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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수 로봇융합포럼 의장 / KAIST 기계공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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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24  04: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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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 능가할 분야는 로봇 뿐"

자동차 디자이너 접고 촉망받는 로봇공학자로 '전향'

감성 인터페이스 방식의 세계적인 HRI 분야 성과 내놓을

대기업-중소기업 역할 분담하는 로봇산업 생태계 조성 추진

권동수(55) KAIST 교수. 그가 요즘 미디어의 스폿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로봇융합포럼 신임의장에 선임된 일이고 또 하나는 그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수술로봇 프로젝트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지난 지난 18일 대전에 있는 KAIST 인간-로봇 상호작용 핵심연구센터 소장실을 찾았다.

연구 분야와 진행중인 과제가 참 많아요.
제가 연구하는 분야가 크게 3가지 입니다. 학생들도 3개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고요. 그 가운데 가장 큰 그룹이 인간-로봇 상호작용(HRI : Human-Robot Interaction) 분야입니다. 사람과 로봇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의사표시하며 이해하고 표현할 것인가에 관한 연구죠. 다음이 의료로봇(Medical Robot) 그룹입니다. 의료로봇에 대한 저희 연구소(랩)의 철학은 환자들을 최소침습(Minimum Invasion), 즉 ‘어떻게 흉터(자국)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술(로봇)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입니다. 마찬가지로 의사에게도 굉장히 편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줘야 겠지요. 열 몇 시간씩 서있는데 수술 부위가 작아 손 떨림이 생기면 의사가 굉장히 힘들거든요. 이런걸 다 감안하려면 로봇이 지능을 가져야 합니다. 세번째는 로봇이 물건을 잡을 때 느껴지는 촉감을 로봇을 조종하는 이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를 연구하는 햅틱스(Haptics) 그룹입니다.

HRI 분야 연구는 KAIST가 국내에서 가장 앞서고 있지요?
세계적으로 이 분야의 연구주제는 HRI 인터페이스와 디바이스를 고안하는 것부터 시작됐습니다. 가령 필요한 기능(Function)을 어떻게 로봇이나 핸드폰에 구현할 것인가, 핸드폰이라면 어떻게 그 작은 공간에 그런 기능을 집어 넣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었죠. 다음엔 내추럴(Natural) 인터페이스에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학습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물건을 만져서 쓰듯이 로봇을 제어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TV 리모콘은 절대 내추럴하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손을 흔들면 알아 듣고 요즘 스마트폰처럼 자연스러운 모션으로 제어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로봇에서도 구현하기 위해 연구하는 거죠.

저희 랩은 그 다음단계를 지향하고 있어요. 감성 인터페이스(Affective Interface & Interaction)입니다. 앞으로는 로봇이 주인의 기분이나 사정을 파악하고 사랑하는 감정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주인의 눈치를 보고 ‘아! 오늘은 외로운가 보구나’ 또는 ‘화가 나 있구나’를 알아채고 거기에 따라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핸드폰의 예를 들어보죠. 지금 회의 중인데 소리가 울리면 안되잖아요. 설령 전원을 꺼놓지 않았더라도, 그래서 실수로 전화가 걸려왔다 하더라도, 눈치를 보고 회의 중이라는 느낌이 들면 자동으로 바꾸어 놓는 거죠. 로봇도 그렇게 제어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 수술로봇 연구과제를 맡고 있는 메디컬그룹 학생들과 함께하는 권동수 교수. 그는 현대 공학에서 스승과 제자는 동등한 연구자의 관계라고 강조한다.
어떤 기술을 근거로 로봇이 그렇게 판단하게 될까요.

로봇이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데이터를 축적해서 그 사람에 대한 유저 모델을 만드는 겁니다. 이 사람은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에 출근을 하더라, 또 내비게이션을 연동한다면 몇 시에 어느 코스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 그런 것을 미리 알게 하는 거죠. 또 실시간 교통상황 정보를 활용한다면 ‘지금 A코스는 붐비니까 B코스가 좋습니다’ 정도의 대응이 가능하게 됩니다. 로봇이 그렇게 변해야 되는 거죠., 햅틱스도 그런 분야의 하나이고요.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어느 수준입니까?
우리나 세계나 비슷합니다. 아직까지 이런 분야에서는 똑 부러진 연구결과가 별로 없어요. 이제부터 주목할만한 기술을 내놓는 게 우리 랩의 목표죠. 8월 경주에서 열리는 ‘IEEE RO-MAN 2013’ 국제학술대회 때 제가 플리너리 토크(Plenary Talk)를 하나 맡았는데 그때 로봇과 인간의 감성적 교감에 대한 저희의 연구 성과들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리라고 봅니다.

대학원에서는 유체역학을 공부했던데요.
원래는 대학(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하고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특히 에어로 다이내믹(Aero Dynamic)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원(KAIST 기계공학과)에 갔는데 당시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디자인에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니었고 다자이너도 없었어요. 논문으로만 접할 수 있는 분야였죠. 때마침 유체역학 전공하시는 교수님이 계셔서 그분 지도로 난류(Turbulent Flow) 분야를 연구하게 됐어요. 그러면 에어로 다이내믹 디자인에 도움이 되거든요.

이력을 보니 석사 마치고 광림기계라는 기업에 재직했던 경력이 나오 던데…
저는 좀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KAIST에서 석사학위를 마치면 병역특례를 줬는데, 군대 가는 대신 학교나 산업체, 연구소를 정하여 3년간 의무 근무하는 제도죠. 그때가 1982년, 정말 호시절이었어요. 석사학위만으로도 교수로 갔고 대기업에서는 20~30명씩 보내 달라는데 지원하는 사람은 1~2명밖에 안될 정도였죠. 연구소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저는 유압크레인을 만드는 광림기계라는 중소기업을 택했어요. 석사 때부터 그곳에서 영문 매뉴얼 번역아르바이트와 유압기계에 대한 컨설팅을 했어요. 그러다가 광림 쪽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저는 그때 기왕 고생할거면 조그만 데 가서 내가 해보고 싶은 것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과장 직함을 받고 갔지요. 그때 광림기계 직원은 모두 14명이었는데, 대졸 출신이 사장과 부장 그리고 저 3명뿐이었어요.

▲인간-로봇 상호작용 핵심연구센터에서
의외의 선택이었네요. 거기서 무슨 일을 했어요?

그때 광림기계는 세계적 유압크레인 회사인 스웨덴의 히아브(hiab) 한국 에이전트를 하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그 회사와의 조인트벤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어요. 제가 한번 해보자고 했죠. 그런데 제가 병역특례자로서 중소기업을 근무지로 선택할 수가 없잖아요. 대기업에서도 몇 십 명씩을 보내달라고 해도 1~2명 밖에 안가는 데, 3명밖에 없는 회사에 병역특례자를 달라하니 말이 안 되는 거였죠 그래서 광림 측에서 과학기술부에 “우리에게도 병역특례자를 보내 주세요” 라는 탄원서를 냈어요. 저 역시 가 볼만한 곳이라고 했고요, 그러니 과기부가 안 보낼 이유가 없었지요. 아마 그런 사례는 제가 처음으로 만들었지 않나 싶어요. 가서 재무만 빼고 안 해본 일이 없어요. 기획과 기술, 설계에서부터 영업과 수출입, 애프터서비스까지요. 히아브하고 조인트벤처 해서 공장을 2번이나 지었어요. 그때는 정말 신나고 재미있었지요 그런 결과인지, 3년 반 후 그만둘 때 광림은 직원이 250명이나 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벤처기업이었던 거예요.

친구들은 대부분 학교나 연구소에 가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그랬을 텐데, 걱정이 안되던가요?
걱정은 되죠. 그런데 그보다는 한 2년쯤 지나서 회사의 사업규모가 커지니 제 자신의 역량에 한계를 느끼게 되는 거예요. 좀 더 많이 알았더라면 일을 더 크게 벌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죠. 경영이나 관리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고요. 한편으로는 사업이 계속 확장되고 공장을 짓다 보니 효율적인 공장 레이아웃, 그러니까 효과적인 공장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당시는 우리나라에 자동화 바람이 불 때였습니다. 이게 앞으로 우리나라 산업발전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유학을 떠나게 되는군요.
자동차 디자이너에서 FMS(Flexible Manufacturing System)에 대한 공부로 꿈을 바꾸었어요. 그 분야를 공부할 곳을 찾다 보니 조지아공과대학교가 눈에 들어와요. 거기에 FMS 과정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전액 장학금을 받고 가서보니 그게 석사 과정인 거예요. 고민하고 있었는데 저를 조지아공과대학으로 인도해주신 지도교수님이 때마침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과제 하나를 땄는데 그걸 해보라는 겁니다. 스페이스셔틀(Space Shuttle, 유인우주선)에 붙어있는 긴 로봇팔(Long-reach Arm)을 어떻게 제어하면 좋을 것인가 하는 과제였어요. FMS 과정에서 산업 공학적인 모델링을 하는 것 보다는 훨씬 재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결국 그걸로 91년 박사학위를 받고 로봇공학자의 길로 나선거지요.

오크리지국립연구소는 어떻게 가게 됐나요?
당시 한국에서 조지아공과대학에 10여명이 함께 유학을 갔는데 대부분 학위 마치고 귀국을 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전 광림기계에서의 경험도 있고 해서 더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어요. 미국회사나 연구소에 관심이 있었어요, 포드자동차하고 얘기가 있었고 벤처기업에도 관심이 있어 인터뷰를 했고요. NASA에서도 박사후과정(Post-doc)하러 오라고 했지만 오크리지국립연구소(ORNL)를 택했습니다. 미국의 국립연구소가 대부분 그러했듯 거기서도 원자폭탄 만들었는데, 이때 핵폐기물을 탱크에 담아 땅에 묻었어요. 그런데 탱크 수명이 50년이에요. 당시 미국 에너지부(DOE) 예산 가운데 3분의 1이 핵폐기물 처리에 쓰일 만큼 큰 문제였어요. 그 와중에 DOE의 로봇 관련 예산이 갑자기 늘기 시작합니다. 탱크 속의 핵폐기물을 분해해서 끄집어 내는 일을 사람이 아니라 원격 조종 로봇을 투입하겠다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탱크 길이가 50m 정도이니 팔 길이만 최소 30m인 거대한 로봇이 필요해요. 그걸 저는 스페이스셔틀 제어로봇 연구할 때 해봤잖아요! 결국 제가 오크리지를 택한 게 아니라, 오크리지가 저의 전문성을 선택한 셈이죠.

▲ 권동수 교수가 미세수술로봇 개발에 성공한 것을 알리는 1999년 한 신문 보도
귀국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요?

오크리지연구소는 근무조건이 좋았어요. NASA보다 연봉이 1만 달러나 많았고 정식 연구원 자격이었어요, 또 그때까지 외국인 연구원은 제가 처음이었대요. 플로토늄 추출 같은 일을 하는 곳이었으니까요. 3년쯤 지나니 볼 것 다보고 배울 것 다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 귀국을 준비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미국인 동료들이 왜 그런 위험한 곳에 돌아가려 하냐고 그래요. 그때가 삼풍백화점 무너지고 성수대교 내려 앉았을 때거든요. 미국인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너희에게 미국이 제일 살기 좋은 나라인 것처럼 나 역시 우리나라가 제일 살기 좋은 나라다, 미국에 있으면 평생 연구원으로 편하게 살수 있을진 몰라도 한국에서처럼 내가 하고 싶은 더 큰 일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거려요. 저희 아이들 3명이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아이들한테도 역시 미국에 남는 것 꿈도 꾸지 말라, 그랬거든요.

더 큰 일요?
이를 테면 정부의 로봇정책에 관여할 수도 있겠지요, 그때는 다만 어디를 가느냐가 관건이었어요. 여러 곳에서 제안이 있었는데, 때마침 KAIST에서 우수한 학생들과 같이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어요. 그게 1995년입니다. KAIST에서 저의 전공 그러니까, 원격 조정하는 로봇을 연구하고 설계하는 것을 의료 분야에 적용해 보기로 한 거죠. 그때는 다빈치시스템이 나오기 전이고 미국에서도 스탠포드대학연구소(SRI)가 국방부의 펀딩을 받아 막 데모를 하니마니 그럴 때였죠. 그때 제가 KAIST 조교수 자격으로 정부에 원격수술용 로봇과제를 제안을 했고 덥석 채택이 됐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첫 시도였죠. 1999년에 연구성과물을 데모했더니 KBS 9시 뉴스에 나와요. 그래서 제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니까 교수님의 연구분야가 수술 로봇에서 부터 시작돼 HRI분야로 확대된 거군요.
수술로봇이 티슈를 자르고 하려니 햅틱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죠. 원격지에서 로봇으로 물건을 집으려면 잘 느껴야 하거든요. 그래서 별도로 햅틱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햅틱 기술로 로봇과 피지컬한 상호작용을 하는 거죠. 그러던 중 삼성에서 햅틱폰을 내놓으면서 햅틱기술이 큰 이슈가 됐어요. 그게 2003년이죠. 그런데 이걸 모달리티(Modality, 감각 인상의 유형)를 더 넓히면 사람과 로봇이 말로도 커뮤니케이션 하고, 제스처나 감성 표현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죠. 그래서 국내에서도 HRI 연구를 하자고 주장해서 프론티어 과제에 HRI분야가 포함된 겁니다. 이곳의 인간-로봇 상호작용 핵심연구센터는 그때 만들어졌어요.

새 정부가 로봇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을 때 로봇융합포럼의장을 맡게 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포럼을 이끌 계획인가요.
제가 의장 취임사 하면서 포럼 캐치프레이즈 같은 것을 만들어봤어요. 첫째 사람의 마음을 융합하는 장을 만들겠다, 둘째 로봇인들을 융합하는 장을 만들겠다, 셋째 기술을 융합하는 장을 만들겠다, 넷째 로봇비즈니스를 융합하는 장을 마련하겠다, 그랬죠. 우리나라 정책은 어느 분야든 톱 다운이 많아요. 포럼이란 게 로마시대 때부터의 정의가 자기의견을 얘기하고 그걸 토론하게 하는 장이잖아요. 로봇비즈니스가 제대로 되려면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있어야죠. 나온 의견을 그대로 전달하고 정책 입안자가 그것을 듣기만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의견이라는 게 도출되는 과정에서 이견도 생기고, 다듬어지기도 해서 컨센서스가 되면 자연스럽게 힘이 붙게 되죠. 그렇게 다듬어진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게 포럼의 역할이라는 거죠. 그리고 정책 입안자는 아무래도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들의 정책목표는 정확할 겁니다. 새 정부가 뭘 어떻게 한다, 그런 것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겠다 하는 실질적인 아이디어를 정책 입안자에게 전해야죠. 그게 바로 제가 이끌고자 하는 포럼의 역할입니다.

▲ 지난 4월 대전에서 열린 '세계 햅틱스 컨퍼런스(IEEE WHC 2013)’에서는 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진두지위했다.
로봇융합포럼이 2009년 출범할 때는 거창했는데 그 동안 별로 활동이 없었어요. 우선 활성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실무위원들하고 논의를 해봐야 하는데요. 포럼회원들이 회의에 밥만 먹으러 오는 건 아니잖아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요. 첫째는 자기가 얘기하고 내놓은 아이디어가 다듬어져 정책의 일환이 되고 영향을 미친다면 스스로 밥값을 내더라도 참여한다는 거죠. 두번째는 참석하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무언가 재미있는 거리들을 계속 만들어 내야겠죠. 세번째는 ‘떡’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R&D 예산이 이러이러한데, 그것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에 대해 영향을 미친다든가. 아니면 그 정보를 미리 얻을 수 있다든가 하는 거죠.

사람을 끄는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떡'일 것 같은데 그 '떡'은 많이 생길 것 같습니까?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모두 로봇에 관심 많은데, 포럼이 싱크탱크 역할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로봇 비즈니스를 잘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로봇융합포럼의 궁극적인 목표일 텐데요.
로봇 비즈니스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생태계가 잘 구축돼야 한다고 봐요.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의 역할분담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대기업들은 우선 베이스 플랫폼을 값 싸게 공급해야겠죠. 중소기업들은 가령 여러 가지 특정한 용도의 센서와 같은 컴포넌트들을 개발하면 대기업은 그걸 써주어야죠. 그러면 비용이 싸지는 거예요. 중소기업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만들면 몇 천만 원짜리가 나올 수 밖에 없어요. 역할 분담해서 천만 원짜리 로봇을 백만 원짜리로 낮추어야죠. 미국의 아이로봇이 2002년 200달러짜리 청소로봇을 내놓았을 때 아무도 안 믿었어요 .당시 기술수준으로 봐서는 2000달러가 넘을 제품이었죠. 그런데 그걸 200달러에 만들어 낸 겁니다.

로봇의 가격을 낮추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아이로봇에 깊게 관여했던 로봇공학자 로드니 브룩스도 처음엔 가장 필요한 기능만을 구현하자고했어요. 이 분이 원래 인공지능을 전공한 사람인데 가격을 낮추려고 인공지능을 과감하게 뺏어요. 그런데 가격이 싸지니까 인공지능이나 내비게이션 기능이 들어간 거죠. 센서 값이 싸지고 카메라 하나에 1달러가 되니까, 그게 가능해진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하드웨어가 만들어지면 다음에는 애플리케이션들이 잇따라 나오게 되죠.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청소로봇 하나 딱 팔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로봇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따라서 센서도 바뀌고 모양도 바뀌고 해야죠. 그런 애플리케이션 만드는 것을 중소기업들에게 맡기자는 겁니다. 어떤 중소 기업은 대기업이 만든 로봇 플랫폼으로 감시용 로봇을 만들고, 어떤 기업은 애들 보호하는 로봇, 또 어떤 기업은 엔터테인먼트 로봇 만들고 하는 거죠. 애플리케이션 별로도 시장을 개척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중소기업들이 생겨 나야 합니다. 그걸 대기업이 혼자 다 할 수 없죠. 그게 생태계 구축입니다.

그런데 삼성과 LG가 나서줄까요?
그런 기업들이 나서려면 2~3년 내에 적어도 조 단위의 시장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로봇시장이 조 단위 규모가 나온다는 건 무리죠.

저기 서가 위의 결혼사진 액자들은 뭡니까? 사무실이나 연구실에 저렇게 많은 결혼사진들을 갖다 놓은 건 저로서도 처음 보는 건데…
제가 주례를 선 제자들의 결혼사진입니다. 저는 한번 사제지간의 관계가 맺어지면 그 관계가 평생을 가는 거라고 봐요. 그래서 제자가 결혼하면 그 제자의 신부를 보면서 우리 집에 식구 하나 더 생겼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 연구실 서가에 자리하고 있는 제자들의 결혼사진들. 그는 한번 사제지간은 평생관계라고 여긴다.
일부에서는 사제지간을 도제 관계라며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스승이 잘 아는 것을 전수하는데, 그게 예술 분야라면 도제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현대의 공학은 도제 시스템으로서는 도저히 성립이 안돼요. 스승이 모르는 것을 스승과 제자가 함께 연구하는 겁니다. 스승도 모르고 제자도 모르는 것을 함께 연구해 내야 세계 최초의 것이 나오는 거죠. 공학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완전히 같은 연구자입니다. 저는 제자들이 가능성 면에서 저보다 낫다고 봐요. 제가 학생 때 알았던 지식이나 능력은 지금의 학생들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거죠. 그 제자들이 제 나이 되면 얼마나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걸 생각하면 제자들 존중해야 된다고 봐요.

다양한 경험을 하셨는데 제자들의 진로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해주나요?
학생들에게도 그러죠. 35세 전에는 좋은 브랜드 네임의 직장이나 돈 많이 주는 직장 구하지 말고 네 경험을 더 넓힐 수 있는 직장을 구해서 치열하게 살아봐라, 그리고 35세가 넘으면 그때 가서 평생직장을 구해라, 하지만 절실하지 않아서 그런지 크게 공감하지는 않더라고요. 하하하.

로봇공학자로서 로봇이 등장하는 SF영화가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나요?
그럼요! 공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데에 영화 역할이 매우 큽니다. 이른바 입는 로봇의 개념이 사실은 영화 ‘에일리언’에서 출발한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제가 요즘 외부 강연을 많이 하는데 로봇을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아이로봇’의 스틸을 활용해요. ‘아이로봇’만큼 기술적 이슈를 다룬 영화도 흔치 않죠. ‘터미네이터’ ‘아이언 맨’ 같은 것은 강의에 많이 사용합니다. ‘바이센테니얼 맨’에 나오는 로봇의 감성표현 장면도 그렇고요.

▲ 지난 봄 연구원들과 대전인근 뿌리공원 하이킹을 다녀왔다.
혹시 한국의 영화제작자들이 로봇영화 만들겠다며 자문을 구해온 적 있나요?

아…’로봇태권 브이’ 만든 김청기 감독과 애기해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감독들은 아직 과학기술을 소재로 한 영화에 큰 관심이 없어요. 기술분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감독이 별로 없다는 얘기입니다. 아쉬운 거죠. 제가 한때 국제 로봇영화제를 만들어보려고 뛰어다녀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예산이 최소 30억 원이 들어요. 그런 정도는 돼야 배우들과 유명인들 초청해서 매스컴 부를 수가 있어요. 몇 번 시도했는데 스폰서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때 함께 추진했던 멤버중에 몇몇은 부천영화제에서 로봇영화 세션을 만들었지요.

상상력이 풍부한 제자가 있다면 "너 시나리오 한번 써보면 어떻겠느냐” 할 수 있겠습니까?
제발, 그런 제자가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공학적으로 오리엔티드된 학생들만 선발했는지,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좀 더 두고 봐야지요.

결혼은 미국에서 한 건가요?
유학가기 직전에 했어요. 유학을 앞두고 선을 몇 번 봤는데 인연이 아니었는지 짝이 나타나지 않더라고요. 포기하고 유학을 떠나려는데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자는 거에요. 그런데 일이 되려니 그때 집사람을 만났어요. 4월말인가 만나서 6월에 결혼하고 8월15일에 유학을 떠났죠. 유학 떠나는 시점에 맞춰 속전속결한 거죠. 지금 생각하면 제 자신이 너무 보수적이었지 않나 싶어요. 하하하.

가족들은 어떻게 되나요
유학시절 집사람도 함께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학부 때 약대를 졸업했는데, 그곳에서 전공을 살려 유전공학을 했지요. 같은 해에 함께 학위를 받는다 해서 화제가 됐는데 현지 신문에도 보도됐어요. 지금은 대전 특허청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합니다. 공부도 저와 함께 했는데, 공무원으로서 아이 셋을 키우며 제가 마음놓고 일할 수 있도록 내조까지 한 대단한 아내이죠. 아이들은 모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큰 아이는 법대를 나와 통역대학원을 다니고 작은 아이는 대학에, 막내는 고등학교에 다닙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저희 부부가 서울에 올라가 가족들과 함께 하지요.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가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답변은 막힘이 없었고,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럴 때 그는 로봇공학자라기 보다는 로봇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들여다보는 비저너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중 질문이 잠시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을 때 먼저 제자리에 돌아오는 건 기자가 아니라 그였다.

로봇공학자로서 아니, 비저너리로서 답변을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아껴두었던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퍼스널컴퓨터(PC) 다음에 인터넷시대, 그 다음에 로봇 시대가 올 것인가, 오면 얼마나 빨리 오겠는가라는 게 질문의 요지였다. 그런데 막상 그의 답변을 듣고 보니 질문 자체가 로봇을 너무 좁은 분야에 가둬두려고 한 게 아닌가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를테면 질문은 ‘보리떡’ 같았는데 답변은 ‘찰떡’처럼 야무지고 명쾌했다고나 할까. 그의 답변은 이랬다.

▲ 1991년 조지아공과대학 학위수여식 날 부인,두 아이와 함께. 부부가 함께 박사학위를 받은게 화제가 되어 애틀랜타 교민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저는 유사이래 인류가 벌인 비즈니스 가운데 가장 스케일이 큰 게 자동차라고 봐요. 산업적인 볼륨과 파급효과가 그렇고 딸린 식구들을 봐도 핸드폰하고는 비교가 안되죠. 그런데 이젠 자동차회사가 더 이상 안 생겨나요. 그건 시장이 이미 성숙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의미지요. 그리고, 혼다에서 왜 ‘아시모’ 같은 로봇 만듭니까. 도요타도 이상한 로봇들 만들고 있지요. 앞으로 자동차 만한 볼륨의 비즈니스는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늦어도 50년 이내에 그런 시대가 올 거라고 봅니다. 근데 삼성, LG는 아직 그거 생각 안하고 있어요. 그때 가서 따라가면 된다는, 2등할 생각만 해요! 서현진 기자

[권동수 교수 주요이력]
1957년 경남 산청 출생
1976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80년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82년 KAIST 기계공학 석사
1991년 조지아공과대학교 기계공학 박사
1982~1985년 광림기계 과장/부장
1991~1995년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선임연구원
1995~현재 KAIST 기계공학전공 교수
1999년 국제로봇축구연맹(FIRA) 이사 및 로봇올림피아드 조직위원장
2004~현재 KAIST 인간-로봇 상호작용 핵심연구센터 소장
2008~현재 KAIST 미래의료로봇연구단 단장
2012년 한국로봇학회 회장
2012~현재 KAIST과학영재교육원 원장
2013년 로봇융합포럼 의장


서현진 기자  suh@irobo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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