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산업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어울린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 곁의 로봇은 만화나 영화 속의 이미지, 꿈 많은 이들의 상상 속에 사는 용이나 기린과 동급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로봇이 현실적인 인간의 삶과 직결된 ‘산업’이란 단어와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게 되고, 나아가 미래 산업의 중추로까지 떠오르게 된 것은, 그 자체를 혁명으로 받아들여도 될만큼 대단한 그 무엇이라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그 로봇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우리네 상상력 속의 로봇과 현실 속 산업 장비(?)로써의 로봇 2개의 다른 개념으로 출발했을 뿐 아니라 초기 명칭조차 달랐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일반적인 로봇의 개념은 이타적 거대 생명체를 꿈꾸었던 신화와 문학적 상상력에서 출발했던 것인데, 자동 기계 장치가 발전하고 그것이 스스로 지능을 갖추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같은 이름 ‘로봇’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되는데, 사자와 기린, 일본의 영어식 표기 재팬(Japan)이 그렇다 하겠다. 우리가 사자(獅子)라 부르는 고양이과의 동물은 엄밀히 이야기해서 그 영어적 이름, 라이온(Lion)과 개념이 다른 존재였다. 사자는, 불교 신화와 민간 설화에 많이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산예(狻猊), 백택(白澤) 등으로도 불리었으며 신성함과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물(神物)로 여겨져 왔다. 기린(麒麟) 역시 원래는 신령스러운 동물, 영수(靈獸)로 불리우며 신성시 여기던 상상 속 동물로 우리가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목 긴 동물 지라프(Giraffe)와 근본족으로 다른 동물이었다.

그렇게 상상 속에만 살던 사자와 기린이 현실 속 라이온과 지라프의 새 이름으로 등장한 것은 명나라의 해상 모험가 정화(靖和)의 아프리카 탐험 이후였다. 어린 시절, 침략군에 의해 거세를 당한 탓에 황제의 내시가 되어야 했던 정화는 타고난 총명함과 지혜로 영락제의 눈에 들어 대함대를 이끌고 바닷길을 개척하게 되는데, 1405년부터 16년간 3차례에 걸쳐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멀리 아프리카 소말리아, 케냐까지 다녀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정화는 황제에게 선물하기 위해 지라프(기린), 라이온(사자) 등 아프리카 동물들을 들여오거나 구전으로 그들의 존재감을 전달하게 되는데, 사자나 기린이 상상 속 동물이라 의심하지 않던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저것이 말로만 듣던 사자구나~’, ‘저 동물이 우리가 상상해 오던 그 기린이구나~’하는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의 영어식 이름 재팬도 유럽의 뱃사람들에게 전해지던 ‘황금으로 만든 나라 자퐁(Japon)’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과정 역시 기린이나 사자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로봇의 개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로봇의 경우는 작명 자체는 아직까지 100년이 되지 않았지만 그 개념만큼은 생각보다 오래되었으며 세계 여러 곳의 전설 속에서 그것들을 확인해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탈로스(Talos)라는 이름의,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인조 인간이 등장한다. 이 인조 인간은 대장간의 신 헤파이토스의 자손으로 알려진 발명가 다이달로스(Daidalos)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미궁 라비리톤스로 유명한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청동 거인 탈로스는 하루에 세번 크레타 섬 앞 바다를 돌아다니며 적의 함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적의 배가 가까이 오면 큰 바위를 집어 던지거나 스스로 빨갛게 몸을 달군 후 배를 끌어 안아 태워버렸다고 한다.

또한, 중세 유태인들 사이엔 골렘(Golem)이라는, 흙으로 만든 인조 인간이 있었다. 유대교의 율법학자 랍비가 흙으로 이들을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신성한 의식을 거쳐 반죽한 흙에 신의 주문을 쓴 양피지를 붙여 생명을 불어 넣었다고 한다. 골룸은 사람 크기에서 거대한 거인의 형상을 한 것도 있었으며, 말을 할거나 스스로 생각을 할 수는 없었지만 주인의 명령에 절대 복종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타적 존재의 인조 인간을 꿈꾸던 인간은 수많은 상상력을 확장해오는데, 그 큰 연장선에 놓인 작품이 바로 1912년 체코의 극작각 카렐 차페크(Karel Capek)가 쓴 희곡 ‘로썸의 인조인간(Rossum's Universal Robots)’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오늘날의 로봇과 같은 개념의 피조물이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체코어의 ‘강제 노동’ 혹은 ‘노예 상태’란 의미의 ‘로보타(Robota)'라고 불리어졌으나 나중 영어권으로 옮겨 오면서 로봇(Robot)이 되었던 것이다. 작품 속에서 로보타들은 아무 생각 없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다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으며 그들에게 명령만 내리는 인간들을 징벌하고 세계를 정복한다는 내용까지 등장하게 된다.

차페크의 로봇은 이후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 등에서 새로운 형태로 되만들어지고, 재탄생하며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때 맞춰 기계적 자동 장치 오토마타(Automata) 만들기에 집중하던 기계 공학자들이 현실 속의 오토마타들을 로봇으로 부르기 시작하며 오늘날의 로봇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신화 속의 사자, 기린이 라이온, 지라프의 그것을 대신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겠다.

로봇의 어원이 어찌되었건 이미 로봇은 상상 속의 그 무엇을 떠나 우리 곁에 자리 잡은지 오래다. 사자의 예전 상상력이 어찌되었건, 기린이 그것이 무엇이든 그와 아무 상관없이 그들은 동물원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뿐인 것처럼 로봇이란 단어의 기원이 어떻건 우리 삶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상상력을 부추기는 로봇의 현실적 가치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 김혁 ∙ 테마파크 기획자, 테마파크파라다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