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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욱현 DGIST 석좌교수원로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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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22  14: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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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신문은 새해를 맞아 신년 시리즈 기획으로 '원로에게 듣는다'를 마련했습니다. 이 기획물은 우리 로봇계가 당면한 현실에 대한 진단과 나아갈 방향을 로봇계 어른들을 통해 직접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또한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통해 젊은 로봇인들에게 꿈과 지혜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 세번째 순서로 권욱현(71) DGIST 석좌교수 겸 서울대 명예교수 편입니다. 권욱현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 브라운대 대학원에서 제어공학을 전공한 뒤 1977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서울대 재직시절 권교수는 지금까지 제자들이 10 여개의 회사를 창업하도록 이끌어 화제가 됐고 제어로봇시스템학회
회장과 대한전기학회 회장, 국제자동제어연맹 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 대담=서현진 본지 편집고문 ]
60~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처음엔 전기공학을 선택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이 화제였어요. 그런데 이게 전기전자 분야에요. 또 내가 제일 좋아했고 잘했던 게 수학이에요. 어찌 보면 위성은 제어(Control)이고 제어는 수학이잖아요. 당시에 대학의 인기 학과는 화공, 기계 그 다음에 전기 전자였어요. 성적대로라면 난 화공과나 기계과 가야 했어요.
그런데 화공과는 외우는 게 많아 싫었고 기계는 전기전자보다 덜 이론적이고 덜 수학적이었어요. 성적에 맞추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과를 선택했지요. 졸업 때는 전체 2등을 했어요. 일단 내가 원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여건은 됐어요. 나는 처음부터 서울대 교수를 꿈꾸었어요. 당시 서울대는 도쿄대처럼 외부 채용 없이 학부 졸업생이 조교하고 학위 받으면 교수로 채용하는 코스를 따랐어요. 나도 석사하고 강사하는 국가공무원 일급조교 코스를 밟고 있었는데, 서울대가 어느 날 제도를 바꿔 외국대학 학위자를 뽑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 유학을 떠났어요.

브라운대학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난 우등생이었기 때문에 하바드대와 MIT 입학허가를 받았고 미 국무부가 주는 5년짜리 풀브라이트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어요. 그 장학금으로 MIT를 가고 싶었지만 장학금과 MIT 모두 포기했어요. 유학직전 건강이 좋지 않아 과도한 학업이 부담이 됐고 또한 풀브라이트
장학금은 MIT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기에는 부족했어요. 그래서 장학금을 충분히 주는 브라운대에 간거죠. 한국에서 교수를 한다면 미국 대학에 대한 약간의 명성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가서 보니 브라운대학이 제어 분야에서는 권위가 있더라고요. 1972년 9월 브라운대학 대학원에 입학 하여 3년 만에 학위를 마치는 기록을 세웠지요. 박사과정 중에 학술지에 논문 몇 편 발표했더니 지도교수가 능력을 인정하여 조기 졸업을 시켜주대요.

'이동구간제어' 이론 처음으로 규명

학위논문은 어떤 내용인가요.
이동구간제어(Receding Horizon Control)라는 이론입니다. 이를테면 국가 경제계획을 세울 때 몇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한번에 아주 오랜 기간(예컨대 100년)에 걸친 투자계획을 세우거나 5년단위로 짤 수 있어요. 아니면 일단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이듬해 1년 동안 투자해보고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해서 다시 5개년 계획을 세우는 식으로 이어가는 방법이 있겠지요. 이동구간제어는 세 번 째 방법처럼 이동하면서 계속 문제를 풀어나가는 이론입니다. 실제 응용을 하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용하지요. 내 논문 이전에도 이런 유용성은 알려져 있었는데 내가 그것을 처음으로 이론적으로 증명해서 여러 문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일반화했어요. 그래서 히트 쳤죠. 나중에 석유화학이나 화학플랜트 분야에서 적용되는 모델예측제어(Model Predictive Control)도 바로 이 이론과 같아요. 그걸 내가 10년 앞서 규명한 겁니다. 지금은 비선형 문제나 하이브리드 분야까지 적용 범위가 확장되면서 꾸준히 적용되고 있어요.

▲ 브라운대 대학원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지도교수와 함께한 권욱현 교수 부부

유학 마칠 때쯤 서울대에 자리가 있었나요?
1977년 귀국했어요. 당시 서울대 전기공학부 상황을 보니 나하고 내 위 선임교수들하고 년차가 10년쯤 돼요. 그 동안 교수 신규채용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자리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요. 또 그때까지는 유학파 교수들이 거의 없었을 때에요. 만약에 서울대에 가지 못했다면 카이스트에 갔겠지요. 그때 카이스트 채용이 많았을 때니까.

그리고 나서 계측제어공학과를 창설했습니다.
귀국하니까 고명삼 교수님이 혼자서 준비를 다하고 계시더라고요. 교수로는 내가 두 번 째에요. 그 이듬해부터 계측제어공학과(나중에 제어계측공학과) 이름으로 학생들을 선발했어요. 신설학과였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유명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과 홍보 팸플릿도 만들어 고등학교에 뿌렸어요. 거기에 로봇도 그려 넣고 인공위성이 막 날아다닐 때였으니까 인공위성도 그려 넣고요. 좋은 학생들 많이 왔어요. 한때 서울대 단과대학 가운데 공과대학이 커트라인이 가장 높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계측제어학과가 제일 높았던 적도 있었어요. 교육내용은 이론보다는 실용을 강조했어요. 그때 국내에서 최초로 마이크로 로봇 대회를 만들었어요. 그게 1983년입니다.

당시 재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수님들이 엄청나게 많은 과제를 냈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실험 많이 했었죠. 처음부터 학생들을 실용적으로 훈련해서 졸업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
▲ 사진작가 윤주영의 사진집 '百人百想'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권욱현 교수
어요. 유능한 학생들에게 실용 역량을 키워주면 성공확률이 더 높아져요. 머리가 좋은 사람이 실용교육까지 받으면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머리 좋은 학생들에게는 실용교육을 안 하거든요. 서울대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은 가만히 있어도 취직 잘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학생들에게 자꾸 뭘 만들도록 했어요. 그게 익숙해지면 독자적인 개발이 가능해지잖아요. 그게 자신감이 되고 창업으로 이어져 성공하게 돼요.

"학생이 창업해서 성공하는 것도 교수의 업적이고 실적"

실용을 강조한 게 자연스럽게 벤처기업창업으로 이어졌군요.
처음부터 창업을 염두에 두고 학생들을 훈련 시켰어요. 두 가지 지도방법을 병행했습니다. 이를테면 논문은 1대1, 프로젝트는 팀 단위로 하는 식이었습니다. 팀은 기업 조직 같은 형태에요. 팀장한테 전권을 주고 연구비사용권도 줘요. 팀장 중심으로 팀을 돌아가게 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팀장과 팀원 모두 가장 단결이 잘돼요. 팀장의 리더십도 중요해요. 가령 팀원들이 "형! 오늘 회식해요" 그러면 회식자리도 만들어요. 팀 유대관계가 좋아지는 거죠. 그런데 만약 회의 때 팀장이 팀원 핑계대면 나한테 야단 맞아요. 팀장에게 팀 전체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거죠. 그렇게 팀웍이 다져지다 보니 어느 날 팀장 선배가 "나 창업하겠다"고 하니까 팀원들이 "형이 하면 따라간다"고 하는 겁니다. 사업의 성패나 주식지분이 어떻고를 떠나서 형이 하니까 따라간다는 거죠.

일반적으로 교수들은 제자들의 창업을 내켜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반대하죠.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연구실에서 제자들이 빠져나가면 연구인력의 손실이 생겨요. 또 선배가 창업하면 박사과정 후배들이 따라나갈 수 있잖아요. 연구실이 망가진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창업한 제자와 외부 프로젝트 용역 경쟁관계가 될 수도 있어요. 하여튼 단기적으로 보면 교수에게 득 되는 것은 없긴 해요. 그런데 학생이 성공하는걸 내 업적으로 삼겠다는 각오가 있으면 돼요. 나는 제자들이 창업해서 성공한 것을 내 업적이고 실적이라고 생각해요. 당장은 내 연구와 실적에 손실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성공한다면 결과적으로는 내가 성공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단기적인 손실은 내가 견딜 수 있었던 거죠. 게다가 그 당시는 논문평가가 그리 엄격하지 않았어요. 물론 엄격했더라도 관계없는 것이, 나는 일단 학생이면 논문은 당연히 써야 한다고 봐요. 다만 조금 시간을 더 내 150%의 노력을 해서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자는 겁니다. 논문도 쓰고 프로젝트도 하고요. 그런 내 가르침을 따라 제자들이 창업에 성공했을 때 굉장히 기뻤어요. 일할 때의 기쁨이라는 게 있잖아요. 나는 지금도 제자들이 하는 기업 뉴스 읽는 게 재미에요. 상장한 회사들 홈페이지에 가보면 깨알 같은 경영 소식 다 나와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야 너희 회사 그거 했다는데 어떠냐?"라고 물어보는 게 즐거워요. 제자들도 대답 아주 잘해줘요.

▲ 제1회 매경신지식인 대상을 수상하다(2000년 2월). 오른쪽은 장대환 매일경제 회장.

서울대교수 가운데 창업한 제자들이 가장 많은 교수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만 10여곳 정도에요. 이 가운데 휴맥스(대표 변대규),우리기술(대표 노선봉),파인디지털(대표 김용훈),바텍(대표 임성훈),토필드(대표 이용철),파이오링크(대표 조영철), 슈프리마(대표 이재원) 등 7개회사는 상장했고 젤파워(대표 이기원), 세니온(대표 이동률), 리얼게인(대표 최성규), 셈웨어(대표 김광진) 같은 기업도 열심히 하고 있지요. 몇 년 전에 셈을 해보니 제자들 기업이 1년에 벌어들이는 돈이 1조원쯤 되더라고요. 그런데 현재는 변대규 박사가 창업한 휴맥스 한곳의 매출만 1조원이 훨씬 넘더라고요.

창업한 제자들이 많아서 뜻하지 않은 오해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제자들 회사에 돈도 끌어 대주고 기술도 대준 줄 알아요. 내 모델은 그게 아니에요. 내 역할은 제자들을 트레이닝 하고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까지입니다. 회사 만들고 회사 키우는 거는 그들의 몫입니다. 제자들에게도 자기들의 역할과 몫이 있으니까 열의가 생기죠. 만약 거기에 지도교수가 끼어들었다고 해봐요. 그러면 도리어 나태해집니다. 자기일 해야 목숨 걸 것 아닙니까.

“머리 좋은 친구들이 창업을 해야죠”

학생들은 보통 창업, 취업, 학계진출이라는 세가지 갈림길에서 많은 고민들을 하지 않나요?
30여년간 서울대에서 배출한 제자들이 석사가 114명 박사가 55명쯤입니다. 이 가운데 교수하는 제자가 서른 명 가까이 됩니다. 숫자로는 창업하는 제자보다 더 적어요. 그런데 사실은 교수되는 것도 어려울 수 있어요. 신입생 때는 90%가 교수한다고 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10%도 안돼요. 우선 교수하려면 성적이 좋고 논문 잘 써야 해요. 그런 실력은 자기자신이 잘 알지요. 아, 나는 안 된다, 이제까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거든요. 제자들에게 대체적으로 "교수 아니면 창업하라"고 권유한 건 사실이에요. 물론 학생들이 상담할 때 교수하고 싶어하는 것을 말린 적은 없어요. 어떤 제자는 삼성이나 엘지 가겠다
▲ 제17차 IFAC 월드콩그레스 개막 연설
고 해요. 그러면 왜 그런 생각을 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그렇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은 그들이 하는 거에요. 일생이 걸린 문제니까요. 그런데 대체적으로 머리 좋은 친구들은 창업 안 하려고 합니다.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교수하려고 해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긴 해요. 교수 타입인데 기업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이재원 사장은 성격이나 스타일로 보면 학구파죠. 파이오링크의 조영철 사장도 아주 조용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였죠.

창업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갖고 계십니다.
공과대학이 기술의 응용이고 산업을 창출하는 분야입니다. 공과대학 출신 가운데서도 성공한 기업가가 나와야잖아요. 왜 월급쟁이만 돼야 합니까. 대기업에 가더라도 최고경영자 근처에는 가봐야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잖아요. 바로 거기에서 창업의 길이 보이는 거죠. 1970~80년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 많이 했잖아요. 1980년 스탠포드대에서 1년 동안 안식년을 보낼 때 진짜 실리콘밸리 구경을 했어요. 그때 나는 못했지만 우리 학생들한테는 창업의 길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런 생각 할 필요 없습니다. 가령 머리 좋은 친구들이 창업해서 5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실패했다고 쳐요. 그러면 대기업들이 쌍수 들고 환영해요. 학벌 좋지요, 회사 경험 있죠. 안철수의원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지만, 서울대에 다닐 정도의 학력이면 창업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교수들은 창업 그 자체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적극적으로 권유하질 못해요. 용기도 없고 또 미래가 확실치도 않은 거에요. 하지만 나는 우리 제자들이 잘 될 것이란 믿음을 가졌어요.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의 근거가 무엇일까요.
좋은 결과는 사람이 모여 있거나 아이템이 결정돼 있는 것 둘 중의 하나만 있으면 돼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모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모여있으면 기술이 나온다고 보거든요. 제자들의 경우를 보면 중간에 항상 회사가 어려움을 겪어요. 어려움 겪다가 또 일어나요. 어려움을 겪을 때 팀웍이 안돼 있으면 다 흩어져요. 그런데 우리 제자들은 흩어지지 않더라고요. 그 끈끈한 선후배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잘될 때도 안 흩어져요. 학창시절에 다져놓은 팀웍이란 게 사회에 나와서 맺는 관계하곤 다른 겁니다.

▲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2007년). 가족과 제자들이 축하해주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원 슈프리마 사장,변대규 휴맥스 사장, 둘째아들 권영욱씨,문상용 새니온 연구소장, 권교수. 김용훈 파인디지털 사장, 부인, 최성규 리얼게인 사장, 김종일 휴맥스연구소장(당시), 김동성 금오공대 교수, 안상철 KIST 영상미디어센터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창업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사실 찾아 보면 정부 지원이나 제도적으로도 창업의 혜택이 근래에는 많아졌어요. 그걸 학생들이 모르고 있기도 해요. 그런 것 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그전에 연구실에서부터 너희들이 못하면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식으로 자극과 자긍심을 동시에 심어주었어요. 그런 게 나중에 학생들에게 굉장한 자신감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또 한가지, 학생들에게 창업을 돈벌이의 방법이라고만 하면 잘 안합니다. 아직도 선비사상 같은 게 남아 있어요. 명분을 찾아줘야 합니다. 창업해서 성공하면 너한테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사회에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러면 다들 해볼만하다고 해요. 중소기업의 역할에 대한 생각도 바꿔줄 필요가 있어요. 사실 기술이란 것은 중소기업이 리드하는데 이걸 학생들이 잘 몰라요. 중소기업들이 부품기술 많이 개발해주고 그래야 대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거잖아요.

과학기술계산 패키지 '셈툴’ 상업화 못한것 아쉬워

제자들과 함께 기부도 많이 하셨습니다. 2001년에 12억 원이라는 큰돈도 기부했는데요.
나도 그랬지만, 학교 다닐 때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아요. 지금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공과대학 학생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요. 그래서 너희들이 성공했으니 그런 학생들을 돕는 사회사업 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런 얘기를 교육차원에서 했던 거죠. 그런데 사업비는 회사 돈이 아니고, 개인 돈이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어요. 그랬더니 12억이 모이더라고요. 진짜 마음이 통했던 거죠. 사실 회사 돈 가져다 쓰는 거야 쉽잖아요! 나중에 봤더니 그 이후로 회사들마다 나름 대로 사회 사업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휴맥스만 해도 연간 몇 억 원씩 한다고 하고요.

서울대에서 30여년 재직했는데 어느 때 가장 보람을 느꼈나요.
내가 그 기간동안 어찌어찌 하다 보니 상을 10개쯤 받았는데 그 가운데 2000년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준 제1회 신지식인대상과 2007년 정부에서 준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이 있어요. 신지식인 대상은 제자들의 벤처기업 활동이 신지식인과 같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것과 같다고 평가한 겁니다. 더구나 이상은 아무런 서류를 제출하지도 않았는데 받았어요. 순전히 수여기관에서 독자적으로 판단한 거지요. 지금도 나는 내가 제1회 신지식인 대상수상자라고 불리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은 내가 제어이론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라는 것, 또 창업을 통해 학생들에 꿈을 심어준 것을 인정 받은 것을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 같아 보람을 느꼈습니다.

대외활동도 많이 하셨지요?
1994년 제어로봇시스템학회(당시는 제어자동화시스템공학회)를 만들었어요. 제어공학은 학제적인 면이 강해서 전기, 전자, 기계, 화학, 항공 등 다양한 분야가 함께 학술활동을 해야만 기술발전이 용이하다는 판단에서 내가 직접 나섰지요. 창립 때는 선배교수를 회장으로 모시고 4년 뒤에 내가 회장을 했어요. 또 2005년부터 3년 동안 세계자동제어연맹(IFAC) 회장을 역임하면서 2008년 서울에서 IFAC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알찬 학술대회를 연 것도 기억에 남는 활동입니다.

▲ 행사 규모를 가늠케 해주는 제17차 IFAC 월드 콩그레스 연회 장면. 2008년 7월 코엑스에서 열린 이 연회에는 무려 2000여명이 참석했다.

아쉬움도 없지 않았을텐데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과학기술계산 패키지 ‘셈툴’(CEMTool)을 개발했는데 크게 빛을 보지 못했어요. 1992년 첫 개발 이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외산 'MATLAB'과 호환할 수 있도록 꾸준하게 업그레이드하고 대량보급까지 했던 패키지였어요. 그런데 이게 워낙 복합적이에요. 난 수학은 잘하지만 모든 분야를 다 잘할 수는 없잖아요. 개발인력과 애프터서비스도 필요한데 이걸 대학이 다 지원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자가 창업한 리얼게인이라는 회사가 맡아 하다가 안되니까 포기하더라고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패키지 팔아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못 갔어요. 2009년에 셈웨어라는 회사가 만들어져 다 맡았는데 앞으로 두고 봐야죠.

로봇계, 실용연구와 시장창출노력 부족

제어 인접분야인데 로봇에 대한 관심은 없었나요.
사실 내 전공 분야에 신경을 쓰다보니 로봇분야에 까지 깊게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건내가 직접 프로모션하느냐, 간접적으로 하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제어와 로봇을 떼놓고 생각할수 없지요. 1994년 제어로봇시스템학회 만들때만 해도 자동화가 로봇을 포함하는 개념이었어요. 그래서 원래 명칭이 제어자동화시스템공학회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로봇이 더 중요한 개념이 되면서 자동화란 말 대신 로봇을 쓰게 된 거죠. 2010년에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설립위원회 위원장을 했어요. 그래서 초대 원장 선임하는 일을 자문했는데, 이 일은 로봇계의 원로로서 대접을 받은거라 생각해요.

로봇계가 2011년 이후 성장이 정체돼 있습니다. 어떤 과제들이 있을까요.
실용연구와 시장창출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선 실용연구 관점에서 보자면 정부가 로봇을 성장동력으로 선정해서 지원해 오고 있는데 매우 고마운일이지요. 그런데 부가가치 창출에서는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합니다. R&D 결과물의 상품화나 기업화에는 다소 거리가 있어요. R&D 결과물을 기업을 통해 상품화하는 노력을 더 경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산학이 더 협력해야 하고 연구원들의 창업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시장창출 노력 역시 연구비를 확장하는 노력 이상으로 해야 합니다. 예컨대 외국에서는 전문서비스 로봇 분야가 커지고 있는데 대학이나 연구소가 여기에 단독으로 대응하는 것은 어려워요. 대학과 연구소가 산업계를 직접 지원한다는 마음으로 협력을 할 필요가 있어요.

원로로서 로봇계에 당부의 말씀 부탁합니다.
인류 역사는 도구의 발전사라고도 볼 수 있어요. 누가 사람에게 더 유용한 도구를 더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요. 여러 기술의 융합으로 앞으로 도구는 점점 더 지능화 할 것입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다관절 팔이나 사람의 뇌와 같은 지능도 필요합니다. 이게 바로 로봇의 정의이고 흐름이에요. 다만 어떤 속도로 어떻게 갈지가 관건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 흐름의 선두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크게 보아서 로봇산업은 기계, 전자, 정보산업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기계 분야는 자동차에서 선전하고 있고 전자 정보 분야에서는 IT강국입니다. 따라서 로봇산업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좋은 배경과 환경을 갖고 있다고 봐요. 이왕이면 스마트폰 처럼 로봇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했으면 좋겠습니다.

▲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출범식(2010년 7월).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권욱현 당시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설립위원회 위원장.

현재 DGIST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학생들을 선발한지가 이제 3년밖에 안돼요. 서울대 교수 정년퇴임하고 2009년부터 정보통신융합전공의 서치 커미티 맡아 달라고 해서 가게 됐죠. 원래 석좌교수는 맨 나중에 가는 건데 내가 제일 먼저 갔어요. 2010년 4월부터 석좌교수로 임용돼 신임 교수 뽑고 학칙 만들고 그러면서 정보통신융합공학과정 개설에 도움을 주었지요.

"창업이야기와 골프원리를 영문으로 저술하고파"

앞으로 계획은?
난 사실 그동안 다재다능한 능력은 없다고 생각해서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에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어요, 잘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죠.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65세에서 70세까지는 자기가 몸담았던 분야에 더 봉사한 다음, 71세부터 75세까지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봐요. 75세 넘어서는 운이 좋으면 더 할 수 있겠죠. 건강은 아무도 모르는 문제니까. 가령 이문열씨가 교수였으면 그런 소설들 못썼을 겁니다. 전공으로 봤을 때 유명한 소설가가 더 중요하지 대학교수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어요. 나도 올해부터는 DGIST 봉사가 마감돼 교수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신분이 됩니다. 내가 올해 만 71세가 되거든요. 앞으로 5년 동안 내 시간을 가져야 돼요. 우선 이 기간동안 3권의 책을 쓸 계획입니다. 그 가운데 2권은 영어책입니다. 첫째는 내 전공인 ‘시간 지연 시스템’(Time Delay System) 이론을 정리하는 겁니다. 내 첫 영문판 저서인 ‘이동 구간 제어’(Receding Horizon Control) 이론을 까다로운 시간지연시스템에 적용하는 내용입니다. 두 번 째는 창업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앞서 얘기했던 내 훈련 방법과 경험을 정리해서 창업에 뜻을 둔 청년들에게 교과
▲ 권욱현 교수는 올해부터 3년동안 창업이야기와 골프이론 등 3권의 책을 쓸 계획이다.
서로 읽히게 하고 싶어요. 세 번 째는
엉뚱하게도 골프 서적입니다. 단순히 타수 줄이는 팁 이야기를 쓰는게 아닙니다. 그런 책들은 이미 수백 종이 나와있죠. 퍼팅 스트로크나 클럽의 스윙을 물리적인 원리로 설명하는 겁니다. 사람의 신체동작은 오차가 있지만, 물리적인 원리에는 오차가 있을 수 없어요. 내가 생각해둔 원리를 적용하고 싶어요. 3권을 쓰려면 아무리 빨리해도 3년은 걸려요. 적당히 쓰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책쓰는 것과 별도로 할 일이 또 있어요. 내가 은퇴를 대비해서 사무실을 하나 낸게 있어요. 그 사무실 이름을 효산시스템인스티튜트라고 지었습니다. 이 사무실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는 아직 구상 중인데 비영리 사회사업을 하자는게 큰 골격입니다. 이 사업은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거라서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효산시스템인스티튜트에서 내 인생을 보람있게 보내고 싶어요.

[권욱현 교수 주요 이력]
1943년 포항 출생
1966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1972년 서울대 대학원 전기공학과 석사
1975년 브라운대 대학원 공학박사
1977~2008년 서울대 공과대학 전기공학부 교수
1989년 스탠포드대 객원 교수
1991년 서울대-과학재단 제어계측신기술연구센터 소장
1995년 서울대-과학재단 자동화기술연구정보센터 소장
1998년 제어자동화시스템공학회(현 제어로봇시스템학회) 회장
1999년 아시아자동제어교수협의회(ACPA) 회장
2001년 대한전기학회 회장
2003년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2005년 국제자동제어연맹(IFAC) 회장
2007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2008년 서울대 공과대학 명예교수(현)
2010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석좌교수(현)

서현진 기자  suh@irobo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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