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기반의 차세대 특허넷 구현 모습 : 특허청은 심사・심판 품질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 이미지 검색・기계번역 등 인공지능을 적극 활용키로 했다.

지난 2018년, 영국 서리(Surrey)대학의 라이언 애봇(Ryan Abbott) 연구팀은 인공지능(AI) ‘다부스(DABUS)’를 발명자로 특허를 출원했다. 미국특허청(USPTO), 영국특허청(UKIPO), 유럽특허청(EPO)은 물론, 국제특허(PCT) 출원을 위해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도 제출됐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애봇 교수는 향후 한국, 중국, 일본 등 6개국에도 특허를 출원할 예정이다. 실제로 해당 프로젝트의 팀원 명단에는 한국 담당자도 포함됐다.

애봇 교수팀이 인공지능을 발명자로 지정한 첫 번째 특허는 프랙탈(fractal) 디자인을 이용한 음식 용기(food container)이고, 두 번째는 신경동작(neural activity) 패턴을 모방해 깜박이는 램프(lamp)에 대한 발명이다.

▲ 인공지능 다부스(DABUS)가 발명자로 되어 있는 특허 출원 도면

AI를 발명자로 지정한 애봇 박사의 주장은 크게 4가지다. 첫째, 특허 발명자가 자연인으로만 한정되면 안되며 인공지능과 같은 기계도 발명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기계 또는 인공지능이 수행한 발명의 소유권은 기계 또는 인공지능의 소유자에게 귀속돼야 한다. 즉, 기계는 특허권을 소유할 수 없으며, 기계는 법인격 또는 독립적인 권리 또는 소유권을 갖지 못한다.

셋째, 기계 또는 인공지능 소유자는 기계가 수행한 발명의 발명자로 등록하면 안 된다. 발명하지 않고 발명자로 등록하는 것은 형사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넷째, 기계 또는 인공지능을 발명자로 인정하는 것은 발명의 진정한 소유권자를 찾는데 필요한 시작점이라는 것이 애봇 박사의 입장이다.

그러나 유럽특허청(EPO)은 해당 AI 특허출원에 대해 거절(refuse) 결정을 내렸다. 발명자가 사람이어야 한다는 유럽특허조약(EPC, European Patent Convention)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발명자는 사람(natural person)이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인 표준이라는 주장이다.

인공지능(AI), 발명자나 특허권자가 될 수 있을까?

▲ 특허청 정보관리과 한규동 과장

이 질문에 대해 특허청 정보관리과 한규동 과장은 ‘지식재산과 혁신’ 창간호에 ‘인공지능과 지식재산’이라는 기고를 통해 “인공지능을 발명자로 인정하는 것이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이의 공유를 통해 사회발전을 도모하는 특허법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현재까지 인공지능은 단지 도구에 불과하며, 이런 상황에서 기술혁신을 통한 사회발전은 오롯이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 한 과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IP5 국가의 현행법에 따르면 발명자는 아직 사람만 될 수 있고, 인공지능이나 기계는 발명자가 될 수 없다. 또 특히 적격성이나 기재요건, 진보성 등에 대해서도 기존의 컴퓨터 관련 발명에 관한 기준을 적용하면 되고, 아직까지는 별도 기준이 필요없다는 분위기다.

한규동 과장은 “그럼에도 한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산업계와 공동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한 발명의 기재요건 및 진보성 판단 등에 대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실제로 인공지능을 비롯한 신기술이 지식재산권에 미치는 영향을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IP5 태스크포스팀도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창작자나 저작권자가 될 수 있나?

최근들어 ▲AI를 이용해 렘브란트(Rembrandt) 화풍을 그대로 재현하는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 ▲꿈꾸듯 몽롱한 그림을 그리는 구글 딥드럼 ▲고흐· 피카소 등 유명한 화가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프로그램 등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양한 예술 작품이 창작되고 있다.

▲ 인공지능을 이용한 그림

이처럼 인공지능을 이용한 창작이 늘면서 저작권 제도에도 복잡한 이슈들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들어, 작가가 문서작성기를 이용하여 글을 쓸 때 문서작성기나 문서작성기를 만든 회사가 저작자일 수는 없고 글을 쓴 작가가 저작자인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들 때 사용자의 노력이 단지 버튼을 누르는 것 밖에 없다면, 누가 저작자가 되어야 하는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 원숭이 나루토(Naruto)의 셀카 사진

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동물에 대한 저작권 사건이 있다. 미국 사진작가 슬래터(David John Slater)가 2011년 인도네시아에 사진 촬영을 갔다. 숲에서 잠깐 카메라를 놓아뒀는데 나루토(Naruto)라는 이름의 원숭이가 슬래터의 카메라로 셀카를 몇장 찍었다.

슬래터는 이 사진을 자신의 책에 포함했는데, 동물보호단체(PETA)가 원숭이의 저작권을 무단으로 침해했다는 이유로 슬래터에게 저작권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저작권 위반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끊나지 않는다. 위키피디아는 나루토의 셀카 사진을 위키피디아 홈페이지에 게시했는데, 슬래터가 저작권을 이유로 사진을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위키피디아는 동물이 찍은 사진은 저작권이 없다(uncopyrightable)고 주장하면서 슬래터의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인공지능을 이용한 예술 작품의 창작은 ▲AI에 의한 작품이 창작성(originality) 있는 저작물이 될 수 있는지 ▲AI가 창작자나 저작권자가 될 수 있는지 ▲AI 대신에 누가 저작자/저작권자가 되어야 하는지 ▲AI 학습과정에 이용하는 데이터의 이용 관련 쟁점 등 저작권 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불러온다.

현실적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한 작품에 대한 저작권자 후보로는 ▲인공지능의 알고리즘 개발자 ▲인공지능 사용자 ▲데이터를 이용해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자 ▲인공지능 그 자체 등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 저작권법에 따르면 사람만이 저작자가 될 수 있다. 미국, 유럽, 영국 등 세계 여러 나라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규동 과장은 “저작권 이슈들도 WIPO 컨퍼런스에서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라며 “향후 변화가 불가피하겠지만, 아직은 한계가 많은 AI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인공지능과 인간의 협업 및 시너지 제고가 중요한 시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인공지능(AI)으로 달라지는 특허 행정업무

지난해 특허청은 도형 상표 이미지 검색시스템에 딥러닝 기술을 적용해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를 진행했으며, 올해는 본 시스템을 구축한다. 특허 도면에 설명없이 번호만 있어 이해하기 힘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딥러닝 기술로 도면 부호를 추출해 활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심사관이 전 세계 특허 문헌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인공신경망 기계번역시스템을 서비스중이다. 올해는 상담센터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챗봇(Chatbot) 시스템도 구축한다. 디자인 이미지 검색시스템과 득허 · 상표 분류에 대한 연구도 진행한다.

▲ 특허청 업무 중 인공지능 적용이 가능한 주요 분야

해외 국가 특허청들도 기계번역, 특히 ·상표· 디자인 검색과 분류 및 상담 등 여러 분야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IP5 인공지능 태스크포스도 국가별 인공지능 기술 현황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협력 방안을 모색중이다.

특허청 정보관리과 한규동 과장은 “미래에는 특허청 심사관 모두가 영화 ‘아이언 맨(Iron Man)’에 냐오는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Jarvis)’를 데리고 심사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인공지능 기술 수준과 장점 및 한계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국내외 전문가들과 적극 협업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