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캅, 인간인가 기계인가?
로보캅이 돌아왔다. 1980년대 말부터 〈로보캅〉 시리즈가 만들어졌으니까 벌써 25년이 훌쩍 넘은 셈이다. 2014년에 다시 돌아온 로보캅은 한층 더 성숙한 모습이다. 그저 범죄자들이나 부패한 경찰을 혼내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로봇산업을 통해 ‘대박’을 터트리려는 거대 자본, ‘옴니코프’사의 음모를 저지하고 그 음모에 놀아나는 국가권력을 고발하고 있다.

▲ 2014년 로보캅이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옴니코프’사는 치안과 국방을 담당하는 일을 사람이 아닌 로봇에 맡기는 정책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는 ‘인간을 닮으려는 로봇’의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상태였다. 자본은 신형 ‘로보캅’의 활약과 인기를 통해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정치권을 움직여 기존 법률을 폐지하려 한다. 물론 이러한 음모는 로보캅에 의해 저지되고 로보캅을 탄생시킨 과학자, 데넷 노튼 박사의 양심선언으로 수포로 돌아간다.

사회를 지배하는 두 가지 권력은 국가와 자본이다. 국가로 상징되는 정치권력과 자본으로 상징되는 경제권력은 사회의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을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2014년에 돌아온 로보캅은 자못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제법 사회성 짙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 ‘싸우기’ 위해서는 물리력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로보캅이 갖고 있는 물리력은 실로 막강하다. 거의 기계인간으로 재탄생한 로봇 ‘알렉스 머피’는 탱크보다도 훨씬 강력한 군사로봇과도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비슷하게 생긴 전투로봇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의 액션은 분명 기계의 모습이요, 기계의 능력이다. 그러나 영화의 포커스는 ‘인간’ 머피에게 맞춰져 있다. 사실 ‘누구랑 왜 싸울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이성의 문제이고 그 이성을 어떤 방향으로 작동시킬 것인가는 또 감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머피는 로봇으로 재탄생한 자신을 처음 발견하고는 차라리 죽여 달라는 ‘인간적’ 호소를 한다. 그가 로봇으로 탄생한 현실을 인정하게 된 계기도 가족에 대한 감정이었고, 감정을 거세당한 상태에서도 다시 감성적 인간으로 돌아오는 계기도 아내와 아들에 대한 감성적 각성 때문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로보캅이 ‘인간이냐, 기계냐?’ 라는 질문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로보캅은 1970년대 만들어진 ‘600만불의 사나이’나 ‘특수공작원 소머즈’의 연장선에 있다. 인간에다가 일부 기계적 능력을 부가한 것이다. 그래서 로보캅은 원칙적으로 인간이다. 오히려 로보캅은 기계와 대비되는 ‘인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날로 비인간화되고 기계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적’인 모습이란 무엇인가. 돌아온 로보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기계인간의 꿈
기계인간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육체적 능력의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육체적 능력은 특정 동물의 신체적 능력에 비해 열등하다. 치타나 말처럼 빠르게 뛰지도 못하고 사자나 호랑이처럼 강하지도 못하다. 인간이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처럼 처음에는 인간과 짐승의 결합이었다. 상체는 사람의 모습과 같지만 허리 아래 하체는 말의 모습을 한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형상이다. 켄타우로스에는 말처럼 빠르게 달리고 싶은 욕망이 투영되었으리라. 그리스신화에는 ‘탈로스’라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인로봇도 있다. 어쩌면 최초의 기계인간에 대한 상상이었을 탈로스는 크레타 섬을 경계하며 순시도 하고 이방인을 물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메디아의 마법에 걸려 최면에 빠졌고 발뒤꿈치에 고정된 못이 뽑히면서 최후를 맞는다. 최면에 걸린다는 상상을 보면 탈로스는 상당히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고 볼 수 있겠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가 만들어지면서 기계는 이전에 사람과 가축이 담당했던 노동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계는 기계일 뿐이어서 사실상 기계는 인간 손의 연장에 불과했다. 사실상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계는 사람 손의 연장인 셈이다. 본질적으로 기계이지만 그래도 사람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는 로봇은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 볼 수 있다. 비록 터미네이터는 기계지만 인간과의 접촉을 통한 학습을 거쳐 인간적 감성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는 자율적 판단을 한다. 기계가 인간처럼 행동하려면 우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필요하다. 인간의 지능으로 할 수 있는 사고, 학습, 자기계발 등을 수행하는 능력이다. 터미네이터의 머리엔 상당한 수준의 인공지능이 탑재해 있는 셈이다. 오늘날 컴퓨터의 발달은 인공지능의 꿈을 어느 정도는 현실로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이 진정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려면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까.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17세기 동물과 기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 논의의 중심에 데카르트가 있었다. 인간은 이성이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다르다고 말한 그는 인간 이외의 동물을 기계로 간주했다. 데카르트는 1637년에 출판된 〈방법서설〉에서 다음과 같이 인간과 기계를 구별한다.

“지금까지 나는 만약에 원숭이 또는 이성이 없는 다른 동물의 모양과 기관을 가진 기계가 있다면, 이 기계가 동물이 아니라고 말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가능한 한 우리의 행동을 모방하는 기계가 있다면, 이런 기계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확실한 방법이 있다.

▲ 기계와 인간의 구별을 철학적으로 정립한 데카르트

첫째, 기계는 우리가 하듯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말이나 신호를 사용할 수 없다. 물론 말하는 기계를 만들 수도 있고, 기계에 가해진 물리적 행위에 적절한 말로 대응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기계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고, 다쳤다고 울거나 그 비슷한 일을 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계도 인간처럼 상황에 맞게 말을 바꾸지는 못한다.
둘째, 비록 그 기계가 인간만큼, 또는 더 잘, 많은 일을 할 수 있어도, 기계는 인간처럼 이성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내부 장치의 배치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성은 모든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구인 반면에, 기계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일에 따라 특정한 배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성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이, 기계가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처할 만큼 많은 장치를 가지고 작동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데카르트가 제기하는 기계인간의 조건은 자율성과 창의적 사고력을 핵심으로 한다. 인간 이성의 핵심요소인 자율성과 창의적 사고력을 기계는 절대로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합리주의자 데카르트의 냉소적 비판은 17세기에 이루어졌지만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자들에게도 아직은 여전히 ‘넘사벽’이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인간다움의 최대 특징으로 여긴다면 인공지능이 수행할 역할은 자율적인 창의적 사고능력이어야 한다. 이것이 기계인간의 일차적 조건이다. 어쩌면 이는 과학의 무한한 힘을 믿는다면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터미네이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가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인공지능 때문이 아니다. 터미네이터가 소년 존 코너의 눈물을 어루만지는 것이 그의 인공지능 때문이 아니지 않는가. ‘아이로봇’에 나오는 로봇들은 인공지능을 갖고 있는데 오히려 인간을 멸종시키려고 하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 인공지능은 충분조건이 되기엔 여전히 불충분할 뿐이다. 로보캅이 악당을 물리치는 동력은 ‘합리적 이성’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합리주의가 제기하는 인간중심적 휴머니즘은 인간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부족해 보인다.

진정한 인간의 모습은?

▲ 데카르트는 “기계가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처할 만큼 많은 장치를 가지고 작동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데카르트는 “기계가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처할 만큼 많은 장치를 가지고 작동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근대 합리주의가 제기하는 인간중심주의(휴머니즘)는 중세 때까지의 신 중심의 세계관을 대체하면서 주술적 사고와 같은 비합리적 사고를 비판하고 합리적 계산에 기초한 새로운 계몽된 세계를 우리에게 펼쳐보였다. 그것은 분명 역사의 진보였다. 하지만 이성 중심적 편향은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하면서 인간과 자연을 대립시켰고 자연의 지배자로서의 인간의 횡포를 정당화시키기도 하였다. 인간중심주의는 비인간으로 치부되는 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였다. 이는 동물과 같은 자연에 대한 폭력이나 차별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성적 인간이 비이성적인 자연을 지배하듯이, 더 이성적인 인간이 덜 이성적인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였다.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지배하고, 백인이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당연한 이성의 명령으로 치부되었다. 철학자 헤겔도 〈역사철학강의〉에서 아프리카 흑인들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라고 규정지었고 노예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유럽의 백인들보다 그들은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성적 합리성은 곧잘 효율성으로 칭송된다. 영화 〈로보캅〉의 처음은 위험지역으로 분류되는 어느 중동지역에서 행해지는 로봇의 순찰장면으로 시작한다. ‘인간’ 군인의 역할을 로봇이 대신하면 훨씬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라는 것을 홍보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전투로봇은 로봇에 대한 아버지의 자살공격을 목격한 아들이 뛰어나가면서 손에 쥐고 있었던 작은 칼을 위험시하며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할 어린 소년을 무참히 사살한다. 효율성이 보여주는 참상이다.

▲ 로보캅, 인간인가 기계인가?

영화에서 로보캅으로 재탄생한 머피는 테스트 초기엔 소년을 인질로 하는 유괴범에게 즉각적인, 즉 그들의 표현으로 ‘효율적’인 공격을 못한다. 자신의 공격으로 소년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후 옴니코프 회사의 셀러스 회장은 약물과 뇌수술을 통해 머피의 감정을 제거해 그를 인간이 아닌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완전한 기계로 만들어버린다. 이제 감정이 제거된 머피는 차가운 기계로만 기능한다. 자본이 추구하는 효율적인 기계인간이 된 것이다. 영화는 로보캅 머피가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기계로 변신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경고한다. 절친한 동료 형사 루이스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아내와 아들은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다. 인간이기 위해서는 합리적 이성만이 아니라 감성과 감정이 살아 있어야 한다. 로보캅이 정의를 위해 싸우기 위해 나서는 것도 어쩌면 다시금 회복한 그의 감성적 각성에서 비롯된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기타리스트는 데넷 노튼 박사가 만들어준 기계손을 갖고 연주를 하지만 기계손은 완전한 연주를 하지 못한다. 그의 격한 감정이 기계손을 오작동시키는 것을 본 박사는 감정을 자제하라고 권고한다. 그때, 기타리스트는 감정이 없이는 연주를 할 수 없노라고 하소연한다. 기타 연주를 귀 기울여 감상하면 코드를 옮기는 순간 끽끽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물론 그 노이즈, 잡음은 악보에는 없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연주는 그 소리조차 없애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잡음도 엄연히 연주의 일부다. 그 잡음은 오히려 그 연주가 인간에 의해 수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감정이 인간의 효율적이고 완벽한 연주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은 인간을 기계처럼, 완벽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헛된 욕망을 보여준다.

인간은 합리적 이성을 갖고 있지만 합리적 이성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가 갖고 있는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감성의 차원에서 결정된다. 때로는 이것들이 상호간에 충돌할 수 있다. 내면적 고민이 시작되고 갈등이 발생한다.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모순적 존재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그리고 그런 불완전한 인간들이 서로 의지하며 손잡고 살아가는 사회에는 늘 따뜻한 온기가 있다. 2014년에 돌아온 로보캅은 우리에게 감성이 꿈틀대는 따뜻한 사회를 주문하고 있다. 그것이 진정 인간의 참모습이 아닐까? ▒ 이선태 시민교육연구소 소장ㆍ월간로봇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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