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매트릭스 스틸컷

평범한 회사원 앤더슨씨. 해커계 전설인 모피어스가 파란약과 빨간약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파란약은 꿈에서 깨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고, 빨간약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실체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호기심에 이끌려 빨간약을 집어 든 그는 가상현실의 매트릭스를 떠나 세계를 구원할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다.

워낙 유명한 영화였으니, 다들 알 것이다. 그렇다. 이번호에 다시보기 할 영화는 매트릭스다. 이 영화는 1999년에 발표했으니, 올해로 16년이다. 16년이나 지나 난데없이 흘러간 옛 영화를 다시보기 하는 것은, 이제 곧 로봇 페퍼(Pepper)가 출시되기 때문이다. 감정인식 로봇, 개인용 로봇, 서비스 로봇 등. 단돈 200만 원대의 성인 크기 로봇 페퍼를 정의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필자는 페퍼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기능은 단연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투리가 심한 할머니의 수발을 들게 된 페퍼. 어느 날 할머니가 '가새'를 찾는다. 페퍼는 도무지 가새가 뭔지 모르겠다. 가재? 가게? 가지? 가시? 가위?... 가위!! 할머니 말을 알아듣기 위해 자기가 아는 온갖 단어를 갖다 대던 실행착오 끝에 가새는 가위를 의미하는 사투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할머니께 가위를 가져다 드리고, 이 정보를 자신과 연결된 클라우드에 저장한다. 그와 동시에 300Km 떨어진 동네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페퍼에게 “가새를 가져오렴.”이라고 한다. 이번 페퍼는 단박에 ‘가위’를 대령한다. 수많은 곳에 흩어진 페퍼들 중 하나가 정보를 수집하고 나면, 다음 순간부터 모든 페퍼들이 동시에 그 정보를 나눠 쓸 수 있는 기술. 이것이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매트릭스와 클라우드 컴퓨팅 개념

그럼 왜 클라우드 컴퓨팅을 말하면서 영화 매트릭스를 언급하느냐고? 네오가 된 앤더슨씨(키아누 리브스)를 스미스요원(휴고 위빙)이 쫓는 장면을 다시 보자. 어딘지 모를 골목을 돌아, 네오는 스미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간다. 아슬아슬하게 따돌렸다 싶었는데, 길거리에 누워있던 노숙자가 네오가 달려가는 것을 목격한다. 다음 순간 그 노숙자가 스미스 요원으로 변해 네오를 뒤쫓기 시작한다. 비슷한 장면은 매트릭스 시리즈1,2,3 내내 계속해서 반복된다.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해서 도망치는 트리니티. 그녀가 간신히 요원들이 탄 차를 따돌리는가 싶었는데, 바로 옆 차선의 트럭운전사가 요원으로 변신해 공격한다. 이게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원리다.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페퍼들이 그들 중 단 한 대라도 정보를 수집하고 나면, 동시에 그 정보를 공유한다. 이렇게 볼 수도 있다. 당신이 1번 방에서 페퍼A와 함께 일을 하다가, 다 마치지 못하고 중단한다. 그리고 그 방에 페퍼A를 그대로 남겨두고 2번 방으로 이동한다. 2번 방에서 당신은 그곳에 머물던 페퍼B와 함께 마치지 못했던 일을 마저 수행한다. 전혀 다른 두 대의 페퍼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당신과 함께 일했던 페퍼A가 그 정보를 클라우드 컴퓨터에 저장했고, 한번 저장된 정보를 페퍼B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페퍼 A는 페퍼B이다. 나아가 동시에 페퍼 C이기도 하고 D,E,F… X,Y,Z이기도 한 것이다. 이 순간 당신은 네오, 페퍼는 스미스 요원이다. 놀랍지 않은가? 1999년 영화에 클라우드 컴퓨팅 개념이 존재한다.

▲ 영화 매트릭스 스틸컷

기술의 진보와 부작용 대처법

클라우드 컴퓨팅이 옳게 사용되면 인간의 생활이 크게 향상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당신의 모든 것이 당신을 따라다닌다. 하지만 기술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듯이 나쁜 용도로 쓰이면, 그것보다 위험한 것이 없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당신을 공격하기 위해 악착같이 따라붙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의 정보는 빅데이터의 일부가 되어 대형업체들에게 제공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당신에게 완벽한 '맞춤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당신은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기술의 진보는 막을 수 없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인류가 기술에 잡아먹힌 적도 없다. 아직까지는! 왜냐하면 인류는 기술이 진보할 때마다, 그것이 불러오는(또는 불러올 수 있을 만한) 온갖 종류의 부작용들을 제어할 ‘인문학-법, 규범, 규칙, 문화 등’을 동시에 찾아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컴퓨팅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불러올지도 모를 폐해가 두렵다면, 이제 우리 당장, 그것을 제어할 방법을 모색해보자.▒

* 본 기사는 '월간로봇'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표기는 '월간로봇'의 규정에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