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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제어공학과 로보틱스변증남 KAIST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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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9  00: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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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시장조사 기관이 펴낸 보고서에 의하면, 로봇 보유대수에서 한국이 내년이면 세계 1위로 될 것이란다. 이 얘길 읽은 한 지인이 우리나라의 로봇 발전상을 칭찬하던 끝에, 나더러 언제부터 어떻게 로봇 연구를 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전에도 몇 번 들었던 질문이다. 특히 우리 랩/연구센터에서 수행한 로봇 관련 연구과제 중, 흥미로운 결과가 발표 될 때, 과학기술 분야 취재를 새로 시작한 신참 기자가 지나는 말로 한 번씩 던져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묻는 이의 표정 중에는, 내가 어려서부터 가졌던 꿈이 로봇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를 기대하는 듯 보이나, 번번이 실망을 안겨주는 답변을 하곤 하였다.

마침 요즈음, 우리나라의 산업과 과학기술의 여러 영역에서 한 분야가 새로 시작되거나 큰 변화를 겪고 난 초반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소개하는 복고풍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나의 옛날 로봇 얘기들을 찾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로봇”이란 말이 생소하게 들리던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우연한 기회로 참여하게 된 로봇 연구/교육 활동의 배경과 내 주변에 일어났던 상황 분위기나 연관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은 지난 2013년 6월 한국로봇학회 창립 10주년 기념 학술대회 때 발표한 “내 로봇의 의미에 대한 회고(Reflection on the meaning of my robots)"란 제목의 강연 자료를 참고하였으며, 역사적 기술이 아니기에 얘기되는 상황에 관련된 분들의 이름을 가능한대로 거명하지 않았음을 양해 바란다.

나는 학부 때 전자공학과를 다녔고, 대학원에서는 전기과 소속으로 제어공학을 전공하였다. 제어공학은 공학적 시스템을 자동적으로 운전하는데 쓰이는 제어 방법을 다루는 분야다. 학교에서는 '자동제어'라는 과목으로 대표된다. 내가 박사학위과정에서 씨름한 제어공학 문제는 최적 제어(Optimal Control)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실효성이 크지 않은, 한물간 구식 제어기법으로 간주되지만, 1970년대 초에는 꽤 인기 있는 연구주제였다. 나에게는 크게 자란 나무에 높이 달린 한참 익은 과일로 보여 따서 갖고 싶은 제어 기법이었고 그 이론의 수학적 명쾌함과 범학제적 활용가능성에 무척 매료되어 있었다. 내가 박사학위를 마쳤을 당시에는 세상만사가 대부분 제어문제로 보였고, 그런 최적 제어이론을 적용하면 많은 경우 현재보다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무엇보다도 공장의 생산 공정에 최적제어이론을 적용하면, 그 공장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였다.

부푼 포부를 안고 1977년 여름에 귀국하여 홍능에 있던 한국과학원(KAIS)에 부임하였는데, 곧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알게 된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두 번이나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달성하는 등, 경제와 산업이 활발한 분위기로 보였지만, 산학협력을 통한 R&D 환경은 매우 초보적이었다. 대기업에서는 선진 기술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우선 어떻게 하면 증명된 해외 기술을 빨리 사들여와 생산공정에 적용하느냐-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며, 많은 중소기업들은 수작업 기반으로 공장을 운영하거나 자동화를 한 경우라 해도 턴키베이스(Turn-key base)로 인수 받아 운영하는 중이었다. 처음 일 년 동안, 나는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기업체와 공장들을 부지런히 찾아 방문하였고, 자동화와 최적 제어기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산학협동을 통한 생산성향상 효과에 대하여 설득해 보았다. 실망스럽게도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자동화보다는 인력관리가 더 시급하다는 공장장도 있었고, 공장의 청소상태를 철저히 관리하였더니 생산성이 올랐다고 자랑하는 분도 있었다. 나는 그 때 퍽이나 답답한 마음이었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때가 되면, 미국이나 일본처럼 자동제어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자동화문제를 산학협동으로 함께 풀어 나가게 될 것이다-라며 여유있게 기다리는 마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 1978년 9월 중순 쯤 홍능 캠퍼스 길 건너편에 자리 잡은 과학재단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업용 로봇에 관한 프로젝트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재단측 설명에 의하면, “산업용로봇 제어시스템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프로젝트 제안서가 신청되고 승인이 났는데, 연구책임자에게 변고가 생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대행할 사람을 수소문하는 중에 나를 추천 받았다는 것이다. 제목 중에 '로봇'이라는 말이 생소하였으나, 산업용과 제어시스템이란 두 어휘에 마음이 끌려, 그 전화로 바로 “해 보겠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1978년 11월 21일부터 1980년 1월 20일까지 총연구비 3백20만원의 1년 2개월짜리 로봇 프로젝트가 성립된다.

이 전화는 나의 향후 경력에서 제어공학과 더불어 로보틱스가 주 연구 테마로 된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떤 선행 연구나 개발 실무경험도 없었던 나를 요즈음의 잣대로 판단하는 경우, 심사과정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1970년대 당시 우리 나라에 제어공학 전공자가 많지 않았기에 운 좋게 인연이 닿은 것 같다. 섣불리 덤볐다가 실패하면 져야할 명예적 책임이 매우 클것이라는 염려도 스쳤으나, 거의 즉시적으로 응한 데에는, 공학적 시스템의 제어문제라면 앞뒤 재지 말고 도전해 보고 싶은 30대 중반의 한참 젊은 공학도의 욕심이 더 컸던 것이다.

1970년대는 연구 인프라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았고 손쉽게 구해 볼 수도 없었으며, 간단한 기계적 부품도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였고, 전자제품은 청계천 상가에 가서 수시로 직접 사와야 했다. 산업용 로봇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기계과 교수님들의 협조를 얻어 리더로서 팀구성을 한 후,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하고, 정식 계약이 성립된 다음부터는 불철주야 매진하였다. 그리고 1년여의 고생 끝에, 카이젬(KAISEM)이라 명명한 산업용 로봇을 만들어 시범운전에 성공한다. 5자유도를 갖는 원통좌표형 몸통과 그립퍼 핸드를 가진 로봇머니퓰레이터로, CNC 공작기계용 피가공물의 탈부착/운반 작업을 하도록 개발된 것이다. 카이젬 개발시점보다 약 25년전인 1954년에 조지 데볼(G. Devol)이 신청하여 1961년에 취득했다는 특허의 첫 프로토타입 로봇머니퓰레이터(Digitally operated programmable robotic arm)도 이와 비슷한 정도였을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거친 기계적 외양을 하였고, 그립퍼(gripper)는 공압장치를 쓰는 등 아주 단순한 로봇이었지만, 1980년 당시 카이젬은 상당히 센세이셔널 했던 것 같다.

서울 시청 광장의 분수대를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제어했다는 것이 신문에 크게 보도될 정도였던 판국이라, 비록 모양은 상상하던 것과 다르지만, '로봇'이라는 것이 공장에서 자동화용으로 설치되어 일할 수 있다는 개념이 매스컴 기자들의 상상력을 크게 자극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1980년 초 어느 날 KBS에서 카이젬 로봇머니퓰레이터의 시험운전 모습을 취재하더니, 이를 저녁 9시 뉴스에 방영하면서, 흥분한 어조의 기자가, ‘KAIS에서 처음으로 산업용 로봇을 개발하였으며, 이제 우리나라에도 산업용 로봇 시대가 열렸다’는 식으로 소개하였다. 사실 그 당시 KIST 정밀기계센터에 화낙(FANUC)회사의 산업용 로봇이 도입되어 운용시험 중이었기에, 기자의 멘트가 다소 과장되었다는 뒷말도 있었으나, 로봇머니퓰레이터를 A서부터 Z까지 설계하고 깎고 조립하고 전자 제어장치를 만들어 연결하고 직접 프로그램하여 운영해 보는 일은 우리가 처음 해본 일이라는 점이 양해되었던 것 같다. 그 후 여러 신문에서도 카이젬을 취재하고 소개하였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끝 마치면서, 로보틱스와 제어공학이 교육적으로 서로 잘 어울리는 학문분야라고 확신하였다. 제어공학에서 전기전자회로를 포함하여 모든 동적시스템이 제어의 대상이듯이, 로보틱스는 전기, 전자, 컴퓨터, 산업공학, 재료, 바이오,디자인, 심리학, 뇌공학등 많은 학문과 융합적으로 연계한다. 나는 산업용/비산업용 로봇 연구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학교에서 각 교수에게 주는 기본 연구비를 1979년부터 11년 연속하여 로봇관련 주제에 투입할 정도로 랩의 연구 자원을 모두 로보틱스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산업용 로봇 제어에 관한 연구 결과들을 1980년에 처음으로 전기학회지와 전자공학회지에 논문으로 각각 한편씩 게재하였으며, 1984년에는 국내 학술회의에서 6편의 로봇논문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1985년에는 15th Int'l Conference on Industrial Robots(일본 도쿄) 국제 학술회의에서 두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같은 해에 첫 로봇관련 논문도 Int'ㅣ Journal on Control에 게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랩에서 1986년과 1987년에 로봇 박사가 각각 1명씩 처음 배출되었다. 한편, 나는 졸지에 로봇전문가가 되어 이곳 저곳에서 로봇을 소개하는 강의를 하였으며, 그 사이 학교에 새로 부임함 로봇 분야 교수진들과 함께 로봇 단기강좌를 개설하기도 하고, 나 자신이 1985년부터 '로봇제어'라는 대학원 과목도 강의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식으로 산업용 로봇의 활용 확산을 위한 홍보행사에 일조하려고 하였다. 마침, 80년대에 들어서서 몇몇 대기업들이 산업용 로봇의 개발과 현장 도입 활용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여러 가지 일들로, 각종 로봇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많은 산업에서 관심을 갖게 된다. 랩학생들 중에 로봇을 전공하겠다는 수가 늘고, 사회에서는 로봇박사를 꿈구는 청소년 학생들도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처럼 긍정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로봇분야가 조금씩이나마 발전하게 된 근저에, 매스컴의 역할이 매우 컸으며 큰 후원자 역할을 해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어공학과 로보틱스는 과기원 교수 경력 초기 10년 동안 나를 든든히 떠받쳐준 두 기둥이었다. 그런데, 돌이켜 볼 때 크게 반성되는 것이 있다. 나는 그 동안 내내, '로보틱스' 관련 문제를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제어공학'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 틀안에서의 해결책만 찾아보려 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학생들의 논문을 심사할 때에도 제어이론의 관점에서 공격적으로 비판하였다. 나의 이러한 좁은 시야와 고집은 우리 랩에서 진행된 여러 로봇 관련 연구 내용을 빈약하게 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발붙이는 것을 방해하였을 것이다. 10년 쯤 지난 후 국책과제로 수행한 사각보행로봇의 개발과정을 거치면서부터 나는 비로소 스스로의 약점을 깨닫고 조금씩 고쳐나가기 시작한다. 이 후 얘기는 다음 기회에 기술하기로 하겠다. 변증남ㆍ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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