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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길 박사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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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0  14: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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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씨앗을 뿌려 10년 후 뿌리 하나가 자란다면…

"갈팡질팡하는 과정도 거쳐야 기술 선진국 되는 것"
후배 로봇PD에 해준 조언은 "소신껏 하면 된다" 뿐
이제는 ‘베풂으로써 자기가 만족하는 것’ 필요할 때

이호길 박사(62ㆍ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는 정부의 로봇진흥이 본격화된 2000년대 초반부터 정책 기획에 깊게 관여해온 대한민국 로봇 1세대이다. 로봇이 10대 신성장동력으로 선정된 2004년에는 초대 지능형로봇사업단장을 맡아 로봇 진흥정책의 밑그림을 그려냈다. 반면 그는 국내 로봇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본 유학파이기도 하다. 4월 어느날 안산에 있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경기지역본부 연구실에서 이호길 박사를 직접 만났다.

요즘 외부 활동이 뜸했는데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2000년대 초반부터 연구원 활동과 정책 기획을 겸해왔는데 2010년 이후부터는 연구 분야에 전념해오고 있습니다. 연구가 원래 본업이죠. 지금은 제가 하고 싶었던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외도 아닌, 외도를 했고 이제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온 셈입니다.

로봇 정책의 뿌리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에서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생기원에서 24년째 재직 중이죠? 초기 활동은 어떠했습니까?
로봇연구 부문을 만들 때의 목표가 “정말 쓸만한 로봇 한번 만들어 보자”였어요. 그때가 IMF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초입니다. 외환위기 때 로봇기업들이 거의 문을 닫았잖아요. 대기업들도 철수하면서 바닥 분위기가 굉장히 암울했어요.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 했는데 당시 일본은 산업용로봇이 굉장히 발전하는 시기였어요. 우리와 기술 격차도 크고 시장지배력도 앞서고, 자본력에서도 감당하기가 어려운 상대였지요. 그때 저희가 시도했던 게 생활 속에서 누구나 쓸 수 있는 퍼스널 로봇이었어요. 그 분야는 일본도 초보적이니 열심히 하면은 뭔가 나올 수 있다고 본거죠. 청소로봇과 교보재용 로봇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물론 일본도 그때 몇 백만 원짜리 가정용 청소로봇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너무 비싸서 안 팔렸어요. 저희는 미국 아이로봇의 ‘룸바’를 재빨리 벤치마킹해서 로드맵을 만들고 밑바탕 기술 확보에 나섰어요.

생기원과 기업 연구소의 차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연구개발 결과가 당장 팔려야 하는 게 목적이라면 그건 기업 연구소가 해야 할 일이겠지요. 저희의 스텝은 보통 5년입니다. 5년 후에 시장이 무엇이 나올까를 앞서 연구를 시작하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앞서 설명한 청소로봇입니다. 청소로봇이 시장에서 활성화될 때까지 대략 5년 정도의 스텝이 소요됐다고 보면 돼요. 그런 점에서 생기원 연구원들은 한발 앞서 새로운 길을 닦는 사람들이지요.

향후 5년 후를 내다보며 진행하는 연구는 어떤게 있을까요?
현재 많은 종류의 로봇들이 출현하고 있지만 실생활과 우리의 피부에 닿는 로봇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그래서 시장이 만들어 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스마트폰이 굉장히 많이 보급됐잖아요.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수집해서 교환하고 가공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겠죠.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에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는 많은 틈새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가운데 하나가 원격기술이라고 봐요. 이 원격기술이 로봇의 다음 세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봇 분야에서 원격기술에 대한 뿌리를 우리가 만들어 내자, 그게 지금 저희가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몇 년 전부터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이미 관련 과제를 개시했고요. 올해도 새로운 과제가 추진될 겁니다.
▲ 신성장동력 지능형로봇사업단장 시절 한 언론사 좌담회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조영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지능형로봇연구단장, 오상록 정보통신부 로봇PM, 나경환 과학기술부 기계소재심의관, 이호길 박사, 오준호 KAIST 기계공학과 교수(2005년 11월, 모두 당시 직함) <사진제공 전자신문>
지난 2004년 10대 신성장동력사업 추진 당시 초대 지능형로봇사업단장을 맡았었습니다.
그때 함께 작업했던 분들이 많았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산업자원부 중심으로 추진했지만 나중 정보통신부 쪽에 계셨던 분들이 가세했지요. 김진오 교수(광운대), 고경철교수(선문대), 문승빈 교수(세종대), 오상록 박사(KIST), 김문상박사(KIST) 등이 그들입니다. 지금 보면 모두 기라성 같은 분들이죠. 산업계 쪽에서도 신경철 사장(유진로봇) 같은 분들이 계셨고요. 그 분들 중에서 제가 제일 연장자였어요. 그 가운데 몇 분이 저를 추천했어요. 그래서 경쟁자 없이 자의반타의반으로 단장을 맡게 됐는데, 저는 모르지요! 그 사이에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 하하하! 물론 제가 전부터 생기원에서 정책 밑그림을 계속 그려왔으니까 경험이 제일 많긴 했어요.

당시 산업 규모로 볼 때 로봇이 10대 성장동력에 포함됐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지 않았나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만들기 위해 뭘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안팎에서 계속됐어요. 그때 가장 먼저 뜰 수 있다고 본 게 바이오 분야였습니다. 당시 황우석 박사 신드롬이 있었잖아요. 그 다음이 로봇이었습니다. 그런데 '황우석 사태'로 바이오 분야가 꺾이면서 로봇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됐어요. 물론 부담은 배가됐죠. 명색이 10대 성장 동력인데 산업 규모도 적고 국민들이 잘 모르는 분야라는 거죠. 그런데 디스플레이와 같은 분야도 10년 이상 고생하다가 결국 개화했잖아요. 마찬가지로 지금 씨앗을 심어 10년 후에 우리나라에 새로운 산업의 뿌리가 하나 자란다면, 그건 도전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이런 뜻이 이심전심으로 퍼져나간 거죠. 그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2004년 당시 세웠던 목표들이 많이 빗나갔습니다. 예를 들면 2013년에 수출 100억 달러, 생산규모 8조원 등의 수치가 제시됐는데 결과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수치는 그럴지 몰라도 취지나 의미에서는 크게 빗나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과대 포장됐다, 장밋빛이다 하는 얘기는 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정부 주도형 성격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어요. 현실 수준보다 더 많은걸 요구하는 게 정책입니다. 목표를 조금 과다하게 잡는 것도 정책 수립의 한 방법입니다. 물론 조금 과했던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인당 국민소득을 2만 달러로 끌어 올리려면 신성장동력사업 1개당 얼만큼씩 해야 된다는 계산이 먼저 나왔어요. 이 계산에 따라 로봇은 얼마 할래? 라는 얘기가 진행된 겁니다. 톱다운 방식의 그림인 셈이죠. 로봇정책을 담당하던 당시 산업기계과장도 ‘로봇 시장이 거의 없는데 이거 10년 내 이런 규모로 성장하는 게 맞아?’하는 심정이었어요. 물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10대 신성장동력사업 단장들이 모여 이게 말이 되느냐며 따진 적도 있어요. 하지만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게 정책 취지에도 맞는 거고요.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저희가 생각했던 사업비 규모가 너무 적었어요, 수치들이 많이 빗나갔다면 그런 것도 요인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지나치게 단기성과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기술 발전 주기를 보면 대개 비슷해요. 처음에 연구자들이 분위기를 조성해서 붐이 일면 정부가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술이라는 게 금방 투자 결과가 나오지가 않습니
다. 시간이 지나면 관심도가 줄고 정부 지원도 끊겨요. 모든 게 방치되는 암흑기가 시작되는 거죠. 그런데 이 암흑기에서 뭐가 하나씩 툭 튀어 나와요. 그렇게 튀어나오는 주기가 대략 10~15년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는 거죠. 이게 기술의 발전 과정입니다. 정부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구조는 미국도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런 차원보다는 이렇게 발전단계로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일본만 해도 100년 이상의 기술 발전의 역사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로봇만 해도 연구소가 만들어지고 제대로 된 연구가 시작된 게 20~30년 밖에 안됐어요. 20~30년의 결과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는 아니라고 봐요. 때로는 갈팡질팡하기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 단계를 거쳐야 선진국 되는 거죠. 좀 큰 시각에서 큰 물결을 봐 줬으면 해요. 지금 파도가 2미터짜리라고 해서 앞으로 다가올 파도도 2미터짜리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엄청난 조류가 흘러가고 있고 우리가 거기에 타고 있느냐 못 타고 있느냐를 봐야 하는 거죠.

정책 당국자가 자주 바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이 자주 바뀌는 건 문제에요. 그렇다고 그 정책에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날 핫 이슈였던 것이 갑자기 식어버리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담당자가 바뀌어 있는 겁니다. 정 책을 맡은 공무원들에게는 뿌리를 내릴 수 있게끔 모니터링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같이 지어 주는 체계가 되면 좋겠어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로봇분야에서 사무관을 시작해서 담당 과장이 되고 나중에 담당 국장, 담당 조정관이 되는 거죠. 그런데 대체로 우리나라 공직은 순환보직 개념이잖아요. 여기 있다, 저쪽으로 가고, 그래서 어찌어찌 하다 보니 나중에 또 로봇 쪽으로 돌아 올 수도 있겠죠. 그런데 돌아와서 보면 그 사이 공백 때문에 옛날 이야기 밖에 모르는 상황이 돼 버려요.

앞서 발전 단계를 말씀하셨는데 현재 우리 로봇산업은 어떤 단계일까요?
10대 신성장동력사업을 시작하던 2004년만해도 우리나라 로봇계가 미미한 수준이어서 기업체가 고작 10~20개 정도였어요. 또 전문가라고 해봐야 200명이 채 안 됐어요. 제품도 대기업에서 만드는 산업용 로봇 몇 종 말고는 없는 겁니다. 기반을 육성해서 사람이 몰려들고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게 급했어요. 이런 단계를 저는 페이즈 1(Phase 1)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 다음 기반이 만들어지고 기업들아 좀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품목 한 두 개쯤은 직접 해보자, 이런 게 페이즈 2입니다. 선택과 집중의 단계이지요. 그런데 페이즈 2에서는 도토리 키재기 하는 기업들에게만 선택과 집중을 맡겨놓을 수는 없잖아요. 전문가나 정책의 리드가
어느 정도 필요하지요. 경제성장 과정에서도 가속도가 붙으려면 유능한 디렉터가 앞서 끌고 가는 게 효율적이라는 게 증명이 됐잖아요. 이런 과정이 정착되면 자율경쟁 환경, 즉 페이즈 3가 옵니다. 이를테면 페이즈 2는 고객 불러오는 것이고 페이즈 3는 선진국이 돼서 전세계와 경쟁하자는 얘기잖아요. 2004년으로부터 6~7년이 지나는 시점인 2010년에 제가 페이즈 2를 정책당국에 건의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페이즈 2에 넘어오지 못한 것 같아요. 페이즈 1에서 관성이 붙으니까 깨기가 어려워 진 겁니다.

생기원 후배 두 분이 잇따라 로봇PD를 맡았는데, 선배로서 정책적 조언은 하나요?
가급적이면 관여하지 말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책기획자에게 주위의 입김이 들어가면 자기 뜻을 펴기가 쉽지 않죠. 2009년에 이상무 박사가 로봇PD로 갈 때 '어떤 주문도 어떤 권유도 하지 않겠다, 전체를 균형 있게 잘 조망한 다음 객관적으로 판단하라'고만 했어요. 지금의 박현섭 PD에게도 '소신껏 일하면 된다'고 했고요. 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안 합니다. 다만 페이즈 1,2,3 이야기는 해줬습니다. 제가 지능로봇산업단장 할 당시만 해도 연간 연구개발비가 100억~150억 원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로봇PD가 관여하는 예산만도 600억~700억 원으로 늘었는데 뚜렷하게 나타나는 변화가 없어요. 박PD도 그 점에 대해 굉장히 고민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페이스를 바꿀 때가 됐고, 또 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어요.

2009년 개발한 로봇 '에버'가 가수로 데뷔해 화제가 됐었습니다. 에버처럼 대중적 관심을 모을 수 있는 로봇이 산업 발전에 도움됐다고 보나요?
로봇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로봇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대중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어요. 일본에서도 '아시모'와 '아이보' 같은 게 있었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뭘 보여줄 수 있냐는 겁니다. 정책 당국에서도 그런 시각이었고요. 주변에서는 정부가 로봇 한다고 재정적으로 밀어준다는데 연구원에서는 대체 뭐하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적은 돈을 들여서더라도 뭔가 하나를 보여주자, 그렇게해서 2005년부터 '에버' 시리즈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2011년 에버4까지 개발됐는데 로봇이 이렇게 쓰일 수 있다는 기술적 임팩트를 주고 국민들에게도 자긍심을 심어준다는 측면이 강했어요. 처음부터 상용화나 실용화를 타깃으로 한 것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왜 상용화하지 않느냐는 쪽으로 몰아가면, 답변이 곤란해지는 거죠.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지능로봇공학과를 창설했고 현재도 출강하시는데 교육방식이 독특하다고 들었습니다.
일반 대학원처럼 강의 중심이 아닌, 도제식 교육입니다. 이를테면 너는 납땜부터 시작해봐라, 너는 프로그램 짜봐라, 이런 식으로 하나씩 가르치고 지도하는 방식이지요. 세미나도 많고요. 중요한 것은 실제 연구실에 투입돼서 뭘 만들어 같이 실험하면서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도제식이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좀 부정적으로 비치는 측면이 없지 않죠. 그런데 로봇은 이론과 실제가 완전히 달라 간단하지 않아요. 손끝으로 직접 만져보지 않고 수업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특히 시스템에 통합 과정이 절대 필요해요. 그 과정 자체가 사실은 노하우예요. 로봇은 규격이 맞는다고 아무 커넥터나 갖다 끼우면 잘 돌아가지 않아요. 과학기술연합대학원에서는 그런 노하우들을 수업을 통해 배우고 직접 익히거든요. 석박사 과정이 모두 그렇습니다.
▲ 국립극장에 오른 '엄마와 함께하는 국악보따리'에서 국악을 배우는 학생으로 열연한 '에버'로봇. 오른쪽은 심부름하는 로봇 '세로피'(2009년 5월)
원래 관심 분야는?
제어입니다. 저는 기계 베이스에서 제어공학을 공부했어요. 제가 공부할 때는 제어 적용 분야로 자동차 산업이 가장 활발했고 공장자동화가 막 붐이 일었어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제어 분야가 큰 이슈로 부각될 때였고 국내 대학에도 제어관련 학과가 막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제어공학이 큰 인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대학에서 시들해졌지만 제어공학 이론은 학문적으로 가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제어의 기본에 PID제어라는 게 있어요. 비례(P), 적분(I), 미분(D)을 조금씩 가미하면 제어가 됩니다. 피드백도 하고요. 자동화도 그렇고 로봇도 거의 그런 범주의 기술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실용적인 가치로 봤을 때는 당장 손쉽게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은 많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어떻게 로봇을 선택하게 됐나요?
대학 졸업하고 곧바로 현대정공에 입사했어요. 기계공학과를 졸업했으니 당연한 수순일수도 있었지요. 철구조물을 다루는 특수 설계부에 배치를 받아 갔더니 경량 철골 구조물, 압력탱크 같은 것 들을 만들어 수출하는 부서였죠. 거기서 프리캐스팅(precasting)이라는 이태리 다리건설공법을 처음 경험했어요. 지금은 일반화 된 건데, 미리 캐스팅한 콘크리트 블록을 본드로 붙 여 브릿지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실제 콘크리트 블록은 폭이 3미터, 길이가 20미터쯤 돼요. 이걸 밑에 대차를 끌어다 놓고 본드로 붙이려면 단이 잘 안 맞아요. 그래서 유압 조인트로 단을 조정해서 하나씩 붙여 나갑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 흉내를 내겠는데 유압 제어 부분은 국산 기술이 없더라고요. 문득 제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일본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까 어느새 제가 로봇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하하!

학위 논문은 어떤 주제였나요?
부드럽고 낭창낭창한 플렉시블 암은 진동이 많은 생산현장에서 취약해요. 그걸 어떻게 똑바로 잡아서 일을 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게다가 로봇을 고속화하려면 진동에 대한 제어가 필수적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산업용 로봇에 고속 알고리즘이 들어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속도 측면에서 일본하고 비교가 안 됐거든요. 우리가 기술적으로 그런 수준을 확보하지 못했던 거죠. 진동에 대한 제어를 연구 주제로 택했는데 관심도 많았고 재미도 있었어요. 당시 저의 학위논문이 일본에서 큰 이슈가 됐고 전문가들에게 인기도 있었어요. 어느 대학 교과서에도 실리고 학회지에도 해설서가 게재됐다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로봇신문이 일본유학파를 인터뷰하긴 처음입니다. 일본 유학을 선택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일본이 기술적으로 미국에 뒤지지 않았어요. 산업용 로봇은 거의 일제였으니까요. 로봇뿐만 아니라 자동화 분야에서도 일본 기술이 상당히 자랑스럽게 여겨지던 시 절이어서 일본에 가는 것 자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또 그때는 일본의 미래가 아주 밝
▲ 이호길 박사가 로봇을 소프트웨어 코드로 접근하기 위해 시도했던 '가상로봇챌린지' 대회(2010년 5월 본선)
다고 여겨졌어요. 국내에 들어온 전문서적만 봐도 일본 것은 다양하면서도 정리가 잘돼 있는 반면, 미국 것은 두꺼운데다 얇게 정리된 책이 별로 없었어요. 일본 사람들이 참 섬세하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죠.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당시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일본에 가서 많이들 배워 왔어요. 그런 시절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닌듯합니다. 만약 미국과 일본을 놓고 고민하는 후학들이 있다면 일본 유학은 말리고 싶어요. 영어라는 변수도 있고 세계 로봇계 흐름도 이미 미국 쪽으로 넘어갔다고 봐요.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는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요?
9년간 유학 마치고 한양대와 생기원에 지원했는데 생기원에서 먼저 연락이 왔죠.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냅니까?
몇가지 취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일 고대사 강독입니다. 일본 유학시절부터 관심이 있어 조금씩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유학시절 일본 고대사에 나름대로 조예가 있는 일본 교수 한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삼국시대 이전에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했었다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잘 몰랐는데, 그게 소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이잖아요. 한반도가 삼국시대 이전에 일본의 식민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일제의 36년 강점도 당연한 게 됐다는 겁니다. 이게 뭔 소린가 싶어 서울에 연락해서 당장 '삼국사기' 한권을 보내달라고 해서 읽기 시작했죠. 처음엔 일본인 교수나 학생들에 대해 반론을 펴기 위해 읽었는데, 그게 한일 고대사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한 셈이죠. 또 한가지는 그림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화가가 꿈이었던 적도 있어요. 집안의 반대 때문에 공대 진학으로 바꿨습니다. 미술대회 나가서 장관상도 받았는데, 지금도 가끔씩 집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유화지요.

독자들에게 권할만한 책이 있다면
책을 권하기보다는 제가 감명 깊게 읽었던 '사기'(史記) 얘기 한 토막 해볼게요. 70개 열전(列傳)가운데 '화식열전'이라는 게 있어요. 화(貨)는 재화의 뜻이고 식(殖)은 심어 불린는다는 뜻이잖아요. 한마디로 돈을 불리는 것, 즉 먹고 사는 이야기입니다. 2000년 전의 얘기이지만 현대인이 보더라도 공감하는 진리가 거기에 있어요. 무슨 얘기인가 하면, 제가 월급쟁이 연구원을 하다가 막상 정년퇴직을 하겠다고 하니까 그 동안 모아둔 것도, 노후 대책도 별로 없는 겁니다. 연구하고 정책 기획 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던 거죠. 그런데 화식열전에 어마어마한 답들이 있어요. 문득 왜 우리는 이런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대목이 있어요. 1년 만에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그런 건 없다, 그러면 10년 정도하면 부자가 될 수 있나? 그건 길이 있다, 20년 정도 한다면? 그건 확실하게 부자가 될 수 있다.목표를 미리 세우고 계획대로 천천히 따라가면 자기가 갈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다, 대략 그런 내용이죠. 사농공상 이야기도 나와요. 농사를 짓거나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사회 에 꼭 필요한데 막상 본인들은 가난해요. 농사짓는 이들은 처자식 먹여 살리기 힘들다고 해요. 물건 만드는 이들도 무지 바쁘지만 입에 겨우 풀칠한다고 하소연합니다. 화식열전에는 그럴 때는 장사를 하라고 돼 있어요.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없다면 집에 있는 간장종지라도 들고
나가서 팔라는 겁니다. 2000년 전에 이런걸 깨달은 이가 있는데 나는 이런 것을 왜 몰랐을까? 무엇을 미래가치로 추구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이드가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인생의 좌우명이 있습니까?
없었는데 최근에 와 닿는 게 생겼어요. '없지만 베풀자' 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뭘 가지고 갈까요? 생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었는가에 대한 자기 만족이죠. 상대방의 만족이 아니라, 베풂으로써 자기가 만족하는 것, 이제 그런 게 필요하다고 봐요. 서현진 기자

[이호길 박사 주요 이력]
1953년 서울 출생
1980년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86년 오사카대학교 대학원 기계공학 석사
1989년 오사카대학교 대학원 기계공학 박사
1980년 현대정공 특수설계부 입사
1991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허브로봇센터 소장(~2004년)
2001년 한국로봇산업협회 퍼스널로봇기반기술개발 총괄책임(~2010년)
2004년 산업자원부 지능형로봇사업단 단장(~2006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로봇기술본부장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지능형로봇공학과 교수(현)
2006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로봇종합지원센터 센터장(~2008년)
2009년 산업기술연구회 협동연구사업 총괄책임(~2011년)

서현진 기자  suh@irobo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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