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사선에서 분리되어 혜성 67P에 낙하하고 있는 로봇 필레의 상상도.<사진 출처 : JPL(Jet Propulsion Laboratory/http://www.jpl.nasa.gov)>

옛 소련이 만든 조종형 로봇 루노호트(Lunokhod/1970년)가 달 표면을 돌아다닌 것을 시작으로 로봇은 인간을 대신한 불굴의 탐험가로서 화성, 목성의 위성, 소행성 등을 누벼왔다. 때로는 발사 도중 망가지거나 착륙에 실패하여 오랜 시간의 노력이 허망하게 좌절될 때도 있었지만 로봇들의 도전은 포기를 몰랐고 최근 연이어 큐리오시티(2012년/미국)와 옥토끼(2013년/중국)가 각각 화성과 달에 안착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11월, 탐사로봇 필레(Philae)가 총알보다 빠른 혜성 위로 몸을 날렸다.

필레가 혜성으로 간 까닭은?
혜성은 약 46억 년 전 태양계가 탄생될 때 함께 생겨난 부스러기들이다. 그렇기에 많은 과학자들은 지구 생명 기원의 정보들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한 탐사를 위해 유럽우주기구(ESA, The European Space Agency)는 5억 950만km 떨어진 혜성으로 탐사선 로제타(Rosetta)를 발사했다. 그러나 그곳은 10년 이상을 비행해야하는 장거리 여행이며 아직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혜성의 민낯은 인간이 선뜻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생명 기원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필레가 대신 그곳으로 향한 것이다.

▲ 탐사로봇 필레가 첫 발을 디딘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자료 출처 - 유럽우주기구(ESA) http://www.esa.int/ESA>

발사된 총알 위에 올라타라!
필레가 탐사할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이하 혜성 67P)는 중력이 지구의 10만분의 1인 탓에 지구의 100kg 쇳덩이도 그곳에선 클립 한 조각만큼 가벼워진다. 따라서 조금만 크게 움직여도 곧바로 혜성에서 떨어져 나가 우주의 미아가 되어버리는 위험천만한 상황. 게다가 혜성 67P는 초속 18km의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12시간에 한 바퀴씩 자전하고 있다. 필레의 혜성 착륙은 그야말로 날아가는 총알 위에 모래 한 톨을 올려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의 상륙작전인 것! 로제타 탐사선이 중력가속을 통해 혜성 67P를 따라잡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니 올라타는 것은 온전히 필레의 몫이었다. 이윽고 탐사선에서 보내온 정보를 분석해 아잘키아라는 곳으로 착륙 장소가 결정된 순간 필레는 추진장치(Thruster)와 고정장치인 작살(Harpoon)만을 의지한 채 과감히 몸을 날렸다.

극적인 터치다운
22.5km 높이에서 분리된 필레는 빠르게 혜성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추진 장치가 말썽을 부리고 만다. 그로인해 오로지 혜성의 중력에만 의존하여 천천히 내려앉아야 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7시간의 낙하 후에 더 큰 위기를 만나고 말았다. 무중력에 가까운 혜성 67P에 필레를 고정해야 할 작살이 발사되지 않아 두 번씩이나 튕겨진 것이다. 착륙은 그렇게 실패로 끝나버리는 듯 했다. 그러나 필레는 최초 목표지점에서 1km 떨어진 곳까지 흘러가 절벽 아래 그늘진 곳에 간신히 자리 잡았다. 이후 랜딩기어의 스크루를 통해 혜성에 고정을 시도했지만 워낙 울퉁불퉁한 곳에 위치한 탓에 그 고정 여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천신만고 끝에 탐사로봇 필레는 지구로 성공적으로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필레의 탐사 성과
필레는 로제타에서 분리된 후부터 혜성에 도착할 때까지 파노라마 카메라인 시바(CIVA)를 이용해 혜성의 모습을 촬영해 지구로 보내왔으며 도착 후에는 근접 카메라 롤리스(ROLIS)를 활용해 계속 촬영을 이어나갔다. 뿐만 아니라 필레의 발끝으로 혜성에 파고들어 토양을 탐사하는 장치 뮤퍼스(MUPUS)와 레이더를 이용한 탐지기인 콘서트(CONSERT)는 필레가 착륙한 지점의 표면 온도가 섭씨 -153도이며 혜성의 표피층은 10~20cm 두께의 먼지로 구성돼 있고, 그 아래는 단단한 얼음과 먼지 혼합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드릴을 이용해 23cm 깊이를 탐사하는 장치인 SD2의 성공 여부는 아직 전해지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성분 분석기인 프톨레마이오스(PTOLEMY)나 코삭(COSAC)의 분석 데이터는 받지 못했지만 예정되어 있던 실험의 80% 가량은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유럽우주기구의 연구팀장인 이안 라이트 영국개방대학 교수는 필레가 혜성 67P의 복잡한 구조의 탄소화합물을 검출했으며, 그것이 단백질의 구성요소인 아미노산처럼 복잡한 종류인지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큰 과학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1차 임무를 마친 뒤 기약 없는 동면 속으로
필레가 자리 잡은 곳은 혜성의 하루인 12시간 중 1시간 30분 정도만 햇볕이 드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늘진 곳에 떨어진 것은 치명적이었다. 왜냐하면 계획대로 태양광 패널로 배터리를 충전할 수가 없었고 이로 인해 배터리가 방전되어 대기 모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대기 모드로 전환되기 전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몸체를 35도 회전시키긴 했지만 아무래도 충전을 통해 연결이 복구될 때까지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혜성 67P가 점차 태양에 가까워짐에 따라 표면에서 가스와 먼지를 분출하게 되는데 랜딩기어의 스크루가 제대로 고정돼 있지 않다면 튕겨져 나갈 위험마저 있다. 이렇듯 필레는 불안한 상황 속에 기약 없이 잠에 빠져들었지만 로제타 탐사선은 앞으로 1년가량 혜성 67P를 따라다니며 변화를 관찰하여 계속 정보를 보내올 예정이다.

필레 이후의 세계
이번 성공을 계기로 각 나라의 우주 탐사 경쟁은 지난 냉전시대 이후 다시 한 번 불붙을 전망이다. 그러나 그 탐사의 대상이 어디든 간에 인간의 직접적인 탐사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우주는 사실 위험천만한 고에너지 미립자들과 방사선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중력, 거리 등의 수많은 물리적인 요인, 정신적인 요인 등도 극복해야 한다. 때문에 목적이 탐사가 아닌 거주나 여행인 날이 오기 전까지 인간을 대신할 탐사로봇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 분명하다.

▲ 필레의 구성(자료출처-유럽우주기구(ESA)

필레의 탐사 장비

1. APXS (Alpha Proton X-ray Spectrometer) : 알파 양자 X선 분광기. 착륙지점의 화학적 조성을 조사하고 혜성이 태양으로 다가갈 때 변화를 관찰한다.

▲ 시바 카메라 모듈 <자료 출처 - 유럽우주기구(ESA) http://www.esa.int/ESA>

2. 시바 (CIVA/Comet Infrared and Visible Analyser) : 혜성의 표면과 SD2 시스템에 의해 제공되는 샘플을 관찰하기 위한 통합 영상 장비 세트. CIVA-M 적외선 현미경이며, CIVA-P는 360도 파노라마 사진을 촬영하는 카메라이다.

▲ 시바가 촬영한 혜성 67P<자료 출처 - 유럽우주기구(ESA) http://www.esa.int/ESA>

3. 롤리스 (ROLIS/Rosetta Lander Imaging System) : 소형 CCD 카메라, 디지털 카메라로 구성된 필레의 사진촬영 시스템으로써 혜성에 도착 후에는 30cm 거리에 초점을 맞춰 착륙장소 주변을 근접 촬영한다.

▲ 롤리스가 촬영한 혜성 67P<자료 출처 - 유럽우주기구(ESA) http://www.esa.int/ESA>

4. 콘서트 (CONSERT/Comet Nucleus Sounding) : 무선파 전송을 통해 혜성의 핵 내부구조를 알아내는 일종의 레이더로써 로제타 탐사선과의 거리를 측정하여 서로 간의 위치를 파악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 뮤퍼스 <자료 출처 - 유럽우주기구(ESA) http://www.esa.int/ESA>

5. 코삭(COSAC/CometarySampling and Composition experiment) : 혜성의 표본을 채취해 토양성분의 구성을 알아내는 성분 실험기이다.

6. 프톨레마이오스 (MODULUS PTOLEMY/Evolved Gas Analyser) : CASE라는 특수 오븐이 포함된 분석 장치로 혜성의 흙을 넣어 열을 가한 뒤 그 속에 들어있는 수소, 탄소, 질소, 산소의 비율을 측정하고 코삭을 이용해 얻은 데이터와 비교하게 된다.

7. 뮤퍼스(MUPUS/Multi-Purpose Sensor for Surface and Subsurface Science) : 혜성 표면의 밀도, 온도, 물리적 특징을 조사하는 다목적 센서

8. 로맵 (ROMAP/RoLand Magnetometer and Plasma Monitor) : 혜성의 자기장 및 플라즈마 환경을 조사한다.

▲ 로맵 <자료 출처 - 유럽우주기구(ESA) http://www.esa.int/ESA>

9. SD2 (Sample and Distribution Device) : 혜성에 구멍을 뚫고 토양 샘플을 코삭으로 전달해 주는 드릴이다. 23cm 깊이까지 파낼 수 있다.

10. 세서미 (SESAME/Surface Electrical Sounding and Acoustic Monitoring Experiment) : 전기를 이용한 표면 깊이 측정 기기로써 혜성의 기계적이고 전기적인 변화 요소들을 파악한다.

그 밖의 장치

1. 작살 (harpoon) : 필레의 아랫부분에 위치한 2개의 작살은 혜성 표면에 필레의 몸체를 고정시켜주는 닻의 역할을 한다.

2.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Solar Panels & Battery) : 필레에는 로제타 탐사선으로부터 분리 후 60시간가량 사용할 수 있는 자체 배터리가 내장되어 있으며 이후 몸체를 둘러싼 태양광 패널로부터 에너지를 생산하여 작동한다.

▲ 세서미 <자료 출처 - 유럽우주기구(ESA) http://www.esa.int/ESA>

3. 추진장치 (Thruster) : 질소 가스를 발사해 그 힘으로 필레가 표면에 안착하도록 도와주는 역할. 그러나 실제 착륙 시에는 질소 가스 탱크의 봉인을 푸는 핀이 작동하지 않아 동작하지 않았다고 한다.

▲ 작살 발사 상상도 <출처 - httpwww.bisbos.com>

4. 랜딩기어(Landing Gear) : 필레가 착륙할 때 동체를 받치는 장치로 몸체에 전해지는 진동과 충격을 완화시키고 어떤 경사면에서라도 필레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 착륙 시뮬레이션 장면 <자료 출처 - 유럽우주기구(ESA) http://www.esa.int/ESA>

* 본 기사는 '월간로봇'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표기는 '월간로봇'의 규정에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