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피킹 작업을 수행하는 인공지능 로봇(사진=코베리언트 홈페이지)

독일 베를린 외곽에 위치한 ‘오베타(Obeta)’는 지난 1901년 설립된 전기부품 기업이다. 이 회사 공장 노동자들은 수년동안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작업대로 들어오는 파란 색의 박스에서 전기 부품을 피킹하는 작업을 수행해왔다. 파란 색 박스안에는 전기 스위치, 소켓 등 각종 부품들이 들어있다.

뉴욕타임즈, MIT테크놀로지리뷰 등 매체에 따르면 오베타는 수개월전에 전기 부품 피킹 작업을 수행하는 인공지능 로봇을 도입해 상이한 형태의 전기 부품을 인식해 피킹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이 로봇은 보호 유리 안쪽에 놓여 있으며 로봇 팔 끝부분에 달려 있는 흡착 컵을 이용해 다양한 부품의 피킹 작업을 수행한다. 인공지능 로봇업체들이 최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빈 피킹(bin picking) 기술이다.

오베타의 물류창고에 이 시스템을 구축한 업체는 오스트리아의 물류 자동화 업체인 '크내프(Knapp)'와 미국의 인공지능 로봇 스타트업인 '코베리언트.AI(Covariant.AI)다. 코베리언트는 지난 2017년 '피터 애빌(Pieter Abbeel)' UC 버클리 교수 등이 공동으로 설립했다. 크내프는 다양한 형태의 상품이 들어있는 물품을 피킹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 업체를 물색해오다 코베리언트를 찾아내고 지금은 협력업체로 함께 일하고 있다. 오베타는 크내프와 코베리언트가 설계한 인공지능 로봇과 피킹 시스템을 지난 21일 본격 가동했다.

▲ 코베리언트 공동 창업자(사진=회사 홈페이지)

오베타 물류창고는 아마존, 월마트 등 소매업체들의 물류 창고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들 업체들의 물류 창고에선 저임금 노동자들이 상자에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피킹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 같은 작업을 로봇에게 맡기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베타의 물류 창고에선 코베리언트와 크내프의 오랜 시행착오와 연구 개발 끝에 다른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오베타 물류창고에 도입된 협동 로봇들은 그동안 사람이 하던 피킹 작업을 대신해준다. 각종 부품을 실은 파란색 박스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들어오면 인공지능 로봇이 흡착 컵을 이용해 박스속의 부품들을 놀라운 속도와 정확성을 갖고 피킹하고 다른 상자에 분류한다.

크내프의 '피터 푸흐바인(Peter Puchwein)' 부사장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6년간 물류 산업에 종사했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고 털어놨다. 뉴욕타임즈는 “인간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작업을 앞으로는 기계들이 처리하게 될 것”이라며, 기술 발전으로 물류창고 일자리를 로봇에게 빼앗길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의 발언을 토대로 기술적인 진전이 곧 바로 물류산업에서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코베리언트의 공동 창업자인 '피터 애빌(Pieter Abbeel)' UC 버클리 교수는 “물류 창고에서 인간이 기계와 같이 일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노동 시장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지금부터 50년동안 이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교육 시스템을 통해 노동 시장의 변화를 따라갈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오베타의 물류 창고 로봇을 설계한 코베리언트의 엔지니어들은 강화학습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 로봇들은 오랜 시행 착오 과정을 거쳐 피킹 및 분류 작업을 수행할수 있게 됐다. 엔지니어들은 우선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로봇에게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피킹하도록 훈련시키고 이어 실제 로봇과 물류 환경에 적용했다. 박스 안에 들어 있는 전기 부품들은 형태와 크기가 다르고, 놓여 있는 위치도 상이하기 때문에 로봇 입장에선 피킹이 쉽지 않다. 거꾸로 서 있는 전기 스위치가 있는가 하면 뒤집혀 있는 전기 스위치도 있다. 다음에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들어오는 전기용품이 플라스틱 백안에 들어있어 빛이 반사될 수도 있다.

코베리언트의 엔지니어들은 환경 변화에 맞춰 능숙하고 유연하게 동작하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계속 해왔다. 엔지니어들은 다양한 상품으로 채워져 있는 가상의 상자들을 디지털 공간에 만들어놓고 물건들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어 이 소프트웨어를 인공지능 로봇에 이식해 실제 환경에서 피킹 작업을 했다. 이를 통해 로봇은 처음보는 상품도 피킹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오베타의 물류창고에서 로봇은 1만여종에 달하는 상이한 상품들을 피킹해 분류하는 작업을 학습하고 있는데, 현재 99% 이상의 정확도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비밀스럽게 활동해온 인공지능 로봇 스타트업인 코베리언트는 지난해 ABB가 진행한 로봇 피킹 콘테스트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보이면서 외부에 실체가 드러났다. ABB가 20개 기업을 초청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상품들을 피킹하는 작업을 수행하도록 했는데, 코베리언트의 로봇만이 주어진 미션을 정확하게 수행했다. 크내프와 ABB 측은 코베리언트의 기술이 앞으로 독일 오베타 물류 창고 뿐 아니라 다른 비슷한 유형의 물류 창고에도 도입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베리언트 엔지니어들 역시 계속된 훈련으로 로봇의 학습능력이 계속 향상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오베타 물류창고에서 피킹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시간당 170개의 고객 주문을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하루 8시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매우 고단한 일이다. 또 한 여름에는 물류창고의 기온이 화씨 100도를 넘는 경우도 생긴다. 6개월 이상 계속 이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오베타측은 인공지능 로봇이 이상적인 솔루션이라고 보고 로봇 도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물류 창고에서 피킹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임금은 연 4만달러 수준인데, 크내프측은 인건비보다 낮은 3만달러 수준의 로봇 사용료를 우선 부과하고, 점차 낮추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