리 깊은 거부 의식. 그 원인이야 수백년전의 역사적인 사건들에서부터 수많은 그들의 실수를 반성하지는 않고 오늘도 반복하고 있는 그들 스스로의 자세에서 출발한 것이겠지만 우리네 머리 속에 그들은 1980년대 드라마 속 독립군에게 고문을 가하는 악질 순사의 이미지 정도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최근 국제적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정신대 문제에 관한 그들의 적반하장격 태도는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 그러다 보니 그들의 실수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묘한 반작용으로 읽히곤 하는데, 실수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기술 개발 단계의 로봇의 오류를 망신, 대굴욕이라고까지 희화화해 기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기사의 논지는 간단했다. 일본의 모든 첨단 기술이 집약되었으며 연구비 수천억원이 들어갔고 일본은 그 로봇을 일본의 자존심이며 미래라고 떠들고 있다. 그런데 그 로봇이 넘어져 버린 것이다. 그것도 수많은 외국인들 앞에서 벌렁 넘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아시모는 대망신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이것은 일본의 망신이다', '그러면 그렇지 너희들이..', '수천억원 씩 들였다는, 일본의 첨단 기술이 모두 모였다는 아시모도 별 수 없네!', ' 결국 그것 밖에 안되는 거지' 라는 비아냥이 크게 모습을 바꾸지 않은 채 숨어 있었다.

그런 일본에 관한 감정에 곁들여, 행간 속에 읽을 수 있는 글 쓴 이의 생각은 로봇에 관한 일반적인 사고의 문제였다. 기사 속에서 망신이라 표현한 데에는 '분명 로봇이라고 하는데, 왜 계단 하나 오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거지?', '펄펄 날아 다녀야하고 계단 100개 쯤은 눈 깜빡 할 사이에 후다닥 올라 가야 하는데, 몇 개 되지도 않은 계단을 오르지도 못하고 넘어져야 하는거지?', '그래도 저게 로봇이야?' 라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로봇에 관한 인식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로봇이 미래 아니, 바로 오늘 우리 옆에서 생산 기지를 가동하는 핵심 기술로 작용하고 있으며 그것은 가정과 학교, 공공 시설로 확장되고 그로 인해 우리네 삶의 질이 바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 조차도 그들의 머리 속에서 로봇이라고 하면 곧바로 아톰과 마징가제트, 트랜스포머를 떠올리고 있는 것은 로봇 기술 아니, 로봇 문화가 가진 숙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 비록 용이나 유니콘 같은 독특한 상상력 속에서 출발했지만 인간의 기술이라는 능력치를 얻어 차근 차근 어린 아기 걸음을 시작하는 로봇, 로봇 문화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글 쓴 이에게 '당신은 길 가다 넘어진 적 없소?', '계단 넘어진 적 없소?' 라 물으며 그걸 두고 '당신이 구조적으로 잘못 만들어졌으며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야기할 수 있겠소?' 라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언젠가, 로봇에 관한 우리들의 인식이 조금은 더 따뜻해지고 넓어져서 그 기사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으면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사실, 아시모가 계단을 구르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당시 행사장의 사람들은 ‘망신을 당하고 굴욕을 겪었다’는 아시모를 비웃기는커녕 따뜻한 박수를 보내며 격려하고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행사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더라도 사람들은 똑같이 박수치고 격려해주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알려지고 회자되면서 거기에 로봇이라는 완전체의 믿음을 뿌리 깊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반복하고 옮기면서 망신이니 굴욕이니하는 포장이 덧씌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2013년 7월 혼다는 아시모의 업그레이드된 모델을 발표했다. 디자인이야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핵심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 2013년 7월부터 아시모는 일본미래과학관에서 스스로를 소개하는 이벤트의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손을 든 질문자에게 질문을 시켜 대답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대답은 미리 입력해둔 것이어서 한정적일 수 밖에 없지만 제일 먼저 손을 든 이를 찾아내 지적해 질문할 권리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내용과 형식은 아직까지 뚜렷한 한계를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질문은 "전 아시모예요. 미래과학관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제 곧 있으면 휴가 시즌이네요. 제가 어떻게 스스로 생각하는 지를 알고 싶으신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라는 식이다. 또 이때 손을 든 이가 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하면(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그것을 알아 듣고 스스로의 인식과 응대 과정을 설명해주는 방식이다. 심지어 질문하라는 동작 다음에 질문이 아니라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든 이를 지적하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엎드려 절 받는 격이다. 그게 무슨 질문과 대답이냐 또 낄낄거리는 이들이 왜 없을까만은, 그것을 두고 또 바보같다, 망신이다 흉보는 이들이 왜 없을까만은, 그래도 로봇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 로봇이 그만큼의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것이 눈 앞에 확인되는듯해 로봇 좋아하는 이로써, 로봇이 미래다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가슴이 뛰어 오름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하겠다. ▒ 김혁 ∙ 테마파크 기획자, 테마파크파라다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