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묻는다. “난 어디서 나왔어?”
과학이 답한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 “아니지!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야!”
철학이 다시 묻는다. “그게 끝이야?”
과학이 답한다. “....”
붓다는 그저 미소 짓는다.

인간의 대표적인 본능 중 하나가 호기심일 것이다. ‘왜?’라는 질문과 함께 인류역사는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철학과 과학이 여기에서 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철학의 근본적 질문을 살펴보고, 과학이 이제까지 어떤 해답을 제시했는지 정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기존의 철학적/과학적 접근의 오류와 한계성과 함께 해결방안으로 붓다의 과학을 논할 것이다.

I. 존재/인식 문제

어느 날 한 정원사가 피카소의 화실을 방문하여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마침 피카소가 지나간다. “피카소씨, 이게 뭔가요?” “그건, 제 부인을 그린 겁니다.” “음! 그래요... 그렇게 눈이 나쁜 사람이 어떻게 화가가 될 수 있었나요?”

피카소는 평생 동안 여성편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를 거쳐 간 여인들을 그린 그림들을 (<그림1>) 보면 짐작이 간다. 그는 대상(여성)에 완전히 몰입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상의 감성을 고스란히 읽어낼 능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대상과 하나가 되었다기보다는 자신을 완전히 배제시킴으로써, 대상의 심층까지 완벽하게 그려낼 줄 아는 것이다. 예술가라기보다는 과학자적 통찰이 돋보인다. 예술가 이전에 진정한 관찰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 <그림1>피카소가 그린 여인들. (출처: 구글 이미지)

그런데 무엇이 보는 걸까? 눈이 볼까? 아니면 마음이 볼까? 그리고 무엇을 볼까? 저 밖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볼까? 아니면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볼까? 똑같은 대상에 대해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보는 걸까? 아니면 피카소처럼 제멋대로 보는 걸까?

그림이란 본래 사람이 직접 손으로 그리는 것이니까 저마다 다른 것이 당연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기계의 힘을 빌려 찍어내는 사진의 경우는 어떨까?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최고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처럼 라이카 카메라를 둘러메고, 그가 찍었던 바로 그 자리에 서기만하면, 우리들도 그처럼 예술사진을 찍어낼 수 있을까? 우리들도 그가 바라본 세상과 똑같이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림2>는 비가 온 오후 무렵 철도역 공사로 인해 물이 고인 곳을 지나가는 행인이 점프하는 순간을 찍은 사진이다. 브레송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그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때로는 12시간 이상을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기다리기도 했다고 한다. 비록 관찰자가 동일하다하더라도 대상은 늘 변화하므로, 즉 어느 한 순간도 동일한 상태로 머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결코 똑같은 세상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송 역시 피카소처럼 예술가 이전에 투철한 관찰자로서의 감각이 뛰어나 보이는 것이다. 그들처럼 뛰어난 관찰자들은 도대체 세상(대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일까?

▲ <그림2>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대표작 <생-라자르 역 뒤에서> (1932)(출처: 구글 이미지)

▲ <그림3> 대상-관찰자-모델 관계도

본격적으로 과학을 논하기에 앞서, 철학적 사유의 핵심인 존재/인식론적 문제를 살펴보자. <그림3>은 대상을 보며 머릿속에 그리는 대상-관찰자-모델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우리들의 삶 자체도 사실 인식 대상과의 접촉을 통한 사유와 그에 따른 의도적 행위의 연속일 뿐이다. 철학적 접근도 이러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개별적인 대상과의 개인적인 관계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세상-철학자-진리 간의 관계에서 철학적 사유가 성립되는 것이다. 과학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을 관찰하여 과학적 이론을 세우는 것은 세상-과학자-과학 간의 관계성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관계를 구성하는 세 가지 기본적 구성원 A, B, A’ 각각의 존재성 여부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따라 과학적 접근도 다양하게 펼쳐지게 된다.

(1) 대상 A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가? 아닌가?
(2) 관찰자 B는 실체적으로 존재하는가? 아닌가?
(3) 오직 A'만이 존재하는가? 아닌가?

▲ <그림4> 전통 인식론적 접근

<그림4>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통 인식론에서는 A = A’를 전제로 한다. 즉 이론화된 과학적 결과물들이(A’) 실세계를(A) 그대로 투영하는 보편적인 진리로서 인정된다. 이를 바탕으로 보편적 객관세계에 대한 고유의 명칭과 속성이 부여되고, 이들의 분류를 통해 학문적 체계가 갖춰졌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이어져왔던 이러한 인식방식은, 최근에 이르러 극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제 A는 결코 A'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림5> 참조) 그 이유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어떤 의도(조작)에 의한 왜곡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대상을 100%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태생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닌 척하여도 깊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에고(ego)의 힘에 의해 대상을 왜곡되게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그림5> 현대 인식론적 접근

II. 전통과학

철학의 문제가 대상-관찰자-모델 삼자간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다면, 과학적 방법은 <그림3>의 A’에 해당되는 진리/모델/이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학이 인지 가능한 현상만을 다루는 학문으로 정의되는 이유이다.

과학을 특징짓는 가장 대표적인 요소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분류학으로부터 시작된 과학체계일 것이다. Science를 과학이라 부르는 이유도 수많은 분류가 가능한 학문, 즉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학문이라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여러 문헌상에 나타난 바, 과학의 보편적인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과학은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다. 세상에 우연적인 것은 없으며, 반드시 원인이 있음으로 해서 결과가 나타난다는 원칙을 전제로 과학은 성립된다.

(2) 과학은 미래의 예측에 가치를 두지만, 과학의 결과는 언제나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학에 최종적인 정답은 없다.

(3) 과학은 편견 없이 개방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한다. 천재적인 과학자들은 종교/정치/문화 등에 따른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위대한 관찰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별로 투영하지 않는다. 다만 실체가 무엇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부단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4) 과학은 단순하고 정연해야 한다. 어느 과학자는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법칙을 티셔츠 위에 써넣을 수 있는 하나의 방정식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예를 들면 E = mc2와 같이, 궁극의 진리는 단순하리라 기대하면서.

이러한 특성을 토대로 정립된 전형적인 과학의 과정은 <그림6>과 같다. 과학은 먼저 현상에 대한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관찰을 통해 얻은 데이터들이 검증을 통해 명백한 사실로 확인되면, 이 사실들이 종합되고 정리됨으로써 보편적 속성이 부여된다. 이를 통해 과학적 개념이 정립된다. 더 나아가 개념화된 객체/존재들 간의 관계성 분석을 통해 과학적 법칙이 세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과학적 법칙들을 토대로 불변의 과학적 이론이 탄생된다는 것이 전통 인식론적 과학의 입장이다.

▲ <그림6> 전통 인식론적 과학

요컨대 현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곧 과학자의 역할이다. 따라서 모든 선입견을 벗어난 ‘직접적인 관찰’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시체해부실에서 의대교수가 엄지와 검지를 치켜들며 관찰의 중요성과 실천의 용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윽고 교수는 손가락을 시체의 항문에 확 쑤셔 넣는다. 일순 긴장이 흐른다. 잠시 뒤 교수는 손가락을 빼내 자신의 입에 넣고 쪽쪽 빨아댄다. 긴장은 어느새 경악으로 바뀐다. “누가 용기를 내겠는가?”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손을 번쩍 든 학생이 똑같이 따라한다. 장내는 경악을 넘어 공포로 변해간다. “여러분! 알겠지요? 용기보다 관찰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엄지를 항문에 넣은 뒤, 검지를 빨았습니다. 오늘 수업 끝!”, “으웩!!!!”

성공적인 관찰의 결과로 얻은 귀중한 데이터들은 현상을 해석하는 귀중한 단초가 된다. 과학이 우리에게 선사해주는 선물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것은 아마도 인과의 관계를 찾아주는 일일 것이다. 최근 구글의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이 월드컵 8강팀을 모두 맞추었다고 한다. 더 놀라운 일도 있다. 어느 학술지분석기관에서는 세계 모든 저명학술지를 대상으로 빅데이터 분석을 적용한 결과 노벨상 수상자 전원을 정확히 알아맞히는 놀라움을 보여주었다. 아니 땐 굴뚝에서는 절대로 연기가 날 수 없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연성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출지 모른다. 다만 원인과 결과의 관계성을 밝혀내기가 힘들 뿐... 그러나 지금은 정보화 시대이다. 데이터는 넘쳐나고, 시스템은 지능화하고, 속도는 빨라지고 용량은 무한에 가깝다. 일단 패턴/클래스 단계에서 세상 모든 사물/객체들에 대한 개념화, 즉 명칭과 속성이 정의 되면, 규칙/관계는 빅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림7> 참조)

북경에서 발생한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 뉴욕에 거대한 허리케인을 불러올 수 있다는 카오스이론도 결국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성에서 비롯된 자연의 법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과학은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 삶의 지혜를 말하는 시적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진실임을 입증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림8> 참조)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중략)

▲ <그림7> 모델링 작업은 과학적 이론 정립을 위한 정형화 과정이다.

▲ <그림8> 언어/개념/논리의 추상화 작업은 중요한 과학적 과정이다. 이를 통해 최상의 지혜도 얻을 수 있다.

■ 과학 과정

전통 인식론에 따르면, 관찰을 통해 얻은 과학적 사실이란 사물이 존재하는 객관적인 상태이며, 불변의 데이터이다. 왜냐하면 과학적 사실은 추론, 추측, 허구 등과 달리 관찰을 통해서 밝혀진 진실로서 실제로 일어났거나 관련된 주장과 일치하는 경험적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그림6>에 설명된 것처럼, 전형적인 과학적 과정을 단계별로 상세히 살펴보자.

(1) 과학적 사실: 과학적 사실은 논쟁이 불필요한 절대적 진리이며 실재이다. 따라서 확립된 과학적 사실은 고유의 독립적 속성을 지닌다. 이를 통해 과학적 사실은 과학적 지식의 확고한 바탕이 된다.

(2) 과학적 개념: 과학적 사실들 사이에 반복되는 패턴을 정리한 것이 과학적 개념이다. 즉 과학적 개념은 일련의 사물이나 현상에서 추출된 공통적인 속성으로 정의된다.

(3) 과학적 법칙: 과학적 법칙이란 실험이나 관찰 또는 분류로부터 얻은 과학적 개념들 사이의 규칙성을 말한다. 과학적 법칙의 가장 큰 특징은 가정이나 가설에 바탕을 두지 않고 실제로 관찰한 과학적 사실이나 개념 간의 관계를 사실대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4) 과학적 이론: 과학적 이론은 특정한 사물이나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보편적 체계를 통칭한다. 과학적 이론은 자연 현상의 속성이나 과정에 대한 원인을 제시하므로, 그 현상을 설명하거나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는 바탕이 된다. 모든 과학적 가설은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과학적 사실과의 일치성이 검증되었을 때, 비로소 과학적 이론의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된다.

■ 공학 과정

과학적 결과는 진리에 대한 앎 그 자체로서의 가치도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과학의 활용이다. 과학의 과정을 거꾸로 진행하면 <그림9>에서처럼 공학의 과정이 된다. 즉 과학적 과정을 통해 얻은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어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의 설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구현함으로써 실세계에서 활용될 수 있는 훌륭한 물건이 완성된다. 예를 들면, 과학자 뉴턴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관찰함으로써 중력의 개념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정립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동역학이론을 세울 수 있었다. 한편 공학자 스티븐스는 뉴턴의 운동이론을 도입하여 사람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이동수단을 구상했고, 세부적인 설계절차를 거쳐 마침내 증기기관차를 만들어냈다. 이와 같이 모든 공학적 제품은 과학자의 위대한 이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 지승도ㆍ항공대 항공전자 및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 <그림9> 과학과 공학의 과정

* 본 기사는 '월간로봇'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표기는 '월간로봇'의 규정에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