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창 지식재산과 혁신생태계 연구소장

세계에서 지식재산 보호가 가장 잘 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에서 ‘발명과 지식재산 계몽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스탠퍼드, MIT, 버클리, 하버드 등 미국 최고의 대학이 총출동하고, 과거 200년이나 지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특허와 산업혁명까지 다시 살펴보는 등 계몽운동의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도대체, 왜 이들이 지식재산 계몽운동을 하는가. 해답은 간단하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스탠퍼드 대학교 후버연구소의 ‘지식재산, 혁신 그리고 번영’ 프로젝트

미국의 싱크 탱크 중 톱에 속하는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는 국제 현안과 국내외 정치·경제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하는 공공정책 연구소로 유명하다. 이 후버연구소가 지난 수년 전부터 추진하는 것이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 혁신(Innovation) 그리고 번영(Prosperity)의 영문 두 문자를 딴 IP2 프로젝트이다.

IP2 프로젝트 참가자들은 가장 먼저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경제학, 역사학, 법학, 경영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연구를 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지만, 이들이 도달한 결론 중 하나는 ‘지식재산 제도가 경제성장과 기술혁신의 열쇠’라는 것이다.

▲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 : 지난 수년전부터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 혁신(Innovation) 그리고 번영(Prosperity)의 영문 두 문자를 딴 IP2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왜, 미국은 부유한 나라가 됐나?

‘지식재산 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는 부유해지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가난해진다’.

우리가 아는 영국이나 미국이 언제나 강대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18세기 초반 유럽의 강자는 네덜란드였다. 1700년대 네덜란드의 GDP는 영국의 두 배였다. 인구 측면에서 보면 프랑스는 2천만 명이 넘는 대국이었고 영국은 겨우 8백만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유럽의 변방인 영국이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제치고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은 특허제도 때문이었다. 제임스 와트는 이러한 혁신의 토양 위에서 증기기관을 발명했다.

▲ “특허는 발명가라는 불에 수익이라는 기름을 끼얹는 제도”라는 Lincoln 대통령의 명언이 새겨져 있는 미국 연방정부 상무성 측문 현판.

미국은 모국인 영국보다 탁월한 특허제도를 도입했다. 1700년대 미국의 1인당 GDP는 영국의 절반 수준으로 브라질과 비슷했다. 미국은 1836년 세계 최초로 현대적인 특허청을 도입하고 엄격한 심사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1870년대 미국의 인구당 특허 수는 영국의 15배에 도달했다. 에디슨이 1000여 건의 특허를 받고 170여 개의 기업을 창업한 것은 그의 비범한 능력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1913년이 되면 전기, 철도, 화학 등 수없이 많은 발명이라는 ‘혁신의 씨앗이 발아’되어 미국의 1인당 GDP는 영국을 추월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내용은 필자의 주장이 아니다. 후버 연구소가 추진하는 IP2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미국 공과대학은 ’전미 발명 아카데미‘

계몽운동은 미국 전역의 공과대학에서도 진행 중이다. MIT, 하버드 등 미국 최고 대학 250여 개가 전미 발명 아카데미를 조직했다. 이들 대학의 지도자들은 혁신 잠재력이 높은 발명가와 기업가를 발굴하고 키우겠다고 한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멘토가 되기 위한 자격 요건이 까다롭다. 미국특허를 1건 이상 가진 교수만이 멘토가 될 수 있다. 전미 발명 아카데미는 글로벌 조직이다. 캐나다,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과 홍콩의 대학도 참여하고 있다. 우리 대학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 ‘기술과 혁신’ 저널 최신호

전미 발명 아카데미는 다학제 저널인 기술과 혁신(Journal of Technology and Innovation)도 발행한다. 계몽운동치고는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이 독특한 저널은 10개 주제에 대하여 대학과 전문가 등의 경험과 이론을 다룬다.

특히 기술과 혁신 저널은 ▲교육을 통한 발명 정신의 함양 ▲발명 문화의 확산과 창조 ▲발명과 혁신의 과정 ▲ 대학에서의 기술이전 ▲기술의 사회적 영향 ▲지식재산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과 경제적 해석 ▲기술진보의 역사와 사회적 경험 등이 핵심 주제다. 이는 우리 지식재산 업계가 앞으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강한 암시를 주고 있다.

지식재산 전문가 = ’지식재산 계몽센터‘

지식재산 업계의 전문가들도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지식재산 계몽센터(CIPU, Center of IP Understanding)를 조직했다. 전미상공회의소, AT&T, 시카고 대학 등이 참여한다. 모토는 ‘IP Literacy Matters’이다. 지식재산 문해력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 미국인이 지식재산을 잘 모르니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지식재산 계몽센터(CIPU) 로고

과거 지식재산은 출원과 소송이 전부였고 연구자와 특허부서가 알면 될 일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벤처투자가는 스타트업의 특허를 투자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벤처캐피털 심사역과 엑셀러레이터가 알아야 할 사항이다.

이제 연구개발에서 특허를 조사하고 분석하는 것은 혁신의 보편적 관행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고기술관리자(CTO)의 덕목으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이다. 스타트업의 경우 매각이나 상장 시에 지식재산은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재무와 지식재산이 결합하는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는 것은 최고재무관리자(CFO)의 몫이다.

▲ 지식재산 계몽센터(CIPU) 사업 목표

기업들 간에 특허를 사고파는 것도 일상적이다. 은행들은 특허를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준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진행돼 왔다. 지식재산 전문가들은 지난 세월 동안 이러한 변화를 어렴풋하게 이해했다.

그러나 이제는 특허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이쯤 되면 지식재산은 CTO, CEO 그리고 CFO도 알아야 한다. 누가 이들에게 어떻게 지식재산을 가르칠 것인가? 지식재산 계몽센터가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대한민국에도 ‘지식재산 계몽운동’이 필요하다.

좋은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 필요하다.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 대학이다. 우리나라도 지식재산 전문대학원, 지식재산 선도 대학, 법과 대학, 공과 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재산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은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 지식재산을 전파하고 유능한 인재를 배출해 왔다. 그러나 10년이 흘렀다.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혁신을 통한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이 시점, 지난날의 경험을 다시금 평가하고 새로운 10년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된 셈이다.

미국이 변화하니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지식재산이 가지는 핵심 가치가 글로벌이고 국제화가 아닌가. 우리는 로컬에 살고 있지만, 기술과 지식재산은 글로벌이다. 우리나라에도 ‘지식재산 계몽운동’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 대학이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고 미래를 선도해 주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인재’야 말로 특허제도의 가장 핵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