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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남 KAIST 명예교수신년기획 원로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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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31  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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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신문은 2017년 2월 23일 74세를 일기로 별세하신 변증남 교수를 추모하기 위하여 지난 2013년 12월 말 진행한 인물연구 인터뷰 기사를 다시 게재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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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신문은 새해를 맞아 신년 시리즈 기획으로 '원로에게 듣는다'를 마련했습니다. 이 기획물은 우리 로봇계가 당면한 현실에 대한 진단과 나아갈 방향을 로봇계 어른들을 통해 직접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또한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통해 젊은 로봇인들에게 꿈과 지혜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 첫번째 순서는 변증남(71) KAIST 명예교수 겸 유니스트 석좌교수 편입니다. 변증남 교수는 서울대와 아이오와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뒤 KAIST에서 30년 동안 재직하는 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고 탁월한 연구성과물을 남기는 등 한국 로봇계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로봇 연구는 이제 그만"


[ 대담=서현진 본지 편집고문 ]

현재 직함은 유니스트 석좌교수인데 언제부터 이곳에 재직하셨나요.
KAIST를 정년 퇴임한 2009년부터이니까 이제 3월이면 만 5년입니다. 보통 석좌교수 계약기간은 3년인데 5년 계약을 했죠.

평생 공학자의 길을 걸어오셨지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깊고 좋은 글도 많이 남기셨습니다.
청소년 시절을 교회에서 자라면서 철학, 종교, 문학 등을 많이 접했어요. 어머니께서 소박하시지만 옛날에 '검사와 여선생'을 보시고 "너도 이 다음에 검사가 되어서 가문의 명예를 높이고 좋은 일 많이 해라"고 하셨어요. 내 자신도 법과나 문과 쪽의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했지요. 7남매의 장남이다 보니 고 1때까지도 그런 길로 나갈 줄 알았어요. 나중에 포철회장까지 하셨던 안병화 선생님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장교 신분으로 영어를 가르쳤는데, 그분이 고 1때 미국에서는 지금 전자시대이고 앞으로 반도체와 컴퓨터가 유망할 테니 대학은 전자과를 지망하라고 해요. 집안 형편도 넉넉치 않은데 공대에 들어가면 일단 생활은 안정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2학년 진급할 때 이과를 선택했습니다.

소설과 시와 노래를 좋아했던 소년

그러니까 고 2때 진로가 결정된 셈이네요.
법대 가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법대 진학해서 고시에 떨어지면 가족들 볼 면목도 없었을 테고요. 그렇게 서울 공대 전자과를 들어갔는데 당시 전자과는 좀 생소했고 인기 있는 과는 화공과나 기계과였어요. 그런데 내 성적이 전자과에서 1등이더군요. 그것을 계기로 앞으로 큰일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그때부터 유학도 생각하게 됐고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공과대학이나 이과 분야 학문에 푹 빠졌습니다. 좋아하던 소설,시,철학 이런 것들은 이제 전혀 쓸모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학위 마치고 1977년 KAIST에 와서 40대 초반 정교수 될 때까지도 소설을 한편도 안 읽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그때부터 문학과 철학서적을 가까이하게 됐고 예전에 쓰고 싶던 글도 쓰기 시작했어요. 사실 대학 다닐 때 글을 잘 쓰고 싶어 정비석의 '소설작법'을 사다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글 쓰는 것은 어려워요. 하지만 참 보람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지요.

자기 표현하는데 공학적인 방법으로 부족하셨습니까?
가령 문화라는 말은 그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누가 물어보면 딱 잡아서 말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설명하다 보면 말이 길이지고. 엊그제 대전에서 책들을 정리하다가 'IEEE 시스템즈 저널'에 어떤 분이 기고한 글을 읽었어요. 이 복잡한 환경에서 어떻게 문화를 이해할 것인가라는 요지의 글이었는데 "The term ‘culture’ relates to the sets of values, preferences, beliefs, assumptions, rituals, behaviors that groups or societies develop and share that, in turn, guide individuals"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문화’라는 말을 정의하는 이 대목을 읽는 순간 가슴이 딱 멎는 겁니다. 특히 'the sets of'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어요. 어떤 똑똑 떨어지는 아이템들이 모여서 종합적으로 문화가 형성된다는 표현이죠. 여러 가지 난해한 미사여구가 필요 없잖아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부럽기도 해요.

▲ 서울대 전자과 졸업식날 가족들과 함께(1969년)
얼마전 로봇신문에 공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사고의 차이에 대해 논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글을 쓴 배경에 뜻깊은 에피소드가 있을 듯 합니다.

대학사회에서 수십년 동안 생활하다 보니 대화 방식이 이른바 공학적인 방법으로 완전히 굳어버렸어요. 그 안에 들어가서 보면 공학적인 방식이 이해가 되고 또 그런 방식으로 상대방을 이해 시키려고도 하지만, 때로는 내게도 이런 한계가 있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껴요. 유니스트에서 기초과정 부장을 맡았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소통이 되는구나!"

잠깐만요! 석좌교수인데 기초과정 부장을?
총장께서 나이든 교수가 가이드하면 다른 교수나 학생들이 잘 따라올 거라 해서 기꺼이 맡았어요. 내 성격이 내가 안해 본 것 중에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해요. 그래서 공학부장, 교무처장 같은 여러 보직을 맡기도 했죠. 그 분야 교수들을 사귈 기회이기도 하고요. 유니스트기초과정부에는 예를 들면 각 과목마다 교수 두 분씩이 있었어요. 철학 두분, 미술 두분, 음악 두분 하는 식으로.

결국 인문학 교수들하고의 에피소드였군요.
기초과정부장을 맡고 나서 첫 회의였어요. 첫 회의라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지요. 그날 이슈가 미술과목에 한 분이 그만둬서 누구를 충원하느냐였는데, 보통 추천한 분에 대해 반 이상 동의하면 넘어가잖아요. 그래서 추천된 분을 거수로 통과시켰는데,나중에 어느 분이 이메일로 브레이크를 걸어요.그렇게만 볼게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도 봐야 한다는 게 요지였어요. 공과대학에서라면 별 문제 없이 마무리됐을 일이에요. 처음엔 무시하려고 했어요. 총장,부총장께서도 결재 올라온 것 보고 결론대로 하라고 그러고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분들이 자기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업셋(upset)하는 겁니다. 그런 일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면서요. 그분들은 처음부터 그런 커뮤니티에서 살았던 분들이라서 그런지 과학기술계 대학에 와 있는 것 자체를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일 이후 내가 생각을 바꾸기로 했어요. 생각이 다른 분들과 내가 어떻게 다른지 체크해보기도 하고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어요.

▲ 로봇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조셉 엥겔버그 로보틱스상 수상 기념(2006) 앞 오른쪽이 엥겔버그 박사.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셨군요!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지나면서 근사치라는 것을 쓰잖아요. 가령 파이(π)라는 것을 계산해 보면 3.141592…식으로 무한히 나가는 건데 3.14로 잘라 버리잖아요. 또 나머지 잘라 내버린 것에 대해 아까워하지 않는 습관이 있어요. 공학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경영하면 그런 역할을 합니다. 우리나라 60~70년대 경제개발 시대에도 그런 역할이 있었고 중국이 잘나가는 것도 짱쩌민이나 후진타오 같은 이공계 출신들이 의사결정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들은 그렇게 해도 된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었겠지요
.

근사치에 대한 과도한 확신

일정부분의 잡음은 잘라 내도 된다는 확신인가요?
그렇죠. 그런데 민주주의라는 것은 소수를 무시하면 절대 안 된다고 사전에 나와 있더라고요. 하하하! 그런데 인문사회 분야 학자들 논문을 쓰는 것 보니 그냥 넘어간 것을 관점을 달리해서 보니 거기에 깊이가 있고 논문거리가 많더라는 식의 얘기를 해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잘라버릴 수 있는 것도 어떤 가정 아래서 보면 중요하다, 나도 이제 그런 걸 배운 거에요. 대화할 때도 어떤 이슈가 생기면 그 반대되는 편의 얘기도 꼭 들어야겠다, 로봇도 마찬가지에요. 같은 로봇을 두고 기계공학도 출신, 전자공학도 출신, 컴퓨터과학도 출신, 디자인학도 출신들 얘기 들어보면 중요하다는 게 모두 달라요. 한가지를 두고도 관점이 다른 거에요. 이럴 때 타협이 필요해요. 정치인들이 못하는 타협을 해서 중간쯤 가게 하도록 기술하는 사람들이 해줘야 해요. 그런데 여전히 자기 것 아니면 다 틀렸다고 해 버립니다.

"상 받을 일 없으면 상 받지 말아야 한다"는 글도 쓰셨어요. 이 시대 지도층이나 지식인들이 한번쯤 새겨들어야 할 말 같습니다.
상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하는 것은 괜찮아요. 일부는 그 이상 이상한 일들을 벌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상 이야기는 여러 관점에서 말할 수 있어요. 어렸을 때는 주변에서 상을 가려서 줬어요. 그래서 상으로 자그마한 공책이나 연필을 받더라도 귀하게 생각했지요. 물론 미국에서 보니까 조금만 잘해도 상들을 주는 것을 보고 상이 좋은 역할을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몇년전에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포상위원회 위원장과 삼일문화상 심사위원 등을 했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저 사람 멋있다, 상 받을 만하다 해서 상을 주면 당사자는 "난 받을 자격이 안돼"라며 한번쯤은 사양해보는 문화가 남아 있어요. 그런가 하면 상 받는 사람 중에는 수상 신청을 해놓고 심사위원들에게 잘 봐 달라고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연략을 받으면 많이 실망하게 돼요. 또 한가지는, 어디라고는 말하지 않겠는데, 대학과 기관 가운데 유난히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려는 곳이 있어요. 심사위원이 다 엮여 있어서 가능하면 자기 대학 출신 많이 집어넣어요. 일종의 집단 이기주의이지요. 자신이 상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 데 상 받으려고 애쓰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 같은 값이면 자기 식구 상 받게 해준다는 일부 지식인들의 행태는 우리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고요.

앞으로 상을 주는 입장이 된다면 어떤 상을 만들고 싶나요?
2012년 수당재단에서 주는 수당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부상으로 1억 원을 받았는데 거기서 5000만원을 떼 한국로봇학회에 기부했습니다. 그랬더니 학회가 그 돈을 ART상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ART가 Assistive Robotic Technology라는 뜻인데 재활이나 간병 로봇기술 분야를 의미하지요. 내가 20여년 동안 재활 로봇, 장애인들을 위한 로봇연구를 해왔잖아요. 수당상을 받은 이유도 인간로봇상호작용에 대한 연구성과였고요. ART상은 그 분야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에 얼마씩 연구비를 지원하는 거라 합니다. 올해 첫 수상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난 앞으로도 그 상에 관여할 생각은 일절 없습니다.

"아빠는 거짓말쟁이!"

어떻게 해서 로봇연구를 시작하게 됐나요?
난 원래 자동제어가 전공인데 1978년 11월인가 과학재단에서 산업용 로봇 제어로봇시스템에 관한 연구를 제안해 왔어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로봇에 대한 관심이란게 거의 만화적인 수준이었습니다. 나 역시 내가 공부한 제어공학이나 수학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하던 때였어요. 헛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봇이라고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해서 과학재단의 제안을 받았죠. 그게 바로 내가 로봇 연구의 길로 접어든 동기입니다. 첫해에 200만원, 그 다음해에 120만원의 연구비를 받아 개발한 게 'KAISEM'이라는 매니퓰레이터입니다. 320만원이면 당시 일반 대학 교수의 본봉이 10만원 정도였으니 아주 큰 돈이었지요. 저

▲ KAISEM 개발 당시 변증남교수(뒤줄 오른쪽)와 연구원들. 현재 전북대와 성균관대에 각각 재직중인 송상섭 교수(뒷줄 왼쪽)와 박영제 교수(앞줄 가운데)의 모습도 보인다.

는 지금도 그 사건을 'Fortunate Accident'라고 부릅니다. 'KAISEM'은 당시의 학교명(KAIS)과 전기(Electrical), 기계(Mechanical)를 합친 말인데 1979년 발표했더니 KBS 9시 뉴스에서 크게 보도를 했습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로봇이 개발됐다고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갑자기 유명해졌어요. 그게 어디까지 소문이 났는가 하면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딸아이가 유치원 친구들을 끌고 연구실에 온 겁니다. 저희들끼리 "너희 아빠가 로봇을 만들어 TV에 나왔다더라"하면서 구경 온건데 와서 보니 마징가제트 같은 것은 없고 가로 세로로 길게 늘어진 기계장치가 소리만 지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딸아이가 “아빠 거짓말쟁이!”하면서 투정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다음에 개발한 것이 걸어다니는 4각 로봇이었죠?
하여튼 'KAISEM'을 계기로 정부(과학기술처)에서도 이제 우리나라에도 로봇이 필요하겠구나 해서 분위기를 띄워주었어요. 이렇게 저렇게 해서 1년에 300만원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사람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로봇도 개발했습니다. 그런 다음 과기처로부터 1억원씩 2번에 걸쳐 연구비를 지원받아 1989년 걸어다니는 4각 보행 로봇을 내놓았어요. 4개의 발과 비전센서를 달고 있는 모습이 반인반수를 연상시킨다 해서 이름도 '센토'(Centaur)로 지었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기계연구원(KIMM)과 함께 개발했는데 그들 기관에 소속된 제자들을 중심으로 수십명이 개발팀을 이루었죠.

2000년대 초부터 재활로봇 결과물들을 발표해왔습니다. 재활로봇은 요즘의 이슈인데요. 어떤 계기로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까?
로봇 하면 떠올려지는 게 사람하고 비슷하게 생각하면서 인터랙션도 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지능이 있어야 되는데 나는 지능을 공부한 게 아니라서 어떻게 로봇에 지능을 집어넣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센토' 개발 이후 로봇연구에 한계를 느꼈어요. 나는 그때까지 로봇을 하나의 제어시스템으로 보고 모든 문제를 수학적으로만 접근했는데, 그거 가지고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하면 지능을 구현할 수 있을까해서 공부를 시작한 게 퍼지이론이었습니다. 90년대 초에 국내에 퍼지학회를 만들고 그로부터 2년 뒤에는 세계대회(World congress)도 유치하기도 했지요. 당시 로봇에 어떻게 퍼지를 집어넣는가를 고민하다가 내 취미인 음악에 결부시킨 게 지휘로봇입니다. 로봇이 지휘자(conductor)가 돼 다른 로봇의 연주를 지휘하게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사람이 하는 삼각형 동작(conducting motion) 매핑해서 비교해보면 로봇이 그리는 삼각형과 달리 불확실한 게 많아요. 그것을 퍼지로 처리하면 근사하겠다 싶었습니다. 지휘 동작을 퍼지이론을 이용해 인식(Recognition)하면 잘 될 것 같다는 연구결과를 샌디에고 퍼지학술대회에서 발표했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장비를 정리하는데 참석자 중에 한 사람이 다가와 흥미롭게 들었다며 새로운 제안을 해요. 지휘동작 구현도 중요하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시스템 같은데 응용을 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는 거였습니다. 그 직후 귀국해서 지휘자 로봇 접고 새로 시작한 게 수화연구입니다. 그게 1992년이죠. 하다 보니 이거야말로 의미있고 지능도 필요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해서 1999년 KAIST에 여러 팀들이 만들어졌고 과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과학재단에 제안서 내서 인간 친화 복지로봇시스템연구센터(HWRS-ERC) 설립자금을 따왔지요. 스토리가 그렇게 연결됩니다.

▲ 미국 ABC 방송 인터뷰 장면

일본인들도 부러워 했던 로봇 정책

30여년 동안 많은 정부과제들을 해오셨는데 정부정책에 대한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처음 로봇을 시작을 할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미국과 일본, 유럽을 다니면서 느낀 것이 있어요. 일본만 해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로봇 연구자가운데 기계공학도 출신이 많다는 점입니다. 기계란게 일단 구현해서 보여주면 좋은 볼거리가 되니까요. 그래서 일본인들이 기구적인 것을 발전시키는데 공헌을 많이 했어요. 반면 미국의 로봇연구자들은 장난감 같은 걸 가져다 놓고 방에서 혼자 프로그래밍해가면서 인공지능 테스트 해보는 경우가 많아요. 기구적인 것은 그 분야 전문가들에 맡기고 소프트웨어 분야에 집중을 하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로봇분야의 많은 일들이 전자분야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전자공학 전공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로봇이 국가 차원의 어떤 기준을 받기 시작하면서 달라졌어요. 처음 로봇정책을 과학기술처에서 할 때는 괜찮았는데 나중에 로봇이 돈이 되겠다며 산자부에 연결되면서부터 상황이 바뀐거죠. 돈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기계공학 하는 사람들을 많이 상대를 했던 거 같아요.

나중에는 정보통신부도 뛰어 들었지요?
그렇지요. 정통부는 로봇을 네트워크 분야로 연결해서 미래지향적으로 간다는 명분으로 산자부와는 다른 길을 갔어요. 그때 참 경쟁적이었죠. 그러다가 5년전 정권 바뀌면서 다시 이쪽으로 뭉쳤어요. 사실상 흡수된 거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가령 로봇 하는 사람이 어느 날 "내가 우리나라 로봇을 이렇게 끌겠습니다"거나 "이런 방향으로 해봅시다"라고 할 때에는 자기가 생각해온 배경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고 자기 방향으로만 계속하다 보니 답보 상태에만 있는 거에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지금 일본의 로봇 발전사를 비슷하게 답습하고 있어요. 우리가 정통부로 갈라져 있을 때만해도 일본사람들이 굉장히 부러워했어요. 이런 방향으로도 나가고 저런 방향으로도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요. 얼마 전 한 젊은 교수가 이런 말을 해요.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이를테면 현재 신기록이 9.9초에요. 기를 써서 9.89초로 단축하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100미터를 9.9초에 뛰는지 9.89초에 뛰는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뛴다는 자체만을 봐야 하는데 누가 9.89초를 뛸까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겁니다. 아주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해요. 9.9초냐 9.89초냐 하는 게 바로 우리의 시야를 좁히는 거거든요. 요즘 연구결과들을 보세요. 큰 프로젝트라고 해서 내용을 들여다 보면, 우리가 옛날에 했던 것과 비슷비슷해요. 조금 더 들여다 보면 일본이나 독일에서 했던 것과 비슷해요. 돈받은 거 결과 발표하라고 하니 거기에 맞추고 있는 거죠. 산업용 로봇처럼 음영이 확실한 데는 그래도 괜찮아요. 0.1초라도 초과한게 나중에 쌓이면 큰 돈이 되거든요. 그런데 서비스 로봇의 킬러 애플리케이션 차원에서는 0.1초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이제는 생각을 좀 바꿔야 할 때라고 봐요.

결국은 연구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네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전에 어떤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는데 정부에서 무슨무슨 기관이라고 만들었잖아요. 정부 입장에서는 로봇 연구한다고 여기도 돈 주고 저기도 돈 주고 하는 게 뭐하니까 한군데로 모으자 해서 만든 게 그런 기관이잖아요. 로봇계에서는 지금 뭔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찾아야 되는데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인다고 될게 아니잖아요. 각자 흩어져서 다른 각도로 이리저리 생각해봐야 뭔가 새로운게 나올텐데, 자꾸 한군데로 모으기만 하면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아요. 처음엔 여러 부서에서 각자 다른 개념으로 출발을 해도 궁극적으로는 통하고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그런 로봇 만드는 정책이 필요할 때에요. 가령,서양사람하고 아프리카 사람하고 만나면 당장은 아무 말도 안 통하지만 하다 보면 인성이 뭔지 서로 얘기 나눠 가지고 같이 잘 나갈 수도 있잖아요.

▲ KAIST 30년 근속상(2007년). 수여자는 서남표 당시 총장이다.


효율성만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70~80년대 정책의 잔재가 아닐까요?
맞아요. 정부에서 예산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아직도 그런 멘탈이 남아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사원에서 지적받으니까요. 이제는 극복해야지요.

이제는 사용자 요구와 시장평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때

정책의 난맥상도 그렇지만 산업계도 많이 어려울 때입니다.
우선 남에게 보여주는 것, 데모들 많이 하는데 조금 조심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어려움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데모하는 거보면 굉장하고 재밌어 보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구입해서 해보면 얼마나 어렵습니까. 휴머노이드 로봇 만들어 카메라 앞에서 대통령과 악수시키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그 악수마저도 때마침 고장이 나서 못할 때도 많지만요. 악수 한번 하게 하려면 학생들 밤새워서 일주일 이주일 고생 합니다. 데모를 본 사람들은 로봇은 다 그러는 줄 알아요. '아이보'인가 하는 소니의 강아지로봇만 해도 그래요. 그 강아지 로봇은 연구자 수준의 실력이 아니면 조작하기가 힘들어요. 그러니까 쏙 들어갔어요. 그걸 구입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한테 "한번 구입해보세요"라고 할 수 있어야 진짜잖아요.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때 많이 팔리는 완구 있잖아요. 거기에 기능을 추가해서 아이들을 즐겁게 한다거나, 고장이 나도 금방 고칠 수 있는 식으로 로봇의 상품화도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교육용이나 완구로봇 분야에서 생각만큼 매출이 안나는 이유는 몇 사람 모여서 쉽게 쉽게 로봇을 만들었다는 얘기이기도 해요. 나름 고민은 했겠지만요. 이제는 사용자 요구나 시장의 평가에 대해 장기적으로 분석하고 고민할 때입니다.

이제는 로봇에 대한 관점이나 생각도 달라져야 할텐데요.
요즘 IT란 말을 굉장히 많이 쓰잖아요. IT기반이니 IT 융합이니 하고요. IT는 어찌 보면 공기나 연기 같은 걸로 보여집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형체를 갖게 돼 우리 생활주변에 편리하게 다가오죠. 가령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별도로 작업을 하지 않아도 우리 말이 녹음기에 녹음 되고 나중에 편집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것처럼 형체가 있는 IT 가 여러가지 합쳐지고 해서 장차 로봇이 돼갈 것이라고 봐요. 그렇게 되려면 상상도 많이 하고 여러 분야의 얘기도 들을 줄 알아야 돼요. 그런데 그런 일은 당장은 힘들 것 같아 교육을 통해 서서히 장기적으로 해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일전에 한국로봇학회장한테 제안한 게 있어요. 요즘 학회가 일반 회원들은 그대로인데 학생 회원들은 꾸준히 증가 하고 있답니다. 물론 학생회원들이 많으면 학회비는 잘 안들어오겠지만 학생회원들을 잘 활용할 수는 있잖아요. 뭐냐 하면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고등학생들과 중학생들한테 로봇관련 콘퍼런스나 동아리 모임을 하도록 학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자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로봇이 뭔지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번지게 하면 어떻겠느냐 했더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그거에요. 이제 우리처럼 나이가 든 사람들이 경험만으로 로봇의 방향은 이렇게 가야 한다고 제안하기는 힘들어졌다는 겁니다. 로봇에 대한 관점이나 생각의 차이도 크고요. 그런 점에서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이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 이 대목에서 일정부분 학회가 역할을 해줘야 하는 거고요,

세간에는 앞으로 로봇의 발전 방향을 기계분야가 이끌고 가느니, 컴퓨터나 IT가 이끌고 가느니 하는 논쟁도 있습니다만...
최근의 추세는 앞서 말했듯이 네트워크나 IT같은 것들이 모여 로봇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로봇을 자꾸 하나의 기구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제대로 발전을 못해요. 아직도 자꾸만 어떤 틀 속에 가두어 놓으려고만 해요. 그것을 깨는 방법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그걸 깨자고 얘기하면 아이디어 낸 사람도 웃기는 사람이 되고 돈 줄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상황이 돼버렸어요. 어떤 지식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리더가 되느냐 보다는 융합차원에서 접근하고 다룰 수 있는 마인드의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될만한 인재를 찾자, 내 전공은 상관없다"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는데요.
정확한 숫자는 잘 모르겠는데 박사가 한 65명 근처일겁니다. 학교에 40% 정도 있고 나머지 연구소와 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석사는 150~160명쯤 돼요. 그 숫자가 다른 교수들에 비하면 많은 편에 속하죠. 다들 참 잘하고 있어서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제자들이 내 전공을 따르느냐 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제자들을 지도할때 내 원칙은 "될만한 인재를 찾자, 그렇다면 지금 내가 연구하는 분야와 상관없어도 좋다"였어요. 제자들 중에서 나처럼 자동 제어이론 하는 제자가 몇 있었지만 나중에 비전 분야가 중요하다 해서 그 분야로 전공을 바꾸기도 하고, 센서 중요하다고 해서 센서 분야로 간 제자들도 있어요. 내 전공을 따르는 제자들은 아무래도 학교에 많겠죠.

▲ 변증남 교수가 이끌었던 시스템제어연구소(BSCL) 동문의 밤(2004년). 로봇계의 기라성 같은 얼굴이 다수 보인다.

지금 로봇분야에서 당장 생각나는 제자들 중에는 누가 있을까요.
김병국 교수(KAIST)는 박사제자 1호고요. 그 뒤로 서일홍 교수(한양대), 오상록 박사(KIST) 유범재 교수(KIST)가 있네요. 그리고 직접 만나 보면 놀랠만한 인재, 김영석 교수(서울과학기술대)가 있어요. 김교수는 원래 서울대기계과를 졸업했는데 내가 좋다고 우리대학에 와서 박사학위 했어요. 기계과이면서 전자과를 공부해 두 분야 모두 정통해요. 또 박광현 교수(광운대), 김경진 사장(로보메이션), 김용태 교수(한경대), 송원경박사(국립재활원), 정진우 교수(동국대) 등도 있었요. 기업하는 제자로는 둘다 LG출신인 이길재 박사와 유완식 박사가 있습니다.

음악, 특히 성악에 조예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기독교였어요. 우리 할머니 존함이 김마리아입니다. 6.25전쟁 터진 해에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때부터 교회에서 찬송가를 불렀어요.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새벽에 집집마다 돌며 찬송가 부르는 새벽송을 다녔어요. 대학생 형들이 이중창으로 '저 들밖에 한밤중에'를 부르면 그 화음이 너무 아름다웠지요. 그런 기분으로 중고등학교 때는 성가대를 했고 대학 1학년 때는 한국남성합창단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노래를 좀 했고, 작곡한다는 게 뭐 별거야 이런 생각에 아홉곡인가 열곡쯤 노래도 만들어 봤어요. 그런데 뭐 이게 대단한 게 아니고 그저 흥얼흥얼대던 것에 곡을 붙인거니까. 요즘엔 동문 모임 같은데서 무대에 초청을 받기도 해요. 가장 최근에는 유니스트의 한 행사에서 거기 음악교수의 바이올린 반주에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죠. 가요나 팝은 듣는 이가 별로 반응이 없어 안하고 가곡이나 성가를 주로 불러요. '그리운 금강산' 외에 '생명의 양식'(Panis Angelicus), '비코즈'(Because). 그리고 토스티의 '이데알레'(Ideale)가 단골 레퍼토리입니다.

성악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화음의 아름다움이고요. 또 하나는 중창 여럿이서 합창할 때 느끼는 공명이에요. 공명은 합창할 때 내 옆의 사람을 통해 내 소리가 울리는 것을 느끼는 겁니다. 우리가 목욕탕에서 노래하면 멋있다고 느끼잖아요. 그런 느낌입니다.

▲ 합창단원으로서 변증남 교수(오른쪽 세번째). 변교수는 합창의 매력을 아름다운 화음과 자기 목소리를 옆사람을 통해 듣는 공명이라고 말한다.

인문 분야에서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이것 저것 많이 읽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남들에게 추천할 정도의 감명 깊은 책을 얘기하라고 하면 적어도 서너 번은 되짚어 읽은 것이야 하잖아요. 그런데 죄송스럽게도 두 번 이상 읽은 책이 없어요. 그래도 꼽으라면 요즘 읽고 있는 책 가운데 멋있는 게 한 권 있어요. 김경집씨가 쓴 '인문학은 밥이다'입니다. 정말 잘 썼어요. 특히나 저자가 각 챕터마다 자기가 읽어서 소화한 책 리스트도 소개하고 했는데 그거 보니 다 읽어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나와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내용도 있고요.

"항상 배워라, 그리고 열정을 가져라"

좌우명이 있습니까?
우리 아이들이나 제자들에게 이거는 꼭 가지고 있어라 해서 해 줄 두 마디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늘 배우라"는 겁니다. 손주녀석 이름도 넉넉할 유(裕)자에 배울학(學)자를 써서 '유학'이라고 지었어요. 내 호도 '학보'인데 보자가 클 보(甫)라고 시인 두보의 이름자와 같아요. 크게 배운다는 뜻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한 것은 중학교 때 한문 선생님이 이태백과 두보에 관한 얘기를 해 주셨는데 이태백은 진짜 천재라는 거에요. 술 한잔 탁 하고 나면 뜯어 고칠 데 없이 완전한 시가 한편씩 나왔다고 해요. 반면, 두보는 써놓은 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심지어 측간에다 걸어놓고 일을 보면서 고치고 또 고쳤답니다. 두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천재가 아닌 게 분명하니 두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뭘 하더라도 그런 자세여야 한다고 생각 했던거죠. 이제 나이 들으면서 보니깐 주위에서 배우는 것을 딱 스톱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요. 남 얘기 듣기 싫어하며 "난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더 이상 다른 말 하지마" 그런 식이죠. 그걸 보면서 나는 적어도 그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의미로 배움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배워라, 항상 꾸준히 널리 배워라" 하는 게 내 좌우명의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흔한 얘기이긴 하지만 "열정을 가져라"입니다. 물론 열정의 뜻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KAIST에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을 안했어요. 강의를 하면 그 과에 대략 20%는 똑똑한 학생들이고 60%는 쓸만하고 뭐 그랬어요. 그런데 다른 학교에 가보니 그 반대에요. 그 80%에 해당하는 친구들이 나중에 뭐가 될까 염려가 돼요. 이게 공부에 대한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봐요. 어느 과목을 하더라도 모르면 고민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자기가 하는 일에 정을 보이고 열을 쏟아야 하는데, 그저 수동적이고 피동적이 돼요. 지쳐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해요. 옛날의 열정들이 모두 사라지는가 싶어요. 옛날이라고 하면 내가 학생일 때도 있고 처음 KAIST에 왔을 때이기도 한데요. 학생들이 좋은 선생한테 가려고 서로 피투성이가 되게 싸워서 연구실 정하고 그랬어요. 점수를 더 달라고 조르는 학생, 왜 그러냐고 따지는 학생, 자기가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덤비는 학생 등등, 옛날에는 그런 열정들이 있었어요. 하여간 이런 얘기는 젊은 사람들한테 꼭 해주고 싶어요. 또 이런 얘기들을 손주들에게도 해주고 싶은데, 그래서 요녀석들이 알아듣고 따라줬으면 좋겠는데, 아직 어려서 제 엄마 손잡고 도망가기가 바빠서 해줄 틈이 없네요. 하하하!

끝으로 새해인데 로봇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지금 우리나라 로봇계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에 답답해 하고 있어요. 배 만드는 사람들은 배를 수
출하면 수천 억 원을 번다고 하면서 자랑스러워 하는데 너희 로봇계는 뭐하냐는 거죠. 거기에 동요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까지 기술이나 과학의 발전 과정을 보면 로봇 역시 진보하는 것은 분명한데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자동차도 사실은 대중화 될 때까지 40~50년이나 걸렸거든요. 처음에는 "차라리 말을 사지 뭣하러 자동차를 사느냐"라는 힘든 과정을 겪었어요. 시기적으로 너무 조급해 할 필요 없다는 얘기입니다. 여유 있게 멀리보고 헤쳐 나가자고 말하고 싶어요. 급급하다 보면 과장돼서 잘못된 기대감만 부풀리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돼 있어요. 새해에는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고 봐요.

[변증남 교수 주요 이력]
1943년 서울 출생
1962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69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72년 아이오와대학교 대학원 전자공학 석사
1975년 아이오와대학교 대학원 수학 석사
1975년 아이오와대학교 대학원 전자공학 박사
1976~1977년 아이오와대 객원 조교수
1977~2009년 KAIST 전자전산학부 전기 미 전자공학전공 교수
1990~1995년 한국퍼지학회 초대회장
1991~1992년 KAIST교수협의회 회장
2001년 제31대 대한전자공학회 회장
2003~2005년 국제퍼지시스템학회 회장
2004~2006년 한국로봇공학회(현 한국로봇학회) 초대 및 2대 회장
2005~2009년 한국전력 석좌교수
2007년 미국전기전자학회(IEEE) 석학회원(Fellow)
2009~현재 유니스트 석좌교수
현재 KAIST명예교수

2017. 2. 23 향년 74세를 일기로 별세

서현진 기자  suh@irobo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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