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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허상에서 벗어날 때서현진 본지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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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21  0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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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쿠시마 제1원전의 폐원자로 해체작업은 현실적으로 로봇만이 할 수 있다. 원자로 주변이 온통 방사능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350km고도에 떠있는 국제우주정거장 외부에 문제가 생기면 로봇팔 말고 다른 해결수단이 없다. 공기 한줌, 물 한방울 없는 화성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찾아내는 작업도 로봇만이 가능하다. 인도양의 1만km 심해저 다금속유화광상에서 희귀자원을 발굴하는 일도 무인 잠수정만 가능하다. 이런 로봇들은 기술적으로 고난도이면서 쓰임새도 한정돼 있다. 물론 인류사적으로 로봇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는 이만한 사례들도 없다. 국가 단위 전략과 국력 과시용이므로 개발비용도 만만치 않다.

#2 수술 로봇은 1cm 구멍 몇 개만 뚫고 1~2일 후에는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운전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다른 생산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미 육군은 54만의 병력을 42만으로 감축하고 그 틈새를 로봇으로 메울 계획이다. 척수 손상 환자가 로봇수트를 착용하고 걷는 것은 이제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용 로봇 알약은 비싸고 불편한 주사제를 대체할 전망이다. 드론은 유통혁명을 주도할 기세이다. 이런 로봇들은 기술적으로 고난이도지만 그 역할은 인류가 지향하는 미래의 모습과 닿아 있다. 그러나 역할을 확대하는 데는 사회적, 제도적 제약이 따른다.

#3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험지에서 견마로봇의 쓰임새는 상상을 초월한다. 누워있는 중증환자에 음식을 떠 넣어주고 화장실에 데려가는 간호로봇이 각광받으리라는 것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자동차 도장 로봇은 숙련공에 비해 생산성은 2~3배 높여주고 비용은 2~3배 낮춰 준다. 진단 로봇은 노후화된 인프라시설 점검에 안성마춤이다. 비용과 안전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용 청소로봇의 인기는 라이프 스타일의 진화와 맞물려 있다. 이런 로봇들은 기술적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으면서 쓰임새는 꾸준하게 넓어지고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로봇의 효용성은 빛을 더하게 될 것이다.

#4 안톤 체홉의 희곡 '세자매'에서 로봇은 막내 이리나 역을 맡으며 배우로 데뷔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야제에서는 로봇 도우미가 시선을 모았다. 수도권의 극장 11곳의 매표소에서는 로봇이 발권을 담당한다. 로봇이 아이들의 두뇌발달을 돕고 영어를 가르친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중국에서는 로봇이 주문과 요리, 홀 서빙까지 하는 식당이 있다. 이런 로봇들에 필요한 기술은 고난이도일 필요는 없다. 하는 역할도 로봇이 해도 그만, 사람이 해도 그만이다. 효율성을 따지자면 오히려 사람이 앞선다. 그러나 외형이 사람을 닮아 주변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는 이만한 도구도 없다. 기업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범주다.

모든 로봇들은 대략 이 4가지 범주(#) 가운데 하나라고 보면 된다. 분류는 통계학적 편의가 아닌, 기술적 난이도와 수요에 따른 것이다. 기술적 난이도는 로봇이 사람의 이상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가를 보는 척도이다. 불가능한 일을 대신 해주고 기쁨을 선사하는데 어느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수요는 사람에게 로봇이 얼마나 필요한 도구인가를 가늠해주는 기준이다. 공급자가 필요해서 만든 것은 잘 팔릴 리가 없다. 모든 상품이 그렇듯 기술과 수요는 동전의 앞 뒷면 같은 관계다. 로봇 역시 어느 범주를 막론하고 산업적으로 만만한 분야가 없다. 자동차나 TV 처럼 대규모 시장이 열릴 가능성도 많아 보이지 않는다.

4가지 범주에는 세계 각국의 로봇산업이 안고 있는 현실과 고민들이 그대로 나타난다. #1과 #2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아성이다.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두 범주에 걸었을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일본이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지만 간극은 꽤 멀어 보인다. #3은 대체적으로 공장용 로봇 대국인 일본의 우세가 두드러진다. 최근에 간호로봇과 진단로봇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만한 하다. 한국이 열심히 뒤쫓고 있지만 청소로봇을 빼면 대부분 역부족이다. #4는 한국이 강세지만 별로 실속이 없는 게 한계다. 한국로봇산업이 #4에 치중해 있는 것은 정부의 정책 탓이 크다.

정부는 신성장동력이다, 창조경제다 해서 10년째 로봇을 떠받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정책지원에 목을 멨다. 정책은 이 목줄을 담보로 기업들에게 홍보중심의 성과물을 기대했다. 정책은 언제나 스마트폰 신화에 흠뻑 젖어 있고 기업들은 여전히 배고파 한다. 기술과 수요를 함께 보지 않는 기업활동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요행이다. 그런 기업들에게서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는 정책은 사상누각이고 밑 빠진 독에 물 붇기이다. 한국의 로봇산업이 #4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이제 허상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제2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이 막바지 작업 중이라고 한다. 5년 단위의 중장기 정책방향이다. 기대를 걸어본다. 서현진 편집고문

서현진 기자  suh@irobo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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