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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도 사람도 친절하니까 좋더라변증남 KAIST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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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23  23: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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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할 때마다, 가능하면 로봇 연구가 활발한 그 나라 대학 한 두 곳을 방문하곤 하였다. 독일의 한 교수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수행하는 프로젝트의 규모가 큰 데다 곧 실용화 될 것을 확신하는 설명이 인상적이어서, 여러 질문으로 설명을 듣던 끝에, 박사과정 학생들은 어떻게 연구 주제를 정하는지도 물어보았다. 그 당시 우리 랩 학생들의 경우, 산업체 기술 개발 프로젝트 문제와 학위 논문 연구 문제를 구분하여 다루던 때다. 그 독일 교수는 “5년 정도 후에 쓰일 만한 기술을 개발하도록 지도한다”고 하였다. 돌이켜 보니, 그가 설명했던 연구 내용은 별로 기억나지 않지만 (해당 학생이 박사학위과정을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5년 뒤>에 쓰일 기술을 예측한다”는 그의 언급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다.

어느 분야든지 전문적으로 오래 일하다 보면, 향후 그 분야 기술이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에 대한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 발전의 경향을 5년 뒤 또는 10년 뒤 구체적으로 예상한다거나 목표 기술의 달성 시기를 명쾌하게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요즈음도 가끔 델파이 기법에 의한 기술 예측 설문에 참여토록 요청 받지만, 내 의견과 꽤 다른 결과물을 접하기도 하고, 권위 있는 기관이 발표하는 자료라도 가끔 실제와 큰 차이를 보인다. 내가 만난 독일 교수의 경우, 산업체에서 상당기간 근무한 경륜이 있어 그런 예지력을 갖게 됐으리라 부러워하였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기술제품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되면서, 관련 미래 기술/연구 방향에 대한 예측 보고서가 자주 눈에 띈다. 이런 자료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선 연구를 계획할 때 설득력 있는 정보로 쓸 수 있기에, 일반 연구자들은 물론 경영진 또는 투자자나 정부 관료들도 많이 활용한다. 나의 경우, 재활로봇 관련 기사나 국제학술대회 강연을 통해, 기술 그 자체보다도 로봇을 필요로 하는 사용자들의 보건, 사회, 문화적 변화 추이에 대한 각종 예측자료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인구통계적 위기(demographic crisis)를 보여주는 국가별 노령화 예측 그래프, 장애인/노약자의 증가 추세 대비 상대적 간병인의 절대수 감소 경향 자료들을 통해, 노인들을 포함하는 약자(Persons in Need)에게 독립성(Independence)을 주는 기술시스템 구축이 가까운 미래에 꼭 필요한 기술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마침, 카이스트를 중심으로 보조 로봇틱스(Assistive Robotics) 연구에 뜻을 같이하는 교수분들이 여럿 있어, 이분들과 합심하여 1999년 봄 복지로봇연구센터 설립을 신청하게 되는데, 이때 로봇 기술과 더불어 각종 기술외적 예측 자료를 써서 해당연구의 중요성과 시의성을 주장하였고 결국 이런 내용을 담은 제안서가 과학재단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한 것 같다. 여기서, 복지로봇이란 재활로봇을 위시하여 각종 보조로봇(Assistive robot)들과 의료현장이나 특수 작업장에서 쓰이는 조수로봇(assistant robot)을 포함하는, (신체적) 약자(蒻者)를 위한 로봇들을 지칭한다.

1999년 7월부터 2007년 6월까지 9년간 한국과학재단 우수연구센터로 운영된 인간친화 복지로봇시스템연구센터(Human-friendly Welfare Robotic Systems Engineering Research Center)(약칭:HWRS-ERC)에 대하여는 이미 다른 곳에서 주요 연구사업내용을 소개한 바 있으므로, 이 컬럼에서는 센터 최종보고서에 함의적으로 피력한 핵심 주장을 요약 기술하고, 짧은 기간에 좋은 경험을 많이 안겨준 보조로봇연구 커뮤니티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고 싶다. 끝에, HWRS-ERC의 로봇시스템 기증건에 대하여 보고하기로 하겠다.

먼저, 우리 로봇센터의 성격을 나타내는 <인간친화성(Human-friendliness>이란 개념은 향후 복지로봇의 범위를 뛰어 넘는 일반적 서비스로봇 구현원칙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재언(再言)한다. 원래 이 개념은 복잡한 군 무기체계 구현시 안전한 운전/운영을 담보하는 기술을 찾는 과정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으며, 기계중심적(Machine-oriented)인 설계/운영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흔히 기계시스템을 제작하고 사람이 이를 운전하자면, 전통적으로는 먼저 기계를 최적설계한 후 기계와 사람이 한 데 어우러지는 상황을 휴먼인더룹(Human-in-the loop system) 개념으로 엮어 놓고, 운전자를 훈련시켜 인간에 의한 오류요인(Human factors)이 최소화 되도록 하는 접근 방법을 쓴다. 사람이 핵심 제어동작을 수행하는 비행기 조정시스템이나 크레인 운전시스템이 전형적인 예들이다. 그러나 휠체어로봇의 경우와 같이, 운전하는 사람이 장애를 가진다면 접근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기계 형태의 로봇과 장애인 같은 약자가 상호작용을 하며 공존하는 공간일 때, 인간이 설계/운전의 중심이 되게 하면서 사용자(user)에게 가능한 한 인지적 부담(cognitive burden)이 최소로 되도록 해야 한다. 길고 어려운 운전연습과정을 간단하게 함으로써, 약자도 로봇과 같은 복잡한 기계를 원활히 다룰 수 있다. 이런 설계 방법을 <인간 친화적(Human-friendly)> 기법이라 한다. 이 개념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우리 센터에서는 각종 첨단센서와 고등추론 방법을 동원하여 인간 사용자의 신체적(physical), 행동적(behavioral), 그리고 심적(mental) 상태를 파악하면서 이 정보에 근거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였다. 더 나아가, 사용자의 기호/우려를 고려한 구조 변경도 시도하였는데, 스마트 홈 주거공간에 설치된 지능형 침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초기 버전에는 침대 옆구리(side)에 마누스 로봇팔(Manus Arm)을 장착하여, 식사나 독서 등을 서비스하도록 구현하였으나, 이 구조에 사용자가 위험을 느낀다는 지적으로 간단하고 편안해 보이는 모바일쟁반(Mobile tray)시스템으로 바꾼 것이다. 이와 같이, 장애를 가진 약자라도 독립적으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기술들을 개발해 시험해 보았으며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센터 초기부터 여러 해 동안 내내 본 과제 시연에 참여한 바 있는 척추장애인 K씨는 여러 종류의 로봇들이 협동하여 서비스하는 <지능주거공간시스템>이 쓸만하고 “친절하다“고 좋아하였다. 그렇다. 쉽게 말해, 인간친화로봇은 곧 사용자에게 친근감을 주는 친절한 로봇이다. 최근에는 <인간중심>(Human- centered)이라는 표현이 <인간친화>란 말 대신 쓰이기도 한다.

“재활로봇에 관한 한, 모든 응용은 재응용(reapplication)이어야 한다.” 재활로봇분야에서 거장으로 알려진 스탠포드대학 명예교수인 L. 라이퍼(Leifer) 박사가 한 말이다. 재활로봇에는 응용성이 검증된 결과만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신뢰도와 안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사람이 관여되는 모든 서비스로봇에 외삽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사용자나 또는 시스템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제3의 사람에게도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경우, 자동변속기(automatic transmission)가 원래 장애인을 위해 고안되었으나 이제는 모든 운전자들이 편하게 쓰고 있듯이, 장차 여러 보조로봇기술이 일반 서비스로봇에 활용되는 것은 자연적 흐름이 될 것이다. 특히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로봇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의인화된 로봇이 많이 등장하게 될 것이므로 여타 서비스로봇시스템의 경우도 인간친화적 설계 철학을 구현원칙(realization principle)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다음으로, 글 제목에 비췄듯, 보조로봇 커뮤니티 사람들이 대부분 한결같이 친절해서 좋았다는 개인적 경험담을 짧게나마 얘기하고자 한다. 1992년 수화제스쳐 인식문제를 시작으로 보조기술( Assistive Technology)분야에 입문했으나 국제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6,7년이 지난 뒤부터이다. 그동안 휠체어 로봇과 안내견 로봇 등의 개발 프로젝트를 하면서, 전에 개발해 본 산업용이나 사각보행 로봇과는 사뭇 다른 차원의 기술과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1999년, 미국 팔로 알토(Palo Alto) 에서 열린 제 6차 ICORR‘99 국제재활로봇학술대회에 논문을 제출했는데, 구두발표 논문으로는 선정되지 못하고 포스터세션 발표로 되어 망서려졌으나 참가하였다. 그런데, ICORR 학술대회의 운영 스타일이 그동안 내가 참석해본 여타 학술대회와는 사뭇 달랐다. 참석자 규모도 크지 않았지만, 모든 구두 논문 발표를 함께 듣는 공동 세션으로 진행하고, 연구자 중 장애인이 포함된 경우 발표 플랫홈에 같이 나와 있었으며, 해당되는 부분은 장애인연구자가 직접 코멘트하기도 하였다.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이 어렵게 질문하는 광경도 목격하였다. 대회 총괄책임자(General Chair)도 권위스럽지 않게 모든 안내에 친절하다. 휴식시간이나 포스터세션 시간 중 만나 얘기해본 그곳 참석자들은 그들의 연구 결과나 방법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었다. 우리 랩에서 준비한 포스터 세션 발표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보여, 발표를 한 J교수(당시 학생)는 큰 자신감을 얻는 듯하였다. 이 학술대회가 첫 참석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친근감이 들었다. 나중에 내린 결론이지만 내가 만나본 보조로봇 커뮤니티의 멤버들은 모두 친절했고 그래서 좋았다. 그 때부터 사귀어 알게 된 인물들 중에, 학술대회장이었던 반 데어 루스(Van der Loos)박사가 있는데, 그와는 그 후 수 년 동안 일본 호세(法政)대학의 고바야시(Kobayashi)교수와 함께 세 명이 <보조기술>에 관한 강의을 하기로 하여, 호세대학 학생들을 위한 공동강의를 원격으로 수행하였다. 독일 브레멘(Bremen) 대학 A. 그래저(Graeser)교수팀과는 교수 레벨의 연구 교류뿐만 아니라, 수년동안 십수명의 대학원 학생들이 한 학기씩 오가는 학생연구원 교환도 진행하였다. 프랑스 INT 대학의 M 모크타리(Mohktari)교수와도 유사한 협동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더우기 그를 통해 카나다-미국-싱가포르의 연구원/교수들과 쉽게 친한 사이가 되어 많은 국제적 친분을 맺었다. 보조기술의 선진국인 일본의 학자들과도 어렵지 않게 학술적 교류를 할 수 있었으며, 호주 UNSW대학 B. 셀로(Cellor)교수를 방문했을 때는 TV 방송기자와 인터뷰하면서 HWRS-ERC를 소개하는 기회도 가졌었다. 1999년 학회에서 만난 불가리아인 D. 스테파노프(Stefanov)박사와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2000년 초부터 수년간 HWRS-ERC연구원이 되어, Advances in Rehabilitation Robotics (Springer 2004)라는 440페이지짜리 엮음집 책을 나와 함께 펴내는 등, 많은 일을 하고 지금은 영국 미들섹스대학교(Middlesex Univ.)의 부교수가 되어 아직도 서로 연락하고 있다. 이 분야 사람들의 개방적이며 친절한 분위기 속에서, 불과 4년 뒤인 2003년에 우리는 8차 ICORR '2003 국제재활로봇학술대회를 대전에 유치하여 선진국의 보조로봇 기술과 문화에 대하여 많이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기증 이벤트(Event) 얘기로 끝맺고자 한다. HWRS-ERC를 신청할 때 10년 뒤쯤 쓰일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열심히 개발했던 여러 보조로봇기술들이 우리나라 경제/문화 여건에 아직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의 센터 연구 활동이 자립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개발된 특허기술 이전에 관한 설명회를 가져본다든지, 보조(로봇)기술에 관심을 보일만한 중소기업들을 초청하여 기술 개발을 공유하는 컨소시엄도 제안해 보고 하였으나 별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전형적인 소규모 다품종 성격에 까다로운 법/제도적 절차를 갖는 보조로봇시스템의 특성상,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복지로봇기술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형국이다. 아쉽고 유감스런 마음으로 센터 종료 국면을 맞았는데, 그 즈음 하나의 돌파구가 마련된다. HWRS-ERC의 제1 세부과제(스마트 홈 프로젝트) 연구물(각종 로봇과 주거공간 시설포함)과 연구자료들을 승계받아 관련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곳이 나타난 것이다.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NRC)로서, 2008년 11월 25일 그곳에서 기증식이 있었다. 국립재활원은 오랫동안 우리가 개발한 여러 가지 보조기술이 인간친화적으로 쓸만한 것인지 알아보는 각종 사용자 시험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주었던 곳이다. 마침, 2000년대 초기 HWRS-ERC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카이스트에서 학위를 취득한 S박사가 그 재활연구소(NRC)의 관련 사업 담당 책임자가 되어 연구를 계속하게 되었으니, 우리에게는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윈윈 이벤트(Win-Win Event) 가 되기를 기원한다. 변증남ㆍ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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