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올린 '메이저리그의 로봇, 감동을 시구하다' 이후 재미있고 의미있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질문의 요지는 "시구를 한 그것(로봇 혹은 기계)을 과연 로봇이라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질문의 의미는 커다란 차이를 보여준다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던 아톰 같은, 영화 '스타워즈' 속 C3PO 같은 인간형의 로봇이 아니지 않느냐,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바퀴에 의존해 쫄쫄쫄 이동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나마 로봇다운 데라고는 삐죽하게 튀어 나온 팔 하나 뿐인데 그걸 왜 로봇이라 부르느냐는 시각적 차원에서, 광통신망을 통한 정보 전달 체계로 원격 조종이 가능한 기계 메커니즘에 불과한데 그것을 어떻게 로봇으로 호칭하느냐는 본질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질문은 폭 넓은 스펙트럼으로 다가왔다.

로봇 투수로 궁금증을 이끌어 내기에 로봇 투수로 답을 한다면서 이이제이(以夷制夷)라 자칭하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무리수가 되는 것일까? 말 그대로 로봇 투수 이야기로 그 답을 정리해 볼까 한다.

이번, 몸 아픈 소년 르그랜드의 동작 데이터를 원격 전송 받아 시구를 해 많은 감동을 안겨 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콜리시움 구장의 시구 로봇 텔레로보틱 피칭 머신(Telerobotic Pitching Machine) 이전, 메이저 리그에는 S-3와 필리봇(Philliebot)이라는 2 종의 시구 로봇이 등장했었는데, 그 때도 미국 사회 내에서는 과연 그것이 로봇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S3 로봇

2005년 6월 12일 메이저 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홈 구장, 볼티모어 오리올즈와의 시합 직전 시구자로 등장한 S-3는 기록상 메이저 리그 최초의 시구 로봇이지만 그야말로 좀 커다란 RC 탱크를 닮은, 바퀴 달린 피칭 머쉰의 외형에 시구 성적마저 썩 좋지 못해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2011년 4월 20일 미국 과학의 날을 맞아 나름 큰 이벤트로 준비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밀워키 부루어스와의 경기 시구자로 등장한 시구 로봇 필리봇은 나름 깊은 인상을 주며 로봇의 존재감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열성적인 팬을 가지고 있는 팀 중의 하나인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인기있는 마스코트 퍼내틱(Phanatic)의 요란한 퍼포먼스로도 유명한데, 2011년 과학의 날을 맞아 로봇이 시구를 하고 퍼내틱이 포구를 하는 이벤트를 준비했던 것이다. 로봇의 이름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로봇의 합성어 필리봇(Philliebot). 철저하게 계산된 홍보와 팬 써비스기획으로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한 눈에 세그웨이를 응용해 제작했음을 알 수 있었던 시구 로봇 필리봇은 펜실베니아 대학의 두 과학자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전날 마이너 리그 경기의 시구자로 시구 테스트를 마친 다음 메이저 리그에 정식 데뷔할 수 있었다. 혹시나 모르는 사고를 대비한 구단 측의 요청으로 시속 40마일, 약 64km의 초저속구를 던지는데 그쳤지만 이 신기한 볼거리를 두고 많은 관중 특히, 어린이 팬들은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보내 주었다.
필리봇의 시구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왜 로봇이라 부르는지 의문을 가졌었다고 한다. 투수를 대신해 공을 던져 주는 피칭 머쉰은 이미 1950년대부터 활성화되었으며 동전만 준비한다면 유원지나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와 똑 같은 구조 혹은 비슷한 기능을 가진 기계를 두고, 바퀴를 달아 이동할 수 있다는 점만 달라 보이는데 왜 이것을 피칭 머쉰이 아니라 로봇 피처라 부르냐는 것이었다.

로봇을 규정하고 로봇의 경계를 설정하는 데는 많은 이론과 가설이 있지만 지능을 갖춘 로봇을 규정하는 데는 P-C-M으로 부르는 핵심 요소가 있다. P-C-M은 각기, 지각과 자각을 의미하는 퍼셉션(Perception), 인지, 지각, 문제해결, 기억, 사고, 언어능력, 운동제어 등 지적 기능의 총칭이라 할 커그니션(Cognition), 조종, 조작을 뜻하는 매니퓰레이션(Manipulation)의 머릿 글자들로 인지(Sensing), 지능(Intelligence), 동작(Motion)의 세 단계로 쉽게 풀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일반적인 조작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 장치에 반해 로봇이 어떻게 움직이고 작동하는 지를 설명해주는 기본 개념으로, 정보를 받아 들이고, 판단하고, 그 판단에 맞춰 움직이는 과정과 구조를 의미한다 하겠다.

▲필리봇

반쯤 농담으로 냉장고는 로봇이지만 자동차는 로봇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가격뿐 아니라 복잡한 기계 장치로 따진다면 자동차는 냉장고에 비해 수십배, 수백배의 고급 장비. 그렇지만 인간의 운전에 의해 가고 서는 작동만 하는 자동차에 비해 스스로 냉장고 내외부 온도를 감지하고(인지), 판단해서(지능), 팬을 돌려(작동) 냉장고 온도를 유지하는 냉장고는 로봇의 그것과 같다는 것이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지어낸 말이니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로봇의 개념을 생각한다면 나름 의미가 있는 설명이라 하겠다. 여기에서 시구 로봇 필리봇이 왜 로봇인가에 관한 답이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공을 던지는 기능만으로 봤을 때 필리봇은 피칭 머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기능적으로 떨어진다 할 것이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읽을 뿐 아니라 미리 입력된 상대방 타자의 정보를 인지하고 카메라로 촬영된 타자의 예비 동작까지 감지해서 분석하고 거기에 맞춰 적절한 공을 결정해 던진 필리봇은 인지-지능-작동이라는 지능형 로봇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다. 2005년 등장한 바퀴 달린 피칭 머쉰 S-3도 그와 같은 기본적인 로봇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에 최초의 로봇 시구로 기록되었던 것이다.

복잡한 세상, 로봇인지 기계인지, 로봇 피쳐인지 바퀴 달린 피칭 머신인지 구분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출발이 있고 원점이 있다 생각한다면, 그들이 있어 발전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하겠다.

먼 훗날의 야구장, 최동원, 류현진을 쏙 빼닮은 로봇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포수 싸인을 주고 받은 후 멋지게 공을 던지며 삼진 아웃을 잡는 그 날을 상상해 본다면 지금 이 하찮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초저속구의 로봇들이 바로 그 시작이구나 출발점이구나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겠다. ▒ 김혁 ∙ 테마파크 기획자, 테마파크파라다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