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방 제일 앞부분에 햄버거 로봇이 설치돼 있다. 로봇이 패티를 굽는 동안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8일 점심 시간 무렵,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크라이 치즈버거' 매장은 손님들로 북쩍였다. 손님들이 터치 스크린으로 주문한 햄버거를 제때 내놓기 위해 주방 안에선 직원들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진다. 점심 시간에는 주문이 집중적으로 몰리기 때문에 햄버거를 빨리 조리해 내놓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주방 한켠에 설치된 패티 굽는 로봇 덕분에 이 매장에선 손님들은 긴 시간 기다리지 않고도 맛있는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

이곳 매장에 설치된 햄버거용 패티 굽는 로봇은 푸드테크 스타트업 에니아이(Aniai, 대표 황건필)가 개발해 공급한 제품이다. 카이스트에서 스마트 팩토리에 접목할 3차원 박쥐 초음파 센서 기술을 연구하던 황건필 대표는 외식업 분야에서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지난 2020년 로봇 키친(Robotic Kitchen) 전문기업 에니아이를 창업했다.

▲ 황건필 대표가 패티 굽는 로봇 옆에 서 있다.

황 대표와 공동 창업자 4인은 로봇제어, 설계, 인공지능 인지기술 등 로봇 키친 기술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햄버거 조리 로봇이라고 판단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황 대표는 "앞으로 외식업의 인력 부족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푸드테크 로봇 사업 참여 배경을 설명했다.

에니아이는 햄버거 맛의 핵심은 레시피대로 잘 구워진 ‘패티’에 있다고 보고 패티 굽는 인공지능 로봇 ‘알파 그릴’(Alpha Grill)을 개발하고 국내 수제버거 프랜차이즈 ‘크라이 치즈버거’ 상암동 매장에 처음으로 로봇을 설치했다. 로봇을 공급한지 벌써 6개월 정도 지났다.

패티를 굽는 과정은 맛과 품질이 균일해야 하기 때문에 숙련도가 필요한 일이다. 이 때문에 매장에서 가장 숙련된 직원이 패티를 굽는 그릴 파트를 맡는다고 한다. 단순하지만 숙련된 작업을 이곳 매장에선 로봇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 가운데에 햄버거 패티 조리 로봇이 놓여 있다.

▲ 직원이 로봇 그릴을 닦고 패티를 올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 패티 조리 과정

▲ 직원이 구워진 패티의 상태를 최종 점검하고 있다. 이후 패티를 빵에 넣는 공정으로 넘긴다. 이후 공정은 사람이 한다.

이곳 매장에 설치된 패티 굽는 로봇은 로봇팔 형태가 아니라 그릴 형태로 만들어졌다. 주방에서 직원이 햄버거 패티를 그릴 안에 넣고 버튼을 누르면 로봇이 사전에 입력된 온도, 시간, 두께에 맞춰 패티양면을 동시에 굽는다. 알파 그릴 한쪽에는 비전 센서가 달려 있어 패티가 제대로 구어졌는지를 판단할수 있다. 카메라로 패티의 모양, 굽기 정도를 확인한다. 로봇 그릴 안에는 레이저 광 센서가 탑재돼 있어 작업 중인 주방 직원이 다칠 우려가 있으면 바로 작동을 중지한다.

알파 그릴이 햄버거 패티 양면을 굽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정도다. 시간당 200개 정도의 패티를 조리할 수 있다. 로봇 덕분에 매장에서 가장 바쁜 시간대의 주문량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다.

에니아이는 올해 햄버거 조리 로봇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그동안 크라이 치즈버거 상암동 매장을 일종의 로봇 테스트 베드로 활용해 왔는데, 이를 바탕으로 국내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 공략에 본격 나서고, 미국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이미 20여대의 로봇 시스템 주문을 받은 상태다. 고객사에 구독형 서비스(RaaS) 방식으로 제공한다. 올해 100대 이상의 로봇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에니아이는 햄버거를 완전 자동으로 생산할 수 있는 로봇 키친 시스템인 ‘알파 키친’(Alpha Kitchen) 개발도 끝내고 올해 상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에니아이는 최근 시드 펀딩 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국내 공장 설립,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실탄도 마련했다.

올해 미국 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미국 현지 사무소도 설립했으며 한국무역협회와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 상공회의소의 지원을 받아 ‘뉴욕 브루클린 테스트베드’ 사업에 참여, 햄버거 로봇 실증 기회를 얻기도 했다. 미국 아마존 웹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스타트업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올해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외식박람회인 NRA쇼(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 Show)에 참가해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는 계획이다.

황건필 대표는 “햄버거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는 아직 이 분야의 로봇 강자가 없는 상황”이라며 “노동력 부족 등 인력 문제가 심각한 미국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