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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으로 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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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05  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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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지는 인간과 로봇의 경게

로봇은 기계의 기능을 최대화한 ‘인류 최고의 기계’로 불린다. 왜 인류 최고의 기계가 로봇인가? 로봇이 인간이 만든 도구로서의 위상을 넘어 서로 상호작용하는 단계까지 넘볼 정도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전반기에 들어선 지금, 로봇은 인간이 자신을 모방한 짝패로서의 지위를 넘어 동반자로서의 새로운 자리 매김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생명공학, 정보공학, 나노공학 등 최첨단 과학기술의 융합적인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이미 사이보그 로봇이라는 선언이 나올 정도가 됐다. 이제 로봇이 자신을 만든 창조자인 인간과 구별되지 않을 만큼 발전하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어느새 로봇은 기존 상식의 울타리를 넘어 인간 삶의 공간 앞마당까지 밀고 들어온 트로이 목마 같은 응집체가 되었다. 호모사피엔스의 긴 진화의 역사 속에서 수만 년에 걸쳐 단단하게 굳어져 온 경계들인 인간과 도구, 생물과 무생물, 자연과 인공 간의 경계를 흐리고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의 울타리 안에 안주하고 있던 우리가 미처 짐작하지 못한 무엇인가가 로봇과 함께 우리 삶의 영역 안에 들어왔다.

적어도 20세기 후반까지 로봇의 의미는 대부분 소설과 연극, 영화, 만화 같은 허구적인 이야기 속에서 형상화된 것이었다. 로봇을 정의하는 데는 허구적 상상과 비유가 주된 영역을 차지했다. 이런 공상 속 ‘인간형 로봇’과 ‘산업형 로봇’의 차이는 상상과 현실의 거리만큼 멀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차 산업혁명 시기에 개발된 것은 산업용 로봇이었다. 주로 인간의 신체 일부인 손과 팔을 모방한 ‘로봇 팔’로 반복적인 작업을 사람 대신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런 산업형 로봇은 전혀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고, 자동차 조립작업 등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런 산업형 로봇은 인간 노동자를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것이다. 로봇 설계의 초기 역사를 보면 로봇을 설계한 기술자들도 산업형 로봇을 인간 노동 능력의 연장으로 여기고, 인간형 로봇을 모델로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인간 노동 능력의 연장선상에서 산업형 로봇을 만들었고 미래사회에서 인간형 로봇의 출현을 기대 했다. 그런 점에서 로봇의 원형은 바로 인간형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 국어대사전에 ‘로봇’은 단순히 기계를 지칭하는 낱말로, “어떤 작업이나 조작을 자동적으로 하는 기계 장치”라는 뜻과,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걷기도 하고 말도 하는 기계 장치”로 인조인간을 뜻하거나, 혹은 “남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고 정리하고 있다. 또한 브리태니커 온라인 사전에서는 로봇을 “겉모양과 기능을 수행하는 방법이 인간과 유사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하는 일을 대신하는 자동으로 작동되는 기계”로 정의한다. 독일 브록하우스 바리히(Brockhaus Wahrig) 사전은 로봇을 “인간을 대신해 일정한 행위를 수행할 수 있고, 외양상 자립적으로 움직이며, 또한 인간의 외형을 모방한 자동기계”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의가 만들어지기까지 로봇은 20세기 초 예술의 여러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 되었다. 특히 20세기 초 미래주의 유파는 예술에서 기존의 규범을 전복하고 새로운 혁명적 생활감정을 표현할 것을 선언했다.

미래주의 운동은 1909년 파리의 '르 피가로'지 1면에 마리네티의 선언문 ‘미래주의’가 발표되면서 시작되었다. 미래주의는 현대성을 열정적으로 내세우고, 미래의 기술과 기계를 적극적으로 숭배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래주의를 표방한 예술가들의 선언서나 팜플렛을 보면 오늘날 ‘트랜스 휴머니스트(transhumanist)들의 입장을 선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랜스(trans)라는 영어의 접두어는 ‘넘어선’, ‘초월한’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인간을 넘어서거나 초월한 존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20세기 초반의 미래주의 유파와 트랜스 휴머니즘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미래주의 유파 중 한 사람인 오스카 슐렘머의 주장은 이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한다. 그것이 호문쿨루스 창조를 목적으로 삼은 파우스트적인 문제이든, 신과 우상을 창조해낸 인간 내면에 들어 있는 의인화의 욕구이건 간에, 인간은 언제나 자신과 똑같은 것, 혹은 자신의 초상, 혹은 비교 불가능한 것을 추구한다. 인간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초인간이나 환상 속의 형상을 찾는다.” 화가 페르낭 레제는 자기 작품에서 ‘기계적인 것’을 새로운 미적 패러다임으로 만들었다. 만 레이가 촬영한 그의 영화 '기계발레(Ballet mecanique)'는 그림에서든 연극 영화에서든 ‘인간’과 인간의 움직임을 미적 재료로서 “여타 장면구성 요소들과 똑같은 요소”로 취급한다는 그의 생각이 구현되어 있다. “인간이 장면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과 똑같은 요소가 되어 버린다. 전에는 인간이 최종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그저 수단에 불과하다.…인간이 기준이자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근절된다면 무대는 관객을 사로잡는 수많은 사물로 채워지게 된다.”

3차 산업혁명 시기의 20세기 로봇들이 주로 허구와 상상 영역에서 인간형 로봇을 모델로 하고, 현실적으로는 로봇 팔 같은 산업형 로봇이 대다수를 차지했다면,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인간형 로봇이 미래 테크놀로지의 대표 제품으로 완성형(?)을 향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관련 과학과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고 ‘로봇’이라는 범주가 매우 다양한 기술제품들에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상상해 온 것의 구현으로서 허구성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로봇이 무엇인지 개념적으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로봇공학자에게 로봇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에 대한 답이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로봇이고, 무엇이 로봇이 아닌지에 대한 토론을 끝내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새로운 상호작용 기술이 탄생하여 금방 내린 결론을 흔들어 버릴 것이다.” “로봇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로봇이 허구와 결합되어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존 조던(John M. Jordan)은 '로봇 수업'에서 로봇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로봇의 속성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명확하게 확립된 정의가 없다. 둘째, 사회적인 맥락과 기술적인 수준의 변화에 따라 로봇의 정의가 변해 왔고 앞으로도 변할 수 있다. 셋째, 여타 과학기술의 혁신적 제품들과 달리 로봇은 공상과학이 먼저 개념적 활동무대를 제공해 왔다. 그리고 여기에 다양한 문화적 개념들이 함께 들어와 다양한 생각들이 로봇의 개념에 스며들게 된다.

어떤 학자들은 로봇의 속성을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환경을 지각할 수 있다. 둘째, 다양한 입력 자극에 대해 논리적 추리가 가능하다. 셋째, 물리적 환경 변화에 대해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학자들은 물리적 환경 변화에 반응할 뿐 아니라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로봇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네스트 랩스(Nest Labs)에서 개발한 사물인터넷 기반 주거용 온도 조절기 같은 것은 로봇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립성을 갖추고 있어야만 로봇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렇듯 로봇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로봇에 대한 정의는 아직 명확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로봇의 보편적인 정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공지능 연구팀의 버나드 로스(Bernard Roth)는 “로봇의 개념은 로봇의 특정 행동이 특정 시점에서 사람이나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고려해서 설정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로봇의 능력이 진화하면서 로봇의 개념도 그에 맞춰 변한다는 주장이다. “만일 어떤 기계가 사람과 마찬가지로 상호작용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그 기계는 기계에서 로봇으로 분류체계 상위로 이동할 수도 있다.”고 한다. 로봇이 그저 사람이 사용하기 위한 도구였던 것에서 상호작용하는 대상으로 위상이 바뀌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인 맥락과 기술 수준 변화에 따라 위상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로봇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로봇은 연극, 소설, 영화, 만화,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된 후에 로봇공학과 기술이 뒤따라 나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휴대전화, 냉장고, 에어컨, 인터넷 등 우리의 삶과 환경에 변화를 가져온 많은 제품들은 과학기술혁신으로 제품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 대중에게 소개되었다. 로봇은 이와 반대의 경로로 개발되어 왔다. 로봇에 대한 개념적 활동무대를 제공해 온 것은 공상과학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만화책이나 소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통해 로봇에 대한 대중의 개념과 기대가 형성되어 왔다.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로봇에 대한 대중의 전반적인 태도와 기대가 먼저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사실이 아니라 소설이나 영화 같은 공상과학 콘텐츠가 로봇공학 전체에 대한 개념과 기대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공상적인 내용이 만들어낸 기대는 실제의 로봇에 대한 기 대수준을 비현실적으로 높게 만들었다. 21세기 들어와서는 로봇이 인공지능과 결합되어, 많은 이들이 현실에서 접하는 진짜 로봇이 인간 수준에 못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허구적인 이미지들과 극적인 스토리에서 유래한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함께 갖게 되었다.

스티븐 호킹 같은 저명한 물리학자까지도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류에게 존재론적 위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표명했고,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들이 이런 두려움에 공감을 표시했다. 예를 들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이 불러올 가공할 위험이 예상보다 빨리 오고 있으며, 로봇공학과 결합하여 군사적으로 이용될 경우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로봇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의 공존, ‘로봇의 이중성’이라 불리는 이런 상반된 양가감정은 로봇의 탄생 초기부터 있어 왔다. 이러한 이중성은 ‘로봇’이라는 이름을 지은 카렐 차페크의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Rossum’s Universal Robot)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기술이 인간의 삶을 위한 보조 도구라는 관점과 인간의 온전한 삶을 방해하는 존재라는 서로 대립되는 관점이 역사적으로 계속되어 온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로봇이 인간이 상상한 것을 구현해낸 허구 캐릭터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 로봇의 개념 정의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철학자 에이미 토마슨에 따르면, 허구적으로 창조된 인공물인 ‘허구 캐릭터’는 전통적으로 물리적인 특수자와 이상적인 추상자를 구분하는 틈 사이에 놓이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실재와 이상,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전통적인 도식으로는 허구 캐릭터와 인공물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토마슨은 허구의 인공물 이론을 제시하는데, 허구적 대상을 의존적인 대상(dependence object)으로 분류한다.

자연물과 인공물 간에는 개념적인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인공물이면서 자연물과 일치하는 확률이 99.99%일 경우를 상정해 보자. 예를 들어 시냇물과 사이다가 성분에 있어서 차이가 거의 없다면 ‘물’이라는 성질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이다가 인공물임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인공물이 자연물인 인간과 99.99% 일치할 만큼 장차 혁신적으로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로봇이 자연물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로봇은 어디까지나 인공물이다.

허구의 인공물 이론은 인공물과 허구가 둘 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인공물은 구체적인 물질성을 지닌 것인 반면, 허구는 고도로 추상적인 생각, 상상의 관념들과 관련된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철학적으로 허구는 거짓말과 구별되지만 참도 아닌 담화의 일종으로서 사기를 치거나 상대를 기만하려는 의도없이 만들어진 것으로서 개념 정의된다.

허구 캐릭터는 원작자의 허구 스토리 만들기 행위를 통해 특정 시간에 현존하게 된 것들이다. 코난 도일이 1887년에 셜록 홈스라는 허구 캐릭터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사람들은 셜록 홈스를 알 도리가 없다. 이런 허구 캐릭터들은 ‘책상’ 같은 인공물과는 창조된 방식이 다르다. 어떤 점에서 허구 캐릭터란 그저 특정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하는 말만으로 창조되는 성격을 가진다. 그러므로 코난 도일이라는 저자가 그에 대해 썼다는 것으로 캐릭터들이 창조되는 것이다. 철학자 존 설은 ‘화폐’를 예로 들어서, 다만 있다는 걸로 재현됨으로써 현존하게 될 수 있는 많은 문화적이고 제도적인 실물들의 공통된 특징들에 주목했다. “그것이 있는 걸로 재현함으로써 제도적인 지위를 창조하는 바, 이는 어떤 선 언어적인 자연적 현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약속하기, 양도하기, 결혼하기 같은 사태와 관련하여 효력을 발휘하는 말하는 행위들을 ‘발화내적 행위(illocutionary act)’라고 하는데, 이런 발화내적 행위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 말하는 사태를 현존하게 한다는 점이다. 주례는 단상 위의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다고 선언하는데, 그 선언은 그 신혼부부의 새로운 지위를 남편과 아내로 창조하는 것이다. 존 설은 이를 ‘제도적 실재성’이라 이름 붙인 현실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인용한다. 결혼, 계약, 약속이 그것을 현존하도록 재현하는 언어행위를 통해 창조될 수 있듯이, 허구 캐릭터가 작품으로 만들어짐으로써 창조된다.

코난 도일이 지칭한 대상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말을 통해 기술한 허구 캐릭터인 셜록 홈스를 현존하게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허구 캐릭터들은 말을 하거나 글쓰기를 통해 창조될 수 있는 문화적인 실물들이다. 화폐, 계약, 재산과 관련한 문화적이고 제도적인 사실들은 어떤 역사를 지닌 종이조각 같은 물리적 대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속적인 동의라는 형태들에도 의존하는 특징을 갖는다. 즉 어떤 것이 돈이기 위해서는 특정한 역사를 지닌 종이조각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어떤 사회에서 사람들이 우선적이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그것을 돈으로 간주한다는 데 동의해야 하는 것이다.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1920년에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라는 작품을 통해 허구 캐릭터를 만들고, 그의 형 요제프 차페크가 그 캐릭터들에 일반명사로 ‘로봇’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 작품이 독일, 프랑스 등 유럽과 미국 대륙에서 상연되어 서구권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차페크의 형 요제프가 이름 붙인 ‘로봇’이 오늘날 문화적이고 제도적인 사실로 현존하게 된 것이다.

재료공학, 인공지능, 신경생물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전 분야를 총동원해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데 재정과 재원이 투자되어 왔고, 급기야는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지점까지 발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등장하고 있다. 즉 유기체와 무기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지점까지 간다는 것이다. 이런 경계 넘기의 현상에 주목하여 여성주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아예 '사이보그 선언'까지 내놓았다. 근대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구에서는 자연을 대문자로 쓰면서 한편으로는 어머니 대자연이라고 칭송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에 대한 능멸(?)을 스스럼없이 해왔고, 근대화가 곧 서양화였기에 서구의 뒤를 쫓기에 급급했던 우리나라의 현실 또한 크게 차이가 없다. 자연에 대한 이런 이중적 태도는 로봇에 대한 이중적 태도에도 반향되어 있다. 우리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그 이전의 자동기계 장치들과 ‘로봇’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로봇의 개념을 더 명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봇으로 철학하기'
김숙 지음 | 228쪽 | 14,500원
프리뷰 펴냄

조규남  ceo@irobo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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