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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DAILY] 미국에서 부는 “에디슨” 열풍정성창 지식재산과 혁신생태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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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04  09: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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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창 지식재산과 혁신생태계 연구소장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2019년 필독서로 ‘에디슨’을 선정했다. 포브스, 뉴욕 타임즈 등 미국 주요 언론도 최근 몇 달 사이에 ‘에디슨’ 다시 보기를 권하고 있다. 에디슨 열풍을 일으킨 사람은 미국의 유명 전기작가 ‘에드문드 모리스’이다. 그는 7년에 걸쳐 5백만 장에 이르는 에디슨의 기록을 조사했다. 모리스 덕분에 에디슨에 대하여 새로운 사실이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본 고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가난한 에디슨이 어떻게 창업하고, 초기 자본을 축적했는지에 대해 소개한다.

떠돌이 전신기사, 에디슨

1862년 에디슨 나이 열다섯 살, 그는 기차역에서 한 아이를 구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제임스 맥킨지로 그 역의 역장이었다. 매킨지는 에디슨을 3개월 동안 저녁 만찬에 초대해 그의 용기와 행동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에디슨에게 전신을 보내고 받는 전신기사의 일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에디슨은 이후 약 5년간 신시내티, 인디애나 폴리스, 멤피스 등 미국 중서부 지역을 떠돌며 전신기사 일을 했다. 이들 전신기사 사이에는 나름대로 서열이 있었다. 전신기사는 사무원보다 대우가 좋았다. 본선(Main line)의 기사는 지선(Branch Line)의 기사보다 서열이 높았다. 같은 본선 기사들이더라도 속도가 빠른 기사가 느린 기사보다 월급이 많았다. 조작이 빠른 기사이더라도 언론 관련 전신을 다루는 기사는 최상위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에디슨은 이렇게 하나 둘씩 사다리를 타고 최고의 위치로 올라가고 있었다. 에디슨은 전신업무를 익히면서 틈틈이 실험과 공부를 했다. ‘전기학 실험 연구’, ‘전신’, ‘실용전신 핸드북’, ‘전신 조작법’과 같은 전문 서적을 읽었다.

기술과 함께 시장에 눈을 뜨다

에디슨이 떠돌이 전신기사 생활을 마치고 보스톤에 도착한 것은 1868년 봄이다. 보스톤은 전신기사가 일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대규모 전신 장비 업체이자 전신 사업자인 웨스턴 유니온(Western Union)이 보스턴에 지사를 두고 있었다. 또한, 보스턴을 포함한 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소방, 경찰, 주식거래 등 다양하고 전문화된 전신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었다. 에디슨은 웨스턴 유니온에서 야간 전신을 처리하는 일자리를 가졌다.

에디슨은 낮 동안에는 발명하거나 전신산업 전문저널인 텔레그래프(Telegraph)에 논문을 작성하는 등 발명을 사업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에디슨 인생 최초의 발명인 전기 투표기 특허를 1868년 10월 13일 확보했다. 그는 이 기계가 개표시간을 상당히 줄여주기 때문에 사업에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입법자들은 그 기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에디슨은 이 실패를 통해 시장조사와 수요자가 원하는 발명을 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 에디슨은 전기 투표기 사업 실패를 통해 시장조사와 수요자가 원하는 발명을 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사진은 미국 뉴저지 토머스 에디슨 박물관 내부.

에디슨, 기업가를 선언하다

1869년 1월 21일, 에디슨은 두 명의 자본가와 협정을 체결했다. 두 명의 자본가는 ‘주식 시세 표시기’ 특허비용을 지원했다. 당시는 주식 전광판과 같은 것이 없었다. 주식의 변동을 신속하게 알리는 기술은 금융기관에서도 중요한 것이었고 전신 회사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에디슨은 주식 정보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같은 달 30일 에디슨은 전신 전문 매체인 ‘텔레그래프’에 웨스턴 유니온을 사직하고 앞으로 발명을 사업화할 것이라며 개업을 선언했다. 처음으로 시작한 주식정보 서비스 사업은 예상만큼 잘되지 않았다.

1869년 9월, 에디슨은 새로운 기업인 ‘폽, 에디슨 앤 컴퍼니(Pope, Edison & Company)’를 설립했다. 에디슨은 이 회사를 ‘전신 회선의 관리자와 전신 발명가를 위한 안내자’라고 광고했다. 사업 분야는 전신기기의 설계와 운용, 전신 특허의 신청과 지원 업무, 도면과 모형 그리고 카탈로그의 제작 등이었다.

폽, 에디슨 앤 컴퍼니는 미국에서 최초의 기술 컨설팅 기업으로 평가된다. 이 작은 기업이 성장하자 웨스턴 유니온은 1만 5천 달러에 회사를 인수했다. 에디슨은 매각 대금의 일부인 5천 달러(지금의 9만 5천 달러)를 손에 쥐었다.

▲ 에디슨이 설립한 ‘폽, 에디슨 앤 컴퍼니’는 미국에서 최초의 기술 컨설팅 기업으로 평가된다. 사진은 미국 뉴저지 토머스 에디슨 박물관.

특허를 팔아 자금을 마련한 초보 기업가, 에디슨

1870년대 전신산업의 경영자 중 일부는 에디슨의 발명을 지원했다. 마샬 레펄트(Marshall Lefferts)는 에디슨에게 최초의 중요한 멘토였다. 레펄트는 1840년 이후부터 전신 사업에 관여해 온 전신 베테랑이다. 1860년대 후반부터 그는 웨스턴 유니온의 상업 뉴스(Commercial News) 사업부를 맡고 있었다. 레펄트 는 전신 인쇄기술을 공격적으로 확보해 시장에서 우월적 위치를 누리기를 원했다.

에디슨은 축음기, 전구와 전기, 영사기 등을 세상에 선보였다.

레펄트에게 에디슨의 기술적 역량은 중요했다. 또한, 그는 에디슨의 능력을 개인적으로 높게 평가했다. 레펄트는 에디슨에게 ‘주식 시세 표시기’ 특허 매각을 제안했다. 청년 에디슨은 아직 이런 거래에 익숙하지 않았다. 에디슨은 마음속으로 ‘5천 달러 (지금의 9만 5천 달러)를 생각하면서 3천 달러 정도만 주어도 거래는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에디슨은 레펄트에게 ‘저와 거래를 하자는 말씀이신가요’라며 반문했다. 레펄트는 4만 달러(지금의 7십 6만 달러)를 제시했다.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듯했다. 놀라움을 애써 감추었다. 그때까지 평생 가져보지 못한 거금이었다. 에디슨은 건네받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주머니에 넣었다. 지폐 뭉치가 주머니 곳곳에서 삐져나올 지경이었다.

그날 밤 에디슨은 숙소에서 이 거금을 지키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에디슨은 레펄트를 찾아가 전날 밤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레펄트는 에디슨에게 은행에 계좌를 만들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라고 조언했다. 이때 에디슨의 나이 스물세 살이었고 기업가 선언을 한 날로부터 2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에디슨은 이 종잣돈을 사업확장과 새로운 발명에 투자했다. 이후 그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축음기, 전구와 전기, 영사기 등을 세상에 선보였다.

지식재산업계에 각별한 에디슨

에디슨은 지식재산 업계에도 각별한 존재이다. 에디슨은 그의 일생 내내 미국특허 1,093건을 확보했다. 이뿐만 아니다. 34개 국가에서 1,239건의 해외 특허를 받고 이들 특허를 해외 진출의 기반으로 활용했다. 최근 우리 지식재산업계가 해외 특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에디슨은 우리보다 150년이나 앞선 셈이다.

연구개발 이전에 특허를 조사하는 IP R&D 에서도 선구자였다. 에디슨은 프린스턴 대학교 출신인 업튼(Francis Upton, 1852~1921)을 채용하고 그에게 미국, 유럽 등 특허조사를 시켰다. 업튼은 수십 년에 걸친 자료를 조사했고 이 조사는 훗날 소송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에디슨은 기업가이자 발명가 그리고 CPO(Chief Patent Officer)였다. 미국에서 에디슨 열풍이 부는 이참에 우리 업계가 ‘혁신의 아이콘, 에디슨’ 제대 알리기라도 해보면 어떨까?

정성창  ipnomic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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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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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민
우리나라도 1800년대 미국처럼 혁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고 제 값주고 특허기술이 거래되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가야 할 거 같습니다. 이러한 건강한 토양에서 또다른 혁신을 기대 할 수 있겠지요. 정성창 소장님 글은 무엇보다 흥미롭고 유익합니다^^
(2020-02-09 16: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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